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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에게 주실 은혜를 바랄지어다 |
성경 |
베드로전서1:13-25 |
일시 |
2012년09월02일 |
장소 |
인천제일교회 |
설교 |
김성호목사 |
녹취자료
옆집에 목사님 부부가 살고계신데 사모님이 며칠 전 큰 봉지에 애들 신발을 잔뜩 가지고 오셨어요. 저희 집에 딸이 두명 있으니 여자신발을 가져오셨습니다. 세현이하고 세빈이가 난리가 났죠. 문제가 한 가지 발생했는데 세현이에게 맞는 신발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막내는 신발이 커도 커서 신으면 되는데 세현이는 맞는 신발이 하나도 없어요. 신발이 필요했던 것은 세현이였거든요. 세현이가 실망을 해서 구석에 숨어서 울어요. 아이에게 얘기했습니다. 세현아 네가 신발이 있어서 마음이 좋고 없어서 마음이 안 좋고 그런 수준이라면 너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생겨서 기분이 좋고, 없어서 마음이 안 좋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훌륭한 사람은 마음이 늘 일정하다 늘 의연하다. 똑같다. 마음이 평정심으로 가득하다. 네 안에 있는 욕심 때문에 마음이 이상하면 절대 훌륭한 마음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훌쩍 일어나더라고요. 그 날 밤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제 마음에 있는 욕심을 다 없애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거에요. 제가 했던 얘기를 다 그대로 마음에 담고 있다 그대로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할게 많다고 하면서. 기도가 너무 재밌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참 렘넌트다. 우리 교회 어린아이들이 어리지만 마음은 훌륭하다. 어릴 때 얼마나 갖고 싶습니까? 마음에 담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우리 렘넌트들이 다 훌륭하고 마음이 넓습니다. 우리가 뭔가 있어서 즐겁고 없어서 기분이 상하는 수준을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응답 있든 없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13절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마음을 잘 지키라는 겁니다. 외적인 것을 가꾸고 외적인 것에 마음에 두고 외적인 것을 충족하려 하지 말고 마음에 왜냐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바라봐야 할 것이 이 땅의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이 땅의 것들은 다 사라진다는 겁니다. 사라질 것 붙잡지 말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라.
세계렘넌트대회에 갔을 때 일반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숙소가 없었습니다. 제가 있는 청소년 신학원에서 강사 몇 명에게 숙소를 마련해 줬어요. 숙소가 없어 모텔을 하나 잡아줘 거기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대구에 아는 분들이 있어서 대구의 어느 집으로 가시고 도영이는 갈 곳이 없으니 찜질방으로 갔습니다. 하루 밤 자고나서 도영이가 목사님 산업인이 찜질방에서 자는 게 맞습니까? 제가 대답을 안했습니다. 목사님 호텔로 가시죠. 5성급호텔로 가시죠. 제가 말을 안했습니다. 못이기는 척하고 도영이를 따라 갔죠. 야 뭘 그런데서 자냐 하고 말할 수 있었지만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갔습니다. 근데 진짜 좋은 호텔로 가더라고요. 방을 예약하는데 방을 두 개나 잡는 거예요. 그것도 못이기는 척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을 때 야 좋다. 이런 데서도 자보는 구나. 근데 그게 끝이었어요. 자는데요, 잠이 잘 오는 것도 아니에요. 더 안락한 것도 아닙니다. 잘 꾸며진 것뿐이에요. 실제 내 마음의 질을 막 높여 주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런데서 자는구나. 그 정도였습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거나 그러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제 마음을 진짜 풍요롭게 하고 제 마음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말씀같이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들이었습니다. 도영이에게 감사합니다. 내 삶의 변화를 이끈 건 거기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 누구와의 만남을 통한 깨달음이 내 삶의 변화를 이끌었지 보여 지는 것들이 내 삶의 변화를 이끌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자도 그 안에 내면이 황폐한 사람은요 늘 갈급한 겁니다. 그 어떤 좋은 차가 있어도 영적인 충만함이 없으면 삶이 질적으로 굉장히 떨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떤 경우에도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인간은 영적으로 만족을 누리고 질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게 성경에서 끊임없이 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라.
