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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金文 해독 (개천절을 알리는 하늘의 편지와, 세계 인류문자 발달사 유적. 낭하리 석각)
아래 낭하리 고각( 古刻 - 옛날 석각) 그림은 흔히 인테넷에 뜨는 그림이다.낭하리 고각은 그간 고고학계나 사학계에서 무엇인지 몰라 궁굼해 하던 것이었고 그 설도 분분했던 것이다.필자도 이 그림을 얼핏 보고 지나친 일이 있는데 독자님중 백산님의 질문을 받고 자세히 검토해 본 결과 이는 낙서가 아니고 매우 중요한 그림이다.
우선 이 그림은 그림이 글자로 발달하는 과정이 나타나고있으므로 우리 역사는 물론 세계 인류문화 유산이 된다고 생각되고, 또 꿈같은 기대인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진도등지에서만 나타나는 모세의 기적처럼 초사흘 달이 금성과 만나 물그림자에 비치는 날, 이런 환상적인 날이 개천절을 알리는 하늘의 편지이고 이를 낭하리 바위에 적어 놓았다면 우리 조상의 천문관측 수준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이를 자세히 분석해 보고 이를 설명한다.
* 왼쪽그림이 낭하리 고각이고 다음은 평양 법수교 아래에 있었다는 신지녹도 전자인데 이는 필자가 해독해본 바에 의하면 천부경이 아니라 자식을 많이 낳게 해 달라는 일종의 고천문으로 필자 카페 ' 신지녹도 전자 천부경 해독' 에서 이미 해독해 놓은것이며 다음은 지금 중국 산동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 비문으로 이도 필자의 카페 '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에 해독한 글자들인데 이는 중국인들이 자기네 글자를 만든 창성이 한자 만든 과정을 적은것으로 알고 자기네 국보로 알고 있으나 실은 창힐은 신지한데 6년간이나 글자 만드는 법을 배운자로 환숫(황웅)이 밝달나라 세우는 기틀을 만드는것을 보고 적은 일종의 견문록으로 이는 중국의 국보가 아니라 실로 우리의 귀중한 국보인것 이다,
다음 위는 질그릇 만든 사람의 자기 싸인으로 불(火)과 나무(木)이고 그 아래는 갑골문.
* 다음 그림은 낭하리 고각을 직접 사진으로 찍은것으로 야후에서 퍼온것이다. 이 그림에서 맨 아래 天자는 그 예리한 조각형태로 보나 글자체로 보나 후세인의 낙서이다.
암각화(남해도 석각)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인가? 글자인가?
다음글은 야후에 올라있는 글이고 또 모든 사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내용이다.
*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즉, 남해도 상주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금산(錦山, 701m) 기슭(상주동 양이마을)에는 옛부터 전해지는 고문자(古文字) 금석문(金石文)이 있다. 이곳 금산에는 쌍홍문(雙虹門)이라는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진 석문(石門)을 앞에 두고 남해를 바라보면서 지금으로 부터 2200년 전의 서불(徐市 또는 徐福)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금산사(錦山寺)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금산사 옆 부소암 아래에는 7m x 4m의 평평한 바위가 놓여져있고, 그 바위 위에 1m x 50Cm의 넓이로 글자와도 비슷한 모양들이 새겨져있다. 일반적으로 암각화(岩刻畵)는 절벽이거나 세워진 바위 면에 있는데, 이것은 얼핏보아서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산비탈에 박혀있는 나즈막하고 아주 평범한 바위 상부에 있는 점이 특이하다. 마치 종이에 글을 쓴 것처럼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상형문자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는 선사시대의 암각화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곳 남해도 인근에는 서불에 대한 전설이 이곳저곳에 전해져 오기도 하는데, 진시황(秦始皇) 정(政)이 보낸 사신 서불이 이 곳에서 불노초를 찾으면서 새기어 놓은 글자라 하여, 과거에는 서불제명각자(徐市題名刻字) 또는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의미의 서불과차문(徐市過此文)이라 불리어 왔다.
