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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창고 2008/12/27 18:09 봉피리
(봉피리/인터넷간이역/2008/12/27)
정태춘, 그는 가수라기보다는 시인이다. 음유시인. 그리고 깨어있는 이 시대의 참다운 지성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사리사욕에 집착않았다. 오직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었으면, 지금보다 더 공평했으면, 지금보다 더 깨어났으면, 민중들....힘약한 민중들의 삶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의 걸걸한 목소리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가 토해내는 구절구절은 소름을 돋게한다. 그는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왔다. 대한민국과 민중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를 향해, 그의 진정성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그렇게 살지 못하는 안일무사를 경멸하며.....그가 풀어놓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아, 대한민국....
박건호 작사, 김재일 작곡에 정수라가 불러 인기를 얻었던 '아,대한민국'과 동시대에 발표된 곡이다. 전두환 정권 때이다.
박건호 작사의 그것은 건전가요였고, 정태춘 작사의 그것은 민중가요였다. 전자가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자는 뜻으로 기획된 곡이라면 후자는 가진 자들의 악과 횡포들, 그에 비유되는 유린된 민중의 삶을 그리고 있다.
전자의 '아, 대한민국'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등의 가사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정화위원회'의 기획의도가 여실히 배어있는 곡이다. 방송에서도 꾸준히 틀어주는 친절(?)로 40만장이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에 비해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민중들은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시원스러워했다.
1. 아, 대한민국 .... 1990.4 정태춘 작사/작곡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 당하는 정숙한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꺽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2. 떠나는 자들의 서울
가는구나 이렇게 오늘 또 떠나는구나
찌든 살림 설움 보퉁이만 싸안고
변두리마저 떠나는구나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지 저들을 버리는 배반의 도시
주눅든 어린애들마저 용달차에 싣고
눈물 삼키며 떠나는구나
아 여긴 누구의 도시인가 동포 형제 울며 떠나가는 땅
환락과 무관심에 취해 버린 우리들의 땅
비틀거리며 구역질하며
가는구나 모두 지친 몸으로 노동도 버리고 가는구나
어디간들 저들 반겨 맞아줄 땅 있겠는가
허나 가자 떠나는구나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지 저들을 버리는 독점의 도시
울부짖는 이들을 내리치는 저 몽둥이들의 민주주의
절뚝거리며 떠나는구나
아 여기 누구의 도시인가 동포 형제 울며 쓰러지는 땅
분노와 경멸로 부릅뜨는 우리들의 땅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며
가는구나 하늘 맑은 곳으로 이제 주소없이 떠돌지라도
사람의 땅에서 쫓겨 그 땅에 눈물 뿌리며
저들 식구가 떠나는구나
아 여기 누구의 도시인가 동포 형제 울며 쓰러지는 땅
분노와 경멸로 부릅뜨는 우리들의 땅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며
가는구나 하늘 맑은 곳으로 이제 주소없이 떠돌지라도
사람의 땅에서 쫓겨 그 땅에 눈물 뿌리며
저들 식구가 떠나는구나
사람의 땅에서 쫓겨 그 땅에 눈물 뿌리며
오늘 또 떠나는구나 오늘 또 떠나는구나
3. 우리들의 죽음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붙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에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4. 일어나라 열사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구나
여기 한 아이 죽어 눈을 감으나
남은 이들 모두 부릅뜬 눈으로 살아
참 민주, 참 역사 향해 저 길
그 주검을 메고 함께 가는구나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저기 저 민중 속으로 달려 나오며 외치는
앳된 목소리들 그이 불러 깨우는구나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바람이 분다, 저길 보아라
흐느끼는 사람들의 어깨 위 광풍이 분다, 저길 보아라
죽은 자의 혼백으로 살아온다
반역의 발굽아래 쓰러졌던 풀들을
우리네 땅 가득하게 일으켜 세우는구나
바람이 분다, 욕된 역사 위
해방의 깃발되어 저기 오는구나
자, 부릅떠야 하네 우리들
잔악한 압제의 눈빛을 향해
자, 일어서야 하네 우리들
패배의 언 땅을 딛고
죽어간 이들 새 역사로 살아날
승리 부활의 상여를 메고
자, 나아가야 하네 우리들
통일 해방 세상 찾아서
5. 황토강으로
저 도랑을 타고 넘치는 황토물을 보라
쿨렁쿨렁 웅성거리며 쏟아져 내려간다
물또랑이 좁다 여울목이 좁다
강으로 강으로 밀고 밀려 간다
막아서는 가시덤불 가로막는 돌무더기
에라, 이 물줄기를 당할까보냐
차고 차고 넘쳐 간다.
