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로마서 16: 1-16
제목: 서로 문안하라
일시: 2008. 2. 10/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문안드린다. 안부를 전한다. 이것을 인사한다고 한다. 인사(人事)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집 토끼 주주는 밥을 줄때 달려든다. 빨리 달라는 말이다. 먹이를 주면 예의를 차려 감사하다는 말을 하거나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먹기에 정신이 없다. 일부러 밥그릇을 뺏을 양 싶으면 또 달려든다. 그래도 저는 미워하지 않는다. 뭘 기대하는가?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기대를 한다.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 사이에서 흐르는 정이며 예의이다. 인간만이 인사를 할 수 있다. 동물은 인사를 못해도 사람은 인사를 한다. 무엇을 받으면 고맙다고 한다. 오래 간만에 보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한다. 명절이 되고 때가 되면 인사를 드린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인사 많이 하고 왔다.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체험하는 여행이 되었다. 오늘은 바울의 인사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II. 바울은 함께 일했다.
사도바울의 문안인사가 나오는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에게는 인사할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즉, 그 말은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활동력이 뛰어나고 두뇌회전이 빠르고 아무리 유능하다할찌라도 혼자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함께 일을 했다. 바울에게는 동역자들이 있었다. 바나바가 있었고 실라와 디모데가 있었던 것처럼, 그가 함께 한 다른 동역자도 많이 있었다. 뵈뵈를 보라. 그녀는 초대교회의 첫 여집사였다고 알려져 있고 바울을 보살펴 준 보호자였으며 특별히 로마서를 로마교인들에게 전달했던 사람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보라. 이들 부부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났고 함께 텐트메이커로 동업을 하였다.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놓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아시아의 첫 열매인 에배네도가 있다. 봉사와 수고의 사람 마리아가 있다. 그 외 20여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문안을 하고 있다. 누가 혼자 일할 수 있단 말인가! 함께 힘을 합쳐서 일을 할 때 일은 되게 된다. 그때 일은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동역자를 많이 만들어라. 인사할 사람을 많이 만들어라.
1월 14일 특별미션을 띄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가면서부터 누구를 만나서 어느 선까지 말할 것인가를 계획했다. 이 일에 동역자가 얼마나 있을까? 25일간의 일정인데, 가득 만나면 총 40여명의 사람들인데 내 캘린더를 다 채울 수 있을까? 바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다들 내가 원하는 날에 스케줄을 맞추어 만나줄 수 있을지... 도착을 15일(화)했는데 그날 가장 먼저 한 것은 만남의 터민을 잡는 것이었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교사가 전화를 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또 선교사가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구나싶어서 말이다. 또 전화를 안 하면 와서는 전화도 없었다고 기분 나빠 한다. 따라서 전화를 했을 때 그 반응이 확실한 사람, 즉 아주 기뻐하고 구체적으로 날짜를 제시하는 이들을 찾았다. “어 반갑네, 언제가지 건강은 정말 오랜만이네”하면 겉도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반가운 얼굴들로 계속 일정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 미션은 교회건축에 부족한 재정을 얻기 위해 가는 일이었지만 일부 방문목적을 흘려놓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왜 한국에 온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만나자 마자 돈을 싸가지고 “여기 있소”라고 하는 사람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의대의 연구비를 받아서 주는 이도 있고, 정길주자매 가족들이 모아 주기도 하고,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부모님들이 주시기도 하고, 저의 신학교동기가 주기도 하고, 우리의 선배들이 주기도 하고 교회를 방문하여 말씀을 전할 때 모금을 하여 주기도 했다. 어떤이는 자기 집을 잡혀서 7000만원까지 대출해서 빌려주겠노라고 했다(그만 두라고 했지만). 전체적인 보고를 하면 2000만원 가량은 발로 뛰어 모금할 수 있었고 3000천만원 정도는 2월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기도해 보겠다 상의해 보겠다 했으니 없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열려져 있는 상태이다. 저곳에서의 일이 그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제가 열심히 뛰어서 그랬다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여러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없는 동안 여러분들이 계속 기도했다. 저 대신 일을 감당해 주었다. 독일에서 문자메시지까지 주었다. 힘내라고... 정말 힘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뿌려놓은 씨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에서의 기도와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열심히 잘해서 그런 것은 꼭 아니다. 한국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으면 저곳에 있는 동역자들이 힘이 되어준다. 저곳에 있으면 이곳에 있는 동역자들이 힘이 되어준다.
III. 바울의 동역자는 많았지만, 바울의 인사는 개별적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거론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더불어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동역의 관계는 사무적인 관계여서는 안 된다. 우리의 동역의 관계는 따뜻함이 흐르고 정이 흐르고 사랑과 마음이 통하는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한다. 그때는 일 중심보다 인간관계중심이 된다. 독일 사회를 계약사회라고 한다. 일 중심의 사회와 같다. 하지만, 역시 인간이 사는 곳이면 인간미가 흐르는 것이기에 여기서도 인간관계, 즉, 베찌웅이 형성이 되면 일은 더 미끄럽게 될 수 있다. 일이란 것은 도와줄 마음만 품으면 어떻게든 가능케 하지만, 도와주지 않으려면 되는 일도 트집을 잡아 꼬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사야 한다. 그러면 일은 되어져 갈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관계중심의 사회이다. 이번 여행에서 찾아갈 수 있었던 사람은 평소에 인사를 했었던 사람이다. 지인들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을 찾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역시 인사, 즉 사람의 일은 계약과 설득력 있는 말을 잘해서가 아니고 얼마나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고 평소에 인사를 잘 하고 있느냐의 문제였다. 많이도 좋지만, 깊은 동역자를 만들라.
