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국만화영화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1956년에 TV에 방송된 럭키 치약 광고에 이어 신동헌 감독이 연출한 진로 소주 광고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이 진로 소주 광고는 음악부터 먼저 녹음을 한 뒤에 나중에 그림을 그리는 디즈니식 애니메이션 방식을 따른 것으로서 24 프레임의 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1967년에는 신동우 원작의 [호피와 차돌바위]가 신동헌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두 번째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였다. 최초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였던 [홍길동]의 필름이 유실된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만화영화로서 그 가치를 높이 사고 있는 [호피와 차돌바위]는 스펙타클한 장면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연출에 의해 그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제작자들은 만화영화에 흥행으로 번 돈을 재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수준의 만화영화를 만들어낼 능력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만화영화계는 돌연 황폐화 되기에 이른다. 더군다나 70년대 국내에 텔레비전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디즈니 만화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국내 극장가는 더더욱 위축되고 만다. 이 무렵 국내에는 일본 만화영화인 [마징가 z]가 TV에서 방영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암울한 극장가에 신선한 돌풍을 몰고 온 만화가 바로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 였다. 1976년 개봉한 태권브이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일본 만화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참신한 기획과 스토리, 힘차고 씩씩한 주제가를 통해 마징가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며 당시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우뚝 서게 된다. 로보트 태권브이가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만화영화에 대한 자성노력과, 태권도라는 한국적인 요소의 결합, 스토리상의 독창성 등으로 인해 오늘날 '불후의 명작'이라고 꼽혀도 손색이 없을 만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 한국 극장 만화영화계를 주름잡았던 김청기 감독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아이디어의 고갈을 드러내게 되었고, 몇 편의 표절작들을 내놓으면서 옛날의 명성을 뒤로 한 채 비난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95년 '똘이와 제타로봇'을 끝으로 김청기 감독의 로봇 만화영화 계보는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때부터 실사영화인 '우뢰매' 시리즈로 노선을 바꾼 이후 점차 김청기 사단은 설 자리를 잃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80년대 한국의 극장판 만화영화는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과거를 낳기에 이른다. 표절과 모방작품들의 대거 양산으로 인해 한국 만화영화계는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를 안게 된 것이다. 한국이 일본 만화영화의 많은 부분을 하청받아 작업하는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일부 국내 만화영화 제작진들은 무분별하게 일본 만화의 모방과 표절작들을 적절히 편집하여 마치 순수 우리 창작 만화영화인양 속여 버젓이 극장 간판을 내걸고 말았다. 1984년 개봉된 [비디오 레인저 007]은 일본의 TV 시리즈였던 [비디오 전사 레자리온]이라는 만화영화를 임의로 편집하고 우리말 더빙을 해서 개봉했던 만화 중 하나이다. 더 기가 찬 사실은 일본의 인기 만화 주인공들을 무단으로 차용하여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해낸 만화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1979년 개봉한 [우주의 흑기사]는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 아즈나블이 주인공이 되어 우주를 누비며 활약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더 우스운 것은 주인공의 모습이 투구를 쓰고 있을 때는 샤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투구를 벗으면 건담의 조종사 아므로 레이가 되어 버렸다. 1982년에 개봉한 [우주대장 애꾸눈]은 옷차림은 [캡틴 퓨처]의 복장을 하고 있고 얼굴은 캡틴 하록의 모습이어서 역시 일본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을 도용하여 멋대로 만든 만화라는 걸 드러낸다. 그나마 1979년 개봉작인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과 같은 만화에서 국내 만화영화에 대한 자성적인 노력을 엿볼 수가 있었는데,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은 지금까지도 누가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는 수수께끼의 작품으로, 거북선을 비롯한 태권브이의 메카닉 디자인이 김청기 감독의 원조 태권브이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다. 80년대는 국내 작가의 원작 만화를 모델로 한 작품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지만 완성도가 떨어지고 작품 수준이 조악하여 국산 만화영화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
