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오늘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흔하디흔한 카네이션 꽃 한 송이, 지천에 널린 민들레 같은 안부전화도
못 드렸습니다.
늦은 밤 집에 오는 길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며 뜻 모를 눈물에 목이 매였습니다.
철모른 아이들은 놀이터에 앉아 해저문지 언제인데 아직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할 일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당신 생각이 더했습니다.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남의 일도 내 일 같고
남의 자식들이 늦은 시간에 밖에서 서성대고 있을 때는 같은 부모 맘인지라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한답니다.
따지고 보면 철들었을 때나 들지 않았을 때나 제가 달라진 것도 별로 없고
오늘 같은 날마저도 자식도리를 못하고 사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자격도 없는 거죠.
아버지. 엄마
오늘은 왜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딱히 이렇다 할 일들도 없었는데
유난히 사람관계에서 오는 제라늄 향기 같은 느낌이 자꾸만 뒷덜미를 땡기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한두 해 사회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늘 처음같이 서툴고 힘에 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부모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다’ 라고
정말 오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살아 계셔서 투정도 부리고 힘들었다고...
그래서 아이처럼 당신의 따뜻한 가슴에 기대어 괜찮다는 한마디에
근심을 덜 수 있으니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버지, 엄마
저 오늘 그 생각했어요
두 분 안 계셨으면 이 한밤에 누구에게 이맘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훗날엔 복사꽃 하롱하롱 지는 무덤가 찾으면 할 말도 못하고
서럽게 서럽게 울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올 들어 엄마는 집에 계시는 날보다 병원출입이 잦아 얼굴도 상하시고
갸녀린 손도 가죽만 남아 걱정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굳은 일, 폭풍 같은 어려움 헤쳐 나가시다 보니
골병이 들고 성한 곳보다는 아픈 곳이 더 많으시죠
심신이 괴롭고 힘든 고통인데도 자식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시려
애쓴다는 것 . 저 알아요.
몇 년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무릎이 아프셔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도
별차도가 없으시고 요즘은 통증이 더 심해져 밤마다 잠을 설친다고 하셨는데
정밀검사 예약한다 하면서도 바쁜 핑계로 벌써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럴 때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아무 소용이 없죠.
당신 필요할 때 곁에 없으니 눈치 없이 짖어대는 똥개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저의 아픔에 먼저 달려오시고
저의 슬픔에 함께 아파하며
어려울 때마다 세상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셨는데 저는 그 은혜 1%도
갚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친절하면서도 당신에게는 불친절하고
남들에게 부드러우면서도 당신께는 퉁명스럽고
남들의 잡다한 일은 신경 쓰면서도 만인이 아는
어버이날마저도 그냥 보냈습니다.
내 자식에게는 매일 밥 먹듯이 말하는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도
당신 귓가에 들려주지 못했음을 용서해주십시오.
물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해 갈등하고 온유하지 못해 자신을 구속하고
긁어대는 이 못난 딸에게 따끔한 회초리로 사람됨을 가르쳐주십시오.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있어, 곁에 있음에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항상 가까이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앞으로는 후회를 줄이는
연습을 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딸이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도록 오래오래 사십시오
아직 당신께 못 다한 얘기와 해드리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두서없는 편지를 쓰며 받기만 한 하늘같은 사랑에 아린 가슴속으로 눈물이 젖어듭니다.
창밖은 이제 새벽이 오고 있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처럼 하늘은 내가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당신 안에서 나옵니다.
아버지, 엄마 사랑합니다.
특별한 믿음은 없지만 기도드립니다.
건강을 허락해 주시옵기를. 즐거움과 평온이 항상 함께 하기를...
2007/5/8/당신딸 수빈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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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저깊은곳에서... 나오는 해오름님 글을 읽으면,,늘 가슴이 아려 옵니다,,,,, 내이래서 해오름님에게 반한가 봐요....
이땅에 살고있는 자식들은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을겁니다.. 해오름님~~힘내시어요~~홧~~팅~~
항상 5월에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평소에 뭐 하나 해드리지 못하다가 때가되면 안스럽고 죄스럽고 그렇습니다. 저 또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잘 해드리지도 못하면서 어버이날에는 괜히 1년동안의 불효를 하루에 다 용서받을려고 하지요. 90이 다되신 어머님,,,그래도 건강하게 편하게 오래 사셔야죠~~~
감동적입니다...제 기억속에 소장님은 문득문득 부모님 생각을 끔찍히 하시는 분이라...이런 글도 쓰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여
가슴 찡하네요... 요즘들어 부쩍 아프신 어머님께 어떻게 해드려야할지...저 자신 반성의 시간 가져봅니다...
친정엄마가 한달에 한번 일주일 머물다 가곤 하는데 막상 오시면 세상 한탄하시는 소리가 왜 그리 싫은지...그러나 안보면 걱정되고...안스럽고 합니다~~저도 반성이 되네요.....살아계신것만으로도 행복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도 울컥하네요 가슴 밑바닥에서 저려오는 그 느낌 죄책감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