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86-의견을 내는 것과 의견을 듣는 것
현재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1994년에 지은 아파트라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다. 처음 이사 와서 큰 아들이 셀프로 목욕탕 타일이랑 장판, 그리고 베란다 결로 부분을 수리를 해주었다. 그래도 매년 베란다 결로, 곰팡이와의 전쟁은 내가 치른다. 겨울이 오기 전에 창문 뽁뽁이를 붙이고 비닐로 막고 어떤 곳은 결로 벽지를 바른다.
오래된 창틀에 시트지를 붙이고 초록색 부엌 타일에도 시트지를 붙여서 조금씩 촌스러움과 오래된 때를 제거해 가고 있다. 커튼을 달아 낡은 창틀과 페인트가 묻은 창문을 가리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손 볼 것이 많다.
아파트 외관도 낡았다. 처음 이사 오려고 했을 때 아파트 전체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훼손된 곳이 여러 곳이었다. 그때 관리사무실에서 그해 가을에 전체 페인트칠을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외관 페인트칠은 2년이 넘게 걸렸다.
주차장이 협소해서 주민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 신경이 쓰인 곳이 있었다. 그것은 라인 입구의 우편함이다. 문이 떨어져 나가 덜렁거리는 것과 호수가 떨어져 나간 우편함이 여러 곳이다. 그래서 우체부는 우편물을 제 곳에 정확히 넣지 않고 가기도 한다.
우편물을 꺼낼 때마다 꺼내기도 불편하고 우편함을 교체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 아파트는 부녀회 활동이 없기도 하고, 다들 내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누군가 우편함 교체를 건의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여기 저기 아파트 수리와 정비는 하지만 우편함은 4년 째 덜렁거렸다.
지난 달 대표자회의가 소집 된다고 공지가 붙어 안 되더라도 말이라도 꺼내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10분 만에 해치우고 회의에 갔다. 회의 30분전에 참석의사를 관리실에 고지해야 되는 데 안했다고 참석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몇 호에 사는 데 회의는 참석할 의사가 없다. 우편함이 너무 덜렁거리고 집 호수도 안 보이니 우편함 교체를 건의하려고 왔다고 하고 곧바로 회의실을 나왔다. 만약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하더라도 내 생각을 이야기함으로서 속 후련함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우편함교체를 결정하고 3가지 모델을 제시해서 주민의견에 붙이기로 했다는 공지문이 붙었다. 그 공지문을 읽는 순간 참 기분이 묘했다. 좀 더 일찍 의견 낼 것을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의견을 내는 순간 다들 동의한 것이다.
지금 엘리베이터에는 예쁜 3가지 우편함 모델이 붙어있고 주민들이 선택 사인하도록 공지가 붙어 있다. 이 의견을 낸 당사자로 기분이 매우 좋다. 내 생각과 의견이 공감을 얻고 인정받는 일은 자존감을 높여준다.
미국 뉴저지에 살 때 시부모님이 오셔서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계셨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관광을 갔다. 그때 삼성비디오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은 비디오가 있다. 그런데 잊히지 않은 장면이 있는데, 큰아들 민섭이 계속 “I'm hungry”(배고파요) 하는데 내가 듣지 못하고 묵묵부답하는 것이다. 시부모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인지 들은 것 같은데 반응을 안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 상황이다. “배고프구나! 참고 조금 있다 먹자.”라고 반응해주면 좋을 텐데. 그걸 못 해주는 장면이었다.
나 스스로는 아이들 이야기에 잘 반응하고 귀 기울이는 엄마라고 자부하였는데, 그 때만 아니라 놓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반성하였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표정이나 요구를 무시하거나 읽어내지 못한다. 또한 부모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비디오를 통해 자세히 보게 되면 반성하게 된다. 자녀와 대화가 잘 안되고 힘들다면 동영상을 촬영해서 서로 어떻게 대화를 하고 표정을 짓는 지를 본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부모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쓸데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정성껏 귀 기울여 준다면 아이는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때에 아이의 자존감은 그냥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차분히 부모의 생각을 들려준다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수용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심지어 다소 언쟁이 생기더라도 생각과 의견을 주고 받는 일은 관계를 촉진시킨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어떤 때는 즉시 “예스”라고 답해 주시고 어떤 때는 “기다려라” 그리고 또 어떤 때는 “희라야 아니야” 라고 하신다. “아니야” 라고 즉답을 주실 때는 실망스럽지만 하나님이 묵묵부답하실 때가 사실 제일 괴롭다. 자녀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I love the LORD, for he heard my voice; he heard my cry for mercy)-시편116: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O LORD, hear my prayer, listen to my cry for mercy; in your faithfulness and righteousness come to my relief.)-시편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