어여 가자, 어여 가. 구비구비 모였으니
큰 골짜기, 마른 골짜기 소리 지르며 넘쳐 가자
어여 가자, 어여 가. 성난 몸짓 함성으로
여기저기 썩은 웅덩이 쓸어버리며 넘쳐 가자
가자~ 어서 가자, 큰강에도 비가 온다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가자~ 어서가자
가자~ 넘쳐가자
막아서는 가시덤불, 가로막는 돌무더기
에라, 이 물줄기를 당할까보냐
차고, 차고 넘쳐 간다.
어여 가자, 어여 가, 쿠르릉 쾅쾅 산도 깬다
옛따, 번쩍, 천둥 번개에 먹장구름도 찢어진다
어여 가자, 어여 가, 산 넘으니 강이로다
강바닥을 긁어 버리고 강둑 출렁 넘실대며
가자~ 어서 가자, 옛 쌓은 뚝방이 무너진다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가자~ 어서가자
가자~ 넘쳐가자
가자~ 어서 가자, 옛 쌓은 뚝방이 무너진다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가자~ 어서가자
가자~ 넘쳐가자
가자~ 어서가자
가자~ 넘쳐가자~~
6. 한여름밤
한 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은 참 좋아라
한낮의 태양 빛에 뜨거워진 내 머릴 식혀 주누나
빳빳한 내 머리카락 그 속에 늘어져 쉬는 잡념들
이제 모두 깨워 어서 깨끗이 쫓아 버려라
한 여름 밤의 고요한 정적은 참 좋아라
그 작은 몸이 아픈 나의 갓난 아기도 짐시 쉬게 하누나
그의 곁에서 깊이 잠든 피곤한 그의 젊은 어미도
이제 편안한 휴식의 세계로 어서 데려 가거라
아무도 문을 닫지 않는 이 바람 속에서
아무도 창을 닫지 않는 이 정적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그의 꿈 속으로 바람은 부는데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아직 더운 열기 식히지 못한
치기 어린 이 젊은 가슴도
이제 사랑과 연민의 비로 후드득 적셔 주어라
한 여름 밤의 빛나는 번개는 참 좋아라
작은 안락에 취하여 잠들었던 혼을 깨워 주누나
번쩍이는 그 순간의 빛으로 한 밤의 어둠이 갈라지니
그 어둠 속을 헤매는 나의 길도 되밝혀 주어라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이 소나기 속에서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이 번개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나의 창으로
또 번개는 치는데
7. 인사동
장승 하나 뻗쳐다 놓고
앗따 번쩍 유리 속의 골동품
버려진 저 왕릉 두루 파헤쳐
이놈 저놈 손 벌린 돈딱지
쇠죽통에 꽃 담아 놓고
상석 끌어다 곁에 박아 놓고
허물어진 종가 세간살이
때 빼고 광 내어 인사동
있는 사람, 꾸민 사람 납신다
불경기에 파장 떨이 다 넘어가도
고단한 신세 귀한데 가니
침 발라 기름 발라 인사동
놋요강에 개 밥 그릇까지
가마 솥에 누룽지까지
두메 산골 초가 마루 밑까지
뒤져 뒤져 쓸어다 돈딱지
열녀문에 효자비까지
충의지사 공덕비 향내음까지
고려 신라 백제 주춧돌까지
호시탐탐 침 흘리는 인사동
양코쟁이, 게다 신사 납신다
문 열어라 일렬종대 새치기 마라
푸대접 신세 물 건너 가니
침 발라 기름 발라 인사동
8. 버섯구름의 노래
강가의 풀꽃들이 강물의 노래에 겨워
이리로 또 저리로 흔들 흔들며 춤출 때
들판의 아이들이 제 땅을 밟고 뛰며
헤어진 옛 동무들을 소리쳐 부를때 #
바로 그 때, 폭풍과 섬광 #
피어 오르는 버섯구름 하늘을 덮을 때
공장에서 돌아온 나 어린 노동자
지친 몸을 내던지듯 어둔 방에 쓰러질 때
갯가의 할아버지 물 건너 산천을 보며
갈 수 없는 고향 노래 눈물로 부를 때
도회지 한가운데 최루탄 바람이 불고
불꽃과 그 뜀박질로 통일을 외칠 때
가슴엔 우국충정 압제의 칼날을 품고
얼굴에는 미소 가득 평화를 외칠 때
9. 형제에게
이땅에 흐느끼는 소리여.
