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사랑] 전보경
씬1 선산 무덤 앞
햇빛도 찬란한 어느 봄날...
물 좋고 경치 좋은 선산을 배경으로 잘 만들어진 무덤 앞에
모인 조문객들..
정여사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다.(마지막 작업인 떼를 입히고 있다)
산소 주위를 가득 메운 조화 바구니들..세련되고 점잖아 보이는 조문객들
을 통해 일생을 잘 살아낸 정여사의 삶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영정을 든 장손을 위시해 아들과 딸 손녀 손자들..친척들이
고개 숙여 명복을 빌어준다..
소란스럽게 오열하지도 않고..진지하고 경건하게...슬픔을 참아내며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있다.
그들 중 유독..많은 눈물을 흘리는 수진(외동딸)과
김노인(후배).. 김노인 그만 울라며 손수건 하나를 수진에게 건네준다.
수진 그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수진N)- 엄마가 돌아가셨다..
당신이 살아오신 삶처럼..청명하고 따뜻한 날에..사랑하는 사람들의
많은 눈물을 받으며...70세 생을 마감하셨다.
일평생..누구에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품위있고 풍요롭게 산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난 늘 엄마 삶이 부러웠다.
씬2 돌아오는 길(국도)
씬3 장례 버스안(오후)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버스..사람들 출렁 거린다.
지쳐서 잠든 사람들..서로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람들..
앞자리부터 민규 내외, 은규 내외, 수진 내외 등등이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쓸쓸함을 달래고 있다.
윤씨(친척 노인)...뒷좌리에서 민규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윤 씨)-민규야!(손 어루만지며)니가 젤 많이 고생했다! 고생했어!
(민 규)-별 말씀을요. 작은 어머님께서 3일 동안 애써 주셔서
전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윤 씨)-너야 말루 별소리를 다한다..
민규..이내 우울해지고
(윤 씨)-(민규 손에 든 영정 보며)우리 형님 아마도 좋은 데 가셨을 거다.
(민 규)-(고개 숙이고)
(윤 씨)-여자 팔자 그만하면 구중궁궐 왕비가 부러웠겠냐!
우리 형님만치 한 평생 잘살아낸 사람, 내 보도 듣도 못했다!
남편 사랑 엄청 받았지!.자식들 효도 듬뿍 받았지..
돈 걱정 해봤나..시집살이를 해봤나..몸이 아프기를 해봤나.
죽는 것도 산뜻하게 끝내고..
(민 규)-그래도..아무도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걸요..
어머니 마지막을 너무 쓸쓸하게 해드렸어요!
(윤 씨)-그게 어디 니들 잘못이냐?..
이승에 인연이 그밖에 없었던 게지..
니들이 있었어도 달라질 게 없었을 거다. 그래도 울컥해지는 민규...
뒷자리에 앉아 그런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는 김노인..착잡하다.
씬4 도심지 상가건물 전경
1층과 2층은 상가로(미용실, 분식집,약국,옷가게)
3층은 살림집으로 만들어진 상가
씬5 정여사의 방과 거실(3층)
가는 것을 예감이라도 했듯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
베란다에 가득한 난을 위주로...갖가지 화초들이 물망울을 터뜨리고
살림살이는 윤이 나도록 반질거리지만 주인없는 집인 듯 허전하고
공허하다.
문 열고 들어와 제각기 편한 자세로 앉거나 서서 고인을 추억하는 자식들..
문갑 위에 자식 순서대로 잘 정리된 사진들을 보고 울컥하는 자식들
씬6 동 주방
차를 준비하는 정애(큰자부)와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깎아내는 미숙(둘째자부)..
미숙..거실의 동정을 살피며..정애 곁으로 다가온다.
(미 숙)-형님..이 상가 얼마나 나갈까요?
정애..언짢게 이마 찌푸리며 입 조심하라는 싸인 보낸다.
(미 숙)-예전엔 별 볼일 없었지만 요 앞으로 아파트 들어서고.. 여기가 노른자 위가 됐잖아요...
(정 애)-동선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말 좀 해
난 아직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데..
(미 숙)-난 뭐..믿기나요!..우리 어머니 내가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남들은 시집 흉 부풀러서 본다지만 전 정말 우리 어머니 칭찬만하구 살았다구요.
(정 애)-세상살이가 왜이리 허무하냐!..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미 숙)-그래도..유산은 유산이니까..정확한 걸 알아야.
(정 애)-(조용히)우리 친정오빠가 그러는데 여기 한 12억은 될 거라더라..
놀라는 미숙
(정 애)-(담담하게,찻물 우려내며)상가 보증금이랑 권리금 빼고 상속세 빼면
한 9억쯤..
어머니 통장에 아버님 돈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한 달 후면 적어도 동서 통장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미숙
씬7 다시 거실
정애가 식구 수대로 녹차를 가지고 나와 테이블에 놓는다.
그 테이블 주위로 자연스럽게 모이는 가족들
(민 규)-자 모두들 애썼다...어머니는 이제 우리들 곁에 없지만..아마도 언제까지나
우리들 맘 속에 행복하게 살아 계실 것이다..
가슴 아프지만 어떡하겠니?..다 이겨 내야지..
어머님 기억하면서 열심히들 살자..
모두 차 마시며 민규의 말에 수긍한다.
(정 애)-근데..여보! 어머니 짐 다 어떻게 해요?
(수 진)-(날카롭지만 교양있게)뭐가 그리 급해요..
정애..지나쳤나 싶어 눈치를 보고
(수 진)-오빠..천천히 정리하자...당분간 엄마 생각나서 나 여기 자주 올 것 같은데..
(은 규)-그러는 게 좋겠어요.
앞으로 이쪽으로 올 일 없다고 생각하면 나도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민 규)-그러자..
상가 빨리 정리하는 것도 남들 눈에 돈 욕심내는 자식들로밖에
안보일 거구..당장 어머니 유산 받아서 살만큼 우리들이 절박한 것두 아니구(차 마시고..문득 정애보고) 당신..행여나 어머니 짐 정리해서 버릴 생각하지마..
다 우리 집으로 실어갈 거야..하나도 버리지마..
정애..얼굴 표정 굳어진다.
정적 속에 초인종 울린다...
수진 일어나 나가서 문 열어주면 60대의 건장한 노신사가 들어온다.
모두들 긴장해서 쳐다보면
(새주인)-아! 마침 모두들 다 모여 있구만...
(수 진)-누구세요?
(새주인)-(안으로 당당히 들어서며) 나 이 상가 새주인입니다..
모두들 기겁을 하는 데서
씬8 집으로 돌아오는 길(밤)
씬9 수진의 차안
채서방, 화가 난 얼굴로 운전하고 있고..보조석에 앉은 수진이 흐느끼고 있다
씬10 24시간 은행 캐쉬코너
와락 문 열고 들어오는 민규와 은규..
손에는 몇 개 정도되는 정여사의 통장이 쥐어져 있다.
민규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정여사의 통장 집어넣는다.
통장 정리되는 내용이 많은지..한참을 기계음 소리가 들리더니
기계 속에서 통장 튀어 나온다.
그러나 통장 속의 잔액은 잔고 0원이다.
민규와 은규, 자기들 눈을 의심하고
또다른 통장을 집어넣어도 ..역시 잔고가 없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민규와 은규..
기가막혀 서로를 쳐다볼 뿐이다.
씬11 어느 포장마차(밤)
말없이 서로 서로 자기 술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민규와 은규
씬12 수진의 집,거실 (20평정도의 연립)
창밖을 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수진..그 위로
(수진N)-새 집 주인에게 집을 넘겨주기로 약속한 전날
그달 전화요금이 자동이체로 빠지면서
정확하게 엄마 통장의 돈이 바닥이 났고 엄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이게 우연이었을까?..
우연이 아니라면..난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수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가방 하나를 챙겨들고 현관문을 나온다..
씬13 시장길(밤)
재래시장 골목길을 죽어라 달리는 수진
드디어 시장길에 위치한 허름한 쪽방 집 문을 잡아당긴다.
씬14 김노인방
상가 옆에 딸린, 두 평도 안되는 허름하고 어두운 방
와락 문열고 들어오는 수진
이미 방안에는 민규와 은규가 와서 무릎 꿇고 앉아있다.
세 사람 서로 눈 마주치자..머쑥해서 아무 말도 없다.
김노인 이런 일을 예측이라도 했듯이..담담하고 미동도 없다
텔레비전 켜놓고 혼자 김치에다 소주를 마시는 김노인
(김노인)-3일밤을 새고 피곤들 할 텐데.. 이게 다 뭔 일이래?!
