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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포 들꽃풍경 원문보기 글쓴이: 오늘은 좋은날
한국인의 술, 막걸리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 가지고 오면서 주전자 꼬지로 술맛을 보면 달짝지근했다>
막걸리의 어원에는 배꽃이 핀다
어린 시절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술심부름을 하곤 했다. 아버지는 술을 할 줄 몰라 드문 일이었지만 술심부름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지금처럼 병에 담긴 막걸리가 아니라 주전자에 한 통 사 가지고 오는 심부름이었다. 술을 사 가지고 오면서 주전자 꼭지로
술맛을 보면 달짝지근했다. 얼굴이 빨개질 만큼은 아니었지만 약간 취기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우윳빛 막걸리가 가진
마력이 있었다. 아이들은 마시면 안 된다는 금기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술에 대한 신비함을 가지게 되었다.
젊은 날에는 여행을 할 때면 들판에서 참을 먹다가 지나가는 객을 불러 막걸리와 함께 밥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이 훈훈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베푸는 마음은 낯선 사람에게도 농사짓는 마음이었다. 들러 앉아 뜨거운 햇살 아래서 먹
새참과 막걸리 맛은 넉넉하고 풍성했다.
전통적인 막걸리는 곡물과 누룩, 물이 주재료이다. 누룩이 노릇노릇해지면 잘게 부순다. 누룩을 고들고들하게 찐 밥과 함께 섞어 물
에 담가 그대로 두면 술이 된다. 아주 원리가 쉽고 단순하지만 좋은 술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이때 독의
아래와 윗부분의 온도차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저어준다. 우리 전통주는 한 차례 발효돼 만들어지면 알코올 함량이 보통 15
도 정도 된다. 이 상태에서 조금 더 진행되면 노란 물이 위에 뜬다. 이것을 ‘전주’라 한다. 그것을 떠서 용수에 담가 거기서 노란 것을
떠서 먹는 것이 ‘청주’다. 술통에 넣은 고두밥 전부가 완전 발효되기 직전에 둥글고 큰 밥알과 함께 떠낸 맑은 술이 바로 ‘동동주’다.
가운데 맑은 청주를 걷어내고 아래에 가라앉은 걸쭉한 부분을 체로 지게미를 밭아낸 것이 ‘막걸리’다.
막걸리의 어원은 술통에서 막 걸렀다고 하여 막걸리고, 탁주는 맛이 텁텁하고 탁해서 탁주라고 불리어졌다고 하지만 막걸리의 정확
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고대어에서 그 어원을 말하는 학자도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막걸리 방언인 '막베기'에서 그
어원을 찾는 학자도 있다. [막;酒]+[베기;酒]가 술이란 뜻의 동음동의어 합성어로 일본방언 마키[まき;maki=酒]와 아케 [あけ;ake=
酒]가 같은 동어원임을 주장하는 학설이다. 막베기는 고대어에서 '삭다(醱酵)'와 누룩[黃麴]의 어원인 '막'과 '베기'에서 생겨났다는
학설이다.
또한 술의 어원은 범어에서 쌀로 빚은 술을 지칭하는 수라(sura)에서 시작하여 술로 되었다고 한다. 술의 본래말은 "수블/수불" 이었
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수울', '수을'로 기록되어 있어 이 수블은 "수블→ 수울 →수을 → 술" 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수블'의 의미
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술을 빚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발효현상 중 물에서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
불'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다른 의견으로는 술을 마시는 모양에서 술술 잘 넘어간다고 할 때를 그린 의성음이 '술'의 어원 이라는
통속 어원설도 있다.
