짦은소설
반전의 미소
김 주 석
선릉 역 네거리에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면 뒤따라 테헤란 벨리의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빌딩에 휘황찬란한 네온의 조명이 번쩍거리기 시작하였다. 구정이 눈앞에 다가온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코끝을 알싸하게 하고 온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대형건물 뒤편 골목에 있는 포장마차를 아줌마가 끙끙대며 끌고나와 지하철 통로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아 손수레에 있는 포장을 내리고 엘피 가스통을 연결하여 야간 장사를 시작하기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그리고는 좁은 공간에서 안주를 장만하거나 그릇을 닦는 허드렛일로 쉴 틈이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계속되는 경기불황 탓에 이것도 술장사랍시고 명절대목을 타면서 찾는 손님이 뜸하여 설렁하기만하다. 그러나 손 놓고 뒷짐진체 빈둥거릴 팔자가 되지못해 오늘도 포장마차를 끌고 나온 것이다. 손님 받을 채비가 끝나 허리를 펴며 물기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잠시일손을 놓고 지하철이 도착하면 출입구로 우르르 사람들이 길거리로 토해져 나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든다.
딸 선영이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는지, 중학생인 태준 이는 연탄불을 갈았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불평한마디 없이 스스로 자기할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애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이때 건장한 사람들이 포장 문을 들치고 들어와 첫 손님을 맞게 되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 날씨가 춥지요.”
상냥하게 인사를 건 낸다.
“아줌마, 여기 소주 두어 병하고 빨리되는 안주 아무거나 하나 주세요.”
허름한 잠바를 입은 모양새하며 투박한 말본새로 보아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같았다. 준비된 안주와 술이 재빨리 나왔다. 바삐 술을 마시면서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비쩍 마른 젊은이가 몸집이 크고 얼굴이 넓적한 사람에게 물었다.
“십장님, 원청회사에서 설 대목 임금이 벌써 풀렸다면서요?”
“나도 듣기는 했네. “
그러자 옆에 있든 사람이 술잔을 비우면서 끼어들었다.
“지금쯤은 하도급업체인 우리 회사에서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도 남을 시간이 잔 아요.”
또 다른 동료가 까칠하게 거들었다.
“설 대목이 며칠남지 안았는데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다함께 절박한 심정들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모두현장 소장에게 찾아가 밀린 임금문제를 따져봅시다.”
“이 시간에 소장이 자리에 있을까?”
하면서 십장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조금 전에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누가 알려주었다. 언성을 높이는가하면 또 다른 사람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노동청에 고발하여 체불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모두들 격앙되어 남은 술잔을 황급히 비우고는 우르르 몰려나갔다.
조금은 오동통하면서 귀여운 모습의 아줌마는 남긴 음식물을 치웠다. 시끌벅적하든 포장마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명절이 눈앞인데도 여태까지 밀린 노임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아줌마는 받을 돈이 있다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올해는 물가가 올라 작년보다 10%넘게 제사비용이든다고 방송에 보도되고 있으나 차례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와 명절 밑이 더욱 외롭고 서글퍼진다.
잠시 후 포장마차 문을 들치고 세 사람의 젊은이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어이 오늘 날씨한번 춥네."
"따끈한 안주 좋은 것 있어요?"
아줌마는 조금 전의 수심어린 표정을 금방 지우고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한다.
"뜨끈한 어묵 국물하고 맛있는 닭 도리 탕과 꼬치구이가 준비되어있어요."
"참이슬 한 병하고 닭볶음탕을 얼큰하게 해 주세요."
체격이 외소 해 보이고 파리한 얼굴의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주문했다.
잽싸게 술과 안주가 나오자 저녁을 먹지 않았는지 뜨거운 국물을 연신 불어가며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술과 안주를 먹어치운다. 특유의 비릿한 이미지를 풍기며 그들 끼리 통하는 은어를 서로 주고받으며 심각한 표정들이다. 또한 자주시계를 들여다보며 추가로 소주두병을 눈 깜짝할 사이에 게 눈 감추듯 비우 고는 급하게 일어섰다. 주변빌딩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젊은이들 같아보였다. 좁은 포장마차영업에서는 빨리 마시고 빨리 일어서는 손님을 제일 반긴다.
