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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망 |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이 열릴 때마다 화제가 만발하다. 전국적 정치 축제 또는 정책 홍보의 장으로 점점 자리매김하고 있다. 양회 기간 중에는 각 성 정부마다 업무 보고대회도 열린다. 이날은 베이징 시 차례였다. 베이징 시장을 역임했던 왕치산(2)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 전해지는 보고대회에서 베이징인민예술극원 원장의 지루한 문화 부문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왕치산은 갑자기 끼어들어 농담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별에서 온 그대> 방송 중인 중국 인터넷 ⓒ LETV 화면 캡처 |
“지금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드라마 봤는가? 거 별… 뭐더라?”라며 화제를 꺼냈다. 뒤쪽에 있던 사람이 작은 소리로 “별에서 온 그대”라고 했고 왕치산은 웃으며 ‘왜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지 하는 문제를 생각해봤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의 핵심과 영혼은 역사전통문화의 승화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왕치산이 비유한 전통문화는 ‘가정생활의 소소한 일이나 고부갈등 그리고 윤리와 삼강오륜과 같은 주제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유교적 전통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중국대중문화에도 유교적 내용을 담아내면 좋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중국 지도자들은 한동안 잊혀졌던 공자(3)를 때때로 인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한다. 전 세계에 중국문화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은 ‘공자학원’이다. 될 수만 있다면 ‘국교’로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삼강오륜 속에 담긴 역사적 전통은 중앙집권적 통치에 아주 알맞은 사상이기 때문이다.
중국언론 천바오(晨报) 등은 “별에서 온 그대” 속에 묻어 있는 유교적 전통을 ‘중국의 전통문화 승화’로 단정지어 보도한다. ‘중국’ 또는 ‘중화’가 만들어낸 역사전통을 한국이 가져가서 드라마로 승화했다는 논리다. 이런 관점은 중국에서 한류와 관련된 평판에 아주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 2006년 11월 신화사가 인용 보도(4)한 중국 문화평론가 장궈타오(张国涛)는 당시 <대장금> 열풍에 대해 ‘기적에 가깝다’고 평가하며 ‘한국의 문화적 배경은 중국만큼 심오하지 않다.’고 했다. 중국 언론의 요지는 창피하다는 것이다.
왕치산이 중국대중문화의 발전과 관련해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되자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1997년 <사랑이 뭐 길래?>가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나 2006년 <대장금>이 전국을 후끈 달궜을 때와 똑같이 2014년 <별에서 온 그대>의 열풍에 늘 한결 같은 반응과 반성이다.
3월 7일자 중국신문망(中国新闻网)에 게재된 문화평론가 양싱둥(杨兴东)는 ‘문화는 경계가 없고 품질의 문제이고 심사나 제도의 개혁, 보다 선진화된 창작환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중문화산업이 발전하려면 영화 드라마의 사전제작 후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 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왜 매번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서 ‘전통문화의 보호라는 구호야말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는 자조 섞인 반성도 있다. 항상 ‘어느 나라 사람이냐? 당신의 DNA는 무엇이냐?’며 심사 때마다 까다롭게 지적하는 정책결정자들을 은근히 비판도 한다.
왕치산은 <별에서 온 그대>를 꺼내 들어 좋은 대중문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국의 DNA에 맞지 않는 스토리, 정부의 입장에 반대하는 소재나 주제에 대해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국의 정책이야말로 글로벌 DNA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삼강오륜의 덕목을 잘 담고 있는 한국 드라마처럼 하면 좋겠다는 정치지도자의 인식이라면 중국은 한참 멀었다. 1980년대 독재정권 시절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던 시절에 좋은 드라마가 나올 수 없던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쉽다. 13억 인민들이 보는 중국드라마는 <별에서 온 그대>보다 훨씬 관람수가 많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들이 ‘유교적’ 관념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중국 대륙 밖으로 한 발자국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1) 한류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중국 <북경청년보> 기자다. 1999년 “한국 유행이 밀려오다(韩国的流行拥来)”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래했다. 당시 한국 드라마와 음악 등이 유행하면서 한국가수들의 콘서트에 중국여학생들이 과민하게 반응하자 이를 우려하면서 쓴 기사다. 다분히 부정적이고 비아냥조의 언급이었다. 양국 수교 이후 <질투>를 시작으로 한국드라마가 소개된 이유는 당시 중국방송산업이 구조개혁을 하면서 채널이 다양화해지면서 부족한 콘텐츠 수급차원에서 편성하기 시작한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베이징 라디오의 <서울뮤직>을 통해 한국음악이 알려지면서 HOT, 클론 등 그룹이 중국에서 콘서트 붐을 일으켰다.