어린 시절 술을 사오면서 맛보았던 술의 달짝지근한 맛이 막걸리가 막 걸러서 나온 술맛은 아니다. 막걸리의 처음 원액도수는 15%
정도로 강한 편이다. 좀 더 달면서 강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 물을 타서 7% 정도로 만들어진 것이 유통되는 막걸리이다. 한국인과 막
걸리와의 인연은 깊고 흐뭇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막걸리는 음식이면서 문화고 향토적 서정으로의 여행을 열어주는 문화의 통로역
할을 한다. 막걸리의 다른 이름인 이화주梨花酒라는 것에서도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배꽃이 필 때쯤 담근다고 해서 이화주다. 배꽃
이 필 때는 농번기를 준비할 때다. 봄이 막 무르익기 시작해서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은 날이 이어지면서 변덕스러운 봄날씨가 심술
을 부리지만 이미 대세는 봄이다. 배꽃이 피는 시절에 복숭아, 사과, 앵두꽃이 비슷하게 피어난다. 성미 급한 산수유꽃은 벌써 지기 시
작한다. 밭을 갈고, 논을 갈고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때이다. 담가놓은 막걸리가 익어갈 때면 이미 농사철이다. 봄은 깊어져 농번
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근대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어 두고 필요에 따라 맑은 술인 청주나 꽃이나 과실 껍질을 이용한 향·약주를 빚었다. 목적에 따라 탁주와
소주로 만들었다. 주세법의 등장 이후 청주, 가향주, 한약재를 넣은 약용약주가 모두 ‘약주’로 단순화되었다. 청주와 가향주, 약용약
주를 찌꺼기만 제거해 뿌옇게 만든 탁주를 막걸리로 불리어지다가 이내 탁주와 막걸리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게 됐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탁주보다는 막걸리로, 청주보다는 약주로 술을 나누기 시작했다. 약주와 막걸리가 전통주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됐
다. 특히 청주라는 용어는 일본술로 인식하게 됐다. 탁주의 상대적 의미로 약주라는 용어가 청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탁주의 한가지인
막걸리가 전통주의 상징이 됐다는 사실은 용어의 정립을 다시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갖는다.
우리나라 고유 발효주인 막걸리는 ‘금방 거른 술’ 또는 ‘술 마실 때 바로 걸러서 마시는 술’ 등이란 해석과 함께 ‘거칠게 거른 술’ ‘끝
까지 거른 술’로 해석된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거칠게 거른 술’ ‘끝까지 거른 술’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
걸쭉한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면 세상이 한결 가벼워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삶에서 몽롱한 기쁨이 주는 위안도 커서 빡빡한 삶
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것이 술이다. 술은 몽환의 상태를 발견한 인류의 걸작이다. 제의용에 빠지지 않은 건 환각이 주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말걸리에 대한 향수는 한국인의 기질에도 담겨있다>
막걸리에는 또 다른 토속적 서정이 있다
술이 역사만큼 우리에게 막걸리의 역사는 길다.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시대별로 술 종류의 변천을 살펴보면 수렵, 채취시
대의 술은 과실주였고, 유목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젖술이 만들어졌다.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는 농경시대에 들어와서야 탄생했
다. 청주나 맥주와 같은 곡류 양조주는 정착농경이 시작되어 녹말을 당화시키는 기법이 개발된 후에야 가능했다. 소주나 위스키와 같
은 증류주는 가장 후대에 와서 제조된 술이다. 술의 원료는 그 나라의 주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막걸리는 그 역사만큼 이름도 많다. 배꽃이 필 때 술을 빚는 술이라 해서 이화주라고 했듯이 다른 이름도 많다. 색깔이 희다고 해
서 백주(白酒), 탁하다고 하여 탁주(濁酒), 집집마다 빚어 먹었다고 해서 가주(家酒), 농사지을 때 먹는다고 하여 농주(農酒), 제사지
낼 때 제상에 올린다 해서 제주祭酒,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 하여 국주(國酒)라고 불렸다. 그만큼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애환을 함께
하면서 우리 생활과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밖에 막걸리는 실생활에 유익한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 하여 오덕주(五德酒)라는 이
름으로 민족의 애환을 함께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인사불성일 만큼 취기가 심하지 않고, 음식처럼 허기를 면하게 하며,
힘 빠졌을 때 기운을 돋아주고, 안되던 일도 한 잔하면 너그러운 웃음이 나게 하고, 여럿이 마시면 살면서 쌓였던 마음의 응어리도 풀
어주는 술이라고 하여 오덕이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삼국지』「부여 전」에는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
는 큰 행사가 있었으니 이를 영고(迎鼓)라 하였다. 이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고 전한다.