뒷자리를 치우기가 바쁘게 사십대 중반의 사람과 삼십대의 손님들이 들이닥쳐 포장마차 안을 가득 매웠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게 손님이 연신 찾아들어 싱글벙글하며 신바람이 났다.
자리에 않기도 전에 헌칠한 키에 서글서글해 보이는 영호가 민구 서러워하면서 말했다.
"오늘 모처럼 형님을 좋은 곳으로 모시려 했는데 이렇게 돼 버렸네요."
"이 사람아 우리 사이에 만나는 자체가 중요하지 어디서 만나든 무슨 상관인가."
"하여간 예나지금이나 형님 고집은 알아준다니까요."
"아줌마, 여기 술 몇 병하고 국 물 있는 안주 좀 주이소.'
조금 있다 술과 안주가 차려져 나왔다.
"형님 먼저 한 잔 받으시지요."
영호가 먼저 중년의 사내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래 다들 오랜만에 건강한 얼굴 대하니 반갑구먼."
술잔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가족의 안부와 그간일상의 이야기가 계속되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져 보이는 창식이가 쭈뼛쭈뼛하면서 하면서 중년의 남자에게 물어본다.
"일전에 형님에게 전화로 부탁드린 허가 문제 좀 알아 보셨는지요?"
"응 아직도 도시계획심의가 결정되지 않아 좀 더 기다려야될것 같아."
"알겠 심더,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이소."
한참 진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바같이 소란스러워지면서 검은 탱크 잠바를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쳐 포장마차를 흔들면서 큰소리로 아줌마를 불렀다. 벌써 이들이 누구인지 아는 듯 아줌마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황급하게 밖으로 불려나갔다. 이어서 고양이 쥐 잡듯이 몰아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장사 못하는 것 잘 알면서 계속 이렇게 할 거요."
“아저씨, 한번만 봐주세요.”
애처롭게 애걸복걸하는 아줌마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스레인지와 엘피통은 차에 싣고 포장은 걷어버려.”
단호하게 철거 지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장마차 안에서 있든 사람들은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모두들 어리둥절하여 멍하게 않아있었다. 오든 날이 장날이라 모처럼 만난 술자리분위기가 한순간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 차츰 사태를 파악한 그들은 중년의 남자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잠시 뒤 태식이가 모두의 바램을 중년남자에게 전했다.
“형님 오늘 분위기를 위해서 한번만 힘써주지요.”
그러나 그는 말없이 꿈쩍하지 않고 않아있었다. 또다시 포장마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아줌마의 울음 섞인 음성이 들린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중년의 남자는 떠밀리듯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철거반장 있으면 나 좀 봅시다.”
떨어져 있든 반장이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자기를 찾는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이고 오 주임님이 여기 웬 일이십니까.”
반장이 허리를 굽히며 깍드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주위에 있든 단속원들도 뒤따라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고향후배들과 어울려 소주한잔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명절 밑에 웬 단속 이지요?”
낮은 목소리로 반장이 오주임에게 귀속 말을 하였다.
“저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진정을 넣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자꾸 민원은 들어오고 죽을 지경입니다.”
라며 철거반장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추운 날씨에 고생들이 많습니다.”
오주임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 포장마차는 내가책임지고 오늘 밤 안에 자진철거를 시킬 테니 지금철거는 잠시보류해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희들이야 더 좋지요.”
“아줌마, 우리가 다른데 들렸다 올 때까지 손님 내보내고 철거 하지 않으면 몽땅 실어 갑니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란 듯이 저승사자처럼 기세등등하게 한바탕 요란을 떨고는 철거요원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다시 포장마차 안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않았다.
