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컴퓨터와 카메라를 준비된 케이블로 연결했다. 화면에 iPhoto(사진관리프로그램)가 자동으로 실행되며 카메라 속의 사진들을 무섭게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첨단속도도 내 마음의 속도에 비하면 턱없이 느리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잠시 동안 이 넘의 디지털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때를 생각해본다. 이제 겨우 1년이 넘었나…… 소위 ‘디카’라고 부르는 디지털카메라와 나와의 만남은 그리 빨랐다 볼 수는 없지만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간사해서’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필름카메라와의 인연은 그리 어렵지 않게 끊어져 버렸다. 아마도 그 사용의 편리함 때문이리라.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새삼스럽게 카메라를 쓰다듬어 본다. 어느새 오늘의 사진들은 컴퓨터에 저장이 되었고 나는 익숙하게 iPhoto의 재생버튼을 눌렀다. 배경음악으로 지정된 귀에 익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이 시원한 시냇물처럼 상쾌하게 아르페지오로 흘러나오며 연주회 사진들이 한 장씩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낡은 슬라이드필름처럼 한 장씩 재생되는 사진들은 묘한 상념에 젖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 장씩 화면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진들을 보며, 영화 ‘시네마천국’의 주인공처럼 나의 기억은 조금씩 조금씩 과거로 흘러간다. 몇 년전 이었든가,
학창시절 음악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가 집안일과 아이들에 매달려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플룻을 취미로 배우기 권했던 때가 생각난다. 나이가 들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어찌됐든 아내는 가사와 플루트를 병행하며 놀라운 집중력과 노력으로 플룻을 배워나갔고, 언제부턴가 설마 했던 아마추어 연주활동까지 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말이 쉽지 학생도 아니고 주부가 매일같이 연습하며 집안일까지 해나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 보란 듯이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괜한 부러움과 질시의 감정이 교차되며 어느덧 슬라이드사진은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고, 오늘 연주를 한 단체들과 단원들의 모습이 아내의 모습과 중첩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연주회 팜플렛을 꺼 집어내어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오늘 부산플룻페스티발에 참가한 연주단체와 사진들을 맞추어 보기 위해 다시금 사진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다시 거꾸로 흘러 짧은 과거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부산 플룻페스티벌’이 열리는 조금 전 오늘 밤으로.
부산 시민회관 오후 5시 30분,
연주회 시작시간이 저녁 7시라고 했지만 작년의 아픈(?) 기억도 있고 해서 오늘은 제법 일찍 도착한 셈이다. 많은 단체가 한꺼번에 연주를 해야 하다보니 리허설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리허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리허설 때의 살아있는 모습을 찍지 못하면 그건 사진도 아니다라는 돼도안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이들 돌 사진도 아니고 결혼예식사진도 아니고 그저 연주기념단체사진이나 찍어야 하는 신세를 생각하니 도통 흥도 나지 않았다. 나보다 두 어시건 먼저 간 아내는 그녀가 포함된 단체와 함께 남자탈의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자동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내어 들고 후문 밖으로 향하며 내가 뭐 하러 이렇게 일찍 왔을까 생각하니 괜히 계면쩍기도 했다. 내가 무슨 프로 사진작가인가? ㅎㅎ 커피를 다 마시고 무대 옆으로 난 통로를 통해 관객석을 힐껏 보니 벌써 수십 명의 청중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페스티벌 전에 열릴 ‘김태형’ 선생님의 독주와 공개레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며 플룻소리가 열심히 나고 있는 탈의실 쪽을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이하룡’ 선생님의 사회로 시작된 제 12회 ‘부산플룻뮤직페스티벌’은 ‘부산플룻앙상블’의 특별연주를 필두로 시작되었다. 아내를 좇아 오늘 같은 플룻페스티벌을 비롯하여 그 동안 몇몇 작은(?) 아마추어 플룻 연주회를 다녀봐서 그런지 낮 익은 단체이름이 제법 있었는데, 대 여섯 명으로 구성된 단체부터 시작해서 수십 명에 이르는 단체까지 그 구성도 다양하다. 그들은 모두 오늘 한 곡씩의 레퍼토리를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사진 찍느라 제대로 감상은 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귀에 익은 곡들이 울려 나온다. 어려운 곡을 힘들게 연주하는 것과 쉬운 곡을 제대로 연주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 곡의 수준이 중요한 것일까? 