(수 진)-(다가와 앉으며)이모..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주세요!
(김노인)-(술 한 잔 따라주며)니도 한 잔 마실테냐?
요것이 잠 안 올 땐 즉효약인데...어여 마셔봐! 수진 거절한다..
(김노인)-(보고 자기가 훌쩍 마시며)니 어무이가 젤루 좋아하던 것인디..
수진 놀라고
(은 규)-이모님!
(김노인)-내는 아는게 아무것도 읎다..서울 깍쟁이 니그 어무이가
어디 속 한 번 시원스럽게 털어놓는 사람이다냐!!...
(민 규)-이모님이 모르시면 누가 압니까?
(김노인)-모른데니깐..(표정 사나워지며)그리고 뉘들 지금 이러는 거 아니여..
오늘이 무슨 날이냐!..니그 어무이 땅에 묻고 온 날 아니여!
그것만 생각해도 억장이 무너져야지 딴 생각 할 겨를이 으디 있냐
말이여!..썩을 것들..
세 사람 ..지나친 것 같아..다소 수그러진다.
(김노인)-가서들 눈 좀 부치고...밝은 날 다시 야기들 하자..
어서들 가..내도 잠 좀 자야겠어.
바닥에 던져진 베개 끌어안고 등을 보이며 누워 버리는 김노인
씬15 상가건물 전경(오후)
씬16 정여사의 집 거실
거실에 어질러진 짐들..필요한 것 적당히 정리해서 박스에 담는
정애와 미숙..정애 표정 어둡고 미숙이 입이 한 발 나와있다.
(미 숙)-(포장하다가 귀찮은지 내동댕이 치고 앉아버린다)
정애 언짢게 보면
(미 숙)-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말이에요?
정애..일 할 맛 안난다.
(미 숙)-큰아들한테도 말 한 마디 안하고 이걸 파셨단 말에요?
(정 애)-왜 자꾸 물어...전혀 몰랐다는데..
(미 숙)-뭐가 급해서 아엠에프에 이 상가를 헐값에 팔아버리고..
그러니까 뭐야...(손가락 꼽아 보더니)1년에 혼자서 1억원을 쓰고 사셨다니
말도 안돼!..또 아버님 유산은 어쩌시구..
정애...보고
(미 숙)-남들은 어머니가 아껴서 자식들에게 다 남겨 주고 돌아가신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뭐야 증말.....
(문득)어머..형님! 혹시 말이에요...우리가 모르는 빚도 잔뜩 있는 거
아닐까요?
정애 잔뜩 긴장하고
(미 숙)-우리 그런 빚 갚을 능력 없어요!
(정 애)-(눈 치켜뜨고)그럼 우리는?
씬17 안방
문갑 속의 물건들 정리하는 수진..거실에서 들려오는 올케들의 소리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지만 입은 악물고 있다..
문갑속에서 보석함을 꺼내는 수진..반지,목걸이 등..꽤 많은 물건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유심히 그 알반지 하나 하나를 살펴보는 수진...
놀라움에 부르르 손이 떨린다.
정애 들어오다 그런 수진을 보고..놀라 다가 앉으며
(정 애)-왜요?..아가씨?
(수 진)-(눈물 글썽이는 눈으로 보다)패물이 다 바뀌었어요..예전에 값나가던 것하고
모양만 비슷했지..
정애..놀라움으로 하나씩 살펴보면..
(정 애)-정말이네..이건 우리가 칠순 기념으로 해드린 건데..
언제 이런 가짜랑 바꿔 놓으셨지?....
(기가막혀)돈이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요..
(수 진)-언니..엄마가 왜그랬을까요?
우리들한테 뭘 숨겼던 걸까요?
(정 애)-이모님 아무 말도 안하세요?
수진..고개 젓고.
씬18 등기소 건물 전경(오후)
씬19 등기소 민원실
은규와 민규...등기소 민원센타에서 담당 직원과 함께 서류를 뒤져 보고 있다.
오랜 시간 자료도 뒤적여 보고 컴퓨터로 조회를 해봐도 그들이 찾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믿을 수 없어 서로를 보고 고개를 젓는 두 남자
(직 원)-죄송합니다.. 정여진씨 이름으로 등기부에 등록된
토지는 없습니다.
이은규,이민규.이수진씨 이름으로도 없구요..
씬20 등기소 앞 복도
좌판기에서 쏟아지는 커피..
각자 커피를 빼서 마시는 민규와 은규
(은 규)-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땅투자도 안하시고 도대체 그 돈을 다 어디다 썼다는 거야?..
손이야 크시지만 그 정도로 물 쓰듯 하시는 분은 아닌데..
(민 규)-(말없이 커피 마시다..문득)너 혹시?
은규..무언가에 찔린 듯..기겁을 하며
(은 규)-내가 뭐요?.,..주식?
민규 수긍하며
(은 규)-우리 어머니 나 100% 신뢰 안했잖수...장 좋을 때 불려 준다구 성화를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습디다..하긴 뭐..그때 이미 돈이 바닥이 났으니깐
투자를 못하셨겠지..
형은?..정말 짐작가는 게 없는 거유?
아버지 다음으로 형을 신처럼 떠받들고 살았는데...
(민 규)-아..어머니가 언제 장남 차남 구별하신 분이냐!.
나 장남대접 특별히 더 받고 산 거 없었어!..
(은 규)-그건 형 생각이지..
민규 보면..은규 지나쳤는지 딴청한다
(은 규)- 말하기 곤란하면 유언이라도 해놓으시지..이게 지금 뭔 고생이야?
보물찾기도 아니고..하긴 보물만 있다면 뭔 고생을 해서라도 찾으면
다행이지만...노친네 증말..
민규 문쪽으로 앞서 걷는다..그 위로.
(은 규)- 형수님 재영이 유학 보낼려고 하는 것 같은데...돈 안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유?..형도 난감해질 텐데...
민규..돌아본다..급소를 맞은 듯..아프게..
씬21 민규의 차안(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규 혼자 운전하고 있다.
뭐가 뭔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핸드폰 울린다.
민규 ..귀찮은 듯..핸즈프리로 받는다.
(민 규)-왜??
(정애E)-등기소 일 어떻게 됐어요?
(민 규)-(버럭)없어..아무 것두..
그게 그렇게 궁금해 잠시도 못 참고 전화야!
(정애E)-왜 화를 내고 그래요!
(민 규)-끊어..금방 들어갈게..
(정애E)-여보!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어머니 혹시?
씬22 은규네 집 주방(25평정도 중산층 아파트)
식탁에서 밥먹다가 놀라 눈 휘둥그레지는 은규..
밥 숟가락 탁 놓으며
(은 규)-뭐!..사기?
(미 숙)-그래..내 오늘 형님하고도 생각해 봤는데..
어머니 분명 누군가 있었던 거 같단 말야..
요즘 황혼에 재산있고 혼자 사시는 노인네에게..
(은 규)-이 여자..정말 못쓰겠네..
고상하고 정숙한 우리 엄마를 어디 도매금으로 넘길려구
너 그렇게 우리 엄마를 겪어 보고도 몰라?
(미 숙)-사람 속을 어떻게 속속들이 다 알어?
당신.. 어머니가 이렇게 뒤통수 칠 줄 알았어!
씬23 민규네 집 베란다
베란다에 나와 찬 바람 맞으며 길게 담배 피는 민규
베란다에 내놓은 란 화분들을 보는데
그 위로
(민규E)-아 자식들이 세 씩이나 있는데 어머니가 왜 혼자 살아요!
씬24 정여사의 집 거실(민규의 회상)
거실 소파에 앉아 란 화분들 먼지를 닦아내는 정여사..민규와 정애가 옆에 바짝 앉으며 설득하는 중이다.
(정여사)-글쎄..니들 성의를 내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난 지금이 좋다
(민 규)-혼자 쓸쓸하게 사시는 게 뭐가요?
(정여사)-쓸쓸하긴!..나 스케쥴 많은 노인네다!
우선 니 집에 들어가면 내 사생활이 보장 안되잖니?
(정 애)-사생활요?
(정여사)-여행을 가도 허락 받아야 하고 갔다와선 또 보고 해야하고...
복지관에서 남자 전화가 와도 누구냐고 꼬치꼬치 따져 물을 거구
내가 이 나이에 그런 감옥살이를 왜 하니!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데...
(민 규)-어머니!
(정여사)-(눈치 보다가)혹시 돈 필요하니?..
너도 이 상가 빨리 팔아 처분하길 바라냐구?