이렇듯 당시 국산 창작 만화영화는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만화제작에 참여하여 작업하는 하청업계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청 작업을 통해 배운 선진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만화를 시도한 사례가 있다. 재미교포 애니메이션 제작자 스티브 한이 세계 최초의 3D MAX 입체 애니메이션인 [스타 체이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한상호라는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던 스티브 한은 미국에서만 활동을 하고 있다가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한국 진출을 꿈꾸게 된다. 80년대 국내 최대의 만화영화 제작사로 군림했던 한호흥업이 1978년 스티브 한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미국식 선진 만화영화 공법을 국내에 다량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국내는 이미 하청 문화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 한은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청작업으로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가 바탕된 국내 인력을 총동원하여 [스타 체이서]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만화는 실제로 최초의 3D MAX 입체 만화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기네스북에 올려 있을만큼 의의가 큰 작품으로, 개봉 당시 원근감과 입체감이 살아 있는 스펙타클한 우주 전투신으로 인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국내 언론에서도 대단히 잘만든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여 작품의 판권을 미국의 파라마운트사에 빼앗기는 불운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하청작업에 익숙해진 국내 만화영화계의 풍토 속에서도 서서히 자성의 노력이 엿보이면서 대원동화와 세영동화, 신원동화 등은 빡빡한 하청 일정 가운데서도 틈틈히 국내 만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북두의 권,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은하철도 999, 빨강망토 차차, X, 베트맨 극장판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일본의 유명한 만화영화 작업에 한국 제작사들이 하청으로 제작에 참여했으며, 그 작품들의 엔딩 크레딧에는 한국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올라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거의 경험들이 부정적인 것으로만 자리잡고 있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만화영화 하청기지로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요충지로서, 국제 시장에서 그만큼 비중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긍정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 만화영화계의 일대 붐이 일어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지난 1988년, 세계인의 축제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문화 환경의 개선이 국내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부터였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TV 만화영화 제작이 다시 재개된 것은 1987년 5월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영된 이현세 원작의 [떠돌이 까치]에서 비롯된다. 그후 1989년 제작된 이진주 원작의 달려라 하니는 주 1회 고정편성된 만화영화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이밖에도 올림픽 홍보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달려라 호돌이] [머털도사] [원더 키디] 등이 계속 제작되면서 국내 만화영화계는 다시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었다.
1997년 투니버스에서 제작하고 고성철 감독이 연출한 [영혼기병 라젠카]는 얼마간의 공백기를 깨고 탄생한 SF 판타지 성향의 로봇물이었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장군복장에서 차용했다는 곡선형 메카닉 디자인의 독창성 시비가 일어나긴 했지만, 그때까지 비약적인 모습을 보여온 국산 만화영화계에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달 후 [녹색전차 해모수]가 한국방송 70주년 기념작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만화영화화를 전제로 이미 잡지에 만화가 연재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가 있었으나 본편의 완성도가 기대에 못미쳐 오프닝만 잘 만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햇다.
90년대에 이르러 국내 만화영화계는 한층 다양화된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91년 겨울, 월트 디즈니사의 [인어공주]가 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만화영화도 극장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되면서 대기업들의 거대자본이 만화영화계에 유입되기에 이르른다.
