2024.09.13.
고구마와 눈치
아내는 밤고구마를 좋아한다. 맛있다며 입맛을 다시는 환한 얼굴만 봐도 나로서는 행복하다. 아삭거리는 열무김치나 붉은 고추를 찧어 넣은 시원한 물김치와 같이 먹으면 꿀맛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고구마라 하면 해남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해남 꿀고구마가 최고다. “오빠! 고구마는 보내지 마소.” 고구마를 좋아하는 동생은 벌써 한 상자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고 있다고 한다. 서운하다. 설령 해남 고구마 맛이 그렇게 좋아도 오빠 기분을 생각해서 빈말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솔직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텃밭에서 캐낸 고구마는 호박고구마로 단맛이 덜하고 끝부분에는 실이 많아 아쉽다. 수확량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다 먹어야겠다.
고구마의 생육 기간은 120일에서 150일 사이이다. 고구마 모종을 5월 14일 심었으니, 수확시기는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쯤이 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잎과 줄기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갈 때 수확한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수확을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들 한다. 수확한 고구마는 흙을 털어내고 그늘에서 잠시 말린 후 보관해 두었다가 그 맛이 그리울 때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어 먹으면 더 맛있다. “아니면 말고.”
대개의 농작물이 90일 정도이다. 감자, 옥수수, 쌀 등이 그렇다고 들었다. 고구마도 3개월 정도면 땅을 파 봐도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9월 초부터 몇몇 교육생이 술렁이고 예상보다 큼직한 괴경을 수확했다. 전체를 모두 파헤친 교육생이 “아직은 이르다.”며 말렸지만 저마다 열 개의 뿌리 정도는 흙을 파고 캐보는 조급함을 보였다.
과정은 모르겠고 결과가 소중하다. 삽날을 깊숙이 밟아 넣고 흙을 파낸다. 손바닥만 한 크기도 서너 개 있지만 장지 손가락에 살이 조금 붙은 크기의 먹지도 못할 것들이 다수다. 고구마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계륵(鷄肋)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기다리시라. 시월 중순까지는 고구마의 시간이다. 성급함을 반성한다. 비웃는 그대에게 웃어 보였지만 웃는 게 아니다. 눈치가 없는 그대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괜스레 화가 치민다.
오치(五癡)를 아는가. 노래 한 곡 불러보면 음치(音癡)와 박치(拍癡)임을 다 안다. 음의 가락이나 높낮이를 분별하지 못할뿐더러 발성하지 못하며, 박자에 맞추지도 못한다. 귀가 막히고 입이 닫히다 보니 노력해도 춤이나 율동 등이 맞지 않고 어설프다. 그래서 몸치다. 길치 하나를 제외하면 오롯이 음치, 박치, 몸치이고 더하여 눈치도 없는 편이다. 남의 마음을 고려하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로 가끔은 눈치가 없다는 구박을 받기도 하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눈치 정도는 있어야겠다.
첫댓글 몆개 안되는 맛이 좀 덜한고구마을 상에 올려 내내 찍어올리니 죽을때쯤 사진보면 진짜 맛있었다
기억할수도 있다
김서방이 맛있다 했을테니
쓸데없이 입바른소리 하면 클난다요. 그냥 맛있는 척하는 게 사는 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