(두사람)-아..아니에요!
(정여사)-내가 얼마나 살 지 모르겠지만 난 여기가 좋다.
처분을 해도 나중에 나 죽은 뒤에 해주면 좋겠구나..
(민 규)-물론이지요,,그렇게 할 거에요..
이 상가 어머니 꺼잖아요..우리가 무슨 권리로.. 정애와 민규..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정여사)-고맙구나..그리구 니들 내 집에 올 때 오늘처럼 무작정 오지말구
꼭 전화로 허락 받고 오너라..그거 에티켓이다..
당황스러운 정애와 민규
씬25 민규네 아파트 베란다(다시 현실)
손끝에서 타 들어가는 민규의 담배
정애 말없이 재떨이를 내민다.(F.O)
씬26 정여사의 무덤앞(아침)
흐린 날, 하늘에서 이슬비까지 뿌리는, 삼우제 날이다..상석 위에 놓여진..꽃과 떡과 과일등..
삼남매와...그 안식구..손자 손녀들만 간촐하게 무덤 앞에 서서 고개 숙여
묵념을 한다.
말없이 무덤을 쳐다보는 자식들의 착잡하고도 원망이 서린 눈길들...
씬27 정여사 상가앞
정여사 방에서 나온 박스들이 상가입구에 늘어져 있다.
이삿짐 차 대기중이다..
씬28 정여사 집 거실
거의 모든 짐이 다 나간 상태다..
남자들 허탈해서...창가로 가서 담배만 피워 물고..
정애와 미숙....그래도 남겨진 짐들이 없나 둘러보고 청소를 한다.
(미 숙)-(툴툴 거리며)요샌..저런 짐 버리는 것두 돈 엄청 들던데..
(수 진)-(주방에서 나오며)걱정마세요..내가 다 가지고 가서 쓸테니깐
(정 애)-아가씨 곡해하지 말아요..동서는..
(수 진)-(언짢게)우리 엄마 짐 쓰레기 취급하는 거 나 못 참아요!
(미 숙)-아가씨가 못 참으면 어쩔 건데요!
(수 진)-뭐요!..(기가막혀 보다가)사람 마음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도 변할 수
있는 게 놀랍네요!
(민 규)-(멀리서)그만 하자..그만해!
씬29 동 안방
장롱이랑 문갑 서랍장이 나간 방이 훤하다..
다시 들어와 방을 살펴보는 수진..이내 눈이 촉촉해진다.
그러다 장이 나간 바닥에 종이로 쌓여진 뭉치가 보인다.
뭔가 궁금해 펴보는 수진...정여사의 사진이다.
정여사와 낯선 할아버지가 복지관과 약수터에서 찍은 듯한 사진이다..
활짝 웃는 정여사...두 사람 다정하게 보인다.
수진이를 위로해 주러 들어왔다가 함께 보는 채서방
얼른 자기 손으로 사진 빼앗아 보다가
(채서방)-그래..내가 어쩐지 이쪽 냄새가 난다 했어..
(수 진)-무슨 소리야?
(채서방)-장모님 돈..다 이 할아버지한테 넘어간 거라구!~
기함하는 수진의 얼굴에서
씬30 김노인 좌판앞
가게 앞에 내놓은 좌판에서 여러 가지 야채를 다금고 있는 김노인..
하던 일손 놓고 올려다보며
(김노인)-그려..니 어무이 짐정리는 다 된 것이여?
(수 진)-네..
수진..조심스럽게 몇 장의 사진을 디민다.
초조한 얼굴로 그 뒤에 병풍처럼 서있는 정애와 미숙
김노인..사진보고..세 사람 얼굴 한번씩 뜯어 보다가
(김노인)-아따 이 영감..보기본단 사진발이 좋네 그려!
세 사람 호기심으로 바짝 다가서면
(김노인)-그래..니 어무이 이 영감탱이하고 연애질 좀 했다
이제서 니들이 어쩔 것이여!..응?
(미 숙)-어머 어머..말도 안돼..울 어머니가 뭐가 아쉬워 이런 영감님하구...
(수 진)-어디 사시는 분이세요?
(김노인)-그건 알어 뭐할 것인데?..
이제 와서 왠 관심덜이냐고?!
씬31 어느 산동네 길
주소 한 장을 들고..집집 마다 호수를 살펴가며 어딘가를 찾고 있는 수진과 정애
힘이 드는 작업인지..수진이 땀을 흘린다.
그 위로
(김노인E)-복지관 노인 대학에서 만난 노친네였구먼....
자슥들 읎이 혼자 사는 게 안타깝다구 니 어무이가 먹을 거
입을 거 챙겨준 정도구...그 이상은 읎을 것이여!
드디어 메모지에 적혀진 주소와 동일한 집을 찾는다.
순간 얼굴에 찬바람이 도는 수진과 정애
씬32 산동네 어느 집앞
기침 한 번에도 넘어갈 것 같은 초라한 집앞에서
가만 문 두드리는 수진..정애는 그냥 구경한다.
안에서 50대 여자가 슬리퍼 질질 끌고 나온다.
(여 자)-뉘시요?
(수 진)-안녕하세요..저 사람 좀 찾는데요
(가방 속에서 준비된 사진 1장을 보이며) 여기에 이 영감님이 사셨다는데
여자..가만 사진을 보다
(여 자)-뉘신데..한 달전에 황천길 간 김영감을 찾는 거우?
(정애,수진)-네에!..
씬33 거리(초저녁)
초저녁 땅거미가 내려오는 시각..
한산한 거리를 서로들 눈치를 보며 걷는 정애와 수진
두 사람 오랜 시간 답답할 정도로 말이 없다..
(수 진)-(보고)언니..우리 엄마 외로웠을까?
정애..빤히 보고
(수 진)-나나 언니들이나 오빠들도 엄마에게 그렇게 불효했다고 생각
안했는데..우리들로 불충분해서
그런 할아버지를 만나신 걸까요?
(정 애)-나도 의외네요..우리 어머니처럼 산뜻하고 당당한 분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한 달 전에 많이 아프셨잖아요..
(수진 눈치보고)충격을 받으셔서 그랬던 거 같구요..
수진..생각할수록 기가막힌지 피식 쓴 웃음을 짓는다..
(수 진)-아버지하고의 정도 남들보다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고개 돌려..하늘보며 혼자말처럼)엄마한테 이렇게 화가 나면 안되는데..
씬34 수진이네 거실(오후)
문 열고 들어오는 수진..
현관입구부터 정여사의 박스로 된 짐들이 가득 쌓여있다.
멍하게 그 짐을 보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거실에서 전화하는 채서방 소리 들린다.
(채서방)-글쎄..좀 기다려..나도 이렇게 일이 꼬일 줄 몰랐지?
너 그 가게 남에게 넘기면 내 손에 죽는다...
빈손이긴 누가 빈 손이야!..곧 유산 받는다니깐!
(수 진)-무슨 소리야?.
화들짝 놀라 전화기 내려 버리는 채서방
(수 진)-유산을 받아 무슨 가게를 산다구?..또 뭔 사고를
(채서방)-(언성을 높혀가며)아무 것도 아니야..
그리고 당신 그 짐 어떡할 거야?..이 좁은 집에 저 짐들을
다 어떻게 할 거냐구!?..형님집에 가게 하지 당신이 뭐하러
(수 진)-(만만치 않게 노려보다)그만해!..그만 하라구!
아무리 한 치 건너 두치라더니..어쩜 나랑 이렇게 생각이 달러!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데!
더 이상 듣기 싫어 피하듯 나가 버리는 채서방
씬35 수진네 주방(밤)
정여사의 그릇이 든 살림을 풀어내는 수진
접시와 컵..냄비등등 꺼내 마른 행주질을 하곤 주방 씽크대에 꽉꽉 채운다.
그러다 그 그릇을 보는데 속상해 다시 꺼내 박스에다 담는다.
씬36 민규네 집 안방(밤)
침대에 누운 부부..민규 멍하게 생각하고 있고
정애 그런 민규를 쳐다보다
(정 애)-어머니 말에요..그래서..그래서 우리랑 한사코 같이 살기를 꺼렸던
거겠네요....민규 대답하기 싫어 돌아눕고
(정 애)-그쪽으로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아가씨가 막 우는데 안됐더라구요..
어머님도 참...아버님 얼굴 어떻게 보시려구..
씬37 구청 건물
씬38 총무부 사무실(아침)
부장 자리에 앉아 일을 보는 민규
서류 한 장을 들고 뭔가를 쓰려다가 착잡한 얼굴이 된다.
