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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깨나 다닌 사람에게 메타세쿼이어숲을 걷고 싶다고 하면 추천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강원도 춘천과 경기 가평사이 북한강에 위치한 남이섬과 세종시 금강자연휴양림의 '황토 메타길',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어랜드, 전북 진안의 모래재 메타세쿼이아길등입니다.
모두 나무잎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늦가을에 꼭 걸어볼만한 길이죠.
하지만 한 곳이 빠졌습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화인산림욕장 메타세쿼이아숲길입니다.
이 나무가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군집을 이뤄 여유 있게 산책할 만한 곳은 흔치않습니다.
화인산림욕장은 메타세쿼이아가 경사진 숲에 빽빽하고 그 사이에 지그재그로 길이 나있어 특유의 멋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하늘높이 쭉쭉 뻗어 자태가 단정하고 원시적인 느낌과 귀족적인 기품을 풍기는 메타스쿼이아는 은행나무나 소철처럼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함께 살아온 아주 오래된 나무죠.
화석을 통해서 과거에 있었던 나무로만 알려져 오다가 1946년 중국 쓰촨 성 양쯔 강 상류 지방에서 발견돼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아주 좁은 지역에서 멸종위기를 겪었던 나무는 환경수와 조경수는 물론 건축자재와 가구자재, 목 섬유 원료 등 다양한 쓰임새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빠르고 폭넓게 퍼졌습니다.
달력에 소설(小雪)로 표시된 휴일, 옥천 화인산림욕장을 걸었습니다.
산림욕장의 주인장은 한 평생 목재와 목공 관련 무역에 종사해온 정홍용 대표입니다.
그는 20대부터 고향땅 안내면에 조금씩 사모은 임야가 무려 50만㎡에 달했습니다.
주말만 되면 이곳에 내려와 메타세쿼이아, 소나무, 참나무, 편백나무 10만 그루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40년 이상 정성과 피땀으로 일군 산림욕장을 지난 2013년에 무료 개장했습니다.
산림욕장을 걷다보면 정 대표의 노고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옥천군 안내면에서 안남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중간쯤에서 좌측으로 700m정도 공사 중인 농로를 따라 가면 산림욕장의 들머리인 정 대표 전원주택과 주차장이 나옵니다.
그 곳에서 전원주택 뒤편 연못을 따라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들어가면 청정하고 상쾌한 숲에서 갑자기 짙은 피톤치드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나무는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의장대처럼 줄맞춰 서있습니다.
이곳에서 100m를 걸어 올라가면 거울처럼 물속에 숲을 반영하고 있는 연못을 거쳐 울창한 황토빛 메타세쿼이아 숲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눈앞에 펼쳐집니다.
나무도 흙길도 온통 황토색 그림물감으로 채색한 것처럼 독특한 풍광을 드러내고 있더군요.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분위기에 잠시 도취됩니다.
나무 팻말에 표시된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오르는 길은 1481m, 내려오는 길은 2525m입니다.
산림욕장 정상까지 한 바퀴 돌으면 총 4km정도 걷게 됩니다. 산중턱부터는 메타스쿼이아길을 벗어나 소나무, 참나무길이 나옵니다. 오르막이 있지만 가파르지 않아 숲 향을 맡으며 천천히 올라가면 됩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안내면 일대가 보이긴 하지만 굳이 올라가지 않고 피톤치드 내뿜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편백나무 숲길과 메타세쿼이아숲길을 걸으며 산림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동절기라 그런지 오후 4시쯤 정상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드는데 숲은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더군요.
늦가을햇볕이 나무사이로 쏟아지는 한낮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지만 해가 서산을 향해 기울고 있는 늦은 오후의 메타세쿼이아 숲은 북구(北歐)의 깊은 숲속에 와있는 것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디선가 난데없이 들리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숲의 적막을 깼습니다.
산 아래 숲길은 메타세쿼이아 황토색 낙엽이 눈처럼 떨어져 그 때 만큼은 CG로 손을 본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냈습니다. 산책하며 걸린 시간은 2시간입니다. 화려한 단풍 숲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만추(晩秋)에 가장 풍부한 표정을 지닌 숲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