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2016년 12월 10일(토) 대학원생들(김혜지, 육진주, 정유란)과 함께 지리환경교육학회가 열린 진주교대에 다녀왔다. 누가 만드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 진주 냉면, 바람과 기온이 성공적 답사의 요인임을 한번 더 확인한 촉석루, 그리고 늘 깊은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경상대학교 기근도 교수를 통해 좋은 사람,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충분히 깨달은 하루였다. 오후 4시 조금 넘어 대구로 출발하였다. 오는 도중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고령의 개실 마을을 잠시 들렀다. 예상치 않은 답사가 주는 약간의 호사도 누렸다.
거대 도시 대구를 실감하게 한 성서 톨게이트를 지나 두류역 근처의 신신 반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집 짬뽕은 대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꽤 괜찮았다. 식당 인근에 집이 있는 정유란 선생을 먼저 보내고, 육선생, 김선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거의 맛집 전문가 수준인 김선생 이야기를 듣다가 ‘대구의 맛 집들을 지도에서 표시하면 그것들의 분포 특성이 나타날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불현듯이 던진 이야기에 육선생은 ‘교수님은 매사 탐구적이네요’ 라고 하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부러움이 담긴 이야기를 하였다.
두 선생을 선스포츠 프라자 부근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쉽게 문제인식과 탐구 주제가 떠오르는데 그들은 왜 그렇지 못할까? 그 이유가 지식의 깊이와 탐구 경험 차이 때문일까? 그들도 나처럼 세상을 탐구적으로 살피는 안목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하면 될까?’ 라는 생각들을 하였다.
II
12월 16일(금)의 평가 연수 원고 때문에 일요일(12.11)에도 학교에 나와 일을 하였다. 에너지를 많아 쏟았는데도 잠이 오질 않아 토요일 날 제기하였던 문제들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의 출발은 나였다. 나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탐구적인 사람이 되었는가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먼저 토요일에 제기하였던 유명 식당의 공간적 분포와 관련된 탐구 주제의 구조를 분석하였다. 대학원생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문제제기 같지만 나는 아주 짪은 시간에 여러 공간 정보를 판단하여 잠정적으로 어떨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던진 문제이다. 순간적으로 이런 탐구적 판단을 나는 할 수 있고 그들은 하지 못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의 실행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면 나와 두 선생의 두뇌 정보 처리 수준이 다르냐면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오히려 두 선생의 두뇌 수준이 나보다 높다. 우선 젊다. 그래서 두뇌 회전도 빠르다. 그리고 타고난 두뇌 능력도 나보다 뛰어나다. 그럼에도 이들이 나처럼 탐구 문제를 쉽게 던지지 못하는 것은 내 두뇌가 그 쪽으로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이 보면 저런 의문을 어떻게 저렇게 쉽게 던지나 하겠지만 나의 탐구 역사는 30여년이나 된다. 그러니 나의 뇌는 지리적 탐구에 최적화되어 있다. 나는 대구의 유명 식당들과 그들의 공간적 위치가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니 그와 관련된 추상적 조작도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나의 대뇌피질의 측두에는 대구의 공간 정보(주거지, 교통, 자연 등)가 방대하게 들어가 있다. 그러하니 몇몇 유명 식당의 위치를 대구의 공간 정보에 적용하면 일련의 공통점이 보인다. 그러면 ‘나는 전체 식당을 조사하면 그들의 입지적 질서가 보이겠다’라는 판단을 한다.
이 뿐만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10년 정도) 사회과 지리 교육 강의에서 어떤 것이 그 곳에 입지한 이유를 밝히는 것을 레포트로 내었다. 예를 들면 ‘왜 애견상은 반월당에 많은가? 화훼단지가 불로동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들안길에 음식점이 많은가?’ 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탐구이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빡씬 레포트 중 하나였다. 이 레포트 때문에 4S(손석락, 송명섭, 송남희, 나)의 한명으로 꽤 악명(?)을 날렸다. 약간 과장하면 이것만 하면 졸업하는데 이상 없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지쳐 결국 그만 두었다. 레포트를 받으면 20일 정도 매일 새벽까지 빨간 볼펜으로 레포트 내용을 교정할 정도로 꼼꼼히 읽고 평가 내용을 레포트에 적어 돌려주었다. 이렇게 세심히 평가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쳤으니 대구의 지리적 현상들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그러니 무엇을 보면, 특히 대구의 지리 현상들을 보면 관련된 수 많은 공간 정보와 지식들이 순식간에 작동하면서 그것의 의미를 해석한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대구의 유명 음식점의 분포 특성 조사’라는 탐구 문제를 쉽게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문제 던지기의 수준은 나의 학문적 궤적과 관련된다. 지형학이라는 순수 지리학을 연구한 나는 ‘답사, 지도 살피기, 항공사진 판독하기, 자료 수집과 분석하기’라는 탐구적 문제해결 속에 살았다. 잠을 잘 때도 문제 해결 속에 있었다. 꿈에 고민하던 문제와 관련된 중요 자료의 위치가 나타나 새벽에 차를 몰고 답사 지역(청송군 진보면)으로 간 적도 있었다. 물론 개꿈이었다. 이렇게 절실하게 연구했다. 그러니 내 머리 속에는 탐구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집 사람이 ‘당신 왜 결혼했나’ 라는 이야기를 심심하면 할 정도였다.