이 암각에 대한 기록은 "남해현(南海縣) 낭하리(郎河里)의 암벽(岩壁)에 신시고각(神市古刻)이 있다." "남해현(南海縣) 낭하리(郎河里) 계곡에 있는 바위 위에 신시고각(神市古刻)이 있는데, 그 글은 환웅(桓雄)이 사냥을 나가서 삼신(三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최치원(崔致遠)이 일찍이 신지(神誌)가 새겨진 옛비석을 찾아 . . . 즉 낭하리(郎河里)의 암각(岩刻)이 그것(神誌)의 실제 흔적(痕迹)인 것이다." 등으로, 과거부터 여러 문헌에서 보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이맥이 1520년경에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의하면, "소문을 듣건데, 남해도 낭하리(郎河里)의 계곡과 경박호(鏡珀湖) 선춘령(先春嶺)과 오소리(烏蘇里) 바깥의 돌 사이에서 언젠가 조각을 발견하였는데, 범자(梵字)도 아니고 전자(篆字)도 아니어서 사람들이 쉽사리 해독하지 못한다." 또한 "일본의 기이(紀伊)에는 서불이 도착기념으로 남겨논 조각(彫刻)이 있다고 한다. . . . 서복(徐福)은 일명 서불(徐市)로서, 불(市)과 복(福)의 음(音)을 같이 혼용하고 있다." (이하생략)
* ....이 신지 전자의 초기 모습이 바로 위 그림 맨 왼쪽의 낭하리 암각화다. 환단고기에 인용된 대변설의 주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 개량된 형태가 1942년에 발행한 영변지에 실려 있다. 환단고기의 저자 계연수 선생이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에서 천부경이 새겨진 옛 비석을 발견한 내용과 더불어 신지 전자(篆字)를 옮겨 놓은 것이다.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한 이유립 옹도 저서 대배달민족사에 평양 소재 법수교 고비(古碑)라고 밝히면서 신지 전자(篆字)를 소개해 놓았다. 그밖에 구한말 서예의 대가인 김규진이 저술한 서법진결과 백두용(白斗鏞) 편,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도 신지 전자가 실려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의하면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 복희씨가 녹도문을 개량하여 용서(龍書)를 만들고 이것을 주양(朱襄)씨가 육서(六書)로 남겼다고 한다(朱壤仍舊文字而始傳六書). 이것이 이른바 삼황오제시대의 상고금문(上古金文)이다.(이하생략)
* .....이 신지 전자의 초기 모습이 바로 위 그림 맨 왼쪽의 낭하리 암각화입니다. 『환단고기』에 인용된『대변설』의 주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 문자는 5세 환웅이신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 복희씨께서 육서(六書)의 원리로서 개량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더 세련된 형태가 되었지요. 이것을 용서(龍書)라고 하며 이것이 널리 통용되던 신지문자입니다. 주로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다가 14세 치우천황 때 창힐이 배달국의 자부 선생으로부터 배워 중국에 널리 보급했습니다. 그전에는 주로 결승문자(結繩文字: 노끈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죠. 결승문자는 남미 인디언, 잉카제국에서 통용된 것입니다.(이하생략)
* <<대변설大辯說>>의 주에 말하기를 “남해현 낭하리의 계곡의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이 있다. 그 글에 <한웅이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리다>라고 있다”고 했다. 또 가로대 “대시 大始에 옛것을 전함에 있어 다만 전해오는 이야기에만 의지한 지 오래이다. 나중에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고 또다시 그림이 변하여 문자가 되었다. (이하생략)
* 이상 글들은 필자가 낭하리 고각을 해독해본 결과로는 과연 환단고기의 말은 진실이 된다.
또 이 그림 글자는 어쩌면 개천절에 천제를 지내던 기록일수도 있고 이 날을 잊지 말라는 하늘의 멧세지 나 달력일 지도 모른다.따라서 아직도 위서 취급을 받는 환단고기의 기록이 위서가 아니라는 입증도 된다.
그러나 서불이 자신의 행적을 알리기 위해 그림, 또는 글자를 써 놓았다거나 최치원이 와서 보고 천부경 81자로 번역했다는 말은 모두 속설이며 허구이다. 즉 이 그림하고 서불과는 관계가 없고 또 최치원도 이 그림글자를 보고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을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은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이나 이 낭하리 석각을 해독해 보면 안다.
이 그림, 글자가 매우 오래됬다는것은 꼭 과학적 검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그 그림, 글자 해독만으로도 맞는 말이다. 최소한 단군때나 그 이전 그림, 글자로 5~6 천년 이상은 될것이다.그렇다면 당시는 철이 생산되기전 신석기나 청동기 때라 청동으로된 정 등 시원치 않았을 연장을 가지고 당시 누가 그 애를 써가며 이렇게 아무도 알아먹지 못할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
글자던 그림이던 그리는것은 누가 보고 알아보라고 그리는것이다.
그렇다면 그간 우리 고고학계 사학계에서는 왜 아직 이 그림을 해독하지 못했을까?그것은 이 그림이나 글자를 그저 신비하게 볼뿐이었고 또 그간 누가 해독하여 보려 했어도 이 그림을 해독할려면 우선 천부인으로 만들었을 수 밖에 없는 ㄱㄴㄷ...ㅎ 속의 뜻이나 신지녹도전자, 금문, 가림토 또는 수메르의 우르문자 등 해독하는 방법을 모두 알았어야 하기 때문인데 강단사학등에서는 그것을 연구해 보기는 커녕 아직 신지녹도전자나 가림토의 존재 부터 부정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 글자는 인류가 그림에서 글자를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그림 글자이며 또한 인류 최초의 천문현상을 보고적은 환상적 달력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국보는 물론 인류문화 발달사에 아주 귀중한 단서가 되므로 유네스코 등에서 세계인류문화 유산으로 지정해 두어야 한다는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탁본이나 사진들은 모두 위아래가 뒤바뀐, 거꾸로 된것이다 환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 박사의 '한단고기 48 쪽에도 이 그림이 있는데 역시 거꾸로되 있으며 이 그림 설명을 서불제명각자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선 이런 서적등에 나타는 그림은 위 아래가 거꾸로 된것을 모르니 그대로 올린것이다.
