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席毛島)의 지명유례와 지형지세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석모도는 강화도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5 ㎞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조선시대에는 송가도가 섬으로 존재하면서 교동부에 속하였으나, 석모도와 제방을 통해 연결되고 농경지가 조성됨에 따라 하나의 섬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화부와 교동부가 통합됨으로써 교동부에 속하였던 송가도(현재의 상리와 하리)가 삼산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에 이르러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이 되었다.
이 석모도는 조선역사지도인 『대동여지도』에 ‘석모로도(席毛老島)’로 표기되어 있다. 이 석모로도의 ‘석모로’라는 지명은 ‘물이 돌아 흐르는 모퉁이’ 혹은 ‘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때 이 ‘돌모로’를 한자화하면서, 바로 석모로(石毛老)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이 석모로가 석모도(席毛島)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석모도(席毛島)의 지형지세를 살펴보면 해명산(海明山, 309m)에서 낙가산을 지나 상봉산(上峰山, 316m)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섬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또한 북쪽에는 성주산(264m)이 고립된 산봉우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성주산이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성주산과 상봉산 사이의 송가평이 간척사업을 통해 형성된 농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들 산지를 제외하면 석모도는 전반적으로 200m 이하의 낮은 저평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남쪽의 어류정도도 간척사업을 통해 석모도에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석모도는 간척농경지역과 아름다운 해안 산세로 이루어진 역사적인 섬이다.
석모도와 기나긴 삶의 역사를 함께 한 보문사
한 많은 질곡의 역사가 서려있는 장소에는 항상 그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민족의 성지가 늘 상 있기 마련이다. 바로 이 석모도에는 우리민족의 기나긴 역사를 잘 대변해주는 보문사가 있다.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이 보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동해의 낙산사, 남해의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해상불교관음성지중 하나이며, 또한 보문사 마애불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3대 낙조로 잘 알려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 천년고찰 보문사의 전경
이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懷正)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곳에 와서 이러한 수려한 산세를 보고 인도의 보타낙가산과 비슷하다하여 절을 짓고 관세음보살의 성적(聖蹟)에 의하여 산 이름을 낙가산, 절 이름을 보문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때 낙가는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 이름을 나타내고, 그리고 보문사의 보문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수 없이 몸을 나투는 관세음보살의 원대한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보문사는 진덕여왕3년(649년)에 어부들이 불상과 나한· 천진석상 22구(軀)를 바다에서 건져내어 이곳 보문사 천연석굴 안에 봉안함으로써 중생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 천연석굴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설치하고, 그 천연동굴 내에 반월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撑柱)를 설치하였는데, 이 탱주 사이에 21개의 감실(龕室)이 있어 거기에 석불을 안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생들은 이곳 감실에서 불상을 바라보며 자비심을 발현한다. (현재 이 석실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 이처럼 보문사는 관음보살이 상주하여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강한 자비심의 정신이 서려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자비심은 마애불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서해낙조로 이어진다.
첫댓글 박종열 이덕이 참석요
운영진 수고가 많으십니당
참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