94년에 개봉된 블루시걸은 45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했다는 외형적인 성과에 비해 관객들에게는 모진 혹평을 받았던 졸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성인용 만화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과대포장된 홍보에 비해 실제 뚜껑을 열어본 블루 시걸의 실체는 3류 음란 만화영화였다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95년에 개봉된 붉은매가 관객 동원 10만, 같은해 개봉된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 관객 40만 명, 헝그리 베스트 5는 관객 8만 명, 96년 개봉작인 아마게돈이 22만 명을 동원하는 등 꾸준히 국산 만화영화가 제작되었고,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와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에서도 90년대 개봉된 극장만화영화들은 대박만 터지면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유혹을 배제하지 않은 채 거대 자본과의 유착 노력도 이어져 나갔고, 한편에서는 작가 스스로의 창작 의지에 따른 작품들도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96년 제작된 김수정 원작의 아기공룡둘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작품이기도 한데, 돌아온 홍길동에 이어 관객 동원 35만 명이라는 수치를 기록하며 우리나라의 자체 기술만으로도 흥행성 있는 극장 만화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멀크와 스웽크의 뮤직쇼]는 그동안 월트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하청 작업을 해왔던 선우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것으로, 국내 ova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첫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97년에는 전사 라이안, 난중일기, 임꺽정(김청기 감독의 컴백 작품) 세 편의 만화영화가 한 시즌에 개봉이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98년에 바이오캅 윙고, 스피드왕 번개, 해상왕 장보고 등의 작품이 제작되었고, 특히 바이오캅 윙고는 삼성 영상 사업단의 만화영화계 첫 진출작으로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과 컴퓨터 자동 제작 소프트웨어 작업을 병행하면서 만들어서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IMF의 영향으로 의욕적으로 준비하던 애니메이션들이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TV 애니메이션들의 제작은 계속 이어져 양적으로는 국내 만화영화의 제작이 꾸준히 발전,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들어와 흥행 참패 등으로 인해 위축된 극장 만화영화도 철인사천왕의 개봉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요즘들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태권브이 21의 제작과, 아크, 붕가부, 하얀마음 백구 등등 국산 애니메이션이 보다 높은 수준과 의욕으로 준비되고 있어 국내 만화영화계의 전망은 앞으로 더욱 밝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1999. 8. 17 투닉스 편집 정리.
[투니버스 스튜디오 붐붐, 한국만화가 협회, 울만화 엿보기, 한국 만화 40년사 참조]
세계애니메이션 연표
1895년 - 프랑스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세계 최초의 영화 <공장에서의 퇴근>, <기차도착> 상영. 1897년 - 영국의 아서 쿠퍼, 상업광고에 콤마촬영 시도 1905년 - 스페인의 세군도 데 쵸몬의 <전기장치 호텔(El Hotel electrico)> 콤마촬영 1906년 - 미국의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톤(James Stuart Blakton)의 <유쾌한 얼굴(Houmours Phase on Funny Face)>콤마촬영 1907년 -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톤, 세계 최초의 인형 애니메이션인 <유령 호텔(Haunted Hotel)> - 영국의 윌터 부스, <코미디 만화(Comedy Cartoon)> 1908년 - 프랑스 에밀 콜(Emil Cohl)의 <판타즈마고리 (Fantnsmagorie)> 공인된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1909년 - 초기 애니메이션의 대가 윈저 맥케이 <공룡거티 (Gertie, the Trarened Dinosaur)>. 