잠시..다시 써내려가는..정여사의 사망 신고서다..
핸드폰 울린다...
(민 규)-(받으며)그래..나다..지금 하려고 한다..
(짜증)어차피 할 일인데 뭐하러 미뤄!..
씬39 민규 아파트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골똘히 생각에 빠지는 정애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전화번호 수첩을 뒤져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정 애)-영은이니?....나야 정애..그래 오랜 만이다..사는 게 뭐가 바쁜지 전화도 못하고 산다 내가..그래..미안해..(조심스럽게) 나 너한테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돌아가신 분 통장 사용 내역을 알아보려면 어떡해야 하니?..응 상속권자지.. 뭐?...명의 변경?
..(급히 메모하며)그래 사망 진단서하고..호적등본..
씬40 금융감독원 건물 전경
씬41 금융감독원 소비자 보호 센타앞
민원 창구에서 직원과 이야기 하는 민규와 은규
컴퓨터로 조회하는 직원의 얼굴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유난히 입이 타는 은규
잠시후 직원 프린트된 서류를 내민다.
(직 원)-자..여기 보면 아시겠지만
정여진씨가 성일은행말고 다른 곳에 계좌를 개설한 사실은 없는데요
(은 규)-(믿어지지 않아서)이거 정말 정확한 겁니까?
(직 원)-컴퓨터로 추적해 본 거니깐 정확한 거겠죠
굳어지는 얼굴의 민규..먼저 돌아선다.
하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직원을 붙잡고 계속 무언가를 묻고 따지는 은규
씬42 민규네 거실(저녁)
민규네와 은규네..차를 마시며 이야기한다.
잠시후 문 열리고 수진이네가 들어온다.
(정 애)-(일어나 반기며)어서 오세요..차가 많이 밀렸나 봐요
(수 진)-무슨 일이에요?..여기서 다 모이자고 하고..
(정 애)-앉으세요...커피 드실 거죠?..(주방으로)
(사이 경과)
테이블에 커피잔 내려놓는 수진
(수 진)-네에?..통장 내역을요?
(은 규)-그래!..그거 하나면 의문 나는 거 다 해결되잖아..
(채서방)-그래요..그게 좋겠네요..
장모님이 누구에게 빌려줄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계좌 이체한 것만 추적해도 충분히
(수 진)-(말리며)당신 좀 가만 있어요..
(민규보며)큰오빠도 같은 생각이에요?
(민 규)-(말없이 눈 내리 깔고 있다가)
이대로 늘 찜찜해 하며 사는 것도 바람직 한 거 같지 않고
(수 진)-(당당하게)난 반대에요! 결사 반대
(미 숙)-왜요?..아가씨 뭔가 캥기는 거 있어요?..
(수 진)-뭐라구요?
(미 숙)-통장 사용 내역 나오면 아가씨한테 불리한 거 있냐구요..그러지 않은데
왜 결사 반대를 해요
수진..기가 막히힌지 잠시 실소한다.
(수 진)-나도 엄청 궁금해요..엄마 돌아가신 슬픔보다 이 이상한 상황들이
날 더 슬프게 하는 건 확실하니깐..
하지만 우리 엄만 그 돈을 허툰 곳에 쓰지는 않으셨을 거에요..
분명 이유가 있어서 쓰셨을 거라구요....우리들에게 말 못할...
모두들 긍정한다.,
(수 진)-엄마가 감추고 싶어했던 사생활 이렇게 밝혀지는 거 싫단 말에요..
그거 지켜주는 거 우리들 도리라고 생각하구..
(채서방)-아..당신 정말 왜그리 답답해.. 형님들 제가 이런 여자랑 8년을 살았다는 건 거의 기적입니다..
(은 규)-시끄러워!
채서방 움찔하고..수진..얼굴 굳어지자.
(정 애)-아가씨..제 말 사심없이 들어 주세요
어머님 연세..70이셨어요..총기가 남다른 분이셨지만..판단이 가끔
흐려지셨던 건 아가씨도 부인하지 못할 거에요..
어머니 사생활을 파헤쳐서 어쩌겠다는 게 아니고...혹시라도 그 소중한
재산들이 잘못 쓰여진게 있나 해서..어머니 혹시 억울한 일 당하신 거면 어떡해요?
수진..한 풀 꺽여서 바라만 본다.
씬43 은행안
은행 직원..통장내역이 담긴 몇 장의 프린트물을 민규에게 전한다.
민규 은규 얼른 펼쳐서 하나 하나 훑어보며 놀라는 얼굴이 되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는 수진
(수진N)-헐값에 상가를 정리하신 후 엄마는 중간 중간 목돈을 인출해 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거금을 이체시킨 것은 단 두 건이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엄마 통장을 뒷조사 할 줄 꿈에도 모르셨으니
엄마는 안심하고 이런 식으로 처리하셨는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일을 우리는 기어코 하고 말았다.
씬44 안양..어느 상가앞(초저녁)
꽤 번화한 거리...여러 상가들이 입주해 입는 5층짜리 건물.
(치킨집..서점,옷가게,화장품 가게 등등)
그 상가 앞으로 와서 멈추는 민규의 차
삼남매 내린다.
정애와 미숙도 내리려고 하자 민규가 막아낸다.
은규와 민규가 먼저 앞장서서 치킨집으로 들어가고.
망설이다 천천히 따라 들어가는 수진
씬45 치킨집(저녁)
아직까지는 한산한 치킨집 안
민규 은규 들어서자 오픈된 주방에서 닭을 튀기던 한 사내가
크게 인사를 하고..두 사람을 올려다 본다.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던 민규와 은규..이내 충격을 먹은 듯 굳어진다...
남자(동규) 처음에는 그들이 누구인지 영 모르는 얼굴이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수진을 보고..남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얼굴이 굳어지는데..
(민 규)-(조심스럽게)혹시..정여진씨를 아십니까?
(동 규)-(잠시..다른 쪽을 멍하게 보다)이자 석자 준자를 쓰시던 분은
압니다..
씬46 민규 차안
궁금해서 창밖을 내다보며 눈동자 굴리는 미숙
(미 숙)-형님 우리도 들어가 봅시다. 뭐 우리는 가족 아니래요
(정 애)-동서 좀 가만 좀 있어..머리를 써봐..
저 자리 우리가 들어가서 득될 게 하나도 없다니깐..
씬47 치킨집 테이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앉은 삼남매와 동규..서로 기가 막힌지 말이 없다.
(은 규)-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영락없이 우리 아버지 판박이네.
(민규보고)안그래요?
민규..심각하게 보며 담배를 찾아 문다.
(동 규)-(아쉬운 듯)그 분이..그 분이 돌아가셨군요..한 번 인사 드리려 간다간다
하며 차일피일 밀었는데..
(민 규)-우린 사실을 알고 싶소..아버지하곤..어머님하곤 어떻게 만나고 왕래를
해왔는지..
(동 규)-우리 어머니가 그 몹쓸 병에 걸리시지만 않았어도...평생 연락은
안했을 겁니다..수술비가 수술비가 없어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서..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는 은규..수진 말린다.
(은 규)-(미치겠는)형..아버지 우리한테 이래도 되는 겁니까?
와..미치겠네..미치겠어..
(민 규)-좀 잠자코 있어!
(동 규)-죄송합니다.
동규의 아내가 상황을 알고 맥주와 안주 내려 놓고 나간다.
(은 규)-성실하고 모범적인 가장 흉내는 다 하고 사시면서 뒤로 호박씨를 깠단 말야!
엄마에게 그렇게 비수를 들이밀고 사셨던 거냐구!!
와락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민규의 어깨에 기대 흐느끼는 수진..
(은 규)-와..우린 엄마가 그런 속앓이를 하고 산 것도 모르고!
(맥주 병째로 들이마시다 동규보고)당신말야 인간이 그러는 거
아니야..!..무슨 권리로 우리 엄마를 협박했어!..
(동 규)-협박 한 적 없습니다..제게도 그런 권린 있잖습니까?
서럽게 산 세월 보상받고 싶었다구요!
동규,이죽거리는 미소를 보이자 와락 동규의 멱살을 잡고 조이며
(은 규)-이제보니 니 놈 때문에 우리 엄마 돌아가신 거였네!..
너 오늘 내 손에 죽어 봐라!
은규, 거칠게 동규를 향해 주먹으로 내리치는 순간 민규가 잡아낸다.
(민 규)-(화가 나서)그만해!..그만하라구!
씬48 수진의 방
노기탱천한 얼굴로 아버지 사진을 박박 찢어 버리는 수진..