2) 왕치산은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한 당 원로 야오이린(姚依林)의 사위로 1980년 중반 이후 지방으로 내려간 젊은 개혁파 사군자 중 한 명으로 주목 받았으며 중앙무대에서 금융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주룽지 총리의 은퇴 이후 좌천됐다가 2003년 사스(SARS)가 베이징을 뒤덮는 긴급상황에서 시장으로 중용돼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일등공신이었다.
3) 2011년 11월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공자의 조각상이 등장했다. 약 2,500년 전 학자가 중국 사회주의 국가를 상징하는 광장에 등장하자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론 동향이 좋지 않자 다시 국립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공자는 여전히 중국사람들에게 반드시 ‘유일한’ 존경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이 맹목적인 우리나라에 비해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부익부 빈익빈,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을 잠재우는 ‘충성’과 ‘효행’의 덕목으로 그다지 환영 받고 있지 못한 것을 증명하고 있다. 유교는 물론 도교와 불교 모두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관이 주도하는 종교로서 자리잡고 성장한 경향이 있다.
4) “한국 드라마는 중국에서 십 년이나 건재한가?(韩剧在中国为什么“十年不倒”)”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류’는 ‘확실히 세계 방송 사상 일대 획기적인 소설’이자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우정/사랑/가족애 등)을 잘 표현’했으며 ‘물욕적인 현실사회 속에서 꿈꾸며 기다렸던 감성을 만족스레 표현’했다면서 ‘중국과 서로 닮은 생활방식과 행동준칙, 윤리관념은 유교문화’이고 그런 한국 드라마는 ‘한국 민족의 문화적 약세를 모면하기 위한 것’이자 ‘동양문화 전체의 힘을 빌어 서양문화와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송고한 글
http://www.huffingtonpost.kr/jongmyung-choi/story_b_4917150.html
「両会」(北京の人民大会堂で開かれる全国人民代表大会、全人代=国会と、国政助言機関の中国人民政治協商会議=政協)期間の3月5日、王岐山・中国共産党中央紀律委員会書記が、韓国ドラマ「星から来た君」に言及した。韓国メディアは「新しい韓流(1)の時代」が来たと騒いだが、正確なワーディングと、後の中国メディアの報道をよく見ると、必ずしも当たっていない。「全人代でも話題になった」「称賛」という報道を入念に調べてみると、中国の評論家の「韓流」への不適切な偏見と、長年の嫉妬がにじみ出る。
全国人民代表大会(全人代)と全国人民政治協商会議(政協)は、開かれるとその話題で持ちきりになる。「両会」期間中は各省・政府ごとの業務報告大会も開かれる。この日は、北京市の番だった。北京市長を務めたこともある王岐山(2)は、和気あいあいとした雰囲気と伝えられた報告大会で、北京人民芸術劇院長の退屈な文化部門の報告を聞いていた。王岐山が突然、報告に割って入り、冗談めかして話し始めた。
(C) 신화망
「今、インターネットで流行っているドラマを見たか。あの、星...何だっけ?」。後ろにいた人物が小さな声で「『星から来た君』です」と教え、王岐山は笑って「なぜ韓国ドラマが中国で人気があるのかという問題を考えてみた」と言った。「韓国ドラマの核心と魂は、歴史と伝統文化の昇華だと思う」と語った。
続けて王岐山がたとえた伝統的な文化は、「家庭生活の些細なことや嫁姑の葛藤、そして倫理と『三綱五倫』(儒教の基本的な道徳指針)などのテーマを言う」と付け加えた。儒教の伝統について話したかったのだろうか?中国の大衆文化にも儒教的な内容を盛り込めばいいという意味にも聞こえる。中国の指導者たちは、長いこと忘れられた孔子(3)を、ときどき人民に広く知らせたがる。全世界に中国文化を広めることを目的として設立された機関は「孔子学院」だ。できれば「国教」にしたいのかもしれない。三綱五倫に込められた歴史的伝統は、中央集権的な統治に非常に適した思想だからだ。
