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정기 산행은 진해 장복산으로 하고, 산행 코스는 진해 시민회관에
모여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08:30 까지 진해 시민회관에 집결해 주세요~!!
- 시민회관 근처에서 시작하여 원점회귀 산행코스로~~!!
※. 점심 도시락은 필요 없으니 입만 꼭 모시고 오셔요~!!
진해-창원 장복산(591m)
양팔로 진해를 품은 산
들머리에 조각공원이 있다. '자유로운 삶' 이라는 설명이 붙은 조각 앞에선다. 손발을 날개처럼 활짝 펼친 나체상이다. 자유란 알몸처럼 세상사 모든 일들을 훌훌 벗어더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범부의 삶이란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도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산을 오르는 이 순간은 그나마 자유롭다. 산 앞에서는 내 자신을 훌훌 벗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편백나무숲은 검은 휘장을 덮어 쓴 것처럼 어두컴컴하다. 숲 아래는 풀 한포기 없는 맨 땅이다. 여러 갈래로 뻗은 길이 옆으로 휘어지기도 하고 곧바로 올라가기도 한다. 뿔뿔이 흩어져 가는 길인가 싶어 잠시 혼란스럽다. 길이 많아 길에 갇혀버린 셈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길은 숲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로 모아질 듯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발길이 가는 대로 길을 따라 올라간다.
편백나무숲을 벗어나 큰 바위를 돌아서자 햇살이 쏟아진다. 툭 트이는 곳이 길인가 싶어 올라서니 홀드가 박힌 암장과 약수터다. 물통을 꺼내 집에서 가져온 물을 버리고 약수를 받는다. 다시 등산로로 돌아가 골짜기를 타고 오른다. 이내 정상이다. 왼쪽에는 창원시, 낙남정맥인 봉림산(정병산)이다. 오른쪽은 진해시와 바다다. 정면에는 가야할 능선과 불모산이 솟았다. 정상은 암봉이다. 넓지는 않으나 산행의 정점, 가장 자유로운 곳이다.
주능선은 암릉과 나무가 거의 없는 펑퍼짐한 봉우리들이다. 정상에서 내려서도 시야는 막힘이 없다. 산은 시야를 열기 위해 흙과 나무들을 몽땅 벗어버린 것 같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는 걷기가 힘들겠으나 바닷바람이 넘실넘실 밀려온다면 오히려 더 시원할 것도 같다. 암릉이 박힌 능선은 오르내리기가 수월하면서도 옹골차다. 웅산(709m)과 불모산(802m)을 진해의 귀퉁이로 밀어내고 양팔을 활짝 펼친 듯 진해를 품고 있다.
산등성이에는 억새가 흩날린다. 능선 저편으로 날아갈 듯 바다를 지나 섬으로 건너갈 듯 허공을 맴돌다가 산자락에 펼친 점심 위로 내려앉는다. 못 본척 김치가닥에 양념삼아 얹어 먹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나무가 나뭇잎을 털어내고 산야에 뿌리를 내린 풀들도 씨앗을 떨구는 계절, 나뭇잎과 씨앗들이 땅으로 내려앉듯 점심상에 날아든 억새를 굳이 집어낼 것 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안민고개에서 창원과 진해로 내려가는 길은 모두 도로다. 터널 위로 조성된 생태교를 건너 계속 산을 탄다. 경찰보호구역, 헬기장 등 인공구조물이 연이어 나타난다. 산과 사람들의 공존을 위한 방편이겠으나 사람들의 편리를 먼저 고려했다는 생각이 든다. 산에서는 사람이 객이다. 한번쯤 산의 입장이 되어 인공구조물을 바라볼 일이다.
꾸준히 앞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를 따라 걷는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좀더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할 뿐 별로 변하지 않는다. 바로 아래 충무공 수련원(선수촌)이 있다. 시내도로를 쭉 따라가니 충무공 동상이 서있는 교차로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 기장에서 진해로 이어지는 해안은 왜적의 전진기지였다. 우리의 영토였으나 왜적들이 왜성을 쌓고 주인 행세를 했던 곳이다. 충무공은 부산해전에서 승리했지만 발을 디뎌보지 못한 곳이다. 충무공은 이곳의 적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렸을까, 진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충무공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거북선이 떠오르는 거북바위에 선다. 굽어보니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섬처럼 배도 떠 있다.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한가하고도 평화로운 정경이다. 충무공과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 나라를 구하고 자유를 안겨준 덕분이라 해도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산다는 것은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빚지는 일인지 모른다. 고마워해야 할 대상이 한둘이 아니다.
일상의 수다스러움과 긴장감에서 벗어나고자 배낭만 메고 오른 산이지만 내려다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촘촘한 삶터다. 그런세 산에서 보는 우리 사는 풍경은 아름답다. 도시지만 아담하게 느껴진다. 놀랄 일이다. 저곳이 정말로 벗어나고 싶었던 곳인가 싶다. 부지런히 걸어 빨리 저 삶터로 돌아가고 싶다. 도심의 빌딩에 시야가 막히고 질주하는 차량처럼 늘 마음이 바쁜 탓에 미처 찾아내지 못한 아름다움이 우리 삶터에는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산길에서도 편백나무숲을 지난다. 해가 서산으로 설핏 기운 탓에 숲속은 마치 밤 같다. 축축하고 음산한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투덜거린다고 해서 산을 내려가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묵묵히 걷는 것이 숲을 벗어나는 일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편백숲 같은 선뜻 내키지 않는 일들에 투덜거리지 않는 일이지 싶다. 한발 한발 그것들을 넘어섰을 때 느끼는 편안한 마음같은 것 아닐까. 편백숲을 벗어나니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인다. 성큼 시내가 가깝다.
