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는 그녀의 삶을 크게 바꾸었다. 연예계에 들어와 CF도 처음 찍어봤고, 행사 주최자들로부터 수많은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 박정현은 <나가수>를 통해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고 했다. 박정현은 “미장원, 식당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전에는 3명 정도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다 알아봐주신다. 하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좋으면서도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박정현과 인터뷰해보면 그녀가 솔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연예계 스타들은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 예민한 질문에는 좀체 대답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이 쓰는 말로 ‘쉴드’(방패)를 친다. 그래서 스타와의 인터뷰는 본의 아니게 ‘밀당’(밀고 당기기)이 될 때가 많다.
박정현은 그럴 필요가 없다. 워낙 솔직하게 대답해주기 때문에 혹시 하나 걸려들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던지는 예민한 질문을 기자가 스스로 피하게 된다. 이는 솔직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본다. 박정현의 한국말은 데뷔 때에 비해서는 많이 늘었지만 현란하게 구사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솔직함이라는 무기가 있다. <무릎팍도사>에 나와 인기를 얻은 것도 스타인 체하지 않는 수수함과 솔직함 덕분이었다. “무슨 고민이 있어 무릎팍도사를 찾아왔느냐”는 질문에 R&B발라드의 요정이 아닌 외모와 관련된 요정이라는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자신은 완전 못난이였다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1976년 미국 LA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 ‘리나박’은 아버지의 사업이 잘돼 부유하게 자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무려 1년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사람들이 극진히 어머니를 간호하는 걸 본 아버지는 갑자기 사업을 접고 뒤늦게 신학교에 진학해 박정현이 중학교 때 목사가 됐다. 그전부터 박정현은 노래를 잘 불렀지만 그녀의 부모는 변호사가 되길 바랐다. 항상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박정현은 줄곧 우등생의 길을 달렸다. 하지만 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노래는 어릴 때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엄마가 노래를 잘하셨는데, 나와 함께 동요를 자주 불렀다.”
시・소설 등 문학을 좋아하는 그녀는 UCLA 연극영화과에 이어 미국 동부의 명문 콜럼비아대학교로 편입해 중세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요즘도 규칙적으로 에세이를 쓰며 감수성을 잃지 않고 있다. 36년간의 인생 중 최고의 일탈이 어릴 때 답답한 집을 나가 쇼핑몰에 갔던 경험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릎팍도사>에서 쇼핑몰 간 이야기를 했다가 친구들한테 비웃음을 들었다. 너무 모범생이면 재미없다는 것도 안다. 내 생활은 재미없다. 하지만 꾸미고 싶지는 않다. 연기하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의 재미없는 것들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을 대중은 좋아하는 것 같다.”
박정현은 UCLA 2학년 때인 1995년 한국의 한 음반제작자의 눈에 띄어 한국으로 건너왔다. 가족을 두고 홀로 한국에 온 그녀는 한국말을 잘 못해 고생을 많이 했다. 가수가 음반을 발표하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해야 했지만 인터뷰가 안 될 정도였다. 기획사와의 소통도 잘되지 못해 고시원 같은 곳에서 지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수가 되기 전 지도를 갖고 다니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다. 1집을 내고서는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한국 물정을 잘 몰랐던 당시 생활은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부모, 가족을 떠나왔으니 사력을 다해야 했다.”

박정현의 데뷔 앨범
“당시 정석원씨의 노래를 안 하고 싶었다. 감정상 변화가 많은 이 노래가 이해가 잘 안됐는데, 정석원씨가 믿어달라고 했다. 가사를 보면서 믿기로 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 나왔다. 나는 이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지루했는데 대중은 아직 이 노래를 지겨워하지 않는 것 같다.”
박정현이 요즘은 콘서트에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엔딩곡으로 부르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박정현 최고의 히트곡은 정석원이 프로듀싱까지 맡은 ‘꿈에’다. 데뷔 4년 만에 정점을 찍고 난 후 어쩌면 자신에게 더 이상의 노래가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정현은 짜인 틀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갔다. 목소리가 얇고 미성이 바탕이 된 자신의 R&B적 창법에 재즈, 보사노바, 솔(soul), 록 등 다른 장르와의 혼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기존의 틀 속에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갔다. 그 실험은 파격이 아니었다. 임재범과 이소라는 <나는 가수다>에서 예술의 경지, 파격적인 실험성을 보여주었다면, 박정현은 자기 식의 변주와 편곡이라는 실험으로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박정현에게는 R&B 창법이 주는 애절한 호소력만이 아닌 귀여움과 감미로움, 조근조근함, 가벼운 투정 같은 것도 담겼다. 이런 감수성은 ‘귀요미’ 스타일의 박정현과 썩 잘 어울렸다. 이렇게 해서 박정현은 계속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떨칠 수 있었다. 노래와 작곡・프로듀싱까지 1인 3역에 끊임없이 창법의 변화를 추구하며 혼자서도 꽉 차는 무대를 만드는 법을 익혔다. 연륜이 쌓이면서 호소력과 감성 전달력은 원숙해지고 있다. 박정현은 2005년 발표한 5집