그러면 나의 석사 시절은 어떠했는가? 지금처럼 탐구를 잘하였는가?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나 역시 석사 때는 지도교수가 이야기해 준 것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지도 교수의 생각에 새롭게 보탤 수 있는 능력은 애초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의 지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아야 생각도 한다. 지도 교사가 물으면 머리 속이 갑자기 하얗게 된다. 지도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는 왜 저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라고 자책하면서 ‘이렇게 아둔한 놈이 무슨 공부를 한다고 하나’라고 자책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같은 주제를 계속 연구하다보니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더해졌다. 석사 때는 절단 곡류(meander cut-off) 지형을 연구하였는데 박사 과정에 들어와 공부하면서 연구의 폭과 깊이가 넓어졌다. 절단 곡류뿐만 아니라 범람원, 하안단구, 선상지, 고위평탄면, 빙기와 간병기의 기후변화, 지형 변화 등 하천 지형의 전반으로 연구 주제가 넓어졌다. 그에 따라 지형학 연구 방법과 분석 방법, 관련된 지식의 깊이도 깊어졌다. 여전히 하늘 같은 지도교수님이지만 과거보다 의지하는 정도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해석이라는 고차적 지식의 수준에서는 박사 학위를 받아도 여전히 지도교수님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었다. 워낙 출중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 교수들이 군계일학이라 칭할 정도로 뛰어난 분이셨다. 지도 교수님 곁을 떠나 대구교대로 오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열심히 하였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은 꾸준함, 실천력, 도전의식이다. 이것은 지도 교수님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칭찬해 주었다. 이런 이유들이 모여 대학원생들이 보기에 쉽게 문제 인식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지식을 강조하는 것도 나의 경험 때문이다.
III
모두에게 올챙이 시절이 있다. 나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대학원생들은 학술 논문 수준은 아니지만 간단한 지리, 역사, 경제 등의 현상에 문제인식 던지기를 하고, 그와 관련된 문제해결의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가벼운 탐구 경험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는 지도 교수와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모델화와 사고의 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주제는 내용학적 것이 좋다. 이 때도 그냥 하기 보다는 참고할 만한 책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지리로 읽는 대구 이야기, 알고 보면 재미있는 삶터 탐구, 탐구를 통한 삶터 학습 등을 대상으로 그 속에 있는 실제 지역으로 가서 책에서 탐구하는 방법을 따라 탐구적 답사를 하는 것이 좋다. 답사 과정에서는 책의 탐구 과정을 비판적이고, 반성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몇 년은 있어야 한다. 그러면 탐구가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베이게 된다. 탐구가 체화된다. 그 때쯤 현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문제인식이 떠오르고 탐구 주제와 과정이 생각난다.
아니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면서 탐구해 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중심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한 후, 그것과 관련된 문제들을 지역을 넓혀가면서 적용하는 것이다. 아파트 주변에 중심지 개념을 적용해 보고, 또 자기 사는 구 지역을 대상으로 중심지 개념을, 그리고 대구 전체를 대상으로 중심지 개념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물론 적용의 출발은 문제제기이다. 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적용이 진행되면 중심지와 관련된 탐구력과 문제인식이 강화된다. 이 과정에 지도 보는 법, 자료 찾는 법, 핵심적 대상을 살피고, 대상과 전체의 관계를 보는 법, 대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경험을 통해 이와 관련된 연구 방법도 알게 된다.
이들과 더불어 지도 보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습관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장소에 갈 때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도 습관적으로 다음, 네이버, 구글 지도 등을 살펴야 한다. 만약 관찰 대상이 대구에 있다면 대구 전체, 구, 동네, 마지막으로 대상으로 범위를 좁혀가면서 대상과 다른 공간과의 위치적, 거리적, 환경적 관계를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하라는 것은 그 과정에 관계적 사고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분석의 출발은 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관계를 본다는 의미는 어떤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구조를 본다는 뜻이다. 그것이 되어야 이들을 나누고 고르는 일, 즉 분석을 할 수가 있다. 문제 인식도 관계가 보일 때 생긴다. 관계의 중요성을 역사에 대입하면 사건의 시간적 흐름을 살피는 것이 된다. 그것이 될 때 비로소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시간의 관계 속에서 살필 수 있게 된다. 지리든, 역사든 관계적 사고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이것은 습관화 되어야 한다.
이런 경험 속에서 지리적, 역사적 지식이 쌓이면 공간과 시간 속에 본격적으로 인간을 넣는다. 물론 관계를 보는 속에서도 인간을 넣는다. 인간을 넣는다는 것은 관찰에서 해석으로 탐구의 중심이 전환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관계 살피기보다는 고차적인 수준의 관계 살피기이다. 그래서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처음에는 단순한 요소들의 관계를 살피고, 관련된 지식을 익히는 활동이 중심이 되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인간과 역사, 인간과 문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의미롭게 해석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도 인간과 관련된 해석은 잘 못하였다. 많은 책을 읽고 관련된 지식이 쌓이고, 그것들이 기존의 지리 지식과 결합되면서 자신감이 쌓였다. 아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답사를 통한 지식의 지속적 적용을 시도하였다. 내가 인류사와 관련된 역사-문화적 책 읽기를 강조하는 것도, 답사를 중요시 여기는 것도 이런 경험 때문이다. 이 역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하는 문턱에 서 있게 된다.
2016.12.12
첫댓글 저는 또 이 좋은 글을 읽는 호사를 누리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