또 『한전(韓傳)』에는 마한에서는 5월에 씨앗을 뿌리고 춤과 노래와 술로서 즐겼고, 10월에 추수가 끝나면 다시 한 번 제사와 축제
를 열었다고 전한다. 고구려도 역시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동맹(東盟)이라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술을 빚어 마셨으며, 의례에서 술이 이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술은 이웃나라 중국에까지 전해진 기록이 남아있다. 한나라 때부터 낙랑주하여 조선의 술이 중국의 시문에 오르고 있다. 양나
라 때 기록을 보면 '강소성곡아(江蘇省曲阿)에 고려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고구려여인이 그 아래서 술을 빚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술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 후 유명해진 곡아주의 뿌리는 고구려의 막걸리였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한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사라질까 두렵구나' 라고 읊은 것으로 미루어 한국의 토속술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가 우리나라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부터다. 이달충의 시에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
아 지금의 막걸리와 유사하다. 서민의 술이었으며 여러 가지 기록과 정황으로 보아 제례에까지 올라가는 대중적이면서도 최고의 대우
를 받는 술이었음을 보여준다.
막걸리는 곡주로서의 대중성과 품격있는 술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우선 술을 만드는 과정이 단순하지만 술을 맛있게 빚기 위
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옛날사람들은 좋은 술 만드는 법을 육재(六材)라 하여 여섯 가지 재료를 선택하는 방법을 지켜왔다. 첫째
는 쌀을 고를 때는 벼가 펼 때부터 일제히 익은 벼를 골라 쌀을 준비하고, 둘째는 누룩을 적당한 시기에 만든 것을 골라야 한다. 즉 누
룩을 띄우는 시기를 여름으로 잘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셋째는 쌀과 누룩을 섞어 술을 담글 때 깨끗하게 다루어야하고, 넷째는 샘물
이 좋은 것을 택해야 하며, 다섯째는 좋은 도기를 사용하라고 되어있다. 도기는 숨을 쉬는 용기이므로 술맛에 영향을 준다. 여섯째는
술이 잘 익도록 온도를 잘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다는 술은 유일하리라 본다>
막걸리는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영양의 보고지만 술은 술이다
술을 약으로 먹는 경우가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는 드물다. 약술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하
지만 대중술이 몸에 좋은 성분을 다량 가진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다는 술은 유일하리라 본다. 서양의
경우라면 빵 대신으로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인데 서양인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밥 같은 친근감이 가는 술로 막걸리만한 술은 없다. 알콜도수가 낮아 거부감이 적으며 곡물로 만들어져 밥 대신할 수 있는 영양성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발효되어 추가로 부가되는 영양소가 늘어나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특별한 술이다. 영양성분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우선 막걸리의 성분을 보면 물이 80%, 나머지 20% 중에서 알코올 6~7%, 단백질 1.9%, 탄수화물 0.8%, 지방 0.1% 로 되어있다. 막
걸리에는 사람에게 유용한 필수 아미노산이 10여종 함유되어 있다. 다른 술과는 다르게 막걸리엔 1.9%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단백질
의 보고라고 하는 우유와 비교해 보면 술로서 막걸리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다. 주식에 가까운 우유에는 단백
질이 고작 3% 들어있다. 술에 담긴 단백질의 양은 많은 것이다. 1리터의 막걸리를 마시면 19그램의 단백질을 먹게 되는 셈이다. 19그
램의 단백질이면 콩 57그램, 두부 380그램, 생선 95그램과 맞먹는 단백질의 양이다. 막걸리 이외의 다른 술에 들어 있는 단백질을 보
면 청주가 0.5%, 맥주 0.4% 이며 소주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다음으로 식이섬유를 살펴보면 막걸리 성분 중에서 물 80%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식이섬유로 10% 안팎을 차지한다. 막걸리 한 사발에