14절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을 모를 때는 너희의 삶을 따랐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바라보고 살아라. 영원한 은혜. 잠깐 내 육신을 만족시키는 욕심을 본받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처럼. 우리는 살면서 착각하기를 내 생각이 가장 좋은 생각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살다보면 언뜻 내 생각대로 가요. 잘못되었다고 알다가도 살다보면 내 생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의 생각은 항상 완전할 수 없고 항상 부족하고 내일을 모르는 우리의 생각은요 어떤 경우에도 좋은 생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만큼 좋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바라봐라.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심장과 폐와 마음 깊숙한 곳까지 알고 계신 하나님.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를 설계하신 분이 가장 잘 아시죠. 나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만지셔서 치유하실 수 있는 하나님. 하나님을 바라봐라. 내 생각에는 조금 내가 기도하고 있는 응답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러하게 풀렸으면 좋겠다. 계획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계획과 뜻과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주 훌륭한 분이잖아요. 예수님만큼 훌륭한 인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조차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 라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내 뜻 안에는 내 욕심이 들어있거든요. 그 욕심은 그것을 이룬다 할지라도 욕심은 죄를 낳고 죄가 장사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결과가 항상 그렇게 나옵니다. 내 욕심을 따라 가는 기도는 항상 하나님과 떨어진 길을 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이에요. 하나님의 생각이 배제된, 하나님의 뜻이 거부된 내 생각은 언제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있고 그 길은 언제든지 어두운길입니다. 그게 맞다 생각하고 가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두워요. 하나님과 멀어져서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조차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
어제 청신에 가서 강사님들과 얘기를 하던 중 한 목사님이 책을 소개시켜주더라고요. 세일즈 계에서 10년간 기네스에 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 사람이 첫 번째로 하는 말이 철칙이 있다. 세일즈맨과 얘기하지 마라. 같은 세일즈맨들하곤 만나지 마라. 만나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하게 그들과 노닥거리지 마라. 제가 그 얘기를 딱 듣는데요, 그렇지 나도 목사지만 내가 목사님들과 얘기해서 얻을게 없다. 하나님과 얘기해야지. 맞다 목사님들과 얘기할 때 믿음을 세워주는 말을 참 좋은 말이지만 다른 얘기들 있잖아요. 그냥 돌아가는 현실적인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얻을 만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계속 만나면 끊임없는 유익이 오잖아요. 대부분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이웃들 친구들과의 교류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 수준에서 계속 대화가 되어지고 그 사람의 말이 마음에 담기죠. 한 주간동안에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한 말이에요.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들은 말. 내 마음 속에 나를 좌우하는 게 인간의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기억되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없는 실제로 내 인생을 어떻게 만져서 살릴 수 없는 사람의 말이 끊임없이 맘속에 맴돕니다. 내 영혼을 어떤 경우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말이요. 우리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야 하지만 하나님과 늘 만나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늘 만나야 되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늘 맴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바라보는 저와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15절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절 -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아라. 하나님을 닮아가라.
17절 -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람은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판단하십니다. 각 사람의 삶의 내용을 결과적으로 보신다는 겁니다. 지금 현재 그 사람의 외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을 보신다는 겁니다. 행위대로 판단하신다.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할 것이 자꾸 외적인 것을 가지고 세우려는 노력을 내려놔야 합니다. 내면을 가꿔야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강건한 것이지 외적인 것을 자꾸 키운다고 강해지는 게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을 나그네라고 표현합니다. 나그네라는 표현 자체에는 인생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겁니다. 왔다 가는 거라는 겁니다. 잠시 머물다 지나치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이라는 겁니다. 정착하는 정착민이 아니라 왔다 지나가는 나그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두려움이라는 것인 경외라는 말입니다.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라는 겁니다. 우리가 삶을 살 때 지나치는 이 땅위에 어리석은 건물을 쌓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라. 지나쳐서 하나님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삶을 지나쳐서 하나님 앞에 서야 되기 때문에 지나친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다른 것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은혜를 바라보는 자. 모든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따라 외적인 것을 채우는데 살지만 하나님은 그 삶의 내용을 보신다.