그림과 사진의 합성 시도한 작품으로 유명. 1910년 - 존 랜돌프 브레이, <개와 소시지> 1911년 - 러시아의 라디슬라스 스타레비치, 인형애니메이션 <아름다운 류카니다(Perkrasnaya Lyukanids)> 발표. 1912년 - 프랑스의 에밀 콜, 미국에서 조지 맥마너스와 함께 <스누컴즈 아기(Baby Snookums)> 시리즈 제작 1913년 - 미국에서 존 랜돌프 브레이 셀 애니메이션 기법 개발. 셀 애니메이션 기법이 애니메이션의 표준 제작 방식으로 정착. <히자 대령> 발표. 1914년 - 미국의 얼 허드, 현재와 같은 셀 애니메이션 기법 고안. 얼 허드와 존 랜돌프 브레이, '브레이 - 허드 프로세스' 사 설립. 존 랜돌프 브레이와 얼 허드 17년간 셀 기법의 특허 독점. 1914년 - 이탈리아의 피에로 포스코, 스페인의 세군도 데 쵸몬 <카비리아(Cabiria)> 제작. 1915년 - 패트 설리반, '설리반 스튜디오' 설립 - 조작가 헬렌 스미스와 데이튼 클레이애니메이션 제작 1915년 - 실사와 인형의 합성 애니메이션을 시도한 찰스 보워즈, '보워즈 스튜디오' 설립 1917년 - 하워스 모스, <모토이-매직 피그 코미디> 시리즈 '피터팬 필름'을 통해 배급. 1916년 - 패트 설리반, 실제인물 시리즈를 소재로 한 <채플린(Chaplin Flims)> 시리즈 제작하기 시작. 1919년 - 패트 설리반, 미국 애니메이션 특징은 캐릭터를 부각시킨 <고양이 패릭스(Fellix Cat)> 시리즈 탄생. 이 작품은 캐릭터 중심의 미국 단편만화의 전통을 확립함. 1916년 - 이탈리아의 피에로 포스코, 스페인의 세군도 데 쵸몬 <모미의 전쟁과 꿈 (Le Guerra et il sogno di Momi)> 인형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합성. 1916년 - 종이의 위치를 고정 시키는 탭과 움직이는 부분만 그리는 '슬래쉬 시스템', 배경이동 촬영법 등을 고안한 라울 바데는 찰스 보워즈와 함께 '바레-보워즈 스튜디오' 설립 1917년 - 일본의 시모가와 오덴 <문지기 이모가와 게이쇼> 아시아 지역 최초의 애니메이션. - 맥스 프라이셔, 데이브 프라이셔, 죠 프라이셔가 애니메이션 매트 합성에 획기적인 '로토스코프 기법' 개발, 특허. 1918년 - 윈저 맥케이, 최초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루시타니아 호의 침몰> 1919년 - 독일,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창시자 로테 라이니거(Lotte Reiniger) <애정어린 마음의 장식(The Ornament of the Loving Heart)>. - 라울 라데, 미국 애니메이션의 표준이 된 메타몰포제 기법의 <애니메이티드 글라우취 체이서> 제작. 1920년 - 월트 디즈니의 전신인 '라프-오-그램'사 설립. 6편의 시리즈 제작. 1923년 - '디즈니 브러더드 스튜디오' 설립. - 어브 와이억스(Ub Iwerks)참여 <앨리스> 시리즈 56편 제작 1926년 - 디즈니의 최초 캐릭터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 창조 - 중국의 만뢰명, 만고섬 형제, <아뜨레에 소동> 발표 1928년 - 세계 최초의 토키 애니메이션 월트 디즈니 <증기선 윌리> 1929년 - 디즈니, 음악의 기능이 강조된 <실리 심포니> 시리즈 착수. 1편 <해골의 춤(The Skelton Dancing)> 발표 1930년 - '콜롬비아' 디즈니가 배급 계약을 '유나이트 아티스트'로 변경하면서 디즈니의 작품 60여 편 인수, 자체 스튜디오 운영하며 애니메이션 시장 진출. - '플라이셔 스튜디오',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 미키 마우스에 대항하게 위한 캐릭터 개발. 섹시한 캐릭터 베티 부프(Betty Boop) 창조. - '워너 브러더스', <욕조에 빠지기(Sinking in the Bathtub)>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듬. - 디즈니의 어브 아이웍스, 디즈니와 결별 후 개인 스튜디오 설립. 1931년 - 디즈니와 헤어진 미키 마우스를 창조한 애니메이터 어브 아이웍스, <개구리 플립(Flip the Floge)> TV시리즈 발표. 1932년 - 테크닉 3원색 컬러 개발. 디즈니 2년간 독점 계약. - 디즈니,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 <꽃과 나무> 발표 - 디즈니, <곰과 별들> 발표 1933년 - 플라이셔 스튜디오, '뽀빠이(Popeye)' 창조. - 영화 <킹콩(King Kong)>은 윌리스 오브라이언이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특수효과로 영화 특수효과 기법의 발전을 예고. 1935년 - 디즈니, <미키의 대 연주회> 발표 - '워너 브러더스' 텍스 애브리, 대표적인 캐릭터 돼지 '포기(Porky)' 탄생. 1936년 - 이탈리아의 라울 베르디니, 장편 <피노키오의 모험(Les Adventure di Pinocchio)>. 1937년 - 디즈니, <낡은 풍차> 발표. 