박정현이 음반을 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보컬 녹음이다. 앨범마다 새로운 톤과 창법을 보여준다. 속삭임과 지름, 진성과 가성의 완급 조절을 절묘하게 해낸다. 그래서 박정현의 노래는 어떤때는 뮤지컬을 보는 듯하고, 어떤 때는 가스펠을 듣는 듯하며 뉴에이지 분위기에 젖어들 때도 있다. 노래를 들으면 한 편의 완성된 드라마를 감상한 느낌마저 든다. 그녀에게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스타일로 부르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노래마다 다 다르게 부른다. 주로 가사에 맞추고 분위기와 스타일을 결정한다. ‘하비샴의 왈츠’는 뮤지컬 하듯이 했고, ‘미아’는 영화 한 편 보는 느낌이 들도록 불렀다.”
박정현 노래를 듣다 보면 사랑의 상실, 짝사랑이 일관된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녀의 자라온 배경과 성격에서 비롯된 정조다. 박정현은 “밝은 발라드가 부르기는 더 어렵다. 슬프고 우울한 발라드를 부르기가 더 좋다. 이게 나의 음악 기조다”면서 “나는 내 속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숨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려는 잠재욕구가 있는 것 같다. 노래로 표현하고 나면 마음이 정화된다”고 말한다.
박정현은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실함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고교까지 성적이 B를 딱 한 번 받은 걸 제외하면 올 A였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잘해 무대에 오르기를 즐겼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 14년간의 음악 행보가 이를 잘 말해준다. 박정현은 “노력형인가, 천재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둘 다 적당히 가진 것 같다. 대충대충 하는 것은 용납 못한다. 프로페셔널리즘과 완벽주의다”라고 설명했다.
박정현은 <나가수>가 조금 더 일찍 시작했거나 나중에 방송됐다면 자신은 <나가수>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나가수>가 자신의 노래 인생에서 시의적절하게 찾아왔다는 의미다. 박정현은 “내가 음악적 활동을 줄이고 방향 설정을 하며 약간 좌절하기도 한 찰나 <나가수>를 만났다”고 말했다. 1년여간 가수 활동을 중단한 채 만학도로 공부에 매진해 지난해 5월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후 음악 활동을 줄이고 음악 인생에 대한 계획을 잡고있을 때였다. 박정현은 <나가수>에서 새로운 걸 준비하면서 힘도 들고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겠지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사력을 다해 준비할 때도 자신감과 자부심 같은 것이 엿보였다. 잘난 체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한 자의 여유 같은 것이다.

요즘 박정현은 9월 중순 첫 방송되는 MBC <위대한 탄생2>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위탄2>의 멘토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말로써 지원자를 평가, 지적하고 멘티를 가르쳐야 한다. 박정현에게 멘토는 아직 낯설다. 박정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을 가르쳐본 일이 없다. 미국에서는 내가 언니(1남2녀중 첫째)지만 한국에 와서는 항상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들과 작업했다. 나에게는 이론적이거나 전문적이거나 하는 거창한 멘토는 없다”면서 “하지만 멘티 경험은 많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멘티 입장이나 심리 상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 사람들의 노래를 잘 들어주고 내가 가진 음악적 감성과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멘티의 경험으로 멘토를 한다. 한마디로 멘티 같은 멘토다”고 전했다.
박정현의 노래는 파워풀하면서도 부드러움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지만 이를 과잉으로 흐르게 하지 않는다. 작은 체구에서 폭발적 가창력을 뿜어내며 대중을 감동시키는 ‘요정’ 박정현. 이제는 주로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녀는 지방에서 단독공연 <조금 더 가까이>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