아마추어가 곡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아마추어가 대중 앞에서 낮 익은 곡을 들고 서기는 웬만한 연습과 자신감이 있지 않고는 매우 힘들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대학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 본적이 있기 때문에, 한 곡 준비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그것이 어려운 곡이든 쉬운 곡이든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들에 대한 호기심은 더 해져갔다. 그들은 지금 학생도 아니고 프로도 아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런 자리에 있게 만드는 것일까? 단순한 호기심일까? 이것을 그냥 단순한 취미활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휘발성 열정일까? 아내가 속해있는 단체의 몇 회원은 10년 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히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인스턴트 열정이 아닌 진중하고 깊이 있는 열정에 빠져있는 사람은 보기에 아름답다. 적어도 오늘 밤 이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서 ‘일회용 열정’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열정은 프로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하다. 아내에겐 맞아 죽을 이야기일진 모르지만 그 매력 때문에 나는 이 자리를 다시 찾은 것은 아닐까? 그런데 중년이 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 각설하고!,
한 도시의 음악수준은 그 도시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들의 수나 질과 크게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귀 동량으로 들은 적이 있다. 타 도시는 어떠할 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부산의 플루트 인구는 상당한 편이 아닐까? 문득 작년에 일본의 어느 플루트연주 단체가 부산 문화회관에서 연주를 했을 때 자리를 가득 메우며 모였던 그 수많은 아마추어 플루트 인구를 생각해보면 괜히 기분이 우쭐해 지기도 한다. 근데 왜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거지? 문화의 불모지라 악명 높은 부산에 살면서 유독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 그럴까? 어쨌거나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다다익선이라 했던가? 카메라에 장착된 메모리가 받쳐주는 한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슬라이드는 몇 차례 더 재생과 반복을 더 하고 있었다.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들을 가차없이 삭제하면서 연주회 사진을 대략 정리하고 나서, 얼마 전에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iPhoto의 배경음악으로 설정해볼까 하는 생각을 갑자기 해 보았다. 그리고 이런 저런 취미로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 오늘 밤을 아름답게 연주한 아내를 비롯한 이들의 모습을 함께 떠 올려보았다. 밤의 가스파르, 가스파르는 프랑스어로 ‘교활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난 내가 그런 사람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라벨의 ‘Ondine(물의 요정)’을 플룻으로 연주하면 얼마나 엽기적으로 들릴까 생각도 해보다가, 사진 속의 열정에 가득 찬 아름다운 그들도 떠 올려보기도 하면서, 한편의 좋은 영화를 보고 난듯한 기분 좋은 느낌으로 잠을 청했다.
첫댓글 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동참하지 못한 그 페스티벌에 다녀온 느낍입니다....갤럭시님 표현처럼 인스턴트 열정이 아닌 진중하고 깊이 있는 열정에 빠져 있는 아담스단원들이나 그 못지 않게 사랑과 열정으로 지켜봐주는 가족,팬(?)들이 있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역시 짱입니다요.아담스만세입니다!
네! 짱,짱,짱입니다.갤럭시님 만세! 와니 aka님 만세! 아담스만세!
"감사합니다!" 달리 무어라 드릴 말씀,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아낌없는 성원,격려,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챙기고 지켜봐주시는 가족,(갤럭시님과 똑같은?..)이웃,팬(?)들이 있어..아지매들은 힘이 납니다.그리고 또 무모하리만큼 큰 용기를 냅니다.
호외요~! 호외~!!! <아담스카페에 갤럭시님 떴슴다~~!!!>......음하하핳ㅎ~~이렇게 시원시원,든든할 수가....아담스아지매들 빽이 대단허요잉~!!! 부럽고,약간 질투도 나지만 이렇게 나눠주시니 대리만족하게 됩니다.
쥔장,지다성님 공개수배하더마 ...갤럭시님꺼정 잡히오싯네여??? 근데,알림방 보리밥은 드셨는지.
사실40에 글 쓴다는 자체 특히 현대사회에 열공인 분들(?) 전문인들 제외하면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슴다 독자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도록 올린다는 것 참으로 어렵지만 갤럭시님 존경합니다 아울러 루비님 정말 어불리는 부부올ㅆ다 아쟈 아쟈!!!!!!!!!!!!!!!!!!!!!!
세대차가 확 느껴지는 느낌이... 부러슴다. 항상 두분의 앞선 문화로 우리 아담스도 앞서 가며 혜택을 보는 군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