높은 담벽 아래 시들은 풀잎
저보다 더욱 초라한 역사여
깨인 자들에게 쏟아지는 시련,
달빛 속으로 쫓기는 양심들
주검 없이 죽어간 청춘의 꽃들
다시 활짝 피일 참 세상은 어디
아아, 묶여서도 통일이라네
다시 만나야 할 형제 있으니
아아 갇혀서도 해방이라네
조국의 역사로 살아숨쉬니...
10. 그대, 행복한가
그대, 행복한가 스포츠 신문의 뉴스를 보며 시국을 논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어린이 유괴 살해 기사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보수 일간지 사설을 보며 정치적으로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점심 굶는 어린애들 얘기는 있지, 있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 애들을 굶기고 죽이는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시장 개방, 자유 경제, 수입 식품에 입맛 돋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칼로리와 땀냄새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주한 미군 기동 훈련과 핵무기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평화와 인도주의의 구호는 있지, 있구 말구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희생양이며 표적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거듭나는 공화국마다 그 새 깃발을 좇아 행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민족과 역사의 거창한 개념은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막강한 공권력과 군사력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보호하고 지키려는 그 무엇은 있지, 그 무엇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 중 누가 그것들의 대상이며 주인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끊임없이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매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 그들을 가두는 법전과 감옥이 있지, 법전과 감옥
그대, 알고 있나 노동하는 부모 밑에 노동자로 또 태어나는 저 아이들, 아이들
그래, 저들은 결국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을
그런,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11. 우리들 세상
이제 집 사기는 다 틀렸네
예라, 드런 놈의 세상, 미친놈의 세상
승질나서 뒈지겠네
맑은 하늘의 햇살이 남한이나 북한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일 세계나, 제삼 세계나
아니, 서울의 변두리 셋방살이 내 집에도
차별없이 평등히, 따숩게 내리 쪼일 때
일층의 젊으신 싸모님 햇살이 따가워
넓은 마루 유리문에 그물같은 커튼을 치고
발톱에, 발톱에 매니큐어, 매니큐어
빨갱이 보다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를 때
지하실에 우리 집 애들
책가방만한 창가로 흘러드는
찌그러진 한 조각의 햇살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며 놀다
그 창에 대고 조용히 묻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이제 잘 살기는 다 틀렸네
예라, 있는 놈의 세상, 가진 놈의 세상
열 받쳐서 미치겠네, 하체 힘도 쪽 빠지네
맑은 하늘의 햇살이 남한이나 북한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일 세계나, 제삼 세계나
아니, 서울의 변두리 비닐 하우스 동네에도
차별없이 평등히 따숩게 내리 쪼일 때
썩어가는 나라 자본의, 독점의 발톱이
한 필지, 두 필지 숨차게 줄을 그어댈 적에
촌놈들 살겠다고 떠나온들 무엇하나
파출부에 날품팔이 쌩몸 팔아 연명할 적에
못난 부모들 막일 나가고,
버려진 애들 아무꺼나 줏어 먹고,
아무데나 묽은 똥질을 할 적에
깡패들이 들이닥쳐 그 집을 부술제
그 아이들이 조용히 묻네
"우리들 세상은 이제 망한 건가요?"
아니, 이제 바로 시작이다
저 망치, 몽둥이를 뺏아라, 이제 너희들의 것이다
이 더런 집들을 때려부수자, 부숴! 부숴!!
"이젠 또 무엇을 부술까요?"
여기 패배와 순종, 체념과 그 비굴
이 애비의 의식에 내리쳐라
이 죽은 의식에 내리쳐라, 쳐라! 쳐라!!
이제 바로 시작이다
이제 바로 시작이다
우리 세상, 우리 세상! 우리 세~상~!!
정태춘, 그의 노래는 우리들의 세상, 민중들의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며 끝난다.
그가 바랐던 필생의 소원처럼 그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했다. 지난 10년간 그의 바람을 100% 채워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10년만 더 흘러간다면 그런 날이 가시권에 들어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민중들은 기다리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무제한의 자유와 권리를 누렸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처음 시작된 진보주의가 시작부터 모두를 만족시켜줄 수 없음에도 이해하고 참아내지 못했다. 진득히 기다렸다면....이해했더라면.....
그들이 선택한 선택은 최악이었다. 다시 80년대의 삶으로 돌아갔다.
정태춘, 님의 노래를, 걸걸한 뚝배기 목소리에 실리는 구구절절의 아릿한 노랫말을 다시 들어야하는 날이 다시 찾아왔다. 가진 자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 찾았고, 민중들의 시계는 30년 거꾸로 돌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이제 우리들 세상은 망한 건가요?' '아니, 이제 바로 시작이다'.......바로 시작이다. '패배와 순종, 체념과 그 비굴'을 깨부수고 우리들의 세상을 찾아야 한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