이미 바닥에 찢어진 사진 조각 가득하다.
손이 부르르 떨린다.
앨범을 뒤져..정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면 아버지 얼굴만 오려 찢어 버린다.
허탈하게 누워있던 채서방.. 기가막힌지 담배를 피워 허공으로 내뿜다가
(채서방)-당신 집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통 콩가루 집안이 아니야!
발끈해서 노려보는 수진
(채서방)-당신 우리 집안 별볼일 없다구 은근히 무시했잖아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뭐라 한다더니...나참..
찢어진 사진 조각을 채서방 얼굴 위에다 뿌려 버리는 수진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채서방 손을 물어버리는..비명을 지르는 채서방
씬49 김노인 방(오후)
혼자서 초라한 점심상(누룬밥과 김치 정도)을 봐서 수저 들기 시작하는 김노인..
그러나 한 숟갈 먹다..입맛이 안나는지..수저내려 놓는다..그 위로
(정여사E)-제발 밥 좀 잘 차려 먹어..이게 뭐야?
씬50 김노인의 좌판앞 (김노인 회상)
좌판..야채 장사하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점심 후루륵 먹는 김노인
정여사 그것을 보고 언짢아 한 마디 한다.
(정여사)-찌게 하나 시켤 먹든지..우리 집에 와서 나랑 먹든지..
(김노인)-성님 집 가더라도 뭬 먹을게 있을라구유.
야들이라도 왔다 가야지 괴기 찌거리라도 남았지...
정여사..민망해지고..김노인 먹던 것들 안으로 치운다.
(정여사)-어서 일어나..내가 냉면 사줄게..
씬51 냉면집
힘없이 냉면 한 젓가락 넘기는 김노인 ..정여사 먹다 보고
(정여사)-얘들한텐 정말 안부 전화도 안오는 거야??
김여사 가만 고개 끄덕이고
(정여사)-(상황을 짐작하고)정말 몹쓸 인간들이구만..지 어미 어떻게 살지
뻔히 알면서,,
(김노인)-내한테는 썩을 놈이지만 성님 우리 야들 너무 그리 몰아 세우니
언짢아 질나 하네..그러지 마유!
(정여사)-뭐하러 있는 돈을 다 주나 말야...
(김노인)-이렇게 뒤통수칠 줄 알았간유?
사업이 안되서 그런다니 잡아 멕을 수도 읎는 일이고..
성님도 내보고..얻은 게 많죠?,,절대 살아생전..그 돈 자슥한테도 물려주면
안된단 말이지유....지들이 에미가 돈이 있으니 한 번이라도 찾아오는 거지..어디 얼굴보러 오는 것이다요?
재영에미만 해도..고기 한 근 사오면 성님이 갈비 한 짝을 사주니
그런 남는 장사가 어디 있간데유..
(정여사)-어 못쓰겠네..남의 자식들을 어디다 밀어 넣는 거야.. 우리 얘들은 아니야!?
(김노인)-내기 한 번 할테유?..빈털털이 엄니한테 누가 진심으로 효도하나..
정여사 이내 얼굴 굳어진다.
(김노인)-내 말 싱겁게 듣지 말고 돈 보따리 단단히 잡고 있어유..
그래야 자슥들 얼굴 오래 오래 보고 산다구요..
(정여사)-삼베 자루에 물 빠지듯 나가는 돈을 내가 무슨 재주로 잡아내나
(김노인)-(걱정)워메..그 놈한테 돈을 또 부친 것이여?
정여사 고개 끄덕이고..
(김노인)-워메..벌써 그쪽으로 을마나 간 것이여?잉?..
성님..그러지 말구 자슥들한테 다 털어 놓으소..
(정여사)-(질색하며)무슨 소리..우리 애들이 알면 절대로 안되지.
지 아버질 얼마나 존경하고 자랑스러워 했는데..
(김노인)-그려도 걔들도 진실을 알 권리는 있는 것이여!
지 아비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자슥이 알야야지 않겄소?
그래야 성님 속도 편해질 텐데..
(정여사)-자네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입 조심해!
(김노인)-(혀 끌끌 차면서)몹쓸 인간이여..살아생전 서럽게 하더니 지 뿌린 씨앗도
제대로 거두지 못해 시방 누굴 생고생 시키는 거이여!
손바닥만한 상가 하나 물려 주구선!
씬52 다시 김노인방(현재)
김노인 다시 수저를 들어 한 술 뜨는데..어느새 수진이 와서 멍하게 서있다.
깜짝 놀라 밥 꿀꺽 삼키고...물 한 사발 들이 붓는 김노인..
(사이 경과)
김노인 밥상 한쪽으로 치워져 있다.
(수 진)-(보고..속상해서)아무리 혼자 계셔도 반찬이랑 잘 차려 드시지 그게 뭐에요!
(김노인)-괜찮어..엊저녁 괴기 묵은 게 아즉도 소화 안됐으니껀..
수진 거짓말 같아 쳐다보면
(김노인)-야가 속아만 살았나..
(수 진)-혹 우리 엄마도 매일 그렇게 드시고 산 거에요?
(김노인)-그럼 워쩠을 거 같냐?..늙은이가 지 혼자 잘 묵자구 한 상 차릴수도
읎고..모르긴 몰라도 니 어무이가 더 지독했을 거구먼..
3000원짜리 우동 한 그릇두 바들바들 떨다 사먹었으니껜..
수진 속상해 죽겠다..입술 지그시 깨물고
(수 진)-이몬..우리 아버지한테 숨겨논 아들있는 거 아셨죠?
(김노인)-안양 갔다 온 것이여??
(수 진)-(고개 끄덕이고)아버지가 용서 안돼요....어떻게..정말 기가 막혀서
(김노인)-꼭 니 아버지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읎다..
니 아버진 마음에 두는 여자가 있었는데..집안에서 니 엄니랑
강제로 혼인시키는 바람에...몸만 따라 온 거지..
수진..착잡하게 보고
(김노인)-(회한에 젖어)니 엄닌 여자로선 정말 서럽게 산 여자였어.
니 아부지가 첫정인데 니 아부지가 차갑기론 뱀보다 더했으니껜..
니들 앞에서만 애정있는 부부행셀 했던 거니 그 속이 오죽했겄냐?
이혼도 니 엄니가 절대 안한다고 해서 그리 살다간 것이여!
수진..이내 눈물이 고인다.
(김노인)-너만이라도 니 엄니가 ..니들 가슴에 상처 줄까봐
행여..아부지에게 원망하는 맘 생길까봐..모질게 인내한 거 알아야 혀!.
씬53 거리
쓸쓸하게 걸어가는 수진의 뒷모습..그 위로 저녁 놀이 길게 내린다.
수진 생각이 많다.
씬54 정여사 집 거실(밤, 수진의 회상)
아버지 제삿날이다..
정성 가득 차려진 제사상 앞에 서서 절을 하는 아들들과 손자들.
그 뒤에 옷 단정히 입고 서있는 정여사와 수진, 며느리들
상 위에 놓인 아버지 영정을 빤히 보다 어느새 눈물을 적시는 정여사
수진 보고
(시간 경과)
제사상으로 저녁 먹는 가족들..수진 밥 먹다가
(수 진)-엄만 아직도 아버지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와?
(정여사)-무슨 말이냐?
(수 진)-아직도 그렇게 그립냐구?
(정여사)-(쓸쓸하게)그래. 너무 보고 싶어서 밤에 잠이 다 안온다.
니 아버지도 없는 내 인생...허접하기도 하고
(수 진)-(피식 웃다)난 사춘기 때 엄마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몰라..
모두들 먹다 수진 쳐다보면
(수 진)-맨날 아버지가 외동딸인 나보다 엄마만 찾고 챙기고 안아주고
늙은 사람들이 정말 웃긴다 했거든..
(정여사)-(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다가)그래..미안했다..미안했어
씬55 다시 거리
수진..이제야 그 말뜻을 알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씬56 청기와 감자탕(수진의 가게)
수진..들어오면 가게 안에 이미 정애와 미숙이 와서 기다리는 중이다.
(수 진)-웬 일들이세요?
(미 숙)-(채서방 쳐다보다가) 아가씨 나랑 얘기 좀 해요..
(정애보고) 형님두요..
정애와 수진 무슨 인일가 궁금해지고
(사 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중인 네 사람
미숙..가방 속에서 통장사용 내역서 꺼내 펼쳐진다.
큰 돈이 나간 날마다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미 숙)-제가 이걸 좀 분석 했거든요.
