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초등학교 앞의 이정표
과객을 위한 등나무 쉼터. 막걸리가 지나가는 길손을 부른다.
대평리 간이정거장
대평리 마을 유래비
17세기 조선의 청백리 수사공 남원 양씨 양칙을 기리는 숭의비각.
양칙(梁侙, 1624-1686)의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자는 자의(子儀)며 양응함(梁應涵)의 아들로 태어났다. 1651년(효종 2)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현종 때 갑산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 하여 우의정 허적(許積)에 의해 다른 사람과 교체되었다. 이로부터 멀리 외직으로 나가는 관리들이 늙은 부모를 핑계로 벼슬을 바꿔줄 것을 청하는 풍조가 일어나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686년(숙종 12) 경상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였으나 풍토병에 걸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좌의정 남구만(南九萬) 등의 추천으로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대평2리 입구. 피덕(皮德)길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평2리 간이정거장에서
한때는 호황을 누렸을 소형 방갈로
고균 김옥균 선생 성장지[광덕면 원덕2리]. 1976년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1979년 12월에 성장지 비문을 세우고 성장지터 정비작업을 추진했다. 1851년 공주 정안면 광정에서 태어나 1853년 이곳으로 이주한 뒤 1856년 당숙 형조참의 김병기에게 양자로 갈때까지 3년간 살았던 곳이다. 다음에 와서 둘러봐야겠다.
원터 마을 유래비. 아산이 낳고 천안이 기른 소설가 민촌 이기영(1895-1984) 선생의 장편 <고향>의 무대이기도 하다.
원덕노인회관 2층 팔각정
자연누리성 입성
이곳을 운영한지 30년이 넘었다는 부부는 석창포 이식에 여념이 없다.
석창포 효능. 주로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이곳에서 맥주로 입가심하다.
이곳 밤나무골까지 시내버스 두 대가 다닌다.
이젠 차령고개로
드디어 차령고개에 올라서다. 해발 190미터.
폐허가 된 차령휴게소의 통일기원 일붕[서경보] 시비. 멀쩡하게 보이는 건물을 놀리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인풍리(仁豊里) 초입에서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
밤나무 고장답게 야산이 온통 밤나무다.
사현리(沙峴里, 새실)로 빠지다.
태극기 휘날리며
김옥균 선생 생가지[정안면 광정리 38번지, 감나무골]. 이곳도 통과!
신광정(新廣亭). 정안(正安)면사무소 소재지가 광정리다. 이곳은 고려 때부터 삼남대로의 한 줄기가 정안골을 지나가게 됨으로 개경[개성]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의 길목으로 광정[廣程]역이 생기고 쌍령고개엔 행인의 편리를 도와주는 궁원(弓院)도 있었다. 조선 중종 때 청백리 이광정(李廣亭)이 지어준 광정(廣亭)에서 이름을 따왔다.
설장수(偰長壽) <광정역(廣程驛)>
初旭團團發廣程, 아침 해 뜰 무렵 광정역 떠났는데
白雲深鎖萬山靑. 온 산의 푸른나무 흰구름 덮었다.
野花爛漫開無主, 주인 없는 들꽃들이 한창 피었는데
粧點春光作畵屛. 아롱다롱 봄빛이 그림병풍 이루었다.
위 시의 작자는 위구르족 출신이다. 설장수의 아버지 설손은 원나라 순제 때 고위관직에 있었으나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고려 공민왕을 찾아 아들을 데리고 고려로 귀화했다. 당시 설장수는 17세. 귀화한지 4년만[1362]에 설장수는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위구르어, 중국어, 몽골어, 고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어학의 귀재였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대명외교의 물꼬를 튼 외교관이다. 그는 또 오늘날로 치면 동시통역대학원에 해당하는 사역원(司譯院)의 설립에 관한 계획서를 올렸으며 총책임자를 맡아 사역원 시험, 선발 방법, 커리큐럼 등을 관장했다. 그가 지은 <직해소학(直解小學)>은 조선 초기 최고의 중국어 어학 교재였다. 그가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광정역에 묵으면서 이 시를 남겼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뒤져야 할 판이다.
한국전쟁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류군창 장군 공덕비. 국군 창군의 산 증인 류근창 장군은 유물 500여 점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기증했다. 충남 공주 출신의 류근창 장군이 입었던 군복 6점을 비롯해 지휘봉과 훈포장, 사진자료 등 500여 점의 유물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기증했다. 특히 117권에 달하는 앨범에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군대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자료들이 실려 있고, 1970년대 공주-사곡 간 취약지 도로 개설 준공식 사진 등 충남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자료도 포함돼 관심을 끌었다.
드디어 오늘의 종점 정안면사무소 도착!
잠시 정안면사무소 정자에서 다리쉼하다가 일부는 서울로 이동. 나머지는 장성짜장집에서 50도짜리 고량주를 곁들여 노독을 풀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일부는 소정리역으로, 나머지는 다시 천안 신부동 먹자골목 '넘버원 양꼬치' 집으로 이동하여 연타이꾸냥으로 2차!
함께 걸어서 더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김옥균 선생의 성장지가 거기로군요.
무덤은 아산시 영인면에 있습니다.
전에 음..뭐더라?.....충무공 묘역에 가봤었는데
거기도 아산이죠? 아산이 사자의 영혼이 나라를 지키는 곳이려니 ㅎㅎ
와...눈으로 걷는 즐거움도 좋네요..^^
아른거리는 그 곳에 맘은 항상 머물게 되는군요.
소정리의 한산함이 퍽이나 인상적이였습니다.
길고 긴 남녁으로 가는 길. 동행하신 길벗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리의 느낌으로 33km 걸은 것으로 합의 보았습니다. 민산님의 정성스런 후기에 다른 말을 보탤 용기는 없습니다. 감솨~~~
40km가 맞아요 야간도보가 있었어요^.^
항복~~~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다리가 아직도 우리하네요. 제 다리의 감각으론 40킬로 걸은 듯합니다.
공주까징! 조용히 외치던 민산님..ㅎ..눈에 선하네요...거 참 벌써 보고싶어집니다....ㅎ
따듯한 날씨와 찻길을 벗삼아 즐겁고 행복한 걸음 이었어요. 역사적 의미도 새롭게 되새기며 백제 고도인 공주가 기다려지네요~~
그날의행복감이다시느껴집니다!게다가자상한해설까징?ㅎ 감사합니당!
우리는 명실상부한 길위의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후기로 확인 까정...
이보다 완벽할수는 없다. ㅋ ㅋ ㅋ
민산님 감사 합니다... 다음여정에는 무었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함께해서 행복해습니다.
10인의 건각들이여&♬♬♬○○○○
밝은 낼 찬찬히 따라가 봐야겠어요..담을게 많아~^(^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찬데..박수를~
차를 겨듭할수록 역사속으로~제 고향이 가까워지내요~ㅎ
석창포도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