디즈니, 스튜디오 시스템 완성. - 디즈니, 사내 애니메이션 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 - 디즈니, 장편에 알맞은 기획, 기존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탈피한 서정적 내용, 멀티플레인 완성,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추구한 장편 <백설공주> 발표. - 'RKO' 디즈니의 <백설공주> 배급 - 'MGM' 자체 제작 시스템 전환. 1938년 - '워너 브러더스' , '박스 바니(Bugs Bunny)' 탄생. 택스 애브리, <아마추어의 밤>(38), <흑인 아기 토끼사냥>(41)은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의 견본화된 작품. - 'MGM'의 월리엄 한나와 조셉 바바라, <톰과 제리> 탄생. 1939년 - 플라이셔 스튜디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제작 1940년 - 디즈니, 클래식을 애니메이션화한 <환타지아>와 <피노키오> 흥행 부진. - <환타지아>는 영화사상 최초의 스테레오 녹음 작품. 1941년 - 디즈니의 애니메이텨 파업, 대량 해고. - 플라이셔 스튜디오, <버그씨 도시에 가다> 흥행 실패. - 헝가리 출신 조지 팔은 '파라마운트' 지원으로 인형 애니메이션에 셀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도입한 '퍼페툰' 창조. 1942년 - 택스 애브리 'MGM'으로 이전후, '워너 브러더스' 에서는 잭 존스, 프리츠 플레링, 로버트 맥킨스 3인 체제 출범. 1963년까지 유지. - 'MGM'으로 이전한 택스 애브리는 'MGM'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드루피(Droopy)' 창조. <부지런한 새가 제일이야(The Early Bird Dood it)>(42) 를 시작으로 수많은 시리즈 창조. 'MGM'의 주요 캐릭터인 '스파이크', '검은 고양이' 등 창조. 1943년 - 디즈니의 파업으로 해고된 애니메이터들, 'UPA' 설립 'UPA', 컷 마다 셀 매수에 변화와 제한을 두는 '리미티드(Limited)'기법 개발. 리미티드 기법은 이후 TV용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법으로 정착. - 루즈벨트의 선거 홍보물, <필사적으로 당선을(He'll Bent for Election)> 제작. 1944년 - '파라마운트'사 '프라이셔 스튜디오' 인수. - 전쟁중 일본의 군부를 통해 제작, 배포된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모로타로우 - 바다의 신병> 완성. 1948년 - '콜롬비아', 'UPA'사와 제작 계약. <여우와 까마귀(Fox & Crow)> 시리즈 제작. 1950년 - 디즈니, 장편 <신데렐라> 제작 혹평. 1951년 - 'UPA'사 <제랄드 맥보잉 보잉(Gerald McBoing Boing)> 성공후 리미티드 기법을 정착화 시킴. -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작. 1952년 - 택스 애브리 'MGM'과 결별후 '랜츠 스튜디오'에서 팽귄 '실리 윌리(Cilly Willy)' 창조. 1953년 - 디즈니 배급회사인 'RKO'와 결별 자체 배급회사인 '브에나 비스타' 설립. 1955년 - 테마파크 디즈니랜드 개장. - 'UPA'에서 활동하던 존 허블리, 아내 페이스 허블리와 함께 독립 스튜디오 설립. 예술성을 중시한 작품 제작. 1956년 - HLKZ-TV에서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럭키치약' CF(문달부 제작) . - 일본 토에이 동화(東暎動畵) 설립. 일본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 백사전(白蛇傳) 제작 착수 하는 등 대형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제작.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 애니메이션일 이끌어 나가는 인물 양성. 1957년 - 'MGM' 스튜디오 폐쇄. - 월리엄 한나와 조셉 바바라 '한나-바바라' 사를 설립 TV애니메이션 분야 개척. '한나-바바라'사 미국 NBC TV와 제작계약, TV시리즈물 발표.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물 <허클베리 하운드 쇼(Huckleberry Hound Show)> 발표. - L. 아타마노프(소련)의 대표작 <눈의 여왕> 발표. 일본 등 여러나라에 영향을 미침. 1958년 - 일본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 백사전 개봉. 1959년 - 디즈니, 최초의 70mm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발표. - '새서미 스티리트'의 캐릭터를 창조한 존 허블리, <문 버드(Moon Bird)>발표. 1960년 - 한나-바바라, <프린스톤 가족> 발표. - 신동헌의 애니메이션 CF, <진로소주>. 