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에서 해가 제일먼저 비춰주는 곳 부산도심 속 산소탱크 황령산돌탑을 만나기 위해 남구 대연초등학교뒤편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재개발한다는 간판들이 간혹 띄면서 온통 주위는 쌈지 밭으로 꼴불견이다. 이 길을 들머리로 황령산을 오른다. 황령산을 오르는 길은 수십 갈래다. 남구(청장 이 종철)에서 등산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처음 산을 타는 사람은 종아리가 쭉쭉 당긴다. 등줄기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필자는 뚜벅이다. 천천히 앞만 보고 산길을 재촉해 나지막한 야산에 운동기구가 즐비한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교를 좀 부리고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걷는다. 시원한 초겨울바람을 가슴에 안고 흐르는 땀을 식히며 천천히 갈 길을 재촉하여 첫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오른쪽 먼 곳에는 활짝 열린 광안대교가 눈앞에 펼쳐진다. 동해바닷물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화물선이 오고 간다. 간혹 고기 잡는 어선도 눈에 띈다.
황련산 편백나무 숲.
돌탑에서 내려다 본 용호만 일대.
바다를 등지고 조금 오르다보면 건너편은 황령산을 깎아 건축한 스키 돔이 산의 조망 권을 망쳤다. 난개발이라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힘 있는 자에게 당해내지 못한 결과물이다. 민초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한을 가슴깊이 태우는 현실이 아닌가. 업주는 부도내고 잠적했다. 몇 일전 자수했다는 기사를 봤다. 처음부터 건축이 잘못됐다. 부산경제에 실내스키장이 가당한가. 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실내스키장 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람고개는 동서로 바람이 불어오는 중간 쉼터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땀을 식힌다. 물 한잔을 마시고 사자 봉(400m)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르다. 편백나무 숲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주 백리길 걷기대회에서 완보 후 후유증으로 종아리에 이상이 생겨 내 몸에 눈높이를 맞춰 낮은 코스인 돌탑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돌탑은 산과계곡의 돌을 주워 모아서 쌓았다. 높이가 5m정도 된다. 그리고 주위에는 바닥 돌을 깔고 중앙에 식탁을 만든 곳이 5곳이나 된다.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고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황령산을 오르는 산 꾼들은 이제 돌탑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돌탑을 모르면 황령산을 올랐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이 돌탑은 유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탑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를 한다.
탑 주위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다니기 좋도록 석축도 쌓았다. 석축 주변은 국화며 진달래 철쭉 동백나무를 심었다. 이것이 황령산의 명물 돌탑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탑을 쌓은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쌓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환경운동가는 자연을 훼손한다고 관청에 민원을 넣고 훼방을 놓았다.
돌탑 주변의 기암괴석이 돌고래주둥이 같죠.
말썽많은 스키돔건물이 보이며, 광안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탑을 쌓은 사람은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일 년 동안 돌을 날라 쌓았다고 한다. 이 많은 돌을 험악한 오솔길을 통해 지게로 져다 쌓은 것이다. 너무 공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돌탑(공든 탑)이라고 한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줄을 잇기 때문에 길은 산 꾼들의 발자취로 잘 만들어졌다. 인위적으로 만든 등산로보다 더 다져졌다. 사람의 발길이 무섭다.
돌탑을 보는 사람은 공로에 감탄할 뿐이다. 만든 사람은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을 쏟았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찾는 사람은 돌탑에 지극정성 기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부산을 혹은 가정과자식을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부산의 아침은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태양이 황령산돌탑을 제일먼저 비춰준다. 부산항을 넘나드는 선박들의 안녕과 어선들의 만선을 기원한다. 부산시민의 만수무강과 발전을 위해 희망과 용기를 더해준다. 돌탑은 아름아름 산 꾼들의 입소문으로 등산로는 남녀노소는 물론 애완견까지 동참하여 줄을 잇고 있다. 황령산의 보물이요 부산의 보배다. 훼손하지 말고 영원히 보고 즐기고 가꾸고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은 산이 좋아 산을 오르는 산 꾼들이 져야한다.
금련산정상 송수신 안테나.
