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
유 정 란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교는 이색 야외 행사를 했다. 공부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곧 다가올 방학으로 인한 학생들의 느슨해진 협동심을 결속시키고 스승과 제자간의 돈독한 정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는 일종의 동계훈련이었다. 이름 하여 토끼몰이였다. 인접에 산이 있는 다른 학교들도 우리와 비슷한 훈련을 하곤 했는데 당시 도시 아이들은 꿈꿔보지도 못할 시골 아이들만의 특권 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토끼몰이 갈 때 입고 갈 옷을 챙기느라 이집 저집 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야단 떨었다. 한참 이성에 눈뜰 시기라 멋 내기에 민감했다. 두발자율화가 막 시작된 시기와 맞물려 모두가 똑같은 디자인의 커트를 하고도 서로 자신의 머리가 더 예쁘다고 우겼다. 시골마을의 하나 밖에 없었던 미용실 주인의 작품은 큰 기대를 걸기엔 다소 무리였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에 맞는 머리 디자인을 연출하기란 시골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조금 힘이 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미용사는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였기 때문이다.
토끼몰이 하루 전날 학교에서는 학부모님들과 선도 부원들이 모여 백 근 짜 리 돼지를 미리 잡았다. 산에서 끓일 김치 찌게 사전 준비였다.
학생들은 각자 김치 찌게에 들어 갈 배추김치 한 포기와 흰 쌀밥을 사각 양은 도시락에 가득 담았다. 하트모양이 예쁘게 수놓아진 순면 소재의 보조 가방에 도시락을 넣었다.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무슨 신주 단지 모시듯이 도시락의 존재를 수시로 확인하며 조심했다.
반 별로 이열종대로 걸으며 무슨 행진곡 비슷한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그 때 한창 유행하던 팝송도 있었다.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누군가 선창하면 다 같이 따라서 합창했다. 원 나 잇 티켓이나 헬로 미스터 몽키 같은 흥겨운 팝송이었다. 장터를 지나고 공동묘지를 지날 즈음 토끼몰이의 행렬을 축하 하는 양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출발 전에 불었던 강한 바람도 스스로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물의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이 보이고 청 다리가 보이는 구 평 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선발대는 빈 밭이나 논에 짐을 풀었다. 듬직한 남자 선배들은 주변에서 마른 솔가지며 버려진 나무 밑 둥을 땔감으로 가져 와 불을 지폈다. 여자 선생님들이 큰 백 솥을 걸고 전날 잡은 돼지고기와 학생들이 각자 가져온 김치와 두부를 썰어 넣고 김치 찌게 끓일 준비로 분주했다.
남학생들을 선두로 본격적인 토끼몰이에 들어갔다.
교관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앞다리가 짧은 토끼의 신체 특성상 오르막길은 따라 갈 수 없으니 내리막길에서 세차게 몰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산 정상에서 학생들은 옆으로 나란히 줄지어 섰다. 개미 한 마리도 빠져 나갈 수 없는 촘촘한 인간 띠를 만들었다. 교관 선생님의 출동 명령만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 탕, 탕" 두발의 총성이 울렸다. ‘와’ 하는 일제의 함성소리를 내며 토끼를 향해 돌진해 내려갔다. 이제 토끼는 독 안에 든 쥐였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숨 헐떡이며 산에 오르내리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몇 마리의 토끼와 노루 그리고 작은 야생동물들을 생포했다. 흡족한 결과에 환호성으로 자축했다. 그 모습이 흡사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의 무리를 보는 것 같았다. 포획한 그 산짐승들은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선생님들의 술안주 감으로 쓰였을 것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교관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가지고 줄을 섰다. 너무 배가 고파서였을까.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그 황홀한 김치 찌게 냄새는 온 산 을 뒤 업고 청 다리의 열길 물속 까지도 요동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깃덩어리는 한 점도 없는 김칫국을 받아든 나는 친구의 도시락을 자꾸만 넘겨다보았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혹시 친구의 도시락에 고기라도 들었는지 훔쳐보면서 말이다.
아직도 친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돼지고기 실종은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천 여 명이 넘는 전교생이 나눠 먹었던 찌개였기에 고깃덩이의 실종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때 맛본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 어느 진수성찬에 비하겠는가.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내가 낳은 두 아이가 예전의 여중생 엄마보다 더 훌쩍 자랐다. 물질의 풍요 속에 모자람 없이 살면서 가끔씩 정신적 빈곤이 찾아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학창시절 토끼몰이의 추억을 펼친다. 허전하던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찾아갈 고향이 있고 기억할 추억이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찾아갈 고향이 있고 기억할 추억이 있다. 천관산 자락에 걸려 있는 토끼몰이를 추억하는 나는 분명 축복 받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