18절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우리가 수많은 조상으로부터 가문으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습니까? 그 물려받은 것들 중에 헛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 영적인 문제들 정신적인 문제들이 다 유전 되서 물려온 것들이거든요. 금과 은 같이 이 땅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우리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뭐로 영적인 문제가 해결 되냐면
19절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것은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돈으로 우리 안에 있는 정신문제 영적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가문으로부터 물려오는 끊임없는 저주들을 돈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는다.
20절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끊임없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온다. 메시야가 온다. 너희 인간을 구원할 자 그리스도가 온다. 그리스도가 오셨잖아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면서
22절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말씀에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랬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 영혼이 언제 깨끗해집니까?
때가 묻어있는 금은 그냥 닦아 내면 됩니다. 그런데 불순물이 섞여있는 금덩어리는요 닦아내서는 안 됩니다. 그 자 체로는 별 가치가 없어요. 불로 녹여서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 불의 연단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닦아내면 되는 수준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여러 가지 체질들 불신앙 염려들이 섞여 있을 때 빼내는 방법은 한 가지에요. 녹여야 합니다. 섞여 있는 금덩어리를 녹여야 해요. 가치를 뽑아내려면. 우리의 삶 속에 불의 연단이 왜 계속 필요합니까? 우리 안에 섞여 있는 비 복음적인 체질들을 걸러내고 제거하기 위해서. 순수한 복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복음 속으로 깊이 못 들어오는 사람에겐 끊임없는 연단을 하십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온전한 순금을 채우기 위해서.
베드로전서 1장 6절 시험이 오는데 기쁜거에요. 잠깐 불의 연단을 통해서 순금으로 가치 있는 삶으로 바뀌니까요. 시험은 기쁜 겁니다. 연단은 기쁜 거예요. 하나님 훈련하시는 연단은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런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겁니다. 우리 삶은요 외적인 것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가치 있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순금이 이렇게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왜 다른 돌들은 화려한 보석함이 있고 조명과 장신구가 있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없이 초라하고 찌질하게 아무것도 없냐.” 다른 돌들 보니까 좋은 함에 들어가 있고 장신구도 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십시오. 성도들이 이렇게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좋은 집이 있고 화려한 조명도 갖고 이것저것 가진 게 많은데 하나님 믿는 나는 초라하고 찌질하게 아무것도 없냐. 여기서 제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죠? 순금이는 외부의 어떤 장식도 필요 없습니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순금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는요 다른 외적인 조건으로 가치가 세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런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몰라요. 하나님의 자년데. 순금인데 자기가 그 자체로 어떤 외적인 조건 없이도 빛이 나는 금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외적인 것에 의존하여 가치를 일으켜 세우려 합니다. 우리아이들이 자기 안의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수많은 외적인 조건으로 자기 가치를 세우려고 해보십시오. 그거 다 사라져버리면 자살합니다. 내면이 약해요. 우리가 그런다는 겁니다. 아무것으로 장식되지 않아도 그 가치가 결코 상실되지 않는 것이 순금이고요, 반대로 장식으로도 그 자체가 상승되는 게 아니에요. 장식 된다고 순금의 가치가 더 올라갑니까? 그 자체의 가치에요. 이것을 누린 사람이 요셉입니다. 나신이 노예로 팔려가든 감옥에 가든 하나님 자려나는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함을 그 가치를 누리는 겁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면 왜 하나님 자녀인데 노예로 팔려가나요? 그 말을 하든 말든. 그 말을 마음에 품고 가슴에 담고 늘 맴돌며 사는 인생이 불쌍한 인생이죠. 그게 더 불쌍한 겁니다. 요셉은 노예로 끌려갔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함을 누렸습니다. 그 가치를 잃어버린적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함께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다. 돌덩어리는 그 가치를 모릅니다. 돌덩이 세계에서는 금도 돌덩어리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 의해서 반드시 발견되게 되어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날마다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발견되는 날 쓰임 받는 거잖아요. 우리가 세상적으로 응답이 있으면 가치가 상승됩니까? 이것저것 없이 내 마음은 늘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치가 충만해야 훌륭한 마음 렘넌트의 마음입니다. 자체로써 가치를 다른 아무것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뭐라 말을 하든 말든.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내가 하나님 말씀을 붙잡음으로 영혼이 깨끗하게 된다. 영혼이 정화되고 불순물이 제거되고 가치 있는 순금덩어리가 되는거죠. 