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계시록!(16) : 지금은 영적 전쟁 중이다!”
+ 본 문 : 요한계시록 7장 13절 - 14절 (신약 406쪽)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멘!
이만희 씨를 구원자로 모시는 신천지라는 이단의 무리들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한 때, CBS 에서 신천지 이단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내고, 교회가 이에 관심을 가지니 발악을 했습니다.
심지어 C B S 본사는 물론, 지방 C B S 방송지사까지 찾아와 데모를 하고,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방송에 관여한 사람들을 지정하여 죽이겠다고 협박 문자를 보내 위협했다고 합니다.
이단인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집단행동에 정말 섬뜩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성경공부를 절대 거절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교인인척 접근하여, 과분하게 잘 해 주는 친절한 사람들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 잘 가르치는 목사님이 있다. 계시 받은 선교사가 있다. 내 친척이 있다. 한 번만 만나보라.”
또는 “기성교회는 구원이 없다. 기성교회 목회자들은 돈만 아는 거짓 선지자다.” 라는 말로 유혹하고,
교회와 멀어지게 하는 미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늘 긴장하고, 말씀으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단 때문에 우리가 늘 긴장하고, 말씀으로 깨어 기도하면, 도리어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 때문에 무너졌습니까? 아니면 집요하게 자기를 죽이려하는,
사울 왕 때문에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골리앗과 사울 왕이 있을 때는 승승장구 항상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골리앗도, 사울 왕도 다 물리친 후에, 적이 없는 평안한 때에 무너졌습니다.
너무 한가해 낮잠 자고 일어난 후, 남의 아내와 간통하여 남의 가정을 파괴시키는 죄를 저질렀고,
간통한 여인 밧세바의 남편인 충신 중의 충신이었던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세에는 이단들이 엄청나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이단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골리앗이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밧세바와 같은 유혹하는 무리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윗처럼 방심하면 안 됩니다. 방심했다가 무너지면 안 됩니다. 깨어 경계하면 오히려 유익이 됩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는 유람선이 아니라 전투함에 올라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심하지 말고, 바짝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 중입니다.
그래서 지상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고, 천상교회는 승리하는 교회 혹은 승리를 누리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지상교회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영적 전쟁 중이라면, 당연히 교회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유람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대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자꾸만 교회는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미없다고 안 나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닙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악한 사탄 마귀와 싸워서 영혼을 건져내는 구조선이고,
악한 사탄 마귀와 싸우는 전투선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그리고 교회는 지금 영적 전쟁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유도 바로 이 사실을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 말씀이 그걸 말해 줍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아멘!
이 말씀에 나오는 ‘이기는’ 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그 당시에 통용되던 전투적 용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무려 다섯 교회에나,
전쟁에서 사용되는 전투적인 용어인 “이기는 자!”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심한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물론이고,
신약성도인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기는 자!” 라는 메시지를 주기 원하셨기에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박해를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뜨고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이단들의 미혹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깜짝깜짝 놀랄만한 일들도,
더 나아가 수많은 사건들도 영적인 차원으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영적 전투 중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7장 13절, 14절 말씀에서도 똑같은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함께 봉독하며 선포하겠습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징이 있는데, 그들은 환난을 이겨낸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영적 전투를 이겨내고 승리했다는 특징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있는 말씀도,
똑같은 내용입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 여기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전투하는 교회임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방심하연 안 됩니다. 우리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은 영적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방심하던 마음을 추슬러 긴장을 다시 회복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내적인 문제인데, 우리가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해져도 훨씬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강해져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권면합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딤후 2:1)
그리고 고린도전서 16장 13절에서도 말씀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아멘!
성경에 이렇게 “강하라! 담대하라!” 는 권면의 말씀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요즘 교회는 약합니다. 약해도 너무 약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옛 믿음의,
어른들에 비하면, 너무나 약해져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허약한 체질이 되어버렸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듣는 이야기가 뭡니까? 누가 상처 받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대놓고 “목사님! 아무 게 상처 받았대요. 그래서 교회를 안 나온대요. 위로해주세요. 얼러주세요.”
목회하면서 수없이 듣는 이야기, 여기도 상처 저기도 상처. - 심지어 자기 상처를 안 싸매줘서 상처,
더 심한 경우는 장로님, 권사님, 안수 집사님이 상처 받았대요. 10년, 20년, 30년 된 성도가 상처받았대요.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예수 믿은 지 10년, 20년, 30년이 넘었으면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해 주는,
위로자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더 상처를 잘 받습니다. 더 잘 삐집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믿음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습니다. 얼려야죠. 아이처럼 얼리고 설리고 추켜세우고, 업어주고 안아 주어야죠.
그런데 정말로 상처받을만한 일을 당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힘내세요. 이해하세요.” 라고 말하면 “아니에요. 오죽했으면 그 분이 그랬겠어요.”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상처받고도 오히려 그 사람을 두둔하시는 분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이런 여유가 어디서 왔을까요?
간단합니다. 영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해져야 합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지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 받지 않는 강한 믿음, 성숙한 믿음이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순한 양들만 보내주세요. 나와 교회에 유익한 일꾼들을 많이 보내 주세요.”