(동그라미 가리키며)여기 여기..동그라미 보이시죠?
세 사람 모두 쳐다보고
(미 숙)-모두 거금이 인출된 날이잖아요..
(정 애)-(발끈해서)그 얘기 하려구 지금 이리로 오라 한 거야?
(미 숙)-네 형님..진실을 밝혀야죠.
(수 진)-뭘 알아내신 건데요?
(미 숙)-이 오천만 원이 빠진 날 보세요..2000년 8월 30일 이잖아요
(수 진)-그래서요?
(미 숙)-내 기억에 의하면 2000년 9월 1일 고모부가 이 감자탕 가게 인수한 날이
잖아요..그 기념으로 제 생일 파티 여기서 어머니가 차려줬구요
기억들 안나세요?
(정 애)-(야단치듯)동서!
(수 진)-언니!
그러니까 뭐에요?..이 돈 우리 가게 인수하는데 준 돈이라는 말에요?
(미 숙)-잘 생각해 보세요..권리금 모자란다고 아가씨 돈 구하러 다녔는데
갑자기 시댁에서 해줬다고 아가씨가 좋아서..
갑자기 무슨 생각에 수진..카운터로 고개 돌리면..채서방 이내 얼굴이 사색이 돼서
밖으로 도망치듯 나가 버린다.
아뿔사 하는 수진..부르르 몸이 떨린다.
(미 숙)-(더 기세 등등한 말투로 정애보고)그리고 2001년 5월 25일에 7천만원
찾으셨잖아요..형님네 지금 그 아파트로 늘려 가신 게 언제였죠?
정애의 굳어지는 얼굴..그 위로
(민규E)-(크게)당신이 아쉬운 소릴 했을 거 아냐?
씬57 민규네 아파트 거실(밤)
민규,화가 나서 베란다 창을 보고 있고..소파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정애
(정 애)-맹세코 난 그런 말 한 적 없단 말에요..어머니가 어느 날 문득
찾아 오셔서.....당신이 쉴 수 있는 방 하나 만들어 달라고..그래서
좀더 큰 집으로 이사가라고 해서 한 거 뿐이었다구요
(민 규)-그럼..왜 친정에서 보태 줘서 한 거라구 거짓말을 했어!
(정 애)-그것도 어머니 부탁이었단 말에요..당신이 알면 대쪽같은 성질에
당장 돌려 드리라고 할 거 뻔하다고..
민규 여전히 노여움으로 정애 보고
(정 애)-(팽팽하게 보다가)당신 정말..그때 내 말 그대로 믿었던 거 아니죠?
우리 친정에 그만한 돈 없는 거 잘 알잖아요..더이상 묻지 않았던 거
난 당신이 알면서 묵인하는 건줄 알았다구요..아니에요?
민규..뭔가 찔리는 게 있어 잠시 움찔하고
(정 애)-그리고 어머니가 유산받은 거로 그 정도 목돈은 가지고 있는 줄 알았어요
어차피 나중에라도 우리가 모실 거였으니깐..
아가씨네랑 서방님네랑 이렇게 저렇게 퍼주신 걸 몰랐단 말에요..
씬58 은규네 집 거실
부부싸움하는 은규네..
화가 있는 대로 치솟아 살림 내던지는 미숙..그것들을 받아내며 이리저리 피하는
은규..미숙 계속 집이 떠날 갈 듯 고함을 지른다.
(미 숙)-내가 당신 때문에 맨날 요 모양 요꼴이야!
무슨 남자가 나이를 먹어도 대책이 안서냐..대책이..
(은 규)-그만해라..이 밤중에 옆집에서 놀라 신고하겠어!
(미 숙)-신고하라지..지금 그게 무서운 거야!(또 던지고)
(은 규)-나도 엄청 괴로운 사람이다..그만해!
(미 숙)-한 두푼도 아니구 6천만 원을 주식으로 다 날려!
당신 제 정신이야!
형님네처럼 눈 딱 감고 아파트나 샀으면 지금 그게 얼마나 올랐겠어!
내가 미쳐요!..미쳐
티슈통 내던지는 미숙..정통으로 은규 이마에 맞고 그 충격으로 은규 이마가 찢어
져 피가 난다..눈 동그레져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오는 은규.
그 무섭게 실랑이 하는 모습에서.
씬59 수진네 집(밤)
씬60 수진의 방
어두운 방.. 방 구석에 죽은 듯이 앉아있는 사람의 실루엣만 보인다.
씬61 동 베란다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피는 채서방..
가끔 고개 들어 안방의 동정을 살피느라 눈 돌아가고...
씬62 동 주방
주방에서 혼자 김치 안주를 놓고 소주 마시는 수진..
그 빈 소주잔 쳐다보는데 그 위로
(김노인E)-니 어무이가 젤루 좋아했던 것인디..
잠 안올 때 이보다 더 좋은 즉효약이 없었응게..값도 싸고..
또 소주를 따라 마시는 수진..물처럼 원샷으로 마신다.
(수진N)-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서로들 모르게 엄마의 돈을 약탈해 갔다.
자동차를 바꿀 때. 새 집으로 이사를 갈 때
새 전자 제품이 나왔을 때.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진학 할 때
생일 때, 휴가 때, 설이나 추석에..사는 게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며
완전 범죄자처럼 엄마의 돈을 조금씩 꾸준히 빼내간 것이었다.
씬63 민규네 아파트 전경(아침)
씬64 동 거실
냉냉한 분위기,민규..정여사 앞으로 온 여러 가지 우편물을 살펴 보고 있는데
내과 병원에서 온 편지가 이상해서 뜯어본다.
(정 애)-(커피 내려 놓고 보며)웬 병원에서 편지가 다 왔어요..
(봉투를 자세히 보더니)어머니 혈압 때문에 다니던 병원이신데..민규, 느낌이 이상해진다.
씬65 내과 진찰실
의사와 상담하고 있는 민규..심각해진다.
(의 사)-정여진씨가 정기적인 진료를 하러 오시지 않아서 우리 간호사가 안내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드시던 약도 다 떨어졌을 텐데..
(민 규)-약이라니요?..무슨 약을 드셨습니까?
(의 사)-무슨 약을 드셨는지 모르셨습니까?
(민 규)-(잠시 생각하다)혈압이 높으셔서 혈압약은 꾸준히 드신 거루 아는데
(의 사)-혈압도 안 좋은데다 협심증 증상이 있어서 ..혈액 항진제를 꾸준히 드시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민규 놀라고
(의 사)-새로 개발된 신약이 효과가 좋아 권해 드렸더니..워낙 약값이 고가라
망설이고..아껴 드시다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민 규)-(믿어지지 않아서)네에?
(의 사)-(챠트 보여 주며)여기 보세요.
민규 의사가 보여주는 챠트를 신중하게 본다.
(의 사)-보름치 약을 지어 가시면 한 달을 드시고
오셔서 그러지 마시라구 몇 번 주의를 주었던 환자였습니다.
(민 규)-그럴리가요..제 어머니는 그런 약값 정도는 감당할 돈이 있으셨는데
(의 사)-(이해가 안되서 고개 갸우뚱하다)입원을 하셔도 자식들이 한 번도 안와서
(민 규)-우리 어머니가 입원을 하셨단 말에요?..이 병원엘요?
(의 사)-네..심장이 안 좋으셔서 1년에 한 두 차례 입원 치료 받으셨던
분입니다.
누군가에게 맞은 듯 멍하게 있고 마는 민규
씬66 병원 로비
문 입구에 세워진 공중전화..그 전화 붙잡고 버튼 누르는 김노인
원장실 문을 나와 천천히 병원문 쪽으로 걸어오는 민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지..아직도 자기 정신이 아니다..
그러다 무슨 낯익은 소리에 정신을 차려 고개 들고 보면
(김노인)-아..이 썩을 것들아..에미가 다리가 아파 수술을 해야 하겠는디
여태 돈 이백을 못 만들었다는 소리가 말이 되는 거여 뭐여!
니 에미가 허구헌날 파스로 도배를 하고 사는디.. 니들은 워째 맨날 나보다 더 죽는 소리여...아 글쎄
당장 내 돈 내노랑게!..아님 내 고소를 해버릴 것이구만.,.
그리 알고 끊어!..이 썩을 것들..
김노인 거칠게 수화기 내려놓고 돌아서다 민규와 정면으로 시선 마주친다.
씬67 병원 로비 벤치
김노인은 캔음료수 만지작 거리며 바닥만 쳐다보고,
민규는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만 쳐다볼 뿐이다.
