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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과 부르심
마 4장 20240225 순복음사직교회오후예배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12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오늘 마태복음 4장의 말씀을 보기 전에 1,2,3장을 간략하게 요약설명하겠습니다.
1장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말씀하신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의 성취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종과 남녀 신분을 넘어서는 하나님 주권적인 구속사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이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알리고자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속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2장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이 세상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애굽으로 피난하시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롱하는 갈리리 나사렛 예수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이 땅에 사는 동안 억울한 일과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고난 당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우리 성도의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저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삶 가운데 인내하며 평강 가운데 살아가시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장입니다.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의 선지자였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나를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개란 세상을 향한 마음에서 하나님을 향해 다시 마음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의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례란 세상을 향하는 나의 모습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의 자세가 이제 예수님을 향해 가겠노라고, 비록 고난과 손해가 당하더라도 주님의 길로 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쌓으신 의를 바라보며 그 의가 구원의 능력임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참된 의는 예수님의 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만 믿으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말씀인 4장을 강해설교하겠습니다.
I. 마귀의 시험
4장 1-11절까지는 예수님이 마귀에 시험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이어진 일이 마귀에게 시험당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하였지만 세상의 임금으로 득세한다던지 편안한 삶을 살아가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마귀에게 시험받는 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 성령에게 이끌려서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귀가 마음대로 예수님을 좌지우지 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내용을 보면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빠질 수 있는 시험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40일을 금식한 사람에게 밥을 먹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주린 배를 채우고 기력을 회복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기에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간의 육체적인 배고픔보다 영적인 양식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신8:3의 말씀을 인용해서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로 보이지만 영의 양식이 진정한 생명의 양식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떡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세상의 비참한 현실은 굶어주는 사람이 하루에 수만 명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말씀을 알지 못해 영원한 멸망에 빠지는 것이 진정으로 비참한 현실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예수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예수님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자인가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이것 또한 거절하십니다.
마귀는 성경을 인용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능하였습니다. 6절에서 이르시되로 인용한 것은 시 91:11,12입니다. 이렇듯 마귀는 우리에게도 천사를 가장해서, 교회를 가장해서, 목사를 가장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단체가 신천지입니다. 신천지는 특히 성도를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다 건전한 사람이나 단체가 아님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모세가 출애굽 1세대가 40년 광야시절에 마실 물이 없을 때 하나님을 시험한 적을 회상하며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출애굽 2세대에게 말하였던 신 6:16을 인용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서 인간의 구속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교회를 자랑하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마귀가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마귀의 유혹은 이렇게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우리의 종교적 열심히 무엇을 위한 댓가성으로 한다면 그것 역시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성도가 따라야 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신 6:13의 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계십니다.
결국 마귀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들어주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경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말씀은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만 두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항상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것이 나에게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붙들여 있는 것만이 천국 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에게 세상의 것이 있고 없고에는 과심을 두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을 보면 마귀가 제공하는 것과 예수님 제공하는 것이 다릅니다. 마귀는 떡과, 이적과, 세상의 영광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말씀만을 제공하실 뿐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에 대한 관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답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통해서 드러난 마귀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다만 내 자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살 것을 말씀합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여기도 복이 있고 다른 곳에도 복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생명의 복이 있음을 깨닫고 살아가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I. 말씀을 이루시는 피신
12절에서 17절에는 예수님이 갈릴리로 피하셔서 말씀을 전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12절에 세례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과 다르지 않습니까? 이제 마귀의 시험도 물리치신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셔야 하는 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잡혔으면 세례요한을 구하러 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비겁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십니다. 갈릴리로 피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1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9:1-2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예수님이 피신하신 것조차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구약성경의 인용이 60회나 나오고 있습니다.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라는 것은 10회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마태복음에서만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마1:21-23절입니다.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것은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2) 2장 15절입니다.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것은 호세아 11: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3) 2장 21-23절입니다.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이것은 이사야서 11장 17절의 말씀 인용입니다.
4) 그리고 오늘 본문 14-16절입니다.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사야서 9장 1,2절의 인용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동은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에서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공생애 첫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그리고 행 1:3에서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성경에는 천국이라는 단어보다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천국을 우리가 죽어서 가야되는 다른 곳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하나님 나라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이 되었고 지금도 진행되며 확장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성된 나라로 우리에게 보여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식하면서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II. 제자들을 부르심
18-21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릅니다. 20절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도 그물을 버려두고 곧바로 예수님을 쫓았고, 22절에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쫓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이것이 가능할까요?
우리 중 아무도 이렇게 하기 힘들것입니다.
제자도에 대해서 잘 설명하는 누가복음 9:57-62절입니다..
57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스스로 예수님을 쫓을려고 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거절합니다. 내가 예수를 쫓겠다고 해서 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와 성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쫓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장사하는 것조차 허락지 않는 것을 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이 예수님을 쫓으려고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하고 쫓겠다고 합니다. 잠깐의 시간이면 되는 일인 것 같은데도 예수님을 이러한 자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곧 바로 예수님을 쫓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9장에 가면
27절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자신들이 예수님을 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제자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고 인간이 무성을 위해 살고, 무엇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배반했던 이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려서 이들이 다시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가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결정해서 예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성령하나님의 역사임을,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곧 바로 쫓아 간 것 역시 제자들의 자발적인 의사가 있었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임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IV. 모든 연약한 자를 부르심
본문 23절 – 25절에서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할 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병과 약한 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24절에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공통점은 모두가 약자라는 것이고 당시에 질병을 앓는 자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자, 저주 받은 자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예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저와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죄를 깨달은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것, 먹는 것, 세상의 편안함, 소유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의 삶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는 일들로 우리를 마귀가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닌 생명을 쫓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제자들은 곧바로 순종하였지만 결국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자들까지도 결국 사랑으로 바꾸시는 예수님이 지금 저와 성도님들을 바꾸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큽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평강가운데 거하시면 됩니다.
예수님 앞에 오는 자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다는 자들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 아닌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현재의 하나님 나라를 순종함으로 살아가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