바다로 무너지는 청사포를 찾아 - 그린웨이 따라 전설 따라(2회)
청사포로 내려가는 길
가수 최백호는 ‘청사포’라는 노래에서 발아래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는 없고, 발아래 포구에는 파도만 부딪혀 퍼렇게 퍼렇게 멍이 든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러나 과연 청사포에 푸른 모래는 없을까? 아니다, 푸른 모래는 분명히 있다. 바로 그 청사포의 푸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푸른 모래는 은린처럼 반짝이고 있다.
송정과 해운대 사이에는 세 개의 포구가 해안가 갯바위를 따라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부산 동부해안의 삼포이다. 세 포구는 동해안 최남단에 있는 소박한 포구이며, 한때는 정동진과 강릉까지 연결되었던 동해남부선의 녹슨 철로가 이들을 매일 어루만지고 있다. 이 철로를 따라 걷다가 차례로 만나게 되는 삼포의 풍경.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하나씩 만나게 되는 그림 같은 삼포는 때론 수줍은 처녀이기도 하고, 때론 홍매화 가지를 손에 들고 천진하게 웃는 소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청사포항구
어선이 어울리는 청사포항
최백호는 왜 청사포에 서린 푸른 뱀의 전설을 노래에 넣지 않았을까? 골맥이 김씨 여인의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은은하게 담겨 있는 그 신비로운 이야기를 왜 빠트렸을까? 유요(柳腰)의 자태로 긴 해안선을 그리며 오고가는 길손들을 유혹하는 소박한 길. 이 소박한 길에서 만나는 일출은 그 얼마나 장엄하며, 이 소박한 길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의 이야기는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길에서 아무런 심미안이나 감수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감각이 없는 무생물과 다름이 없으리라. 푸른 모래의 포구, 청사포. 곱디고운 해안선과 짙푸른 해변, 그리고 낭만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동해안의 숨은 보석, 청사포. 최백호는 푸른 모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 사자가 뱀 사자라면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들지도 않으리.
푸른 뱀의 포구라니. 섬칫하면서도 괴이한 기분이 들테지만 뱀이 사탄의 분신이라는 서양적 사고를 벗어나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푸른 뱀의 포구에선 정다운 기운이 절로 느껴질 것이다.
결말이 다른 두 개의 전설이 전해 오는 청사포. 그 전설의 하나는 죽은 아내를 만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 신화를 닮았고, 또 다른 전설은 일본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된 박제상 설화를 닮았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바다를 생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찮게 발견되는 이 신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생명일 것이다.
청사포 해안선
동해남부선은 외롭다
젊고 힘센 남편은 결국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계절풍이 불어오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하러 떠났다. 불안에 떠는 아내를 남편은 고이 달래었다. 그러나 착하고 어여쁜 아내는 남편이 떠난 포구를 바라보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었지. 그러나 행복은 잠시, 남편은 폭풍우에 휩쓸려 그만 익사하고 말았고, 머나먼 용궁나라로 가고 말았지. 김씨 성을 가진 아내는 해안가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오리라 생각하며 매일 매일 기다렸지. 아내의 몸은 메말라갔고, 짙은 한숨 소리만이 푸른 바다 위로 떠돌았지. 결국 아내의 정성은 동해의 심연을 넘고 넘어 용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용왕은 한 마리 푸른 뱀을 차사로 보내 아내를 용궁으로 데려갔지. 아내는 용궁으로 들어가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 되었지. 부부는 용궁에서 천오백년을 이어온 인연을 다시 맺었지.
또 하나의 전설은 서글픈 결론이다. 마을에서 미포방향으로 걸어가면 300년 된 소나무를 한 그루 만날 수 있는데, 그 소나무 앞에는 골매기 김씨 할머니 당산이 있다. 아내는 매일 바다가 잘 보이는 망부석에 올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리운 남편은 결코 오지 않고 김씨 부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결국 아내는 망부석 위에서 애타게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정절을 가상히 여기고 아내를 수호신으로 삼아 제당 안에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철길과 해안선의 앙상블
그림같은 해안길
푸른 뱀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청사포’라는 마을 지명과 깊은 관계를 푸른 뱀. 그것은 아마도 김씨 여인과 남편을 상봉시키는 희망의 매개체이며 사랑의 전령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여자의 출입을 금하는 다른 해안마을과는 달리 행실 좋은 부부가 함께 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후일 촌로들이 뱀 사자가 안 좋다 하여 모래 사로 바꾸어서 마을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푸른 뱀의 전설이 푸른 모래의 전설로 아름답게 승화된 것이다.
