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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 중견작가 초대展 작품 일시/2019년10월10일-11월10일 장소/대구문화예술회관 8전시실 2019년10월10일-11월10일 전시광경 2019년10월9일(토) 대구MBC 문화n컷 전시장 광경 그리기의 역공법(逆攻法) - 남학호의 돌 작품세계- 장미진(미술평론가) 1. 시각적 리얼리티의 정감적(情感的) 변용 남학호는 40여 년을 줄곧 돌 그리기에 천착해온 작가이다. 그만큼 그는 ‘돌 작가’로 지명도를 갖고 있다. 작가는 돌 중에도 물가의 흔한 조약돌을 주소재로 하여 돌들이 함축하고 있는 시공간의 지층과 존재간의 상호관계를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오늘날처럼 부단히 ‘예술 개념을 넘어서는 예술의 신드롬 현상’이 지배적인 시대, 그리고 다매체의 확산과 디지털 총체예술 시대에 그는 한국화가로서 다져온 필법을 바탕으로 아날로그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그리기에 매진해오고 있다. 물론 캔버스와 아크릴물감을 매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핏 보면 서양화 계열에 전도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실상은 묘사에 있어서의 세필 구사나 담색조 톤의 채색, 그리고 심리적 여백의 운용 등에서 여전히 한국화가로서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돌을 그린 작가도 다수 있고, 자연석 오브제를 다른 재료와 병행하여 설치함으로써 그 관계성과 물성에 질문을 던진 작업들이라든가, 큰 바위를 특정 장소에 임의로 부려놓고 의미 부여를 하는 작업, 또는 돌을 파낸 흙구덩이와 병치하여 돌의 시공간성의 문맥을 현시하는 작품 등, 다양한 시도들이 동서양을 넘어 실험되어 왔다. 이런 현황에서 이 작가는 왜 묵묵히 그 많은 조약돌들을 세밀하게 그리는 일에 반평생을 바쳐온 것일까. 그것은 단지 눈으로 보이는 세계의 재현, 즉 시각적 리얼리티의 구현을 위한 정밀한 묘사일 뿐인가. 아니면 그를 넘어서는 남다른 의도가 있어 묵묵히 실현해오고 있는 것인가. 이 같은 관점에서 작가의 예술의지의 방향과 그 정신적 필연성은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인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2. 동시대 미술의 문맥에서 본 회화의 역공법(逆攻法) 동시대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애프터 포스트모더니즘(After post-modernism)이라고도 불리는 시대로 이미 접어들어 있다. 그만큼 미술의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돌아보면 사실적인 그리기를 통해 그 이면의 리얼리티에 감응하고 또 한편 형상 너머를 조망해보려는 화가들의 욕구와 회화의 본연적인 필연성은 여전히 잔존한다. 20세기 초엽부터 지향해온 현대회화사의 문맥을 잠시 돌아보면, 회화평면의 본성에 육박하여 일루전을 제거하는 평면화와 추상화 작업을 통해 순수조형적인 요소로의 환원에서 재현적인 전통회화로부터의 이탈을 꾀하였다. 이 같은 모더니즘의 전통도 이미 또 다른 전통이 되어버린 21세기를 우리는 살고 있지만,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성기였던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극사실주의(Hiper-realism, Super-realism, Photo-realism) 운동을 돌아보면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보이고,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을 뛰어넘는 회화에 대한 요구가 여전히 잠재되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서구미술사에서의 이 같은 유행은 미술의 앞뒤 문맥에서 볼 때, 순수조형의 건조함에 대한 반발과 또 다른 일상적 이미지의 회복에 대한 요구와도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의 뜨거운 초점까지를 제거한 극사실적 묘사는 매우 차갑고 중성적인 회화로 귀착하면서 리얼리티의 지평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극사실회화가 등장하여 당시 미술의 한 흐름 을 이루기도 하였지만, 미국형이나 유럽형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문맥에서 개인적인 감정이입과 함께 새로운 리얼리티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전통의 한 자락은 동시대 미술에까지 이르러 다양한 양식으로 창조적인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 남학호의 그림들은 한국화가의 기본 필법과 채색법 등의 기법을 기저로 하여 개성적인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모더니즘이 반(反)미학과 순수조형성을 지향하며 진행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이미지의 회복과 해체 및 탈장르, 탈회화, 다매체, 다중영상 등으로 진행되어온 일련의 흐름이 현대미술의 정공법(正攻法)이었다면, 남학호의 회화는 그리기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또 다른 묘법으로 인간적 감성을 자극하는 나름의 역공법을 구현해 보여준다. 3. 