*산행길잡이
해군헌병단 검문소-(1시간10분)-정상-(1시간)-덕주봉-(50분)-안민터널-(1시간5분)-석동 갈림길-(40분)-석진암-(15분)-이동시외버스정류소
해군 헌병단 검문소 버스정류소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진해 장복산 조각공원' 팻말이 있다. 팻말을 따라 도로를 걸어가면 조각공원이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조각공원으로 올라간다. 직진해서 조각공원을 벗어나면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건너 30m쯤 내려가면 '명상의 숲' 돌비석이 서있다. 오른쪽에는 의자가 놓여있다. 등산로는 돌비석 옆 작은 화단 사이로 나있다. 20여분만에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건너 가파른 절개지를 치고 오르면 편백나무숲이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데 어느 길이든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틀어야 된다. 숲을 벗어나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암장과 약수터가 있다. 정상은 직진이다. 임도에서 50분 정도 걸린다. 정상석에는 산의 높이가 582.2m라고 되어있다.
정상에서도 직진한다. 삼각점 봉우리, 정자와 이정표가 있는 안부와 헬기장을 차례로 지나 쇠철망을 두른 덕주봉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덕주봉에서도 직진, 50분이면 안민터널까지 갈 수 있다. 안민터널에서는 창원과 진해로 가는 도로가 있다. 안민터널 위로 난 생태교를 건너 직진한다. 넓은 공터와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봉우리마다 경찰보호구역, 헬기장이 있다. 이 구간에는 등산로와 임도가 뒤섞이고 암릉과 에돌아가는 암릉 아래 길도 있다. 안민고개에서 45분 정도 가면 철탑을 만나고 10분 더 가면 거북바위가 있다.
거북바위에서 10여분 더 가면 길 오른쪽에 소나무와 바위가 나란히 서있다. 이곳을 내려서면 길이 두 갈래다. 주능선을 버리고 오른쪽 길로 간다. 암릉 아래 길 같지만 석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석동 갈림길이라고 쓴 '조난위치표지판'은 갈림길에서 직진, 15m쯤 더 가면 큰 나무에 붙어 있다. 내려가는 길은 숲이 울창하다. 편배간무숲을 지나 30여분 내려가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건너 다시 등산로로 들어서서 대나무숲을 지나고 나무다리를 건너 걸어 나가면 포장길이다. 직진하면 10분만에 석진암에 이른다. 석진암에서도 직진, 롯데마트를 지나 15분쯤 걸어 내려가면 부산행 버스가 다니는 이동시외버스정류소가 있다.
*교통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단을 경유하는 진해행 버스가 06:00~22:00까지 15~20분 간격으로 있다. 1시간 소요. 요금 3,800원.
진해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150, 160, 161, 162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진터널 앞 해군헌병단 검문소에서 내린다. 15분 소요. 요금 900원.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가기 전 옛 육군대학 앞에서 내린 다음 택시를 타도 된다. 택시요금은 2,500원 정도.
진해에서 부산행 버스는 15~20분 간격으로 21:30까지 있다.
남해고속도로에서는 서부산요금소를 통과하기 전 진해방향으로 내린다. 경부고속도로에서는 대저분기점에서 공항로를 탄다. 모두 2번 국도를 타고 진해시를 지나 마진터널 앞까지 간다.
*잘 데와 먹을 데
진해 최초의 관광호텔인 그린 준 관광호텔(055-552-9001~3)이 있다. 날머리인 이동에 한식집 동방가든(545-3636)이 있고 이외에도 음식점이 많다.
*볼거리
성주사 금관가야 김수로왕이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위해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흥덕왕 2년(872) 도력으로 왜구를 물리친 무념국사를 칭송하여 흥덕왕 10년(835)에 세웠다는 설이 함게 전해 내려온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중건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제134호)과 지방유형문화재 제25호인 삼층석탑, 제335호인 석조 관세음보살 입상, 제336호인 감로왕탱, 문화재 267호인 동종 등 유서깊은 유물이 많다.
성산패총(사적 제240호) 창원공단 조성 시 발굴되었다. 패각층에서 국제교류를 시사하는 한나라의 오수전이 출토되었다. 패총 아래에서는 철을 주조하는 야철지가 발견되어, 철을 생산하여 왜, 낙랑에 수출하였다는 중국의 옛 기록을 입증했다. 패각층 위로는 토성이 축조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지금도 패각층,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패총 내 공원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유물전시관이 있고 창원시 소답동 용화전에서 옮겨온 용화전 석조여래좌상이 창원공단을 내려다보고 있다.
제황산 공원 진해시의 문화유산을 시대별로 전시해 놓은 진해 시립박물관과 해군의 위용을 자랑하는 진해기념탑이 있다. 작은 동물원도 있고 운동시설과 쉼터도 잘 갖추어져 있다. 기념탑 전망대에 올라가면 진해시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진해만과 장복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글쓴이:박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