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느 씨족이나 세월이 오래되면 숫자가 많아지면서 자연히 분파가 갈리게 마련이다. 우리 백씨도 그 열외는 아니어서 29개파로 갈려 있다. 世數가 빠른 파계는 중시조로부터 40세를 넘어선 집안도 있다. |
| ||||||||||||||||||||||||||||||||||||||||||||||||
|
| ||||||||||||||||||||||||||||||||||||||||||||||||
|
| ||
우리 백씨는 모두가 시조 송계공(松溪公)의 후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송계공부터 계세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앞의 [계세와 중시조]에서 규명한 것처럼 연계하는 데 여러 가지 모순과 무리가 따른다. | ||
白宇經(백우경)
|
字는 경천(擎天)이요 號는 송계(松溪)인데 唐나라 소주(蘇州)사람이다. | |
|
벼슬은 삼중대광 우간의대부(三重大匡右諫議大夫)로 참소를 받아 대우도(大牛島)에 귀양갔다가 이듬해 봉화현(現慶北奉化)에 옮기시어 2년뒤에 풀려났으나 다시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묘는 송계공 묘아래 자좌(子坐)라고 하나 찾지 못하여 영월당 경내에 사공단비(四公壇碑)를 세워 공이하 4대를 합사(合祀)하고 있다. | |
|
字는 자평(子平)이요 벼슬은 광록대부(光祿大夫)로 中國에 건너가 서주대도독(徐州大都督)을 지내다 신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또는 애장왕(哀莊王)때 각간시중(角干侍中) 벼슬로서 당나라 임금의 부름을 받고 가서 자광록대부(金紫光綠大夫) 서주도독대윤(徐州都督大尹)을 제수하고 9년만에 돌아왔다고도 한다. 묘는 송계공 묘 아래 좌강외 임좌(左岡外壬坐)라고 한다. | |
|
字는 여화(汝和)이며 한주태수(漢州太守)를 지냈다. 묘는 송계공 묘 아래 좌강외 임좌라고 한다. | |
|
字는 구지(久之)이며 시호(諡號)는 문원(文元)이다. 신라 헌덕왕 丙午년(서기826년)에 우잠태수(우잠은 현 황해도 금천군)가 되자 한산이북(漢山以北) 주민들 일만명을 동원하여 패강장성(패강은 현 대동강) 300리를 구축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삼국사와 대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주읍지(慶州邑誌) 제2권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당나라에 가서 첨의사를 지내고 4년 뒤에 돌아와 우잠태수가 되었다고도 전한다. 묘는 송계공 묘 옆에 있다고 한다. | |
|
字는 덕이(德而)이고 시호(諡號)는 충정(忠正)이며 벼슬은 어사대부(御史大夫)다. 中國에 가서 대양도독(大梁都督)을 지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묘는 하양현(지금 경산군 하양읍)에 있다고 한다. | |
|
字는 운로(雲路)요 시호는 익열(翼烈)이다. 벼슬은 헌안왕(憲安王)때 삼중대광 좌간의대부(三重大匡左諫議大夫)에 올랐는데 그 사적(事蹟)이 여지승람(與地勝覽) 남포인물론(藍浦人物論)에 실려 있다. 묘는 남포현 쌍계산에 있다고 하나 실전(失傳)이다. 또는 남포현 계림산임좌에 있다고도 하고 영풍현(지금의 경북 영풍군)에 있다고도 한다. | |
|
헌강왕(憲康王)때 이부시랑(吏部侍郞)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또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서시랑(尙書侍郞)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고도 하며 개주(지금의 개성)에 살았다고 한다. | |
|
호는 연정(烟亭)이요 시호는 소장(昭章)이며 벼슬은 광록대부 문하시중 정당문학평장사(光祿大夫門下侍中政堂文學平章事)다. 그의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뛰어나 그 때 사람들이 옛날의 이윤(伊尹)과 여상(呂商)의 반열(斑列)이요 소하(蕭何)와 조삼(曺參)의 여주(與주)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고운최치원(孤雲崔致遠)선생이 찬명(撰銘)하고 묘는 남포현 양각산 동막동 갑좌인데 중세(中世)에 실전되었다가 영조 경신년 여름(서기 1740년)에 후손 시규(時糾)가 지석(誌石)을 찾아 개봉(改封)하고 매년 양력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 |
|