이것을 우선 바로잡아 보자.
* 필자가 바로잡아본 그림
우측으로 부터 설명한다.
Y 자같은 것이 양쪽으로 붙어있는것은 일종의 지형이이며 또 천제를 지대던 제사터 라 해도 좋고 후세인들이 그 자리를 찾아가 천제를 지내라는 지도일수도 있다.
다음은 수레 같은것이 있는데 수레 앞에는 상징적인 바퀴까지 그려 놓았다. 그리고 그 수레에는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림의 비율로 보았을때 과장되게 큰 것으로 보아 높은 사람이다. 이것은 글자가 아니라 그냥 그림이다.
그러나 그 뒤에서 天 자 같은것이 수레를 밀고있는데 이 수레가 수평이 아니고 위로 올라간다는것은 이 수레 뒤의 나무는 정상적 수직으로 서 있는데 앞의 나무는 암벽에 붙은 나무라 약간 경사져 있다. 즉 뒤의 나무가 수직으로 선 것으로 볼때 이 수레는 올라가고 있다는것이다.
이 수레를 밀고 올라가는 天자는 금문으로 볼때 사람이다.즉 초기금문에서 사람을 天자로 그린 예가 많았었는데 그 이유는 大자 처럼 네 활개를 편 사람은 항상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기 때문에 天자 같이 그렸다.
위 그림의 정확한 해독과 증거를 제시하기위해 금문과 갑골문을 비교하며 그 변하는 과정을 설명한 ' 甲骨文字形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에 올려있는 글을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이는 비단 그 책 뿐 아니라 중국의 금문을 설명한 책이 거의 그렇다.
* 天자. 금문 > 갑골문의 그림,
天 자 그림이지만 夫 자 같은 글자도 많고 아래에는 아예 사람 머리까지 그려 놓았는데 어떤 사람머리는 口 자 같다. 여기서 주의할것은 이 그림들은 금문에서 갑골문, 그리고 대전(大篆),소전(小篆) 으로 변하는 순서대로 정리해 놓은것이 아니다. 즉 우리 민족이 만든 초기 금문은 하늘 천부인 ㅇ 모양대로 맨아래 그림과 같이 사람은 머리인 ㅇ에 아래 大 를 쓰고 땅은 보통 땅 천부인대로 口를 쓰지만 지나족들은 머리가 ㅇ 이면 개성이 없는 멍청이라 하여 머리도 口 자를 썼다.따러서 아래 글자중에 머리를 口 자로 그린것은 우리 조상이 만든 글자가 아니라 후세에 중국인들이 제멋대로 그린 그림이다.
* 생명 번식행위를 가장 신성한것으로 알던 우리 원시조상들은 하늘의 정기인 씨 를 여음인 땅에 전할수 있는 사내를 하늘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였다. 이 사내는 늙은이나 아이들이 아니고 씨를 전할수 있는 젊은 사내이다. 이 사내를 우리말로 아비 라 했는데 지금 父라는 아버지는 이 아비에서 나온말이고 이 아버지와 남편을 분별하기 위하여 나중에 남편은 제아비, 즉 지 아비 라 했다. 이를 한자로는 夫 라 하였고 그래서 이 글자는 하늘 위를 뚫고 올라간 글자이다. 따라서 젊은사내, 즉 일 할 수 있는 사내를 싸울아비, 거칠아비, 중신아비, 심지어 허수아비라 했으며 지금도 農夫니 漁夫니 鑛夫니 한다.
이 아비는 아직 결혼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과 같은집에 살지않았고 무리아들의 집 이라는 서자부(庶子부) 에 따로 모여 자기 부족과 여자들 집을 지켰다. 따라서 서자환웅(庶子桓雄) 이란 말은 아직 결혼제도가 없었으니 본처니, 첩이란 있을수 없다. 즉 환웅은 첩의 아들이 아니라 庶子部의 환웅이란 말이다.
그들은 씨놀음을 통하여 강인한 유전자만 후대에 전하게 했는데 그 씨놀음 이 이젠 씨름 이 되었다.(자세한 설명은 필자 졸저 '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에...)
* 夫 자. 금문> 갑골문 그림 (역시 ' 甲骨文字형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을 인용)
이 글자는 금문 갑골문 뿐 아니라 지금 우리도 쓰는 夫자이다. 역시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그런데 이 지아비를 그리다 보니 아래 그림처럼 더 노골적으로 생식기까지 붙은 太자도 썼는데 생식기가 너무 길게 그린것은 ㅎㅎ. 남근을 그만큼 중요시 했다는 말이다.
