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한복
심 영 희
우리 옷 한복이 구경거리가 된지 오래 되었다. 설날이나 추석명절이면
어김없이 입었던 우리의 한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서서히 양복 양장에 밀려나면서 한복 입은 사람을 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우리 옷은 특별한 날에는 입는 예복이 되어버려 자녀들 결혼식 날이나 부모세대들의 칠순이나 팔순 잔치 때 입는
옷으로 인식되어 있다.
나는 한복을 즐겨 입는 편에 속했지만 나도 모르게 차츰 한복 입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아예 몇 년 동안은 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 되면 어머니께서 며칠 밤을 새워 만드신 설빔으로 일명 때때옷이라
불리던 한복을 빨리 입을 날이 왔으면 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불편하다기보다는 예쁜 옷을 입었다는 충족감으로 며칠을 한복을 입고 다녀도 즐겁기만 했던 어린 시절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곧잘 한복을 입었다. 학부모 모임이나 또는 친구들끼리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복을 입고 모여서 사진도 찍고 춘천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심지어 학부모들과 단체로
한복을 맞춰 입고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학교행사에 단체한복을 입고 나타나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일이다. 아들학교에서 어머니회의를 한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나는 딸네 학교에 가느라 참여를 하지 못했다. 그 당시는 학교마다 어머니모임이 결성되었고 회장선출을
했다. 어떤 어머니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왔는데 다른 사람이 그 어머니를 회장후보로 추천을 했는데
기겁을 하며 자기는 그런 거 할 줄 모른다며 교실문을 열고 내빼더라는 것이다.
추천한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통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신여성인줄 알고 추천을 했는데 나가는 모습을
보니 긴 꼬리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안주인 모습이었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이렇게 예전에는 짧은 통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활동하는 직장인도 꽤 있었다는 얘기다. 세월의 흐름에 한복 입은 사람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고 노출이 많아진 편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요즈음은 아이들 유치원재롱잔치에도 한복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히고 심지어 자녀들 결혼식 날에도 한복을
빌려 입는 사람들이 있다니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성스러운 행사에 부정 탄다고 쓸고 닦고 가리는
것도 많았던 결혼식 날에 누가 입었었는지도 모르는 옷을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내 생각으로는 그리 환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설이나 추석명절에도 고궁이나 박물관에 한복을 입고 오면 무료입장이라는 얘기를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게 되는데 얼마나
한복을 입고 다니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해서 한복 입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내 어릴 때를 생각해 손자손녀들에게도 한복을 자주 입혔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한복 입으라고 하면 누가
본다고 안 입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복이 우리나라 옷이고 한복을 입는 것은 자랑이고 당연한 것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사람들이 자꾸 본다고 입기를 거부한다.
한복 입은 사람이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지금도 나는 한복에 미련을 버리지는 못한다. 서랍장을 가득 채운 한복들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외출을 해야 하는데 생각해낸 것이 한 달에 한번 한복을 입고
모이는 모임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듣고 있던 막냇동생의 반응이 구경거리만큼 충격이다. 그런 모임
할 사람 하나도 없겠다 언니 혼자 실컷 하라고 해서 한바탕 웃은 적도 있지만 한복이라면 무조건 거부감부터 나타내는 현실에서도 나처럼 가끔은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한복으로 곱게 단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모임은 하지 않고 있는데 딱 하나 모임을 하고
싶다면 한복 입고 모이는 모임은 할 계획이었는데 한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았다.
한지공예반 수강생이 선생님은 한복을 입어야 한지공예와 잘 어울리지요 하기에 나 한복 좋아하는데 우리 한 달에 한번은
단체로 한복입고 나와서 수업할까요 했더니 선생님 입고 오시면 저도 입고 올 수 있어요 저 예쁜 한복 있는데요 하는 말이 참 반가웠다. 한국인은 역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선조들이 만들어낸 한복을 우리들은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랍에서 한복을 꺼냈다. 전통한복 외에도 개량한복이라는 생활한복도 꽤
여러 벌 나온다. 한 벌씩 입고 큰 거울 앞에서 한복 패션쇼를 한다.
생활한복은 대체로 여유가 있어 아직은 입을만하다. 양장 같으면 어림도 없다. 옷은 나이대로 입는다고 십 년 이십 년 전에 입던 옷은 허리를 늘리기 전에는 도저히 입을 수 없는데 생활한복은
그 정도는 아니다.
우리의 옷이 구경거리가 아닌 의복으로 자리를 지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체육시간에 한복은 못 입어도 국어시간이나 국사시간에는 한복을 입을 수 있다.
나름대로 때와 장소에 맞게 한복 입는 날을 정해봐야 하겠다. 그래도 문학상을 타던 시상식장이나
전시장에서 주인공이 되었을 때 한복 입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어머니들이 긴 한복을 입고 허리에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치마자락을 허리춤에 올려 꽂은 채 내 아들딸을 위해
운동회 때 운동장에 흙먼지를 날리며 바람처럼 달렸고, 줄다리기에서 지지 않으려고 치마꼬리를 밟히면서도
줄을 잡아당겼다.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고 운동장을 질주하던 그 시절의 아버지들 모습도
영화장면처럼 지나간다.
너와 나의 구경거리가
아닌 우리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구경거리가 아닌 즐길 거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