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이런 기도도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기꺼이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기도도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든지, 어떤 성도가 저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든지, 제가 그런 일들을 다 감당할 수 있도록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런 성도의 상처와 아픔과 슬픔까지도, 다 품을 수 있는 강한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제가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기도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반복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강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성경은 도대체 강함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장 명확하게 말해 주는 성경이 로마서 12장 21절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러면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바로 앞, 로마서 12장 20절 말씀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 말씀에 나오는 “숯불을 그 머리 위에 쌓아 놓으리라.” -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숯불과 같은,
따뜻한 사랑으로, 오히려 그 사람을 품어서 변화시키는 사람이, 진짜로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변화시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강해진다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원수보다도 더 큰 힘,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원수를 밟아버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를 사랑하는 능력이 성경이 말하는 진짜 강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강해집시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둘째는 외적인 문제인데, 우리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25 전쟁의 가장 큰 비극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해서, 아군끼리 총을 겨누고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우리 군인들이, 6.25 전쟁 때에 목숨을 잃은 전체 군인들의 16 % 나 된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의 전사자 100명 중에, 16명은 같은 우리나라 군인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6.25 전쟁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사망자의 15%가 아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고,
월남 전쟁 때는 우리나라 파병 군인들 중, 사망자 10%가 아군의 총에 맞아서 죽었다는 비극입니다.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상황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김권사님과 박권사님이 서로 싸우고 미워합니다. 등 돌리고 얼굴도 안 보고 삽니다.
김권사님과 박권사님만 그런 게 아니라, 이권사님과 정집사님, 최집사님과 김장로님도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누굴까 전혀 궁금해 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제 마음대로 예를 들어서 말해 본 것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아무리 미운 짓해도, 그분들은 나의 적이 아니라 아군입니다.
우리의 원수요. 우리의 적은 사탄마귀입니다. 한 교회 안에 있는 분들은 아군입니다.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구원받은 주 안에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미워하거나 등 돌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님들이, 교역자와 성도가, 성도와 성도가 싸우고,
미워하고, 얼굴도 안 쳐다보려하고, 등 돌리고 앉고, 그 사람 이야기만 나오면 열나게 비난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군을 적으로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군끼리 총질을 해서 죽이고 죽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누가 박수치며 좋아하겠습니까? 진짜로 우리의 적 마귀가 좋아 죽겠답니다.
이렇게 싸우고 미워하고 죽이는 우리가, 다윗에게서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싸우러 나아가는데, 다윗의 형 엘리압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동생을 비난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 상태에 있던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런 형에게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형 엘리압을 상대하여 싸우지 않고, 자신의 적인 골리앗에게만 집중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모습에서 많이 배워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진짜로 싸워야할 적은,
교회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인 엘리압이 아니라, 골리앗과 같은 사탄마귀입니다. 여러분! 아멘입니까?
여러분! 진짜로 아멘입니까? 진짜로 아멘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아군끼리 싸우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적군이 누구인지? 아군이 누구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아무리 내게 상처를 주고,
아무리 미운 짓을 하는 미운 사람이라도 그는 우리의 적군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아군입니다.
이걸 모르니까 싸웁니다. 미워합니다. 등 돌립니다. 그러고도 천국 갈까요? 천국가면 봐야 하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아군이 누구인지, 적군이 누구인지 알고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합시다.
셋째는 결론인데, 내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먼저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정말로 우리에게 놀라운 본을 남겨준, 존경 그 자체인 분이십니다.
빌립보서 1장 15절 – 17절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기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로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이 말씀의 배경은 어떤 상황입니까? 교회 안에 미성숙한 성도들이 있어서, 바울을 시기 질투하여,
사도 바울보다 더 열심히 복음 전하므로, 사도 바울을 지도자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빌립보서 1장 18절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아멘! - 정말로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이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바울과 같은 이런 대범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과 같은 넓은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수 사탄마귀 앞에서 분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님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2절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믿기에, 어떤 사람이 아무리 내게 미운 짓을 해도 “저 사람은 내 원수가 아니다.
저 사람 배후에서 악한 행위를 하도록 조종하는 원수 마귀이지, 저 사람 자체가 내 적이 아니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 모두에게 적이 누군지 아군이 누구인지를 알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더 강해지기를 소원하고, 적과 아군을 잘 구분하며 살아도,
좀처럼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원받은 백성에게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그들은 극심한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그들의 특징이 하나 더 나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멘! -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승리하는 자” 라는 특징 외에,
그 승리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가능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이걸 놓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우리 인격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내 인격을 내가 잘 압니다. 어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늘 넘어집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의 인격을 성령으로 다듬어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십자가로 저의 단점인 흠과 굽은 갈고리 같은 저의 인격을 펴주시옵소서.”
그렇게 구하고 또 구해도 잘 안 고쳐집니다. 그래서 예수 십자가를 의지하며 기도로 또 나아갑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용서 받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능력으로 변화 된 인격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은 영적 전쟁 중입니다. 그래서 강해져야 합니다.
날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지금보다 칠 배나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식구들은 모두 다의 나와 한 편인 아군이기에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사탄마귀입니다. 그래서 더 강해져서, 우리의 아군인 성도들과 힘을 합하여,
악한 사탄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능력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