* 太자. 금문> 갑골문 그림 (역시 ' 甲骨文字형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을 인용)
그러나 사람중에는 꼭 사내만 있는것이 아니다. 사내가 씨라 한다면 그 씨를 받아 키울수 있는 땅, 즉 여자도 필요하니 여자를 포함한 사람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붙이지 안은 大 자를 쓰기도 했다. 大 자가 지금 크다는 뜻으로 쓰인것은 하늘아래 땅위에 사람의 존재가 가장 위대하기 때문에 크다는 뜻만 따서 큰大자가 된것이다.
* 大자. 금문> 갑골문 그림 (역시 ' 甲骨文字형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을 인용)
그러나 어차피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두 다리로 서서 다니니 복잡하게 그릴 필요가 없이 사람 특징만 나타냈고 이 아래 그림들이 다리 두개로 변하여 人 자 가 됬는데 이 그림에서도 하늘을 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
* 人 자. 금문 > 갑골문 그림 (역시 ' 甲骨文字형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을 인용)
또 다음 工 자에서 보듯이 하늘 아래에 서서 무엇인가 工作하는것이 사람이니 사람을 'ㅣ' 으로 쓴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훈민정음 제자해에서 天地人 三才중 人을 ㅣ 으로 쓴것과 같다. 그리고 이 T 자아래 口 은 천부인, 天地人 즉 ㅇ ㅁ △으로 만든 ㄱㄴㄷㄹ ㅁ...ㅎ 속에서 ㅁ 은 원래 땅을 의미 하니 땅을 口 로 그린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ㅡ 자나, 또는 아주많이 펴진 ㄴ 자로 표시 하기도 한다.
아래 그림에서 주의할것은 땅을 뜻하는 口 위에 사람을 'ㅣ' 으로 표시한것은 천부인 천부경 사상이 아닌 족속은 만들수 없는 글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아래 그림에서 모 자 같이 써진것은 口인 땅 아래 사람이 서 있다는 말이니 이는 중국인이 만든 글자이고 이 중국인들은 천부인 天地人원방각 ㅇ ㅁ △이 무엇인지 모르니 그래서 위 天 자 풀이에서 보듯이 중국인들은 사람의 머리까지 口으로 그린것에 유의 하면서 금문이란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 工 자. 금문 > 갑골문 그림 (역시 ' 甲骨文字형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을 인용)
이상으로 볼때 금문과 갑골문은 큰 차이가 나는것이 아니고 또 어떤 통일된 금문이 갑골문으로 변해간것도 아니며, 금문이란 그져 우리 선조들이 부족한 말이나 글자를 보충하기 위하여 그림으로 그렸던것인데 그림이 통일될리가 없었으니 뜻이 같은 그림이 위 그림에서 보듯 수십가지나 되고 특히 우리말 '업'이 한자로는 福 인데 그 그림글자는 무려 수 백개가 된다.
어떤 분들은 어떤 유물이나 과학적 근거도 전혀없는 부도지 등만을 신봉하여 우리 민족이 수만년전 부터 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믿는데 문화생활을 하려면 우선 연장을 만들 쇠붙이가 있어야 하는데 신석기에서 청동기가 나온것은 불과 5-6 천년전이라는것은 이미 과학적 검증이나 당시 글자로 증명되었고 또 문화생활을 하려면 말과 글자가 풍부했어야 하는데 위 그림이 엉터리 같은 글자로 변하는것도 역시 5-6 천년 전이니 허무 맹낭한 전설만 믿을게 아니라 보다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즉 이 그림 > 금문> 갑골문, 또 가림토등은 생긴지가 길게 잡아야 5-6천년전 이라는것은 어떤 근거를 봐도 알수 있다.
이 초기 금문이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는것은 위 工 자 그림 口 에서도 나타나는등 그 근거가 너무 많고 또 아래 설명에서도 나타난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 그린 금문, 은허갑골문을 지나족이 가져다가 진시황때 대전(大篆), 소전(小篆)을 거쳐 자기네 말로 발전 시켰고 우리는 우리 가림토는 발전시키지 못한채 그것을 삼국초에나 역수입해서 쓰는것이며 그 한자만 쓰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관장했던 선비들이다.
이상으로 위 그림에 나타나는 天,大, 太, 夫, 人 ㅣ 은 모두 사람을 기본으로 하는 같은 글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수레를 밀고있는 天자 같은 사람은 큰 사람에 비해 아주 작은 사람이니 하인이나 백성을 뜻한다.