금덩어리가 깨끗하게 순금이 될 때 거기에 가치가 있고 거기에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마음에 간직되고 정리가 되어 깨끗할 때 이게 하나님 자녀의 가치 있는 삶을 누리는 일번입니다.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요 항상 사람들의 그럴듯한 말에 도전을 받습니다. 최초의 인간 하와가 그랬습니다. 사단이 와서 선악과를 봐라 이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 이상한 말 듣고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이 정리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 내 생각을 정리시킨거예요. 하와가 그 말을 듣고 나니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먹어버렸잖아요. 그 때부터 인생은 이상하게 가는 겁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어두운 길로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나에게 말을 하면 그 말이 내 모든 삶을 주관해 버립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생각보다 나은 생각을 말하기 위해 그 생각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이 내 믿음을 세워주는 말이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말은 하나님 뜻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이죠. 있는 그대로만 말합니다. 그 속에 감춰져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못 찾아내요. 있는 그대로 현실그대로 계산적으로 인간적인 말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누군가와 나 사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 둘만의 사이에서 그 무엇의 간섭으로 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고 지켜져야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자가 남는 자 렘넌트.
하나님은 이 부분에 대한 훈련을 저에게 분명히 시켜주셨는데요.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구라 하더라도 하나님과 뜻이 통하지 않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100% 인간의 말을 합니다. 그럴듯한 말을 해줘요. 그리고 내 구미를 당기는 말을 합니다. 동기를 자극하고 욕심을 채워주는 말을 해요. 제가 안양에 교회를 정하고 가려고 하니 한명도 예외 없이 저에게 와서 하는 말이 가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유를 한 가지씩 말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1년 이상 버틴 사역자가 없다. 가면 안 된다. 죽을 고생한다. 신앙 다 잃어버린다. 그리고 임마누엘 서울교회에서 오라고 했으니까 가라. 거기가야 네가 산다.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에요. 내 구미를 당기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하고는 달라요. 왜냐면 제가 기도 해본 바로는 하나님은 뜻이 있어서 나를 그 자리에 두신 겁니다. 확신이에요. 이 사람들은 나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이 틀렸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유가 있어서 저를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사람들이 한 말을 물리치는 그것이 우리가 당연히 걸어가야 될 믿음의 길이거든요? 근데 제가 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기도하고 확신에 따라 걸어간 결과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줄 수 없는 삶에 굉장한 내공을 쌓게 했습니다. 안 부셔져요. 웬만하면. 하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별일이 와도 안 부셔져요. 내공. 하나님이 단련하신다니까요. 하나님의 훈련을 받지 않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리석은 것이거든요. 내가 좋은 길로만 가겠다는 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절대 좋은 길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가길 원합니다. 그게 가장 좋은 길이요 가장 완전한 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내가 늘 붙잡고 따라감으로 우리 영혼이 깨끗해요. 권세 깨끗한 영혼, 섞이지 않는 정금과 같은 가치.
24절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영원토록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아무리 영광이 충만하더라도 그건 풀의 꽃과 같다. 떨어지는 거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말씀밖에 없다. 그래서 2장 8절 중반부에 보면요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넘어진다. 말씀을 붙잡지 않기 때문에 넘어지는 거예요. 내 안에 말씀이 맴돌아야 되는데 그 말씀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늘 기억되고 맴돌아야 되는데 그것을 놓치니까 자꾸 넘어진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치 하나만으로 우리는 정금 순금과 같은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을 누리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구원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가장 좋은 것 은혜를 바라야겠습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바라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내 손에 100만원이 들어오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뭐냐, 내 마음에 믿음과 희망이 생기는 겁니다. 100만원은 소비하게 하고 잠깐의 만족을 주겠지만 믿음과 희망은 우리 삶 전체를 견인해 가는 삶의 동력이 되는 거예요. 더군다나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이 땅의 것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 은혜가 임하면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가치를 누리고 말씀이 내 삶을 인도하는 하나님 뜻을 따라 인도받는 가장 복된 삶. 하나님이 우리 삶을 붙잡아주고 인도하는 가장 축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