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이야기 36
목장은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천석길 목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임은 다양합니다. 친구끼리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고 떠드는 흉허물이 없는 수평적인 만남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나를 발견하고 또래의 생각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찾습니다. 확실히 친구들과의 만남은 세상 어떤 시간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의 모임을 통해서 즐거울 순 있지만 크게 발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비슷비슷하기에 배울 점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선배님을 만나거나 집안의 어르신을 만나는 수직적인 만남은 시간 자체는 거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내가 말하기보다는 윗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배님이나 어른들에게는 잘못을 지적받거나 책망을 들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분명히 불편한 시간이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예의가 몸에 배고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크게 발전하는 유익한 시간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만남이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수평적인 만남과 수직적인 만남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면 최고의 모임일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모임은 우리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우리의 목장이 바로 수평과 수직적인 모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소중한 만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직이란 단순히 나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깊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장에서 모이는 우리의 구성원은 억지로 만든 모임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모여진 모임입니다. 자연스럽게 모였기에 나이에 차이가 있고, 교회에 출석한 연륜도 다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경험하는 삶의 깊이도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서로의 삶을 나누다 보면 때로는 친구처럼 너무 친밀하다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때로는 인생의 선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한 수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이제 갓 목장에 출석하는 신앙의 초보자가 있는가 하면, 우리 목장에는 교회를 다닌 지 수십 년이 된 연륜이 깊은 어르신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친구처럼 조잘대지만 때로는 신앙의 핍박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 오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시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목장의 좋은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친구처럼 느껴져서 수평적인 이야기를 마음껏 하면서 스트레스를 다 날리는 것 같은 유쾌함을 느끼다가 어느 날에는 현대인들이 겪을 수 없는 엄청난 삶의 무게를 견디어 내신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엄숙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목장에서는 정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성과를 내어야 하는 압박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각자가 살아온, 또한 살아내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마음껏 토해 놓는 중에 수평적인 관계에서 나를 살펴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생의 연륜과 신앙의 깊이가 확실히 다른 선배님에게서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시간으로 발전되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며, 격식이 없는 나눔이지만 수평, 수직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냄으로써 우리의 삶이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배우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가장 깊은 곳에서 퍼 올려주는 인생의 생수를 마시고 돌아오는 시간이 목장입니다. 그래서 목장은 수평적 만남과 수직적인 만남이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