그리고 이 작은 사람이 수레를 밀고 있다는것은 언덕길을 올라가는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으나 한편 그 천제를 자내던곳이 약간 경사진곳 이라는것을 나타내는것 이라 할 수도 있도 또 고각, 즉 바위에 새겨진 옛 그림은 그 특징만 나타내니 어딘가 올라간다는것은 하늘에 제를 올리고 있는것 이라고 생각해 봐도된다.
다음 그 큰 사람 앞, 뒤 로는 나무가 있는데 뒤의 나무는 수직으로 서 있는 정상적 나무로 위 수레가 수평이 아니라는 근거이며 앞의 나무는 벼랑 즉 암벽에 붙은 나무이니 약간 경사가 져 있다.이 그림도 그 천제를 지내던 위치를 표현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가지가 꼭 두개씩 으로 자루가 달린 出 자 모양으로 그렸다. 이는 보통 나무를 그리다 보니 그렇게 됬다고 할지도 모르나 앞 뒤 의 모든 나무가지, 또는 아래 환웅을 뜻하는 수메르 우르문자 에서 나무가지가 하나 나, 셋 이 아니고 꼭 두개 인것으로 보아 이는 환숫(환웅)을 상징하는것이다. 즉 수레에 탄 큰 사람은 환웅이란 말을 상징적으로 말 하는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환웅을 뜻하는 나무를 신지녹도전자 하나의 하 에서는 아래 그림과 같이 자루가 달린 山 자 두개로 표시했다.
* 아래는신지녹도전자 하나의 하
위 하 자는 나무가지가 하나씩하여 결국 두개 이지만 얼마후 위 낭하리 그림이나 또 고대 금문, 그리고 우리와 동족인 쐐기문자의 어머니 수메르 우르 문자에서는 위 가지가 한 나무에 두개인 자루가 달린 出자 모양으로 단축되는데 그 뜻은 같다.
* 수메르 우르문자의 나무들 (EBS 방영에서 촬영한것)
역시 가지가 두개씩인데 이도 환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러면 이 자루달린 出 자가 왜 환웅을 뜻 하는가?
위 낭하리 그림이 환웅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이며 초기 금문이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환웅은 우리말로 환숫, 즉 환한부족의 숫컷이다. 숫컷이란 지금 우리 상식으로는 동물에게나 붙이는 매우 비천한것이지만 이 숫에서 슷응> 스승, 슷님 > 스님이 나왔으니 당시는 매우 존귀한 존칭이다.이 숫은 하늘로 부터 정기를 받아 씨를 불알(불= 붉 = 밝. 알)에 저장했다가 땅인 여음에게 뿌려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데 그 상징적 표현이 바로 나무로, 나무는 태양의 빛을 받아 땅에 전한다.
환숫은 사람을 대표하므로 天地人 천부인 원방각 (圓方角-ㅇ ㅁ △ ) 중에 사람 천부인 △ 으로 무속으로는 삼지창이 된다.
이 △ 으로 만들어진 ㅅ 은 일단 서는뜻이 있으니 서는 동물인 사람 이되지만 다시 ㅅ 이 붙어 사람이 섯다 하면 ㅅ 하나가 더 들어가 섯 이 되어 또 서는것? 이 붙은 사람중에 사내가 되고 이 섯이 접미사 이가 붙어 결국 셋 이된다. 그래서 셋을 최치원 81자 에서 말 하듯 人一三 이다. 즉 人一은 사람의 첫째, 핵심이란 말이고 三은 셋 이니 사내를 세운다는 말이다,따라서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에서 셋은 다음과 같이 삼지창이 위 아래로 두개가 붙는데 이는 아래 甲金蒙隸大字典 -四川辭書出版社 刊 의 맨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 와 같다.
* 木자 금문의 여러 형태. 甲金蒙隸大字典 -四川辭書出版社 刊
木자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유의해보시라.
그리고 이 아래 거꾸로된 삼지창은 우리 민족만이 썼던 솟의 다리가 되고 삼족오의 다리가 세개가 되는 근거가 된다.
그러니까 환숫의 상징은 삼지창 두개가 되는데 나무 등을 그릴때는 신지녹도전자 하나의 하 에 있드시 자루가 달린 山山 이었으나 그 글자가 금방 간편화 되어 금문이나 수메르 우르문자에서는 자루가 달린 出 자로 변한것이다.
우리는 이 환숫을 상징하는 나무를 곰네(웅녀)가 아이배기를 빌었던 신단수(神壇樹)라 하였고 솟터(蘇塗)에 모셔놓고 제를 올렸으며 이것이 전래되어 지금 바이칼호 주변 부라이트족,울치족, 나아이족, 그리고 몽골족 등의 오보가 되고 이 오보 란 옵 인데 우리말에 검둥이 감둥이가 같은말이듯 모음이 혼동됬으니 옵은 압 과 같은말이며 압 이란 아비 이니 결국 그 말의 뿌리는 우리 말이며 이 환웅을 상징하는 숫은 우리에게는 서낭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오보나 서낭나무 둥치에 둘른 오색천은 환숫의 신성한 음모를 뜻하고 나무가지 위 씨앗 자루는 고환을 뜻한다.(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과 수메르우르문자, 꽤기문자 해독 참조)
그러니까 위 낭하리 出자 나무 그림은 무엇으로 보나 분명 환웅을 상징하는것이며 또 이 그림으로 위 신지녹도전자가 금문, 수메르 우르문자로 변하는 과정을 엿볼수가 있다. 즉 인류 최초의 문자는 신지녹도전자이고 거기서 금문이나 가림토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그 큰 사람 앞의 나무는 그 방향이 약간 옆으로 기우려져 있다. 이는 암벽에 붙어있는 나무라 했는데 역시 자루가 달린 出자이다.
