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수 (시인)
우리 안에 황홀한 꽃 -배교윤 「진흙 속의 소가 저도 모르게」
진흙 속의 소가 저도 모르게
- 배교윤
새벽 연밭에서
누군가
밤새 캐어 올린 진주 같은
투명한 이슬이
물부처 되어 오롯한
말씀 하나
진흙 속의 소가 저도 모르게 쳐다본
사리같이
황홀한
꽃
-배교윤 『일몰에 기대어』
새벽 연밭, 그 많은 이슬 속에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황홀한 꽃”이 들어 있지요.
그것도 이슬마다 일현(一顯), 이현(二顯)…중중무진현(重重無盡顯)으로 “황홀한 꽃” 들어 있겠지요.
그게 “진흙 속의 소”에게 보여 그 몸에 들어앉듯이 어쩌면 우리 모두 그 “황홀한 꽃”을 몸에 지닌 존재들이겠지요.
그렇게 조건 속에서-함께-일어나는 연기(緣起)를 깨달았기에 ‘깨달은 자’, “투명한 이슬이/ 물부처 되어 오롯한/
말씀 하나”이겠지요. 그 말씀인즉 우리 모두는 다르지만 한 몸[同體] 안의 다름으로 평등하고,
한마음[一心] 안에 한마음을 돕는 각각의 마음으로 자유롭다는 것이겠지요. 이 연밭에서만이 아니라
온 세상 온 우주가 그처럼 일진법계(一眞法界)를 이룬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모든 황홀이 왜 우리에겐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까닭은 바로 자아 중심의 분별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아 중심의 분별심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나는 나고 너는 너다’는 망념(妄念)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망념을 깨뜨리는데 가장 유효한 방법이 무엇일까요?
이 시에서는 “연밭에서/ 누군가/ 밤새 캐어 올린”이라는 모두를 위한 노동과 “진흙 속의 소”에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우리 몸과 흙이 불이(不二)라는 생각이 문득 분별심을 째고
“저도 모르게 쳐다본”의 세계를 여는 것입니다. 그때 “사리같이/ 황홀한/ 꽃”이 보이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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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시를 보고 갑니다.
선생님 너무 늦게 보아서 죄송합니다.
잠깐씩 들어오다 보니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