김노인, 민규 눈치를 보는데 그 위로
(김노인E)-내가 제발 성님보다 먼저 죽어야 쓰겠소!
씬68 입원실(김노인 회상)
정여사 환자복 입고 누워 있고 김노인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다.
(김노인)-맨날 아이들한테 거짓뿌렁만 해싸니..이 다음에 그 원망을
다 내가 어떻게 받쏘?..안그러요?
창백해진 정여사..희미하게 웃는다.
(김노인)-철철이 지 에미가 병원에 입원한 줄도 모르고
철철이 지 에미가 팔자가 좋아 꽃구경 단풍 구경 간 걸로 알 테니
(정여사)-난 괜찮으니 바쁘면 자네도 가봐..
(김노인)-내 아무리 바빠도 그런 의리 없는 짓은 못하요..
(정여사)-마음이 허전했는데...고마워..
(김노인)-왜요?.
(정여사)-몸이 아프니 별별 생각이 다 들지 뭐..이게 끝인가 싶어서
우리 큰애랑 둘째도 보고 싶구..손주들도 보구 싶구..
(김노인)-아따 지난 주에 보지 않았소?.
(정여사)-방금 보고 돌아서도 눈에 밟히는게 자식들이잖아....
(김노인)-그렇게 맨날 보고자픈데..왜 한데 안살고
성님 자슥들..유난히 효심이 깊어 서로 모실려구 하잖소?
(정여사)-함께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나 때문에 신경쓰고
나 때문에 다투고..그런 거 다 볼 자신 없어..
(김노인)-사람 사는 게 다 그런 법인디..
(정여사)-난 구차하게 사랑 빌고 싶지 않네...그건 민규 아버지한테 신물나게 해본
일이잖아..그 서러움을 어찌 말로 다할라고..
그저 조용히 조용히 보기만 하다 갈 생각이야....
(김노인)-에구..유난스럽긴..
아마도 성님은 전생에 진 죄가 많은가 보우....그러니 이승에서
짝사랑으로 매양 가슴이 타들어가지..
(물 따라 약을 건넨다)
정여사 착하게 그 약 받아먹고
(정여사)-나 괜찮아졌는데..퇴원 수속 좀 해주게..
(김노인)-왜유?..입원비 아까워서유?
이번엔 완전히 고쳐가지구 나가유..안그러면 내 야들 불러다 다
고자질할 것이구만요..
(정여사)-내 병이 여기 누워 있다고 날 병인가..
(김노인)-하긴...돈만 있으면 날 병이지요.
그러고 아까 돈 찾으러 은행에 가보니..돈이 별로 읎더만..
정여사 대답 안하고 딴청이다.
(김노인)-몇 달 사이 그 돈이 다 어데로 갔데요?..
또 썩을 것들이 와서 죽는 소리해가며 다 뜯어간 것이여??
(정여사)-누가 뜯어가!..내가 줬어..봄옷 한 벌씩 해입으라구!
월급쟁이들이 옷 한 벌 해입고 살기가 어디 쉬운가!
김노인 얼굴 인상 구겨지고
(김노인)-그깐 옷이 중하요..성님 약값이 더 중하지..안그러요?
하여간 내 미친데니껀..지 먹을 약 하나 사는 건 바들 떨면서 왠
자슥들한테 그런 선심이데..
이쟈 그 돈 바닥 나면 어쩔 것이여?..민규네로 들어갈 것이여?
성님 자존심이 어느 자존심인데 며느리살이 할 거이냐구유!
모양세 좋겠수다..
(정여사)-(이내 시무룩해져서)돈 있을 때까지만 살지 뭐. 애들 말로 쿨하게 사는 게 내 신졸세...
(김노인)-햐..그게 사람멤 만치 되면 을마나 좋겠수?
씬69 다시 병원 로비 벤치
김노인,찔끔거리는 눈물을 소매자락으로 닦아내자 민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민 규)-(버럭)왜 진작 저에게 언질을 주지 않으셨어요?
이모님은 우리들이 그렇게 불효하는 걸 알면 말려주셨어야죠!
김노인..다소 수그러지고
(민 규)-나중에라도 제가 어머님을 어떻게 봅니까?...네에!
화가 나서 먼저 나가버리는..
그 뒷모습을 보던 김노인
(김노인)-(허공 쳐다보며 한숨조로)내 이래서 성님보다 먼저 죽어야 한다고 그랬죠?... 내한테 다 덤태기 씐다고...
씬70 수진의 집 거실
정여사의 짐 박스 하나씩 다 풀어져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박스마다 뒤지는 민규..
정애와 수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만 본다..
드디어 어느 상자에서 약상자 나오고..그 약병(영양제)들을 하나씩 다 열어보는 민규..하지만 그 병들은 다 비어있다.
허탈해져서 다 바닥에 던져 버리는 민규..그 위로
(정애E)-어머..어머니..약 좀 그만 사세요..이 영양제 좀 봐! 이거 무지
비싼 거라든데..어머니 혼자 드시지 말고 저도 좀 주세요..
재영 아빠..아침에 일어나는데 얼마나 힘들어 하는데요!
놀라움에 어쩌지 못하는 정애와 수진
속상해서 미치겠는 민규...빈 약병 들고 펑펑 흐느끼기 시작한다.
씬71 정여사 상가 앞(오후)
상가 앞에 세워진 은규의 차
기운없는 모습으로 예전 상가건물을 올려다 보는 은규.
그 안에서 나오는 새주인과 자식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본다.
씬72 수진이네 주방
주방 바닥에 앉아 정여사 짐을 풀고 있는 수진.
정여사가 쓰던 윤기나는 그릇들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풀어 장식장에 넣는다..
씬71 시장 좌판
김노인..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야채를 팔고 있다.
그 모습을 뒤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민규.
씬72 고급 갈비집
엄청난 양의 갈비를 시켜 테이블에다 잔뜩 굽는 민규..
고기가 구워지자 김노인 자리에다 내 놓으며 먹으라고 한다.
놀란 얼굴로 먹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는 김노인
(김노인)-니 오늘 뭐 낮술 묵었다냐?
(민 규)-드세요....이거 오늘 다 드셔야 합니다.
(김노인)-와? 이 괴기묵고 어서 꽤꼴락 하라고?
민규, 한참을 보다 이내 풀이 죽어
(민 규)-아들놈이 못난 가지고...우리 어머님한테 한 번도 못사드린 겁니다..
우리 어머니 대신..오늘 이거 다 잡셔 주세요!
김노인 이내 얼굴 어두워지고
(민 규)-이모님..(감정에 복받쳐서)그래야 제가 숨을 쉴 수가 있을 거
같습니다..제 맘 아시겠죠?
김노인 그 마음 알 것 같아 이내 눈시울이 젖어 들지만 꾹 참고
갈비 집어 먹는다.
민규 그 모습보다 안주머니에서 흰봉투 하나 꺼낸다.
김노인 의아해서 보면
(민 규)-용돈이에요..이걸로 다리 수술도 받으시고 옷도 사시고
여행도 가시고..(눈물 애써 참으며)
외로운 우리 어머니 곁에서 말동무 되신 거 너무 고마워서 제가
보너스로 드리는 거에요!..
어머님 위해 할 일이 이젠 제겐 이런 거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받으세요..네에?!...
김노인 눈물 보이며 고개 끄덕이자 다음 말을 못하고 테이블에 고개 묻고 울고 마는 민규..(F.O)
씬73 은행 현금지급기 안(수진의 회상)
카드로 겨우 몇 만원을 찾는 정여사...통장 정리하고 돌아서다
문득 무슨 생각에 잠시 카드 들고 망설이는데...
(수진E)-엄마 어쩌면 좋아..우리 이번 달 장사 너무 안돼서 월세도 못 만들었어!
(정애E)-재영이 영어 때문에 큰 일이에요,,과외 한 번 시켜 달라고 성화니..
(미숙E)-어머니..이이 이번 달 술값이 얼만 줄 아세요?...미치겠어요..
정여사 망설이다 다시 카드 넣고 돈 찾는다...만 원짜리 수북히 쏟아져 나오는..
씬74 시장길(수진의 회상)
정여사, 시장 바구니 가득 장을 봐가지고 온다.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부동산 소개소를 지나는데..누군가가 정여사를 부른다.
(남자E)-정여사님!
씬75 부동산 소개소 안
상가 새 주인하고 앉아있는 정여사..
새주인 난감해 하고 정여사 눈치를 본다.
(정여사)-사장님 뭔데 그러세요?