* 다음 아래그림은 암벽이나 그 암벽에 들어가는 門 까지 그린것 같은데 이 그림도 아주 중요하니 잘 관찰해 보자.이 그림은 그냥 암벽뿐 아니라 암벽과 바닷물 그림이라 잔영이 보인다. 그런데 그 잔영에는 초사흘 달과 같은 반달과 해의 그림, 아니면 큰 별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 눈으로 가장 크게 보이는 별은 금성이다.
* 초사흘달은 한편 초승달이라 하는데 달 중에 이 초사흘달이 새색씨 눈섭처럼 가장 예뿌다 한다.아래사진은 지구인만이 볼 수 있다는 아름다운 초사흘 달이다. 흔히들 보름달이 더 아름답다지만 보름달은 다음날밤 부터는 죽는 달이고 이 초사흘달은 앞으로 살아나는 달이다.
야후에 올라있는 글, 그림을 올린다.
작자 : 허세욱(許世旭). 노고단에서 다시 차가 있는 성삼재로 돌아왔을 때의 시각이 오후 6시였다. 서남쪽 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 초승달 이미지 ... HORNED MOON. IMAGE. 공주성의 초승달. 태극기와 초승달. 서울 ... 금성과 초승달의 랑데뷰
그러니까 위 바다에 비친 그림은 초사흘달과 금성일 수가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신비하게도 이곳에서만은 어떤때에는 달과 해의 잔영이 동시에 다 바닷물에 비치는 곳이라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초사흘 달과 해가 그렇게 만나는 시기일수도 있다.
한편 초사흘 달은 매월 나타날수 있으나 그 초사흘 달이 금성이나 해와 그렇게 가깝게 만나서 물그림자가 비치는 날은 각자 궤도, 공전주기가 다르니 흔치 않을것이다. 어쩌면 일년에 한번만 그런 현상이 일어 날지도 모른다.그리고 그 일년에 한번 만나는 날이 달력이 아예 없었거나 있다해도 시원치 않았을 당시 이런 그림으로 표시했는지도 모른다.
환웅당시에 달력이 없었다고 하면 또 환단고기를 인용하여 반박할지 모르니 이를 미리 말 하다.
환단고기 마한세가 상 에는 " 옛날에 환웅께서는...달력을 365일 5시간 48분 46초로 일년을 만드시고.... 라는 기록이 있다. (三韓管境本記(馬韓世家上) 에 昔者桓雄....曆以三百六十五日五時四十八分四十六秒爲一年也)
그러나 이것은 후세인이 너무 조상을 받들다 보니 이런 가필을 썼다고 생각된다. 아니 그때 벌써 분과 초가 있었다니... 이는 이조중기 이맥의 가필도 아니다. 시계가 우리에게 들어온 후의 계연수나 이유립의 가필로 보인다. 이런 가필때문에 아직도 환단고기가 위서로 취급되는것이다.
우리는 하루의 시간을 子丑寅卯...등 12 시간으로 하였으니 지금 2 시간이 전에는 1 시간이었고 이것도 시계가 없던시절 어림 짐작이었으며 또 특수층에서나 쓰는 시간이었지 일반백성은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 이라 했고 그것도 정확한 시간이 아니니 아침나절 저녁나절...하는 나절 이란 말을 썼다.
그러니까 겨우 신석기 문명이 끝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환웅, 단군때 벌써 일년이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있었다는것은 그때 그분들이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우선 위 그림이나 금문에서 보듯이 그런글자를 가지고는 달력을 만들수는 없다는것이며 또 그때 사람들 한테는 그런 분 초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환웅 단군때는 달력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시원치 않았을 것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시와 또 천체 돌아가는것을 보고 계절과 날짜를 짐작했다고 보야한다
그러므로 위 초사흘달과 금성, 또는 해가 만난다는 환상적 그림은 아마 원시 달력 을 그렇게 표시했을 것이고 이것은 상고시대 일식현상의 기록을 슈퍼컴퓨터로 시물레이션하여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것을 입증시킨 서울대 박창범 교수같은 천문학자가 현지를 기준으로 증명해 보거나 아니면 일년내내 현지에서 관측해 봐야 하겠지만 우선 필자의 짐작으로는 음력 10 월 상달 초 사흣날이 될것이다.
