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亥安]=돼지들의 안식처
강원도 양구군에 해안면이 있다. 가칠(加七) · 대우(大愚) · 도솔 등 줄지은 산봉우리에 의해서, 둘러싸인 산간의 침식분지이다. 마치 세숫대야처럼 주위가 솟아오르고, 가운데가 펑퍼짐하게 낮은 지형이다. 한국동란에 참전한 미군의 눈에 비친 모습이, 서양의 광주리를 연상케 하므로 ‘펀치 볼(punch bowl)’이라 했다.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그물처럼 얽혀 있고, 후덕리(後德里)에서 한 줄기로 합쳐 소양강으로 흐르므로, 큰 가뭄이 들어도 이곳만은 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 알려졌다.
물이 달고 땅이 비옥한 곳은 농경사회에서 살 만한 곳으로 인정받아왔다. 여기에다 폐쇄적 환경은 외세의 침략에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겐 승지(勝地)로 지목될 것은 당연하다. 특히 외세와의 충돌이 잦은 북쪽으로부터, 안전지대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온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 동란기에 남북의 접전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많은 곳임을 고려하면 풍수지리도 신뢰할 것이 못 되는 모양이다.
12간지에서 마지막의 돼지를 해라고 하므로 해(亥)는 곧 돈(豚)이 된다. 결국 해안은 돼지의 안전지대로부터 출발한 지명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돼지가 뱀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므로, 돼지와 무관한 곳이 아니다. 《삼국지》의 <동이전(東夷轉)>에 고구려가 졸본에서 통구로 도읍을 옮긴 내용을 압축된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돼지를 기를 수 있으므로 고기는 식량으로 쓰고 가죽은 옷감으로 이용하며, 기름은 사람의 몸에 발라 겨울의 추위를 이겨냈다’라고. 이것은 돼지가 잘 자라는 곳이 곧 사람이 살기에 알맞음을 알리는 북방계의 가거지(可居地)를 선정하는 방식의 하나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해안도 옛날 고구려인이 선호하던 거주 조건의 충족된 곳이며, 이후 풍수지리와 결합됨으로써 변형된 승지의 하나가 되었다.
출처:(땅 이름 점의 미학)
2025-02-0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