들어있는 식이섬유의 양은 놀랍게도 같은 양의 식이음료와 비교해 오히려 많다. 식이섬유의 역할은 잘 알려진 대로 대장 운동을 활발
하게 한다. 식이섬유는 변비 예방은 물론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도 있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본다. 막걸리 1ml에 든 유산균은 106개에서 108개 정도 된다. 일반 막걸리 페트병이 700~800ml인 것을 고려하
면 막걸리 한 병에는 700억~800억 개의 유산균이 들어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반 요구르트에 들어있는 유산균은 1ml 당 약 107마리
로 막걸리와 비슷한 유산균을 함유하고 있으니 막걸리 한 병을 마시면 65ml 짜리 요구르트를 100내지 120병을 마신 격이니 설명의 필
요가 없을 정도이다. 유산균은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 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
어 막걸리에는 비타민 B가 풍부해 중년 남성들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피로완화와 피부재생, 시력 증진 효과에 도움이 된다. 좀 더
깊이있게 살펴보면 비타민 B2 약 68㎍, 콜린이라 불리는 비타민 B군 복합체가 약 44㎍, 비타민 B3 50㎍ 들어 있다. 마치 영양식을 설
명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술이다. 막걸리에는 알맞게 들어있는 알콜 성분은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서 체
내에 축적된 피로물질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로물질이 쌓이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기미 주근깨도 생길 수 있는데 피로
물질 제거에 한몫을 하고 있는 젖산, 구연산, 사과산, 주석산 등도 들어있다. 막걸리는 마시면서 즐거워해도 된다. 하지만 막걸리는 분
명 술이라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과음은 이 좋은 성분이 있음에도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는 고향의 향수이고 가난한 시절의 그리움이다>
막걸리는 창조적 진화를 꿈꾼다
막걸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만큼 막걸리가 가진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막걸리가 가진 장점이자 아쉬운 점은 저가제품이라는
인식이다. 원가로 보면 맥주와 와인, 보드카, 데킬라와 다르지 않다. 술 제조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숙성과정도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먹던 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다.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자연스럽게 가치
가 오른다. 가치의 상승은 가격의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와인의 가격이다. 특정 와인은 턱없이 비싸지만 오래 묵혔다
고 해서 성분의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신비의 물질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격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 비싼 것을 구
매하면서 흐뭇하게 하는 것은 와인이 가진 특별함이 아니라 문화를 사는 가격이다. 특별함은 곧 문화의 창출 가치이며 그 문화를 가치
로 환산한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막걸리도 변할 때가 왔다. 특별함은 문화로 포장하면 가능하다. 다른 식품의 예를 들어보면 가능하리라 본다. 죽하면 가난한 사람이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었지만 <본죽>이란 제품은 밥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죽을 사먹는다. 이유는 죽에 문화를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식품에 이야기를 집어넣는 것이다. 제조방법의 특이성, 지역특성의 상품화, 장인의 이름을 딴 가치의
부여 등 변별력을 상품에 넣어 만들면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고품격의 자리를 인정받게 된다.
변하지 않으면 혼자만 변한 것이 되는데 문제는 뒤쳐진 상태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퇴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제 막걸리가 다
시 태어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과제들을 찾아야한다. 막걸리의 르네상스 시대에 막걸리의 신분 상승을 고민해본다. 우선 세계시장
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막걸리의 표준화작업이 필요하다.