1) 바울의 문안은 공허한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별 의식 없이 문안할 때가 있다. 식사하셨어요? 식사 안했으면 사 주려고 하는가? 인사로 하는 것이다. 별 의미 없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한다. 어디가세요? 정말 어디 가는지 궁금한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형식적인 문안일 뿐이다. 물론 형식도 중요할 수 있지만, 좀 진지하게 생각하는 인사를 하라. 무의미한 관용적인 어구를 지나치게 사용하지 말라. 기도 역시 그렇다. 한국에 가서 짜장을 여러 번 먹었다. “하나님 그렇게 먹고 싶던 오리지날 짜장을 먹을 수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것도 곱빼기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이번에 가서 저를 파송한 교회의 목사님에게 전반기 부흥회에 오시도록 날짜를 정하고 약속을 하고 왔다. 8년의 세월이 지나가도록 한번도 오시지 않았는데, 그 전에 “한번 오셔야지요”라고만 했기에 아주 추상적인 초청이었을 뿐이었다. 목사님들은 특별히 어떠한 타이틀이 분명하지 않으면 오고 가기가 힘들다. 그리고 설교시간에 라이프찌히를 소개하면서 목사님을 보내달라고 구체적으로 말을 해줘야 내가 편하게 올 수 있다고 하였다. 추상적인 말로 해서는 안된다. 구체성을 띄어야 한다. 구체성이 없으면 행동할 수 없다.
2) 바울의 문안은 익명의 문안이 아니었다. 바울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명시한 안부였다. 그 사람의 특징과 함께. 이메일 보다 편지나 카드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편지는 인격적인 인사이다. 카드를 하나 보내려고 해보라. 가격도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과 독일에서 어울리는 것으로 보내야 한다. 특히 한국에다 보내서 할까 싶지만, 이곳 우표가 있어야 한다. 글을 써야 한다. 컴퓨터는 지우면 되지만, 이것은 열심히 쓰고 신중히 써야 한다. 그리고 풀로 붙여서 우체국에 가서 보내야 한다. 어떤 경우는 날짜를 써놓고 그만 수 일이 지나기도 한다. 그래서 카드는 에너지이다. 이메일을 하나 쓰더라도 동시메일은 재미 없다. 그러한 메일은 스팸메일 수준으로 여긴다. 인건비가 들어도 한분 한분에게 쓰라. 그것은 그를 생각하는 것이다. 왜 발로 뛰어다니고 구체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가? 왜 굳이 한국에 갔어야 했는가? 바로 눈앞에서 보고 말하고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화로 하지 않는다. 예)알마자매의 장애위한 모금은 2000천만원을 넘었다. 알렉스라는 필리핀 사람이 죽었을 때 광고를 하였을 때 겨우 7만원 모금되었다.
3) 의무로 하는 인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인사하는 것이 된다.
설날 전화를 했는가? 한 이유는 무엇인가? 설날이니까? 인사를 안하면 어찌되는가? 욕을 얻어 먹는다. 전화 한 통화 없다고 말이다. 결국 안부전화를 의무로 하는 것은 욕 안 얻어먹으려고 하는 것이 된다. 왜 설날 안부를 물어야 하는가? 아버지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의를 갖추기 위해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예의는 의례에 그칠 뿐이다. 예의가 없는 것이 더욱 귀할 수 있다. 어느 날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글쎄 둘째 사위가 오늘 전화를 다했어!” 아무런 내용도 없었다. 단지 인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한 것이다. 왜 자기 엄마한테는 수시로 하면서 장모님에게는 전화를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전화는 친정어머니한테 하듯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전화가 되어야 한다. 시어머니에게 하는 전화처럼 의무적으로 하는 뻣뻣한 전화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내도 친정어머니와 이야기를 할 때는 1시간 이상씩 한다. 하지만, 시어머니와는 십일조이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이 지낸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렸다. 수고하고 사랑한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바울의 마음에 그러한 뜨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IV. 한국에는 설날이 두 번 있어서 좋다. 다시 한해를 맞았다. 문안할 수 있는 동역자가 많기를 바란다. 이메일을 보내고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야 할 사람이 많기를 바란다. 인사를 할 사람이 많은 것은 사람의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다. 넓게 사람을 사귀라.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과의 긴밀한 Beziehung을 가지라. 깊이 사람을 사귀라는 말이다. 어디서 어떠한 도움이 올는지 모른다. 작은 사람도 무시하지 말라. 겉으로만 사람을 보고 평가하지 말라. 알고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서로 문안하라. 도우라. 생각해주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라. 하나님께 문안하라. 부모형제에게 문안하라. 교우에게 문안하라. 오늘의 예배는 하나님께 문안하는 것이다. 16절을 보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