그림처럼 하염없이 뻗어나간 해안길을 따라 만나는 우리들의 청사포. 길 위에서 전설을 만나고,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는 우리들의 청사포. 오늘도 청사포는 그리움을 안고 바다를 바라볼 뿐, 끼룩하며 무심히 날아가는 한 마리 기러기가 애달파 보일 뿐이다.
청사포 망부송
억새와 갈대가 어우러진 온천천 은백색 억새와 갈대가 춤춰
억새와 갈대가 만개한 온천천
온천천 시민공원이 우리 곁에 다가 온지 어언 10년이 되었다. 그간 수많은 변화와 관. 민 합동으로 가꾸어온 노력으로 해가 거듭 될수록 많은 시민의 휴식공간이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자정이 지날 무렵까지 자기만의 심신단련 장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계절마다 각종 꽃이 피는 볼거리 제공에 노력을 하는 해당구청 관계자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
요사이 온천천에 또 다른 가을정취를 느낄 수 있는 억새와 갈대가 어우러져 태양의 빛을 받아 은백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오전시간(8~11시)에 주변 아파트와 온천천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다. 억새 군락지가 대부분 산 정상이나 능선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다 지거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지만 온천천의 억새는 풍부한 수분과 영양분 때문에 키가 크고 아름답다.
약 2km의 억새와 갈대 길은 지금이 제일 보기가 좋은 시기라서 그런지 찾는 시민이 많으며 자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뜨인다. 특히 갈대는 바다를 가야 볼 수 있지만 온천천은 갈대와 억새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사람이 많이 찾는 아침 시간대에는 많은 인파속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서 무단 방뇨를 시키다가 시비가 일어나는 광경을 가끔 볼 수가 있다. 스스로 공중도덕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 할 것이다.
억새가 눈부신 온천천 시민과 함께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키며 서로가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자주 있다. 우측 보행을 해야 하는데 지키지 않으니 충돌이 생기며 짜증이 난다. 좌측보행에 익숙한 습관이 몸에 배이다 보니 쉽게 고쳐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옛날 자동차나 기차가 없던 시절에는 원래 우측통행을 했다고 한다. 과거 종묘 제례나 조선시대 의궤에 나오는 행렬 도를 보면 우측보행을 했는데, 일제 강점기인 1921년 조선총독부가 사람과 자동차의 좌측통행을 명(총독부령 제142호)하면서 우측보행 전통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46년 미군정이 자동차는 우측통행으로 보행자 좌측보행은 그대로 두면서 오늘날까지 '사람은 왼쪽, 차는 오른쪽' 시스템이 이어져온 것입니다. 세계에서 자동차가 왼쪽으로 다니는 나라는 영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정도다. 사람이 왼쪽으로 다니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보행문화가 몸과 따로 놀다 보니 국내는 물론 외국에 나가서도 ‘무질서한 한국인’으로 눈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2007년 7월부터 5개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오른쪽 보행 실천운동을 시작, 국가정책으로 이끌어내는 길잡이 역할을 해냈다. 88년 만의 오른쪽 보행으로 바뀌고 2009.10.1부터 지하철을 비롯한 공항. 항만 등 교통시설에는 우측 보행을 시행하였으며 내년 7월 신학기교과서 부터는 내용을 바꾸고 어린이들에게 우측보행 습관을 알리는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모든 시민이 공유하는 공간,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공중질서를 지킨다면 다시 찾고 싶은 ‘온천천 시민공원’으로 사랑 받을 것이다.
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길은
성불사에서 앵림산까지
그동안 감기몸살로 등산을 하지 못했다. 아직 감기몸살 기운이 있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나는 내 몸에 약한 면역체와 싸우기 위해 집을 나섰다. 11월의 바람이 쌀쌀하지만 결코 춥지는 않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직접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서니 오전 9시 조금 넘었다. 늘 다니는 장산 산행코스를 취하지 않고, 해운대 벡스코 역에서 하차하여, 성불사를 거쳐 장산(634m) 정상에 올라 앵림산까지의 결코 만만치 않은 등산 계획을 세웠다.