상품이름을 통일시켜야 한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들다고 한다. 막걸리(makgeolli)란 영문표기가 한글의 영문
표기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어렵다면 굳이 고집하지 말고 쉽게 표현하거나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막걸리를 '쌀 와인(rice
wine)'이나 쌀맥주(rice beers)로 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와인은 '발효된 과실주'를 지칭한다. 막걸리는 곡물로 양조한 술이고 유럽
에선 이런 술을 '맥주(beers)'로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판매하려면 '쌀 맥주'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는 주장에 설
득력이 있다. 막걸리는 유럽 맥주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이 들판에서 일하다 즐기는 술이었다. 막걸리는 와인처럼 음미하면서 마시는
술이 아니라 맥주와 마찬가지로 시원하게 들이키는 술이다. 알코올 농도도 맥주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무시하기 어렵다. 사실 쌀이라
는 특정 곡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막걸리의 재료로 한때는 쌀이 아니라 옥수수가 대종을 이루기도 했다. 대신에 한
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안도 있다. '코리안 와인'이나 '코리안 비어'도 하나의 방안이다. 아예 한국적인 것을 그대로 고집
해서 독단에 가까운 이름을 지을 수도 있다. 와인이나 비어라는 이름을 빼고 '코리안 술(korean sul)'이라고 명명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막걸리의 독특함을 과감하게 선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지 싶다. 막걸리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되 앞서 언급했듯이 영어표기를 쉽게 하는 방안이 가장 무난하고 좋을 듯하다.
다음으로 포장이다. 상품을 고부가화하려면 디자인이나 상품의 포장이 중요하다. 고급스러운 병이나 막걸리에 맞는 기발한 모양의
병을 개발해서 상품화하면 한결 고급화된 막걸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자기나 백자의 본을 떠도 좋고, 고대 호리병을 본 딴 모
양으로 독특하게 만들어도 좋다. 이미 나와 있는 막걸리에는 기발한 상품도 있다. 색상을 우윳빛으로만 고집하지 않고 보다 과감하게
착색하는 방안도 좋다. 빨강, 노랑, 초록빛 막걸리의 시판이다. <아리막걸리>라는 이름을 가진 막걸리다. '아리아리동동'이
라는 민요의 후렴구에서 따온 이름인듯하다. 막걸리 특화의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쌀로 술로 빚었으며 쌀 이외에도 고구마, 감자뿐만
아니라 상식을 뛰어넘는 재료를 사용한다. 사과와 미나리다. 진화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어야 선두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막걸리의 진화는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막걸리가 '한국 술'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표준화작업이 절실하다. 판매 과정에서 발효가 진행
되는 막걸리는 표준화되지 않은 제품이다. 이는 불신을 낳을 수가 있다. 가장 맛이 드는 기간 숙성시킨 다음 더 이상 발효가 되지 않도
록 하여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막걸리를 표준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을 꼽으라면 소주와 막걸리가 한판 대결을 펼쳐야 한다. 1907년 일제강점기의 주세령 공포 이전까지 전국에
는 360개가 넘는 술이 존재했다. 옛 문헌 기록을 조사해 보면 전통 술의 종류는 1000종이 넘었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민중과 함께 고
락을 함께한 술은 막걸리다. 토속적인 천연발효제 누룩, 곡물, 물을 주재료로 한 막걸리를 품질표준화와 등급화해서 저가제품과 고가
제품의 분리하여 막걸리의 대중화와 고급화를 동시에 꾀해야 한다.
이제는 문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술도 문화다. 음식만큼 문화적인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도 드물다. 한
류의 복판에 한식이라는 음식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문화저력이 힘이지만 새로운 문화의 창출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막걸리 축
제를 국가적인 사업의 하나로 민간기업에 맡겨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적인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만의 고유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조적 진화만이 살길이다.
글, 신광철
첫댓글 대포한잔 그립다. 해서 오늘 딱한잔했다.꿀꺽
다음에는우리 막걸리한잔 어때요?
글이 길어 읽어 볼 사람이 없다싶었지요. 막걸리 좋지요. 한 잔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