(새주인)-저 말씀인데요..부탁 좀 드릴려구요
정여사 보고
(새주인)-아 글쎄..우리 아들 놈들이 예정보다 두 달 일찍 들어온다고 합니다.
정여사 긴장해서 보면
(새주인)-그래서 말인데..계약 기간보다 앞서 집을 비워 주셨으면 해서요..
당장 내일이라도 집 수리 좀 했으면 좋겠는데..
충격으로 멍해지는 정여사
(남 자)-아 이 기회에 큰아들네로 들어가세요..뭐하러 비싼 월세를 내가며
혼자 사세요..아들 딸들 효심 지극하겠다..
씬76 정여사 집 주방
정여사, 김노인 함께 들어온다.
묵직해 뵈는 찬거리를 식탁에 올려 놓고..힘이 드는지 의자에 털썩 앉는 정여사
김노인..짐 풀면서..
(김노인)-워메 워매..이게 다 뭐여?..또 괴기랑 과일에다 미끼 걸어
자슥 새끼 얼굴 한 번 보자구...생쇼를 하는 날인가벼!
정여사 말없이 식탁에 놓인 물 따라 마시면
(김노인)-성님 팔자도 내 팔자멘치 참..심란혀유!
그냥 보고자프니 어서 오란 말 한 마디면 간단할 걸..
그것들을 보는 정여사 허탈해진다..
(정여사)-(언짢아져서)그만 가봐..나 좀 쉬어야겠어..
김노인..분위기에 압도되어 그저 순순히 물러나 나간다.
정여사 혼자 남게 되자..지갑을 꺼내 그 속에서 통장을 꺼내본다..
정여사 가볍게 한숨 쉬고 통장 다시 집어 넣는다.
그 위로
(새주인E)-계약 기간보다 앞서 집을 비워 주셨으면 해서요..
당장 내일이라도 집 수리 좀 했으면 좋겠는데..
(남자E)-아! 이 기회에 큰아들네로 들어가세요..뭐하러 비싼 월세를 내가며
혼자 사세요..아들 딸들 효심 지극하겠다..
생각을 깨는 듯 전화벨이 울린다.
씬77 거실
소파에 앉아 정여사 전화 받는다.
(정여사)-네..(듣고)아범이냐?..그래..별일은?..오늘 몇 시에나 올 건데? 응 뭐 별 건 아니구..누가 꽃등심 좋은 걸 보내줘서 함께 좀
먹자구..할 애기도 좀 있구.. 아니 급한 거 아니다!
못와? ..그래?!..(실망해서)
할 수 없지 뭐..회사 일이 우선 아니냐!
책 잡히지 말구...그래..다음 주에 와두 돼..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힘없이 전화기 내려 놓는 정여사..
그리곤 천천히 집안 구석구석을 애정 어린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는데그 위로
(미숙E)-호호호!..어머니 진짜란 말에요!
씬78 거실(정여사의 회상)
정여사의 팔 다리를 안마해주는 미숙..
그 옆에 앉아 과일을 깍고 있는 정애..
(미 숙)-저도 이 다음에 꼭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가 될거라구요..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노후에 보란 듯이 당당하고 깨끗하게..그렇게 살 거에요..
어머니가 미래에 제 모델이세요..
(정여사)-(미숙 손 만져주며)흐흐..고맙구나..
정애,과일 한 조각 내민다..정여사 맛있게 한 입 베어문다.
(미 숙)-우리 친정 언니는요..시어머니가 빈털털이로 들어와 툭하면 신세 한탄하는데 지금 미칠 지경이에요..노후관리 못한 게 누구 탓이겠어요?.
정여사 이내 얼굴 굳어진다.
(미 숙)-저두요..우리 돈 훈이한테 한 푼도 안물려 줄 거에요!
재미있게 노후 즐기며 다 쓰다 죽을 거에요..
정여사 쓸쓸하게 미소 짓고..
씬79 다시 거실(초저녁)
무슨 생각에 하염없이...서글픈 얼굴이 되는 정여사..
전화기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은 규E)-네..엄마 저에요?...웬일이세요?
(정여사)-응 ..어디니?
(은규 E)-우리 오늘 훈이 외할머니댁에 가는 길에요..
(정여사)-아참!..그런다고 했지..내 정신이 그렇다..너 운전 조심해라
(은규E)-걱정마세요....
(정여사)-사돈어른께도 안부 전해 드려라..알았지?....그래..
힘없이 수화기 내려놓는 정여사..잠시 다시 전화를 건다.
(수진E)-네..청기와 감자탕입니다..
(정여사)-나다..
(수진E)-응..엄마 웬일이세요?..저기 급한 거 아니면 이따 걸어요
우리 요즘 장사 너무 안돼서 비상 걸렸어..
(정여사)-그래 알았다..돈도 좋지만 너 너무 채서방 닥달하지 마라
(수진E)-알았어요..
수화기를 쥔 정여사 손이 힘없이 떨린다. 그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화기
그 수화기를 집으려고 앞으로 몸을 굽신하는 정여사..
그 순간 가슴에 통증이 온다..고통으로 얼굴 이그러지고한 손을 가슴에 대고 눌러대는 정여사
그러나 그 통증이 멈추지 않는다...
정여사..거의 안간힘을 써서 거실 서랍장 쪽으로 기어간다..
그 위에 놓인 약상자 속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힘들게 뚜껑을 열지만...약이 없다..
더 고통스럽게 엄습해오는 가슴의 통증..
으윽..신음소리를 내고, 정여사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꼬꾸라지고 만다.
잠시 꿈틀거리다가 이내 잠잠해 지는 정여사..암전....그 위로
(수진E)-(비명에 가깝게)(울부지으며)악!..안돼!..엄마!..엄마!
씬80 수진의 방(새벽)
새벽 푸른 빛이 들어오는 창가
악몽에서 깨어나는 수진. 식은 땀으로 온 몸이 흥건하다.
겨우 정신 차려 꿈인 것을 알자 비로소 서러워서 흐느껴 울고 만다.
씬81 정여사 무덤(이른 아침)
수진..담담한 얼굴로 꽃다발 하나 들고 와서 무덤앞에 놓고 인사 올린다.
아버지와 엄마의 묘비를 보다가 이내 서글픈 얼굴이 된다.
(수 진)-(무덤앞에 앉으며)엄마...참 많이 힘들었겠다..짝사랑만 하다가..
기운 다 빼고..나한테 조금만이라도 얘기하지..
엄마 딸이 그 정도도 이해 못해줄까 봐..그리 겁을 먹은 거야?..
엄마 때문에 내가 속상해 죽겠잖아....
(이를 악물고 눈물 참으며)하지만 이젠 엄마 외롭게 안 할게....약속해
수진 엄마를 어루만지듯..무덤 주위를 애틋하게 손을 쓸어 내린다. .
(수 진)-그리고 엄마..정말 미안해..
엄마 전화 왔을 때..그게 마지막 인사인 줄도 모르고
내가 아무리 바빠도 친절하게 끝까지
엄마 얘기를 들어줬어야 하는 건데..뭐가 바쁘다고..살면서 내내
힘들다고 엄마한테 투정이나 부리고....
(다시 울컥해져서)용서해 줘..이제 채서방 닥달 안하고 잘 살게..
수진 그러다 인기척에 뒤돌아보면 꽃다발을 든 은규가 올라온다..
수진과 눈 마주치는 은규..두 사람 쓸쓸한 미소를 주고 받는다.
꽃다발을 내려 놓으며 정여사에게 인사를 하는 은규..
절하는 은규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모른 체 고개 돌려 먼 산을 바라보는 수진
씬82 산길
느릿한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오는 두 사람..
그들 시선으로 보면 저 멀리 산소 입구에서 꽃을 들고 서있는 민규가
조금씩 보인다.
(수 진)-오빠! 만일에 만일에 말야....우리 엄마 통장에 돈이 남아 있었더
라면 엄만 더 오래 사실 수 있었던 아닐까?..?
(민 규)-(보다가,애써 담담하게)아니다..아닐 거야..설마!..아니지.. ..정여사의 무덤에서 바라보면 남매가 다시는 안올 듯 점점 더 멀어진다.
외롭게 혼자 남은 정여사의 무덤.. 그 위로
(수진N)-솔직히 난 지금도 확신이 안선다.
무일푼이 된 엄마가 이 자식 저자식 집에 얹혀 살고 그런 엄마에게 정성을 다해 효도를 했을지..오늘 문득 우리에게 그런 추악한 모습을 하지 않게 해주고 가신 엄마에게 고마울 뿐이다....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