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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원문보기 글쓴이: 박하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지난 2월 9일 개최한 제1439회 세미나에서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사우나를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다.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긴급구호팀장은 아마도 남자일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긴급구호팀장이란 명함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내가 첫 번째고 아무도 없다. 긴급구호 현장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긴급구호 현장의 커다란 쇠문이 힘으로 열릴까. 안 열린다. 열쇠가 있어야 열린다. 이 열쇠가 바로‘감동’이고‘꾀’이고‘사랑’이다.
물자배분 현장에 가면 사실 무섭다. 왜냐하면 물자와 인력이 항상 부족하다 보니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A라는 마을을 선택해서 물자를 배분하면, B라는 마을에서 와 폭동을 일으킨다. 총도 쏘고 난리가 난다. 그 때, 남자 직원들이 공포탄을 쏜다든지, 힘으로 밀어붙이면 절대로 소요가 누그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동글납작하니 보기에도 아담한 사이즈의 동양 여자가 트럭 위로 올라가 확성기를 가지고 가서 “오늘 배분 표를 가진 여러분들한테 드릴 식량은 여기에 다 와있습니다. 줄을 서시면 배분 시작합니다” 고 하면 1분 안에 줄을 선다.
그들은 음식을 갖고 가면 식구들이 한 달 동안 살고, 못 가져가면 굶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힘으로 대하면 목숨을 걸고 대 든다. 그 커다란 문은 감동과 사랑의 열쇠로 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기준은 돈이 적고 많음이 아니다. 나는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가슴속에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 그 생각의 범위와 규모, 배려의 폭이 확실히 틀리기 때문이다.
외국의 기아를 돕자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도 도울 사람 많은데…” 라는 말이 나온다. 범위가 딱 대한민국까지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세계지도 붙여놓고 살아
자기가 돌봐야 할 사람을 대한민국까지만 한정해 놓는 것은 바로 머릿속의 세계지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세계지도를 보면 세계가 자기 손바닥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7년 동안 지구를 세 바퀴 반을 돌면서 내린 결론이 무언 줄 아는가. 바로‘세상은 좁다’다.
나는 셋째 딸이다. 아이들을 세계적으로 키우고 싶었던 부모님은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방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으셨다. 그 때는 비자는커녕 여권도 제대로 안 나오고, 일년 치 월급을 받아야 달러로 비행기 표 한 장 살 수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매일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살았다. 엄마는 한 술 더 뜨셨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시면 세계지도가 그려 있는 것은 무조건 사오셨다. 식판, 필통, 지구본 저금통, 가방도 지구본, 샤워커튼, 티셔츠….
그래서 우리 집은 밥을 먹을 때에도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모두 입고 있다. 애들이 밥을 먹다가 엄마가 “셋째야 너 페루에 김칫국물 묻었어” 하면 티셔츠 어딘가에 페루가 있었다. “인도에 펑크 났잖아”그러면 진짜 인도에 펑크가 나 있었다.
매일 이렇게 세계지도를 보고 사니까 세계가 대단히 넓거나 못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다. 막 열살이 되었을 때 세계지도를 보니까 땅이 다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아버지 땅이 다 붙어 있는데, 이거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지 않아요?”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가 너무나 기특해 하시는 얼굴로 “그래 땅이 다 붙어 있으니까 당연히 한 바퀴 돌 수 있지. 너 한 번 해 볼래?” 이러셨다.
“네,…. 한 번 해볼 것이에요.” 그랬었다.
열살 때 아무 것도 모르고, 그러고 나서는 친구들한테 나 나중에 커서 세계 한 바퀴를 돌 거야 그러니까 그 친구가 깜짝 놀라는 것이다. “세계를 한 바퀴 돌겠다고?” 나는 그 친구가 놀라는 것을 보고 더 놀랐다. 아니 얘가 왜 그걸 가지고 놀라? 아이들에게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하면서 세계 지도도 없이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면, 세계적으로 산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열살 때 친구에게 “커서 세계 한 바퀴 돌 거야”
세계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어를 잘한다든지, 세계 지리에 대해서잘 안다든지 등이다. 물론 하드웨어가 있다. 그것은 아무리 잘 해도 세계화는 겉만 되는 것이다. 세계화의 속이라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그 소프트웨어의 첫 번째는 세계지도를 가슴속에,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여기를 베이스캠프로 세계를 무대로 사는 것이 무언인지,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나라들은 도대체 어디인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세계화다.
“나는 지구집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집에 아시아방, 아프리카 방, 유럽 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그 방이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아서, 두꺼운 벽으로 되어 있어서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그런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연결해서 열기만 하면 마치 옆방에서 유리벽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있다.”