1961년 - 'AT&T 벨 연구소'에서 최초의 컴푸터 시물레이션 영화 이라는 인공위성 시뮬레이션 영화 발표. - 디즈니, 제록스 복사 방식으로 셀을 복사한 <101마리의 달마티아니 개> 발표. - 존 휘트니 시니어는 최초의 CG애니메이션 <카달로그(Catalog>발표. 1962년 - 한나-바바라, <젯슨 가족> 발표. 1963년 - 일본의 테즈카 오사무,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 물인 <철완 아톰>으로 TV애니메이션의 가능성 예고. -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 부진으로 'WB' 스튜디오 폐쇄. - 'W.B'에서 활동하던 프리츠 플레링, 데이브 드 파티와 '드 파티-플레잉 엔터프라이즈' 설립. <핑크 팬더> 제작. 1964년 - 한나-바바라 '요기' 시리즈 발표. - 한나-바바라, '타프트 방송사'에 인수. - 존 허블리, <모자(The Hat)>. - 랄프 박시, 첫 극장용 장편 <착한 견습 요정 갓마우스(Godmouse the Aprentice Cood Fairy)>감독. 1966년 - 월트 디즈니 사망 1967년 - 디즈니, <정글북> 제작. - 랄프 박시(Ralph Bakshi) 스티브 크랜츠과 '박쉬-크랜츠 프로덕션' 설립. - 신동헌, 국내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 개봉. 1968년 - TBC 영화부내에 만화영화부를 두어 일본에서 <황금박쥐>,<요괴인간> 하청. - <태양의 왕자 홀스의 대모험>으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데뷔. 1969년 - 한나-바바라, 최장기 방영기록을 수립한 '스쿠비 두' 발표. - 일본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영화 <천일야화 이야기> (테즈카 오사무 감독) 개봉. 흥행면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다음해 만들어진 성인물인 <클레오파트라>가 실패하여 그후 오랫동안 성인물이 만들어 지지 않음. 1970년 - 캐나다의 프레드릭 백, 첫 애니메이션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1972년 - 랄프 박시, 성인용 애니메이션 <고양이 플리츠(Flitz the Cat)> 발표로 새로운 애니메이션 태동. - 일본 <마징가 Z> TV방영 개시 , 최초로 사람이 직접 타고 조종하는 로보트를 등장시켜 로보트 물 붐을 이룸. 이후로 속편격인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등도 모두 흥행에 성공함. 우리나라에서도 TV에 방영되어 로보트 물 붐을 이룸. 1973년 - 프레드릭 백, <새들의 창조(La Creation des oiseaux / The Miracle of Spring)> 요크턴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수상. - 이탈리아의 인형 애니메이션의 전통은 로돌포 모르체나로에게 계승되어 클레이 애니메이션 <잃어버린 세계의 다섯가지 이야기> 제작. 1975년 - 랄프 박시, 실사와 합성한 <쿤스킨(Coonskin)> 발표.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의 거장 브루노 보제트(Bruno Bozzeto), - 장편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 발표. - 노르웨이의 아이보 카프리노 인형 애니메이션 <핀치클럽의 그랑프리(The Pinchcliffe Grandprix)>로 모스크바 영화제 수상. 1976년 - 프레드릭 백, <타라타타(Taratata)>. (1979년 스위스 국제 청소년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 김청기 감독, <로보트 태권 V> 흥행 성공. 1977년 -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 상영, 74년 TV시리즈 물로 방영될 당시에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뒤늦게 큰 호응을 얻어 애니메이션 붐이라는 일본의 사회 현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작품. - '새서미 스티리트'를 창조한 존 허블리 사망. - 랄프 박시, 핵전쟁 백만년 후의 미래 이야기를 다룬 <마법사(Wizards)>. 1978년 - 프레드릭 백, <뚜 리아(Tout Rien). (1979년 바르나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1위) - 랄프 박시, 로토스코프 방식의 제작 <반지 이야기(Load of the Rings)> 발표. 1979년 - 조지 루카스의 'ILM'에 뉴욕 공대 출신들로 구성된 CG개발부 설립.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탄생, 로보트 물에 리얼리티를 시도하여 훗날 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침. 1980년 -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월 번튼의 <크리스마스 선물>. 