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가사키현 군함도 하시마(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박근혜정권(2013~2017.3)
때였다.
당시 일본은 강제노역 사실 인정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전시실 설치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였다.
그리고 2024.7.27. 사도광산이 등재되었다.
우리가 명백하게 인식해야 할 일은 어느 정권이든 일관된 입장을 관철했다면 사도광산의 경우처럼 맥없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일은 발생할 수 없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사이비 좌파 언론들은 윤석열정부를 흠집내기 위해서 발악을 하고 있다. 발악한다는 표현외엔 달리 적확한 표현어를 찾을 수 없다.
해병대수사단의 불법수사를 묵인하고 그 위에 이첩 보류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수사외압했다는 것만을 부각시켜 정권을 끝장내기 위해 골몰한다. 권익위 국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에는 윤석열정권을 자살의 원흉이라고 몰아세운다.
군함도의 교훈 - 일본의 약속 불이행 - 을 알았다면 문재인 정권 때 일본이 군함도 등재시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조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지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
언론이 한 쪽으로 경도되면 그건 언론이 아니고 그냥 주장에 불과하다. 그나마 공정한 관점을 유지한다면야 얼마간 상호주관적(간주관적)이므로 그나마 보편성과 교집합이라도 있을 터이다.
유네스코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되더라도 유산의 보존상태나 관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관리가 미흡하거나 유산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경우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거나 최악의 경우 목록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문화유산이라 함은 문화적인 보편적 가치를 가져야하는데 강제징용당한 한국인이 희생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 문화적 가치에 서술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체적 문화유산으로서의 서술이 될 수 없으므로 문화유산으로 일단 등재됐어도 일본이 약속한 강제징용당한 한국인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서술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인 문재인 정권 때 지속적으로 이의를 하여 유네스코 정식회원국들에게 일본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를 전파하여 국제적 여론을 환기하여 군함도 관련 약속불이행을 탄핵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기울였을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관리
등재된 이후에도 유산의 보존 상태와 관리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되며, 관리가 미흡하거나 유산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경우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포함되거나, 최악의 경우 목록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절차와 조건을 들여다 보면 정식회원국 21개국 중 중국도 있다.
만장일치라면 중국도 찬성했다는 말인데 아다시피 중국도 일제가 만주괴뢰정권을 세우고 난징대학살 등으로 일제국주의의 피해국이며 문재인이 인도의 모디총리와 유대를 맺고 있었으므로 인도와 협력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약속 불이행을 이유로 여론을 환기하고 지속적으로 약속이행을 주장했다면 윤석열정권에서 사도광산과 같은 안이한 대응으로 그들이 비난할 만한 결과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만장일치가 확립된 등재 방식의 의결방식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반 찬성으로 등재될 수도 있음을 규정에서 볼 수 있다.
필자는 윤석열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한겨레같은 일부 사이비 진보 언론의 편파적 관점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유투브나 OTT 등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인기영합적 컨텐츠를 우리가 제대로 선택해서 소비하거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게 되면 그들은 자의적이고 멋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외면당하면 일터고 뭐고 존재근거가 흔들려 존립기반이 붕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유투브나 쇼츠를 우리가 소비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광고수익을 올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유권자로서 제대로 눈을 뜨고 비판하게 되면 그들은 제대로 정신차리고 우리를 위해 봉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들, 국민들은 국가권력은 물론이고 제4부라 칭하는 언론권력도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로부터 유출된 국가권력이나 언론권력은 경계할 대상이지 (노른자위를 쥔) 권력주체들이 멋대로 재단하는 것을 맹종하거나 맹신하는 것을 경계해야 제대로 우리를 위해 그들이 봉사한다. 우리는 선동이나 세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권력을 준 주체임을 의식하고 그들을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