中国メディアの「晨報」などは、「星から来た君」に込められた儒教的伝統を「中国の伝統文化の昇華」と断定して報道する。「中国」や「中華」が作り上げた歴史と伝統を、韓国が持っていってドラマに昇華したという論理だ。このような観点は、中国で韓流が語られ始めた初期の頃から登場する。2006年11月、新華社が引用して報道(4)した中国文化評論家・張国涛は、当時の「チャングムの誓い」ブームについて「奇跡に近い」と評価し「韓国の文化的背景は、中国ほど深くない」とした。中国メディアはつまり「恥ずかしい」と言ったのだ。
(C) Letv
王岐山が中国の大衆文化の発展と関連して言及したことが話題になると、評論家たちは先を争うように論評した。1997年に韓国ドラマ「愛が何だって」が当時の最高視聴率を記録したときや、2006年「チャングムの誓い」に中国全土が熱狂したときと同じように、2014年の「星から来た君」の熱風にも一様に反応し反省している。
3月7日付「中国新聞網」に掲載された文化評論家の楊興東は「文化は境界がなく、品質の問題であり、審査や制度の改革、より先進的な創作環境が必要である」と主張した。大衆文化産業が発展するために、映画・ドラマの制作時に厳しい審査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中国の問題を指摘する。なぜか毎回、問題が核心からそれて「伝統文化の保護というスローガンばかりが世間をにぎわす」という、自嘲混じりの反省もある。「お前はどの国の人間だ? お前のDNAは何だ?」と、審査のたびにやかましく指摘する政策決定者を密かに批判する文章もある。
王岐山は「星から来た君」を持ち出し、よい大衆文化を作ってほしいというメッセージを伝えた。中国のDNAに合わないストーリー、政府の立場に反対する素材やテーマに対して、万里の長城を築いている中国の政策こそ、グローバルなDNAと合わないのではないか。三綱五倫の内容を含む韓国ドラマにならえばいいというのが政治指導者の認識だろうか。1980年代、民主主義が保証されなかった韓国から、よいドラマが出てこなかったことを考えれば簡単なことだ。中国の指導者たちが「儒教的」観念から脱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中国大陸の外に一歩たりとも出ることは困難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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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韓流」という言葉を初めて使ったのは、中国の「北京青年報」記者だ。1999年の「韓国の流行が押し寄せる(韩国的流行拥来)」というタイトルの記事に由来する。当時、韓国ドラマや音楽が流行して、韓国の歌手のコンサートに中国の女子学生たちが大騒ぎしたため、これを懸念した内容だ。多分に否定的で皮肉混じりの言及だった。1992年の中韓国交樹立以来「嫉妬」をはじめとする韓国ドラマが中国で紹介されたのは、当時の中国の放送業界が構造改革のさなかにあり、チャンネルが多様化してコンテンツが不足したためだ。言わば穴埋め的に編成された韓国ドラマが人気を集めたのだ。また、北京のラジオの番組「ソウルミュージック」を通じて韓国の音楽が知られるようになり、HOT、クローンなどのグループが中国でコンサートブームを起こした。
(2)王岐山は国務院副総理を務めた党長老・姚依林の義理の息子で、1980年半ば以降、地方に赴任した若い改革派四君子の一人として注目された。中央では金融の専門家として認められたが、朱鎔基首相の引退以後、左遷された。2003年に北京がSARSに襲われた緊急事態を受けて市長に登用され、事態の鎮静化に一役買ったとされる。
(3)2011年11月、北京の天安門広場に孔子像が登場した。約2,500年前の学者が中国の社会主義国家を象徴する広場に登場したことは注目を集めたが、世間の反応は芳しくなく、ほどなくして再び国立博物館の中に入った。孔子はいまだ中国人にとって、必ずしも「唯一の」尊敬対象ではない。儒教の教えを盲目的に守る韓国に比べて、中国は「改革開放」以来、貧富の格差の拡大や社会的不平等から来る不満を抑える「忠誠」と「孝行」の象徴であり、さほど歓迎されていないことを証明している。儒教はもちろん道教と仏教も、中国では歴史的に官吏主導の宗教として根付き、成長したと言える。
(4)「韓国ドラマは中国で10年も健在か?(韩剧在中国为什么 "十年不倒")」というタイトルの記事で「韓流」は「まさに世界放送史上、画期的な小説」であり「人々が感じる感動(友情、愛、家族愛など)を正しく表現」し、「物欲的な現実社会の中で夢見て待っていた感性を満足に表現」しており「中国と似たライフスタイルや行動秩序、倫理観念は儒教文化」であり、そんな韓国ドラマは「韓国民族の文化的な劣勢を免れるためのもの」であり「東洋文化全体の力を借りて、西洋文化と対抗しようとするもの」と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