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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와 관련된 글자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선 날개가 있죠. 그러나 여기서는 새라면 다 있는 날개보다는 새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만한 꼬리를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꿩 두 마리가 막 날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꿩은 옛날에 주로 겨울철에 매를 이용하여 많이 잡았는데 설날 먹는 떡국용 꾸미의 재료로 많이 썼습니다. 담백한 맛이 일품인데 꿩이 안 잡히면 닭으로 대신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꿩은 숫놈을 장끼, 암놈을 까투리라고 합니다. 장끼와 까투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색깔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꼬리의 길이죠. 화려한 색에 긴 꼬리를 가진 놈이 바로 장끼입니다. 이런 사정은 닭도 비슷합니다. 역시 수탉이 색도 화려하고 꼬리도 깁니다. 거기다가 벼슬까지 갖추고 있으니 정말 위풍당당하죠. 장끼와 수탉처럼 꼬리가 긴 닭을 나타내는 한자가 바로 「새 조」(鳥)자입니다. 금문을 보면 부리와 날개, 발의 형상이 완연합니다. 「새 조」(鳥)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비교적 순해보이고 벼슬도 좀 작은 닭입니다. 암탉이지요. 꿩도 마찬가지입니다. 색깔도 수수하고 꼬리도 길지 않습니다. 벌써 오래 전인 고등학교 학창시절 생물 시간에 동물들은 대부분 수컷보다 암컷이 더 예쁜 이유가 적자생존의 한 방법이라고 배운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닭과 꿩은 색시보다 신랑이 더 멋있고 잘 생겼습니다. 역시 예외없는 법칙은 없나 봅니다. 이렇게 꼬리가 짧은 새를 나타내는 글자가 바로 「새 추」(隹)자입니다. 「새 추」(隹)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새 추」(隹)자는 현재는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는 글자입니다. 그러나 부수(部首)자로는 제법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갑골문에는 조(鳥)자가 없는 반면 「새 추」(隹)자는 갑골문부터 보이는 것을 보면 새를 기록할 때 조(鳥)자보다 훨씬 먼저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순순이 받아들여 지금은 주연에서 밀려나 조연 역할에 만족하는 글자가 되었습니다. 꿩은 한자로 치(雉)라고 합니다. 암컷이 사냥하기에 더 좋아서 그랬을까요? 아마 암컷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나 봅니다. 반면에 닭은 한자로 두 가지 방법으로 쓰는데 鷄와 雞라고 씁니다. 「닭 계」(雞)자의 갑골문-금문대전-소전 닭을 나타내는 한자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장닭을 쓸 때는 鷄로, 암탉을 쓸 때는 雞로 써야 하나... 하는. 글자 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원래는 雞라는 한자를 보편적으로 썼는데 요즘 「한글」 워드에서 雞자가 2단계 한자로 분류되는 바람에 지금은 鷄자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한자가 되었죠. 위 갑골문자는 벼슬이 있고 부리가 있는 닭의 모습을 잘 표현한 문자인데 금문대전부터는 해(奚)자를 음소인 성부로 받는 형성문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鳥)자를 쓴 鷄자는 예서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을 하게 됩니다. 꼬리 긴 닭이, 수탉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딸 아들 구별 않고" 너도 나도 그냥 닭이었던 것이죠. 참 운명이 바뀌는 이유도 여러가지입니다. 얼마전에 보니 네티즌들 때문에 문장부호가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그 시대 가장 보편적인 소통 체계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아! 그리고 또 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죠? 바로 "꼬끼오!" 닭울음 소리입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 역할을 했던 것이 닭울음 소리입니다. 닭이 아주 우렁찬 소리로 우네요. 소리가 들리느냐구요? 뭐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간에 닭울음 소리로 가장 유명세를 탄 인물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공자인 맹상군 전문(田文)이 아닌가 합니다. 진소왕(秦昭王)이 그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객경(客卿)으로 삼고자 부릅니다. 그러나 진나라 내부의 경쟁자들이 이 계획을 좌절시킬 뿐만 아니라 그를 억류하여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이때 구도(狗盜)가 옷과 관련된 한자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호백구(狐白裘)를 훔쳐 이를 이용하여 일단 풀려납니다. 그러나 그만 한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러 다시 위기에 빠집니다. 이때 성대모사의 달인 계명(雞鳴)이 나서 멋진 초성을 뽑자 나머지 닭들이 모두 울어 무사히 진나라의 소굴에서 벗어나죠. 작년에 함곡관에 갔을 때 계명대(雞鳴臺)란 곳이 있던데 닭울음 소리만 녹음을 하여 일정 간격으로 틀어주는 바람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울 명」(鳴)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이 명(鳴)자는 닭을 나타내는 새 조(鳥)자와 입 구(口)자를 써서 표현하였습니다. 갑골문에는 닭벼슬이 완연합니다. 금문에서는 꼬리가 긴 것 같고요. 그리고 너무 세게 울어서 입이 그만 툭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서경(書經)』「목서편(牧誓篇)」에 보면 "옛 사람이 말하기를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는 말이 있어서일까요? 