작업의 방향성과 예술 의도 그의 작업의 방향성과 의미연관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 조약돌을 소재로 한 작가의 주된 모티브는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유비적으로 표출하는 데 있다. 부단히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와 온갖 풍상 속에서 닳고 닳은 조약돌들의 무더기는 수많은 삶의 지층과 그 층위를 반영하는 삶의 알레고리(allegory)이기도 하다. 돌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의 흔적과 상흔을 드러낸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작가가 바닷가에서 만난 돌들은 이처럼 단순한 소재를 넘어 평생을 그려도 마저 다 못 그릴 예술 대상이 되었다. 둘째, 작가는 자연 그대로의 돌들을 재현하여 그리기보다 흙도 묻고 모래도 묻은, 또는 한 면이 깨지기도 하고 기형으로 마모된 돌들을 세심하게 포치하여 돌이 품고 있는 세월의 결을 드러내려 노력한다. 화면에 표현된 빛과 그늘조차 자연광의 효과라기보다 작가의 심리적 공간에서 반추되는 명암의 교차라고 볼 수 있다. 조약돌들의 색이나 무늬도 천차만별이고, 그만큼 돌멩이의 세포까지 그려낸 듯한 그의 화포는 일종의 우주공간이면서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등을 맞대고 살아내고 있는 사회적 공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셋째, 이 같은 시각적 리얼리티의 정감적 변용을 위해 작가는 캔버스에 젯소를 바르고 연필 스케치로 다양한 돌들을 포치한 다음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작업한다. 이전에는 주로 장지 위에 먹과 아크릴을 섞어 작업하였지만, 삼합지에 먹이 흡수되어 의도하는 효과를 얻기 힘들었다. 캔버스 작업은 쌓여 있는 돌들의 깊이와 명암 표현이 장지보다 좀더 용이하고, 그림이 다 된 뒤, 위에 투명 바니쉬를올려 보존성과 견고한 느낌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넷째, 그동안 수묵의 필묵법을 익혀온 작가이므로 서양의 재료를 이용하여도 역시 세필의 필치나 색감의 조율, 여백의 운용 등에서 동양적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큰 사이즈의 작품들이 주로 블루 톤, 레드 톤, 브라운 톤 등, 담색의 단색조로 표현되어 적요(寂寥)로움 속에서 정조(情調)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다섯째, 주로 150호에서 1200호(횡으로 8미터)까지의 대형 캔버스 사이즈로 이루어진 이 번 전시작품들은 갤러리공간과 작가의 심상공간이 어우러지면서, 외적인 공간 확장의 효과와 함께 내적인 침잠과 여백의 울림 효과를 극대화한다. 화포의 전면에 돌들이 부각되고 물이나 하늘의 구도는 매우 암시적이지만, 보는 이들은 우주적 시공간을 연상하면서 감상하게 된다. 대자연의 상리(常理)를 옮기는 작가의 집요한 시선이 압도적인 파노라마로 관중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여섯째, 조약돌 무더기 위에는 얼핏 보아서는 놓치기 쉬운 나비가 등장한다. 나비는 동양문화권에서 관념연합으로 부귀와 장수를 뜻하면서 화제로 많이 등장하지만,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또 다른 의미연관을 엿볼 수 있다. “내 화면 속에는 필연처럼 나비가 날아와요. 표면적으로 생명이 없는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동적 의미를 띄지만, 의식의 저 깊은 계단 아래 늘 잊히지 않고 있는, 젊은 날 갑자기 세상과 별리(別離)한 내자(內子)가 나비로 환유한 거죠. 장자의 꿈속처럼 아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아내인지 모를 일이지만, 참으로 이별은 허망한 거예요.” 이 같은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그려온 수많은 돌들은 바로 작가의 자화상이며 무상한 삶을 이겨내는 수행의 과정이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섬세하게 그려온 나비 한 마리를 영상작업하여 날개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도록 조형적 장치를 도입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끝으로, 이 같은 작가의 작업 방향을 돌아볼 때, 오늘날처럼 다변화해 가는 미술 상황 속에서 흔들림 없이 무언(無言)의 한 물상(物象)과 40년 넘게 대좌(對坐)해오고 있다는 것은 작가의 범상치 않은 구도자적 자세를 엿보게 한다. 면밀한 자연 관찰을 전제로 하여 작가의 마음을 옮기는 것이 동양 전통미술의 요체라면, 개성적인 심상 구도와 공간 운용을 통해 초물상적(超物像的)인 감각을 유발시키는 일련의 시도는 조약돌이라는 소재를 관통하여 무한한 대자연의 섭리를 환기하려는 작가의 예술의지(Kunstwollen)를 반영한다. 앞으로 삶의 총체성 인식과 더불어 매체나 공간 활용에 있어 보다 과감한 시도를 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http://www.koreacoor.com 멋진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