이런 지구 집 시대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세계지도가 있다면 그런 세계지도는 미국·일본·중국 같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만이 있는 일그러진 세계지도가 아닌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구호활동하며 밥 안 먹으면 죽는구나 깨달아
그 지도안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정말 촘촘하게 들어가서 지구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 돕고 살 수 밖에 없는,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위로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지구를 가슴 한 곳에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나도 여행을 다닐 때에는 여행을 다니는 나라만을 세계지도에 가지고 다녔는데, 월드비전을 다니면서부터 나의 인생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돌아보고 살피는 일들을 하다 보니까 점점 가슴속에 촘촘한 세계지도를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가를 느낀다.
세상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를 하면서 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않다고 느낀다. 자료 방송에 나온 말라위라는 나라는 지금도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는 이 곳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처음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는 것이 이렇게 모호했다. 다이어트나, 신체 기관에 문제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밥을 안 먹으면 죽는구나’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줌마 나는 왜 여기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굶어 죽고 있는 것이죠?” 라고…. 그러면 나는 무엇이라 대답을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 그 아이는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났다는 큰 죄를 진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서도 부자는 안 굶어 죽는다.
이 말라위 아이들이 수십 명씩 굶어 죽고 있는 이 마을에도 30분만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창고 가득 밀가루가 쌓여 있다. 정말 믿을 수 없다. 밀가루 주인에게 물어본다. “아저씨 저기 조금만 시골에 가면 아이들이 저 밀가루가 없어서 굶어 죽는 것을 아세요?” 그러면 밀가루 주인은 굉장히 미안한 얼굴을 조금 보이며 “기근이 점점 심해지면 밀가루 값이 올라가죠” 라고 얘기를 한다. 이 사람을 법적으로 처리할 순 없다. 우리도 그렇게 배웠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 정글의 법칙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쌓아놓은 밀가루가 그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의 법칙으로 바라보면 이것은 안 되는 행동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 쪽으로 사람들의 힘을 계속해서 모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일단 정부가 있다. 그리고 정부가 알면서 안 도와 주는 것이 아니고 사각지대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일부러 그런 사람들을 도우려고 만든 단체가 200개가 넘는다.
다르게 보면 우리나라가 힘들었을 때 월드비전만 보면 우리는 1950년부터 1990년까지 도움을 받았다. 나는 처음 월드비전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창피를 당한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1988년에 올림픽을 뻑적지근하게 하고 OECD 가입에 전 국민이 들떠 있을 때에도 내막은 다른 나라에서 돈을 받아다가 우리나라 결식 아이들을 먹이고, 다른 나라에서 돈을 받아다가 할머니들 옷 사주기를 1990년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1년부터 해외원조를 시작했다. 월드비전만 하더라도, 100여 개 국에 있는 세계 월드비전 중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그 원조국에서 다시 돈을 내는 나라가 된 나라도 유일하게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정말 멋진 나라다.
도움을 받던 나라가 도움을 준 건 한국이 유일
마지막으로 나는 손, 발이 많이 조그맣다. 내 발로 지구를 3바퀴 반을 돌았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 내 발은 225mm도 채 안 된다. 어른 신발이 없다. 그래서 항상 운동화는 신데렐라가 그려져 있는 애들 신발을 사야 한다. 아장아장 걷다보니 지구도 세 바퀴 반을 돌았고, 국토도 종단했다. 손도 마찬가지로 조그맣다. 그런데 나의 이 손이 사실은 작은 손이 아니다. 내가 물자배분을 하러 가면, 한 번에 몇천 명은 당연한 것이고 몇만 명의 식량을 배분한 손이다.
나는 이 손이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상처를 어루만줘 주는 손으로 썼으면 좋겠다. 나는 적어도 이 손이 약자의 뒤통수를 치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옳지 못한 돈을 세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에 앞으로 나는 건강이 허락되는 한 긴급구호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긴급구호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피가 끊는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현장에 갔다 와 이렇게 몇 달씩 병가를 내어도 다시 현장이 생기면 “저요. 저요” 하고 다시 지원을 할 것이다.
여러분 각각은 정상에 다 오르신 분들이지만 인생의 정상은 하나가 아니고 산맥이다. 인생의 산맥에서 나는 이런 저런 정상에 오른다면 더 좋을 것이다. 나도 이제 국제 홍보라는 산을 넘어서 지금은 긴급구호라는 산을 가고 있다. 산이 조금 높다.
현재 3분의 1 정도 온 것 같은데, 끝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