자는 은삼(殷三)이요 호는 관죽당(觀竹堂)이며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어제(御製)에 말씀하시기를 公은 孔子를 배우고 안자(顔子)를 사모(思慕)하여 정도(正道)에 변함이 없었다한다. 벼슬은 광록대부 정당문학 태자태부 평장사(光祿大夫 政堂文學 太子太傳 平章事)다. | |
|
호는 고와(孤窩)요 시호는 경열(敬烈)이다. 벼슬은 광록대부 중서성상장군(光綠大夫 中書省上將軍)이며 고운 최치원선생(孤雲 崔致遠先生)이 전서(篆書)한 찬지(撰誌)가 있다한다. | |
|
자는 내연(乃淵)이요 벼슬은 광록대부 문하성사(光綠大夫 門下省事) 또는 문하시중 대사도(門下侍中 大司徒)라고도 한다. | |
|
중국에 가서 국자진사(國子進士)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배(配)는 김씨인데 원외랑 김성한의 딸이다. | |
|
호는 담재(澹齎)인데 중국에 가서 국자생원(國子生員)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배(配)는 배씨인데 한림학사 배천서의 딸이라고 한다. 또 이씨라는 설도 있다. 아우는 홍걸(弘傑)인데 광록대부 정당문학 평장사 벼슬을 지냈다. 홍걸의 배(配)는 최씨인데 좌복야 최등완의 딸이다. | |
|
중시조(中始祖)다. 백씨는 중시조를 1세(世)로 하여 계세하고 있다. |
| ||
기해대동보는 전국의 백씨를 24개파로 분류하여 족보를 편집했고 임술대동보는 29개파로 나누어 대동보를 발간했다. | ||
(禪亭公派) |
파조는 인관(仁寬)인데 중시조 창직(昌稷)의 7대손 원태(元泰)의 증손이며 천뢰(天賚)의 손자다. | |
(仁州公派) |
파조는 역(繹)이며 유신(裕臣)의 아들인 진양(眞陽)의 6대손이다. | |
(鰲山君派) |
파조는 계영(桂英)인데 간미(簡美)의 둘째 아들 양신(良臣)의 팔대손이며 인익(仁益)의 손자다. | |
(長湍公派) |
파조는 유(維)인데 양신(良臣)의 팔대손이며 환(環)의 증손이다. | |
(淡庵公派) |
파조는 양신(良臣)의 현손인 문보(文寶)다. | |
(陽谷公派) |
파조는 간미(簡美)의 셋째 아들인 무신(武臣)이다. | |
(太師公派) |
파조는 간미(簡美)의 넷째 아들인 가신(可臣)이다. | |
(靜愼齋公派) |
파조는 중시조의 12대손인 장(莊)이다. 간미의 다섯째 아들인 경신(景臣)의 6대손이며 천장(天藏)의 증손이고 인경(仁景)의 장자(長子)다. | |
(佐郞公派) |
파조는 경신(景臣)의 9대손인 사순(思純)이다. 인경의 증손이며 보성공(甫城公)의 손자다 | |
(訓正公派) |
파조는 보성공(甫城公)의 현손인 인현(仁賢)이다. 참교공(參校公) 사수(思粹)의 장손이며 익장(益長)의 장자다. | |
(都承旨公派) |
파조는 익장(益長)의 둘째 아들인 인영(仁英)이며 훈정공(訓正公)의 아우다. | |
(參奉公派) |
파조는 도승지공(都承旨公)의 아우인 인웅(仁雄)이다. | |
(別坐公派) |
파조는 보성공(甫城公)의 현손인 인호(仁豪)다. 참교공(參校公)의 둘째 아들인 익견(益堅)의 장자다. | |
(文敬公派) |
파조는 별좌공(別坐公)의 아우인 인걸(仁傑)이다. 이 파는 충숙공파(忠肅公派), 또는 휴암공파(休庵公派)라고도 한다. 창평공계(昌平公系)와 당산공계(棠山公系)로 분류하고 있다. | |
(靑山公派) |
파조는 보성공(甫城公)의 둘째 아들인 효옹(效雍)이다. | |
(山陰公派) |
파조는 보성공의 셋째 아들인 효연(效淵)이다. | |
(臨陂公派) |
파조는 보성공의 넷째 아들인 효약(效若)이다. | |
(中郞將公派) |
파조는 문익공(文翼公)의 손자인 문(汶)의 6대손 공( )이다. | |
(奉翊大夫公派) |
파조는 천장(天藏)의 손자인 인석(仁碩)이며 천장의 둘째 아들 전(琠)의 아들이다. | |
(保功將軍公派) |
파조는 천장의 셋째 아들인 환(環)의 증손 운실(雲實)이다. | |
(府使公派) |
파조는 천장의 증손이며 환(環)의 손자인 수희(受禧)다. | |
(金陵府院君派) |
파조는 천장의 넷째 아들인 산(珊)의 손자 수(粹)인데 인성(仁成)의 아들이다. | |
(咸判公派) |
파조는 천장의 다섯째 아들인 황(璜)의 팔대손 응상(應祥)이다.> | |
(節制公派)) |
파조는 천장의 다섯째 아들인 황(璜)의 후손인 흥남(興男)이다. 제주에 많이 살고 있다. | |
(修義副尉公派) |
파조는 천장의 여섯째 아들인 거( )다. 주부공계(主簿公系)와 중직대부공계(中直大夫公系)로 구분하기도 한다. | |
(侍郞公派) |
파조는 행미(行美)인데 청헌공(淸獻公) 휘(揮)의 둘째 아들이다. | |
(東林公派) |
파조는 경신(景臣)의 증손이며 정당문학(政堂文學) 천장(天藏)의 아우인 지장(地藏)이다. | |
(扶餘君派) |
파조는 영신(英臣)인데 사유(思柔)의 증손이다. | |
(文簡公派) |
파조는 문절(文節)인데 중시조의 둘째 아들인 탁(卓)의 6대손이다. 이재공계(彛齋公系)와 쌍계공계(雙溪公系)로 구분되기도 한다. |
첫댓글 ss-baek@daum.net으로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