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보 사례관리 담당자다. 진정한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사례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단지 행정가 노릇만 했구나!’라는 충격적인 반성을 했다. 사례관리는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일임에도 공적인 서비스를 물어다 주는 제비와 같은 역할이 전부 인 양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숙한 탓에 대상자들에게 부끄러운 실수를 저질렀고, 또 사례관리 담당자로서 대단한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다만 내 진심을 알아준 고마운 분이 있기에 소개한다.
배영태(가명) 씨는 헤이룽장 성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어머니가 먼저 국적을 회복하면서 한국에 왔고 그도 희망의 땅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어머니가 호흡기 1급 장애를 갖는 등 숱한 역경에 맞닥뜨렸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했고, 몸에 밴 절약이 지나쳐 물건을 주워오다 보니 그의 집은 점점 쓰레기로 꽉 찼다. 그에 대한 소문은 자자했다. 우리 동 직원들은 혀를 내두르며 문제의 심각성과 무력감을 드러냈다.
어느 날, 나는 팀장님과 함께 그 집을 방문했다. 외부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귀띔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였다. 그런데 사회복지 담당자라고 밝히자 ‘딸깍’ 문을 열더니 버럭 외치는 게 아닌가.
“자, 들어와서 우리 어머니가 살았나 죽었나 보세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뭐 타먹고 그러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우리는 잠깐 머뭇거렸으나 얼른 더럽고 냄새나는 집으로 들어섰다. 빼곡히 쌓인 쓰레기를 밟고 어둠 너머 빛이 들어오는 공간으로 가자, 거기에 산소 호흡기를 낀 할머니가 앉아 죽을 먹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건강 상태와 생활상 불편함을 여쭈었다.
그 사이 바깥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배씨와 사이좋지 않았던 이웃의 통장이 찾아와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기분이 상한 배씨는 갑자기 나를 끌어내며 소리쳤다.
“자, 우리 어머니 살아계신 거 봤으니 얼른 가세요.”
그 순간 나는 배씨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저를 믿고 문 열어 주셔서 감사해요.”
팀장과 센터장, 관내 요양보호 센터장의 도움으로 맛있는 죽이 마련됐다. 누군가 내놓은 피자나 배달음식을 주워 먹으면서도 도시락은 한사코 거절하는 그였다.
“할머니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조심스레 죽과 물김치가 담긴 가방을 건네자, 그는 불퉁스레 받으며 말했다.
“다음부턴 이런 거 가져오지 말래요.”
하지만 내 발걸음은 잦아졌다. 그랬더니 배씨는 설거지한 가방을 밖에 내놓았고, 그만 가져오라면서도 계속 받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은, 변화도 생길 것 같지 않은, 오로지 거부만 하는 그를 감당하는 건 힘겨웠다.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나는 죽이나 전하면서 할머니의 건강 상태만 확인하자는 심정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만 되면 꼬박꼬박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어머니가 입원하니 이제부턴 반찬을 주세요.”
거부가 아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그의 변화에 나는 몹시 기뻤다. 그 후 변화는 거듭됐고, 동사무소에 직접 와서 도시락을 가져가게 됐다.
9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의 부재에 배씨는 슬픔과 회한으로 통곡하며 불효를 자책했다.
“돈을 아끼느라 어머니에게 못해드렸다고 후회하지 마세요. 그 대신 어머니에게 가장 귀한 자녀인 자신에게 아끼지 말고 쓰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로했다. 그는 어렵게 살았고 절약이 몸에 배 함부로 물건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긴 음식을 주워 먹거나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집에 들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그를 피했다. 그의 집을 벌레 나오는 ‘쓰레기 집’이라고 비난하며 멸시했다. 그 물건들이 그에겐 친구요, 든든한 자산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타국에서 홀로 사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할머니의 사망신고와 뒷정리를 도왔다. 내 정성이 그의 마음을 물들였을까. 얼마 후, 기적 같은 반전이 생겼다. 그가 집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쉽사리 물건을 치울 줄은 몰랐는데, 놀라웠다. 주변에서는 내가 그를 변화시켰다고 칭찬했다. 쑥스럽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제 내 역할은 그를 응원하는 것뿐이다. 변화가 더디고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문득 배씨와는 사례관리 대상이라기보다 따스한 관계였음을, 내 성과가 아니라 그분이 지니고 있던 에너지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한 것임을 깨달았다. 또 사례관리는 관계의 미학이며 관계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진정성 있는 마음인 것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