「울 명」(鳴)자는 꼬리가 긴 새인 조(鳥)자를 썼습니다. 그러면 꼬리가 짧은 새가 우는 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문자상으로는 「새 추」(隹)자를 써서 唯자가 되겠죠. 그러나 이 글자의 훈은 "오직"이란 뜻으로 풀이합니다. 한자로 보면 새가 되다가 만 새가 있죠? 바로 까마귀입니다. 「새 조」(鳥)자와 「까마귀 오」(烏)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문자상으로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획이 하나 적다는 것입니다. 그 한 획이 나타내는 것은 바로 눈입니다. 곧 옛날 사람들은 까마귀를 눈이 없는 새로 보고 문자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럼 까마귀는 정말 눈이 없을까요? ㅎ~ 눈이 없을 수는 없죠. 다만 눈도 까맣고 깃털도 온통 까맣게 생겨서 언뜻 관찰하기가 힘들 따름입니다. 그래도 옛날 문자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까마귀의 이런 특성 때문에 오(烏)자에는 검다는 뜻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색이 검은 대나무를 오죽(烏竹)이라 하고, 캄캄한 한밤중을 오야(烏夜)라고 하는 등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한다면 회색을 쥐색이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떻습니까? 위에 나온 새들에 비하여 확실히 눈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의 새들은 눈 흰자위 안에 까만 점이 있는 것이 또렷하게 보이는데 까마귀는... 눈동자에 외부의 빛이 반사된 흰 점만 보이고 온통 까맣습니다. 그래도 까마귀는 백로 앞에서도 당당하기만 합니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까마귀는 한자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까마귀 오」(烏)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오」(烏)자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시대에는 까마귀도 그냥 새였던 것 같습니다. 소전을 보면 그제서야 조(鳥)자와 오(烏)자의 차이가 확연해집니다. 새 세 마리가 한 나무가지에 함께 앉아 있네요. 이 모습을 나타낸 글자는 「모을 집」(雧)자입니다. 한자에서는 같은 글자를 세 번 쓰면 그보다 더 많을 수는 없다는 뜻이 됩니다. 나무(木)가 많이 보이면 숲(林)이 되고, 더 많아지면 그때는 정글(森)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실제로 「모을 집」(雧)자는 아마 아래의 사진 같은 모습을 보고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을 집」(雧)자는 옛 글자에는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세 마리나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마리를 표현하려니 너무 벅찼나 봅니다. 그래서 나무에 딱 한 마리만 앉아 있는 글자로 표현하였죠. 바로 「모을 집」(集)자입니다. 소전에는 새 세 마리를 표현한 문자가 보이기는 합니다.
「모을 집」(集)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모을 집」(集)자의 소전 갑골문의 글자는 나무 위를 비행하는 새의 모습이 리얼합니다. 아마 이제 내려 앉으려는 듯한 모양인 것 같은데 날개를 접고 다리를 내려 금문처럼 내려 앉겠죠. 아마 한 마리만 앉으면 곧 두 마리, 세 마리... 히치콕의 영화 <새>처럼 금방 새들이 모두 모여들 것임을 알았나 봅니다. 「모을 집」(集)자를 보면 또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왜 나무(木)에 꼬리 긴 새(鳥)는 날아와 앉지 않고 꼬리가 짧은 새(隹)만 날아와 앉아 있을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꼬리가 긴 새들은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거의가 꼬리가 짧고 덩치가 작은 기동성이 뛰어난 새들만 앉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위에서 매를 이용해서 꿩 사냥을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새도 사실 훌륭한 먹이가 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새를 잡는 것을 나타내는 한자가 일찍부터 있어왔습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참새 사냥하는 것을 심심찮게 봐 왔고, 포장마차에서는 참새구이를 파는 것이 색다른 풍경이 아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새를 잡는 장면을 묘사한 글자는 바로 「새 한마리 척」(隻)자입니다. 「새 한마리 척」(隻)자의 금문-소전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맨손으로 새를 잡으면 한 마리씩 밖에 못잡아서 그랬을까요? 훈이 「새 한마리」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나마 원래의 훈대로 쓰이지 않고 단위사로 쓰입니다. 중국에서는 동물을 헤아릴 때 쓰이고, 시체를 헤아리는데 쓰이기도 하는지 옛날 강시 영화가 유행할 때 <제일척강시(第一隻僵尸)>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어식으로 한다면 The first zombie쯤 되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단위사로 쓰이면 배를 헤아릴 때 쓰입니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공부하다 보면 그냥 한자 공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치"를 배우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일본 처럼 이 곳 미얀마에도 까마귀가 많습니다. 부파고다에서 까마귀를 보고 선생님 글이 생각나 찍어보았습니다.
진작 이 까마귀 사진을 보았더라면 사용권을 요청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언제나 재미있게 잘 설명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_()_
격려 고맙습니다. 산에서라도 한 번씩 뵈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