그럼 이 날이 무슨날인가?
바로 앗선(첫조선)을 세운날이다, 즉 하늘이 열린 개천절이다.
다음 바위 우측 T 자 같은것과 또 그 옆 아주 많이 펴진 ㄴ 자 같이 휜 'ㅡ' , 그리고 큰 점 이 있는데 여기서 T 자의 뚜껑인 위 'ㅡ' 은 하늘이며 T 자를 세운 'ㅣ' 은 工 자에서 보듯 사람이 서 있는것이며 다음 큰 점은 시각을 나타내기 위한 지는 해 이거나, 새로솟은 금성일 것이다.
해는 어떤 금문에서는 ㅇ 으로도 그렸으나 그냥 큰 점으로 표시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헷갈리게 하는것은 바로 그 T 자 옆 구름같은 아주 많이 펴진 ㄴ과 같은 'ㅡ' 그림이다.
이는 T 자 뚜껑이 하늘이니 그 옆에 있는것은 하늘의 구름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의 하나 둘 셋 ...열 중 '하나' 의 나 에 나타나는 누리를 뜻하는 아주 많이 펴진 ㄴ 과 같다.
* 아래 그림은 신지녹도전자천부경 하나 에서 나 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아주 많이 펴진 ㄴ 이라는, 누리(땅) 위에 햇살이 비치는 그림이다. 우리 선조는 빗살무니 토기에서 보듯이 햇살은 꼭 빗금이다.
그리고 땅은 어떤 금문에서는 천부인 원방각ㅇ ㅁ △ 중 땅인 ㅁ 으로도 나타나고 그냥 ' ㅡ' 으로 나타나지만 신지독도전자나,초기 가림토에서는 위 그림과 같이 아주 많이 펴진 ㄴ 와 같이 나타나고 또 어떤 금문에서의 王 자는 위 'ㅡ' 은 하늘, 다음 十 자는 大자나 아예 생식기 까자 붙었던 太 자 이었고 그 아래 땅 이라는 'ㅡ'도 평지가 아니라 가운데가 나왔거나 위 그림같이 아주 많이 펴진 ㄴ 형태의 땅 으로 나타난다.
* 아래 그림을 사마천의 사오본기 에서는 전욱(顓頊) 이라 했는데 顓자는 오로지 란 뜻이고 頊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는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 글자라 하였다.즉 중국 학자들은 위 둥근것은 모가 져있지 않으므로, 즉 사람은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모가져 있지 않으므로 멍청한것이라 하여 멍청이의 아들 왕이...라고 해독하는데 그 근거는 두번째 글자를 뛰는아이 즉 子 로 보고, 다음은 王자 같이생겼으니 王 이라 하는데 그 글자가 왜 임금인 王 이 되는지는 모른다.
* 가(心 변에 各)齋集古綠 上下 대련국풍출판사 에서 인용.
지금 미 부리티지 박물관 소장 코뿔소 술 두르미 안쪽에 새겨진 금문중 첫번째 글자.
또 다른 중국학자는 위 둥근것을 연못으로 보아 연못의 아들 왕이...라고 해독하기도 하는데 근대 금문해독의 권위자 라는 낙빈기 조차 이것을 구슬로 보아 구슬의 아들 왕이...라고 해독하고 있으니 말이되질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말, 우리 글자에서는 못쓸놈, 몹쓸것등 모가져 걸림이 있는것은 가림토, 훈민정음, 한글에서도 ㅁ 을 쓴다. 즉 땅인 물질은 항상 걸림이 있으니 모가진 땅 천부인 ㅁ 을 써서 말과 글자가 만들어진것이고, 우리의 상식은 하늘 천부인 ㅇ 처럼 걸림이 없고 원만해야 한다는것이기 때문에 맨위 둥근것을 멍청이로 본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다음 子가 같은 글자는 아이라고 하기에는 머리가 너무크고 또 하늘을 나는듯한 그림이니 아직 子가 되기전 하늘의 정기라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며 마지막 王 자는 중국인들의 해독과 같으나 그것이 왜 王자로 나타나는지 까지 설명한다.
王 자는 하늘, 즉'ㅡ' 아래 가장큰 것이 사람이니 'ㅡ' 아래大 를 쓴것이고 마지막 그 사람은 평지가 아닌 가운데가 솟았거나 또 많이 펴진 ㄴ 과 같은 땅 위에 서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이고 사람의 대표가 바로 임금인데 우리말로 임금은 신라 임금 이사금 에서 말하듯 잇큼 > 임금 이며 이를 한자로 쓸수 없으니 이사금(尼師今)이라 쓴것이다.
이를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이빨금이라 했지만 잇 이란 잇본(日本)에서 보듯이 해 이며 금은 큼 이다. 따라서 임금이란 해와 같이 큰 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위 코뿔소 두르미 속 명문의 해독은 하늘, 해의 정기를 받은 임금 이라고 해독한다.