“선생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어떻게 신세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줌마가 오주임에게 다가와 두 손을 모으고 연신 머리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오주임은 고향동생들 앞이라 오히려 쑥스러워했다. 그리고 오늘 밤 안에 자진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과 당분간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포장마차를 빼앗기지 않고 구청에 불려가 확인서를 쓰고 고발조치 당하여 벌금을 물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다며 거듭하여 고마워했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 오주임이 일어나 지금까지의 술값을 계산하려고 하자 아줌마가 한사코 뿌리치는 것은 물론 후배들도 벌 때처럼 들고일어나 만류한 바람에 어쩔 수없이 도로 자리에 않았다. 술값은 태식이가 우격다짐을 하다시피 하여 지불하였다.
“오늘밤은 장사도 접어야하므로 이제부터는 제가간단하게 약주한잔을 대접할까합니다.”
라고 제안 하며 여러 사람을 둘러보고 동의를 구했다. 모두들 그것만은 거절 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이어서 포장마차 문을 내리고 다른 손님은 받지 않은 채 다시금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껑충한 키에 모션이 큰 민철이가 설렁하게 가라않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너스레를 떨며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형님, 요새신수가 훤해지셨는데 좋은 일이 라도 생긴 모양이지요.”
“이 사람아 월급쟁이가 그날이 그날이지 좋은 일이 머가 있겠나. 그나저나 자내가 하는 건설쪽은 사정이 어떤가?”
“침체된 장기불황에 죽을 지경입니다 만 다행이도 저는 공사수수가 몇 건 있어 그럭저럭 버티고는 있습니다.”
“요새는 밥 굶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네.”
이어서 그들은 고향소식에 대한 따끈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소곳하게 듣고만 있든 아줌마가 끼어들었다.
“죄송한데요, 혹시 고향이 왜관 약목 아니신가요?”
희멀끔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광형가 아줌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줌마가 어떻게 저희들의 고향을 알아요? “
“지금이야기하고 있는 진숙 이는 저하고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모두들 깜짝 놀라며 아줌마를 새롭게 쳐다보았다. 사실 아줌마는 이들의 옆 마을이 고향 이고, 이름은 배명자라고 밝혔다. 이때 광형이가 뜻하지 않게 고향사람을 만 난 것을 반가워하는 의미에서 건배를 제이한 후 몇 차례 술잔이 돌고나서는 첨차 동향사람의 친밀한 감정이 더해졌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들은 차츰 명자가 처한 현실문제에 동정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앞으로 장사하기는 어려우므로 안전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른 장소를 물색하든가, 아니면 아참에 포장마차에서 손을 떼고 건설공사 밥장사 쪽도 고려해보고, 고정된수입이 보장된 직장을 알아보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기성세대와 처세에 밝은 인간들이 건성으로 위로하거나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는 것과는 달리 젊은 그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출구 없는 미로에 몸부림치는 여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외면하지 않고 열린 마음과 가슴 따듯한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명자는 삶에 힘을 실어주는 그들이 따듯한 동행자처럼 느껴지고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지금까지 후배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든 오주임이 이런 문제는 오늘밤 안에 당장결말을 볼 수 없으므로 구정이 지나고 다시 만나 생각을 모아보자고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때 고향의 명자도 참석시키자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술자리가 끝나고 귀가를 서두르며 헤어졌다.
명자가 뒷자리를 치우고 있을 때 민철이가 헐래 벌떡 거리며 뛰어 들었다. 핸드폰을 두고 가서 찾으러온 것이다. 구석에 떨어져있는 핸드폰을 찾아 건네주면서 명자는 민철의 명함을 얻고 오주임의 근무부서도 알아두었다.
깊은 겨울밤 포장마차를 자진철거하고 올려다본 하늘은 온통회색으로 뒤 덥혀져 있어 울컥 치밀어 오르는 속울음을 삼켜야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박한 현실에서 행운의 미소를 짓는 반전의 온정에 믿음을 심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