1981년 - 'ILM'이 컴퓨터로 동작을 제어하여 실시간에 촬영하는 '고우-모션' 기법 개발로 전통적인 '스톱-모션'기법을 사용한 영화 특수효과에 혁명적 변화 바람 불러일으킴. - 프레드릭 백, <크랙!> 1982년 - 디즈니의 영화, <트론> CG를 이용한 특수효과 붐을 이룸. - 한나-바바라 <스머프> 시리즈로 TV물에서 여전히 우위 입증. - 'ILM' <스타트랙 2 : 칸의 분노>에서 CG본격 도입 성공. - 프레드릭 백의 <크랙!>, 제54회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수상. - 요제프 기메슈(헝가리)에 의해 유화 애니메이션 <영웅시대> 제작. 배경 600장, 동화 35,000장으로 2년 반에 걸친 제작기간. 셀 애니메이션의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음. 1983년 - 일본 <고르고 13>, 애니메이션에 CG도입 - '20세기 폭스', 랄프 박시 감독의 <불과 얼음(Fire & Cool)> 제작. 1984년 -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이 작품의 성공 후 미야자키는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다. 1985년 - 김청기,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우뢰매> 시리즈 발표. - 스티브 한, 세계최초의 3D애니메이션 <스타체이셔> 발표. 그러나 국내 흥행에는 실패함. - 국제연합(UN)이 1985년을 '국제애니메이션의 해'로 선포. - ASIFA(국제애니메이션 필름 협회) 창립 25주년을 기념하여 UN등의 지원아래 제1회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개최. 1986년 - 스티븐 스필버그, 돈 불루스 감독으로 <아메리칸 테일(American Tale)> 발표. 1987년 - 프레드릭 백, <나무를 심은 사나이(The Man Who Planted Trees)>. -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 KBS <떠돌이 까치>, MBC <달려라 호돌이> 를 시작으로 국내 방송용 애니메이션 자체 제작 시대 개막. 1988년 - 스티븐 스필버그, <공룡시대(Land og Before the Time)> 발표. - 프레드릭 백, <나무를 심은 사나이> 제60회 아카데미 단편상 수상. 1988년 - 애니메이션에서 침체에 빠졌던 디즈니, 스필버그와 합작하여 실사 합성영화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 발표. - 랄프 박시,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 <쿨 월드>. 1989년 - 디즈니,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ld)>로 극장용 애니매이션의 주도권 장악. - 일본의 데스까 오사무 사망. 1992년 - '20세기 폭스', TV시리즈 <심슨가족>의 히트로 TV용 애니메이션 장악. - 환경문제를 다룬 '요정 크리스타' 개봉. -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흥행 성공. 1993년 -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알라딘> 흥행 성공. 1994년 - 최초의 극장용 성인 애니메이션 <블루시걸> 개봉. 홍보에 힘입어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형편없는 작품성으로 기대에 못미쳐 혹평을 받음. -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여전히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둠. 이로 인해 데스카유족으로부터 캐릭터모방이라는 비방을 들음. 1995년 - 앙시 국제 만화페스티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헤이세이 너구리 폼포코> 대상 수상. - 디즈니 최초의 동양 캐릭터가 등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애니메이션화한 <포카혼타스> 개봉. -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붐으로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이 드디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함. <붉은매>, <슈퍼차일드>, <아마게돈>, <둘리의 얼음별 여행>등 다수 개봉 1998년 - 최초의 t.v.로봇만화 <라젠카>방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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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http://www.nist.co.kr/personas-html/amigo1/ans1.htm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