정말 성불사 가는 산문 입구부터 장산의 장엄한 황금빛 단풍이 나를 반겼다. 이곳은 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길. 단풍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은 벚꽃나무이고, 이 벚꽃나무가 많은 성불사 단풍은 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길이다. 또한 이길은 봄에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성불사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장산 너덜겅에 다다른다. 장산 정상을 향하기 전에 성불사에 들러 약수를 마셔 볼 것을 권한다. 성불사의 약수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이다. 장산 너덜겅 사이로 우동천이 발원하고 있어, 여느 약수와 달리 물맛이 다르다. 이 약수는 지역민들의 식수로 사용되고 있다. 장산 산록(우2동 1108-11) 위치한 성불사는 1965년 4월 8일 창건되었다고, '해운대구지'에 기록되어 있다.
장산은, 그 옛날의 장산국이 있던 성지. 이 장산국은 내산국이라도 하였다. 신라가 점유하고 거칠산군을 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으며, 고려 현종이 울주에 예속시켰다. 뒤에 현령을 두었으며, 본조에 들어와서는, 태조 때 처음으로 진을 설치하여 병마사가 판현사를 겸하게 했고, 세종 조에는 첨철제사로 개칭하였으며, 이후 현령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씨족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로서의 연대감과 그 옛날 수렵시대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과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식이 남아, 장산제 등이 올려지고 있다.
장산은 정상부의 비탈면에 쌓인 돌무더기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곳을 '너덜겅' 또는 '돌서렁'이라고 부른다. 돌과 물과 나무가 많은 장산의 만추의 산길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어 장관이다. 나는 비교적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택해 걸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장산 억새군락지가 있다. 억새 군락지는 단풍과 함께, 장산 가을 명품의 장관이다.
장산 중턱에는 장산 마을이 있고, 장산 정상에는 벌판이 있는데, 전해오는 이름은 '장자벌'이라고 불린다. 장자란 말은 부자 양반 등의 의미인데 어느 촌노의 말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모 장자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장산은 금정산과는 그 분위기가 다르게 산의 바다처럼 넓고 깊은 데가 있다.
전망권 역시 탁 트인 바다로 향해 있다. 장산에서 내려다 보는 해운대와 부산 시가지, 그리고 저 멀리 아득한 산 너머 구름들이, 장산 단풍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니 장관이다. 장산에는 바위들도 많다. 칼바위, 촛대바위, 영감할매바위, 선바위, 제왕바위 등 이름을 다 욀 수 없을 정도 많은 바위들이 등산객을 수호하는 석불처럼 서 있다.
장산에서 앵림산으로 통하는 길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산행로이다. 그러나 나는 오랜만에 호젓하게 만추에 젖어 산행하고 싶어 택한 산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안적사 계곡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장산 정상으로 되돌아와, 폭포사에서 하산했다. 정말 그 어느 해보다 올해의 장산 단풍은 곱다. 이 고운 단풍이 지고 나면 곧 겨울나그네가 찾아올 것이다.
바람 세고 하늘 높아 원숭이 울음 애절하고 물이 맑아 모래 희고 물새가 빙빙나네 사방의 낙엽은 쓸쓸히 떨어지고 끝없는 장강은 도도히 흐르네. 타향만리 나그네 노상 가을이 서러워 평생 병 많은 몸 외로이 올랐네 가난에 시달리고 백발된 것 한스러운데 노쇠한 요즈음 탁주마저 못들게 되었네. <등고(登高)> -'두보'
* 장산은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2호선(해운대방면)을 이용하여, 장산역에서 내리면 편리하다. 일반버스를 이용할 때는 서면에서 해운대행(5번)을 타고 대림1차 아파트에 내리면 된다. 부산역에서 40번 버스를 이용해 해운대 대림1차 아파트 하차해도 되고, 해운대에서 5번, 36번, 100-1번 버스로 대림1차 아파트에 하차하면 된다. 부산역에서 1003번 버스를 타고 해운대 대림1차 아파트에 내려도 된다. 해운대 역까지 오면 마을 버스를 이용해서 대천공원에 하차하면 산행로가 시작된다. 장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러 코스가 있으나, 초행의 경우는 이 코스가 가장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