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소나무 송무석]

손목시계

2016.8.11.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서 차시던 손목시계를 얻었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들이 시계를 차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뻐기고 싶은 마음에 제대로 잘 작동도 되지 않는 시계를 차고 한동안 학교에 오갔다. 고물 수준의 시계였지만 내 시계가 있다는 것이 어찌나 뿌듯했는지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시계가 귀해서 자녀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흔히 하던 입학 선물이 손목시계였다. 나도 중학교 입학 선물로 새 시계를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에야 시계가 넘치고 값도 아주 싸져서 더는 시계가 소중한 선물도 귀중품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세종 대왕 때 만들어진 해시계, 물시계에 대해서만 배웠기 때문에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시계인 줄 알았다. 하지만 15세기 말에 유럽에서는 이미 용수철을 이용한 시계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발명과 개선을 통해 작은 시계가 만들어졌지만, 자전거가 대중화되기 시작해 회중시계 보기가 불편해진 19세기까지는 주로 회중시계가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손목시계가 널리 쓰이게 된 이유는 1차 대전 때 시간에 맞춰서 군대의 작전 수행을 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투 중에 회중시계를 꺼내 확인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는 주로 태엽을 이용한 기계식 시계를 썼기 때문에 하루에도 분 단위의 오차가 생겨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시보(時報)에 따라 자주 시계를 맞춰야 했다. 1980년대에 수정 진동자를 이용한 수정 시계가 널리 보급되면서 시계를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이후 수정 진동 방식 손목시계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드디어 손목시계는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¹⁾

  오늘날에는 휴대 전화가 널리 보급되어 거의 누구나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닌다. 이 휴대 전화는 손목시계가 회중시계를 밀어내고 휴대용 시계의 왕자를 차지했던 것처럼 손목 시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휴대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손목시계가 아니어도 휴대 전화로 시간도 알 수 있고 자명종 기능도 있으니 실제 손목시계보다 시계로도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이 이제는 스마트폰을 단지 시계 역할 뿐 아니라 거의 컴퓨터에 버금가는 다양한 용도로 쓰고 있지만. 그러니 휴대폰 덕분에 손목시계는 필수 휴대품이 아니라 거의 패션 용품이 되었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불과 몇천 원짜리 시계로도 정확한 시간을 아는데는 지장이 없다. 이러니 시계 제조사들은 더는 내구 수명이 길고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데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유행에 맞는지, 소비자의 미적 욕구에 부응하는지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니면 아예 고급 시계를 만들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팔아야 한다. 그래서 종종 이런 비싼 시계가 뇌물로도 제공되고…. 이래서 손목시계는 다시 한번 유행 상품, 부와 신분의 과시 상품이 된 셈이다.

  나는 원래 사치품을 사고 쓰는 데 관심이 없지만 수십 년 넘게 습관적으로 시계를 차고 다녔다. 물론 값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수년 전 만해도 나는 휴대 전화를 쓰면서도 손목시계를 썼다. 손목에 있으니 바지 주머니에 넣거나 혁대에 차는 휴대 전화보다 쉽고 빨리 시계를 볼 수 있는 것이 착용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에 하나밖에 없던 손목시계가 고장이 나 건전지를 바꿔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디지털 표시 방식이 훨씬 정확하고 쉽게 읽을 수 있고 제작도 쉬운데도 여전히 아날로그 표시 방식 손목시계와 벽시계를 주로 쓸 만큼 익숙한 것에 집착하고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 아닌가. 나도 40년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 보던 시계 없이 생활하는 것이 손목이 허전하고 외출할 때마다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계를 새로 살까 생각하다 급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뭔가 없는 듯한 허전한 느낌이 나중에는 홀가분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벌써 몇 년을 시계를 안 차고 살다 보니 이제는 손목시계를 다시 차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이 작은 것도 안 차니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1) https://namu.wiki/w/%EC%86%90%EB%AA%A9%EC%8B%9C%EA%B3%84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