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연락(宴樂)과 천국 잔치
이사야 5: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스올’은 사망 곧 죽음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나아가 악한 자를 심판하는 형벌의 장소인 지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스올은 욕심이 한이 없습니다. 끝없는 욕심으로 지상의 모든 것들을 다 삼킵니다. 아담 이래로 특별한 두 사람,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과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엘리야 선지자 외에 스올의 넓고 탐욕스러운 입에 빨려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자도 그 많은 물질도 죽음 앞에 사면장을 얻지 못합니다. 용사도 그 용맹스러움과 많은 군대로써 죽음과 대결해서 이기기 못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혜자의 달변도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을 때 그를 설득시켜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깊고 높은 종교적 덕행을 쌓은 사람도 사망 앞에서는 무력할 뿐입니다.
특별히 스올은 세상 연락(宴樂)을 경멸합니다. 그것들을 삼켜버리고 무의미와 진토 속에 뒹글게 만들어버립니다. 아무리 한 때 호화롭고 영광스러움을 자랑하던 도시도 스올은 삼켜버립니다. 보십시오. 저 이집트의 영광스러운 과거의 영화도 이제 쓸쓸한 사막에 덩그렇게 놓여진 피라미드밖에는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저 찬란했던 로마의 드높던 세계 제국의 영광도 이제 여기 저기 쓰러져 있는 오래된 석재 기둥들만이 여행객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게 해줄 따름입니다. 저 페르시아의 영광을 자랑하던 초호화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도 지금은 단지 유적만 남아서 과거 페르시아가 중동과 아프리카와 유럽을 석권하여 드넓은 영토와 막대한 부와 풍성한 문화를 누렸던 영광을 애잔하게 떠오르게 할 따름인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그 영광도, 권력도, 아름다움도, 쾌락도 다 스올이 삼켜버립니다. 일장 춘몽과 같이 잠시 감간 후면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 쾌락과 영광을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이 모든 것을 시험한 후에 깨달은 진리를 깊은 한숨과 아쉬움과 뒤늦게 깨달은 후회를 담아 젊은이들에게 일깨워주고자 이렇게 반복하여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그러므로 한없는 부귀 연락을 몸소 누렸던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이르기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도서 12:13,14)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 역사에서 인생의 쾌락의 상징인 잔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이 호화롭게 술 취하며 즐겁게 잔치할 때에 급작스럽게 실패와 재앙과 죽음과 슬픔이 들이닥치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쾌락의 허무와 인생의 불완전성을 깊이 깨닫게 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욥의 자녀들이 장남의 생일 잔치에 한 집에서 먹고 마시는 중인데 갑자기 바람이 닥쳐 그 집 기둥 네 모퉁이를 치니 무너져 자식들이 다 죽고 말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즐거워야 할 그 날이 가장 큰 슬픔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이 양털 깎는 날에 큰 잔치를 벌여 술에 잔뜩 취해 왕처럼 거들먹거릴 때, 그의 박대를 받고 돌아간 다윗의 군사들이 분노하여 다시 다윗을 필두로 하여 칼을 차고 그의 잔칫집을 향하여 출동하였으니,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만류로 당장 목숨은 건졌지만 나발은 며칠 있다가 그만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양털 깎는 날에 압살롬은 자기의 친 형제들을 초대하여 그의 형 암논이 술에 취할 때 종들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게 했으니, 악한 자 암논은 잔칫날 술 취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도 스스로 왕이 되려고 패거리를 모아 잔치를 벌이는 중에 솔로몬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의 잔치는 초상집이 되고 말았고 그로 인하여 그를 도왔던 자들이 결국 패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궁내대신 집에 가서 잔뜩 술에 취했을 때 군대장관 시므리의 반란으로 칼에 죽임당했고, 바벨론 왕 벨사살 왕 역시 나라가 전쟁 중인데도 큰 술판을 벌였더니 그 밤에 바사와 메대의 연합군이 바벨론 도성의 철벽을 조용히 뚫고 들어와 그 날에 왕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헤롯 왕의 생일 잔치에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육감적인 춤을 춰서 헤롯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니, 헤롯이 맹세하기를 나라의 절반이라도 달라하면 주겠다고 하므로, 살로메가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아 의인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 하였습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옥에 가뒀으나 그의 인격과 신앙을 존경하여 자주 옥에 찾아가서 교훈을 받았으나, 그 잔칫날의 실언으로 인하여 결국 어쩔 수 없이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 살로메에게 건네주었으니, 세례 요한의 목이 잘림과 더불어 헤롯 자신의 영혼의 목도 그날 밤 잘라졌음이 분명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연락의 잔치는 궁극적으로 인생의 불완전함과 위험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허영과 자만과 안일과 세상 자랑과 교만과 영적 우맹에 빠지게 만들어 결국 패망과 슬픔과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도 잔치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눅 13:29)
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19:1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진정한 즐거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참된 만족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 천국인데, 이 지상에서도 천국 잔치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 백성의 특권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계신 곳은 곧 천국인데 그 자리는 언제나 잔칫 자리와 같았습니다.
창기와 세리의 집에 들어가 식사 대접을 받을 때 그곳은 사람들이 북적이면서 다들 기뻐 잔칫자리가 되었습니다. 죄가 용서받고 새로운 삶에 대한 결심이 있고 회개의 은혜가 있고 나눔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병이 치유받고 귀신이 떠나가고 모자람이 채워지는 공급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가나의 혼인 잔치는 포도주가 떨어질 위기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초대한 덕에 예수님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드시는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천국 잔치는 교회를 통하여, 성도를 통하여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께 기도가 드려지고 성례가 베풀어지고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는 천국의 지상 분점인 것입니다. 이곳은 은혜의 잔칫자리입니다. 세상 연락(宴樂)의 헛되고 무의미하고 재앙의 불씨가 되는 잔칫자리와는 다릅니다. 천국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지상의 예표입니다. 이러한 잔칫 자리는 우리가 얼마든지 사모하고 자주 모여야 합니다.
잠언 9장 말씀에 이르기를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잠 9:1~6)
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지혜의 기름진 잔칫집입니다.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고 어리석음을 버리는 곳입니다. 이러한 자는 장차 하늘나라 천국 잔칫집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연락을 즐기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스올의 캄캄한 곳, 영원한 슬픔의 장소일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은 세상 연락, 쾌락, 물질, 권력, 사람들의 찬사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은 하나님 가까이 거하면서 그의 계명을 즐거워하며 그의 뜻을 기꺼이 행하는 삶입니다. 천국의 작은 분점인 교회에 모여 지혜와 진리의 말씀을 배우며 천국의 백성들과 함께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향락(享樂)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딤전 5:6).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개역참조, 전도서 7:4). 그러므로 스올에 깊이 빠져버릴 세상 쾌락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금욕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가운데 합당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행복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그리고 저 천성문에 들어가서도 한결같이 천국 잔치에 늘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오늘날 세상은 세상의 호화로움, 외적인 위대함, 외적인 아름다움, 시끄럽고 떠들썩한 일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참으로 무익한 것이며 위험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천국 잔치인 교회에서의 예배, 봉사에 힘쓰게 하옵소서. 또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에서 따사로운 사랑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