이렇게 금문은 우리 상식으로 만들었기때문에 중국인들의 말과 상식으로는 해독 할 수 없다는것이며 그래서 지금까지 고조선 유적지에서 만여점이나 출토된 금문을 중국인들은 아직까지 천점도 해독하지 못했고 그 해독했다는것도 위에서 보듯 엉터리지만 우리가 우리 말과 우리 상식으로 풀면 쉽게 풀린다는것이며 따라서 금문이란 우리가 글자와 말이 부족했을 당시 이를 보충하려고 그렸던 그림을 중국인들이 가져다가 제멋대로 해독하고 덧붙여 글자를 만들고 자기네 말로발전시켰다는 것이다.
* 이상 신지녹도전자 하나의 나 나, 위 王자의 땅 부분 그림에서 보듯이 T 자 옆 구름같은 그림은 누리(땅) 를 표시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많이 펴진 ㄴ 의 뜻은 누워있다는 뜻으로 이 그림은 나중에 가림토에서는 진짜 누리 라는 ㄴ 으로 나타나며 이는 훈민정음이나 한글에서도 같은데 그래서 ㄴ 으로 시작되는 순수한 우리말은 모두 누워있는것 뿐이다.(필자 책 참조)그러니까 이 그림은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이며 그 옆 점은 아마 지는 해나 아니면 초저녁의 금성일수 있으니 시간을 나타내는것 이라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천지인을 한꺼번에 나타내는 중요한 글자 뭉치가 왜 작게 표현된 것인가?
이는 여기에 그려진 그림 전체는 天地人을 뜻하며 시간까지 말하는 부호이며 싸인이며 마크이기 때문이다.
* 이상으로 보았을때 이 그림, 글자는 절대 할일없는 자가 그린 무의미한 그림이 아니다. 먼저 말 했드시 신석기에서 겨우 청동기가 되어 연장도 돌이나 청동기 정 등 시원치 않았을 원시, 누가 누구 보라고 이렇게 정성들여 석각을 했단 말인가?이는 분명 환웅의 흔적이나 또는 환웅의 상징적 흔적을 후세인들이 보라고 새겨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곳은 당시로 보아서 땅끝이 되기 때문에 천하를 순시하시던 환웅께서 직접 여기에서 하늘과 바다를 포함한 땅에 천제를 지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그 분은 환웅이 아니라 환웅을 바뜨는 단군일수도 있으며 단군의 신하 삼시랑(三侍郞), 또는 전국에 단군의 도를 이어받아 지방 백성들의 일을 관장하던 당골레 였을 수도 있지만 누가 지냈건 주체적 인물은 환웅이다.
하여간 이 그림은 상고시대 누군가가 개천절날 천제를 지내고 또 후세인에게 그날을 잊지말고 지내라고 여기에 그 지형과 또 달력으로 날짜까지 표시했는지도 모른다.그리고 그 기록이 '환단고기' 에 인용된 '대변설' 의 주에 " 환웅이 여기서 삼신제를 지냈다" 는 말로 기록됬을지을 것이다.따라서 이 그림은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입증도 된다.
한편 이 그림은 서불이 불노초를 구하러 다니다가 흔적을 남겼다는 말은 배제해야 한다.이 그림에는 십장생에 나오는 불노초(영지버섯) 나 불노초의 상징적 그림이 없는것으로 보아 서불이 불노초를 구하러 다닌 기록이 아니라는것이다.
고각의 그림해독에서 주의할것은 위에서 보았드시 그 요점만 그리는 법인데 이 그림에는 하늘과 바다 암벽등 땅과 그 땅의 나무, 그리고 사람등 天地人 삼극만 있을뿐 불노초는 없다. 즉 서불의 상징은 바로 불노초 인데 그 불노초가 없다.
서불이 불노초를 구하러 다닌 흔적은 해금강에 있으니 가까운 여기다가 또 그려 놓을 이유도 없다.
결론은 이 그림 글자에서 신지녹도전자, 금문, 수메르 우르문자, 가림토가 혼용된 天地人을 뜻하니 이 낭하리 석각은 세계 역사상 그림이 글자로 변하는 과정을 한꺼번에 말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이는 우리의 국보인 동시 인류 문화 유산의 하나가 되니 유네스코에 등록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또 꿈같은 기대인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진도등지에서만 나타나는 모세의 기적처럼 초사흘 달이 금성과 만나 물그림자에 비치는 날, 이런 환상적인 하늘의 신비가 바로 개천절을 알리는 하늘의 편지이고 달력이라면 우리 조상들의 천문관측 수준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이 그림은 그간 너무나 논난이 많았지만 아직도 해독이 되지않았던 그림이니 독자님들은 이 글을 마음대로 다른 카페에 퍼 날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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