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름이나 월의 의미를 단적인 장면으로 해석하는 들려주기 -이시영「초여름」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여름이나 월의 의미’가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 내가 체험한 구체적인 여름이나 그 월의 특징적이고 인상적인 면으로부터입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색적 감정적 체험, 소위 삶이 환기되는 구체적 체험을 할 때 ‘어떤 의미의 여름이나 월’이라는 구체적인 감정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내가 본 특징적인 면이 여름이나 그 월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아주 단적인 예화 같다면, 그것을 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세계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형식은 제목을 ‘여름’, ‘초여름’, ‘6월’ 등으로 하고, 자신이 생각한 ‘여름이나 그 월의 의미’에 해당하는 인상적 면과 그에 대한 해석적인 감정을 더해 씁니다. 그만큼 체험한 인상적인 면이 단적인 의미 장면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표현일지라도 시 쓰기는 예술적 표현을 위한 예술적 요소를 포함합니다.
다음 시를 읽으며 생각해 보겠습니다.
초여름
- 이시영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앞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노오란 꽃잎들을 와르르 포도 위에 쏟아놓는다
그 위를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년 둘이
허연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간다
어디서 훅 풀 비린내가 스쳐온다
아카시아나무 꽃이 지는 것으로 보아 유월쯤 되는 초여름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꽃만 가지고 계절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 유월쯤에도 아침저녁으로는 춥기까지 합니다.
그럼 무엇이 인상적입니까?
- 아카시아 꽃이 질 때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년 둘이/ 허연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가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지는 아카시아 꽃과 허연 허벅지가 ‘초여름’의 어떤 의미를 만듭니다.
자, 그러면 시인은 그 두 장면을 어떻게 느끼고 감정세계를 표현한 것일까요?
- 장면1: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앞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노오란 꽃잎들을 와르르 포도 위에 쏟아놓는다”. 아카시아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하늘의 어떤 사인으로부터 시작된 뜨거움이 하얀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노랗게 지고 있습니다. 백색으로 피어 누렇게 지는 것, 그래서 꽃이 지는 것만 생각하면 쓸쓸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자의 허연 허벅지가 겹쳐지며 묘한 느낌을 만듭니다.
장면2: “그 위를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년 둘이/ 허연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간다”. 젊은 여자의 어연 허벅지가 겹쳐집니다. 물론 나이 든 분들은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 내복을 입는다지만 젊은 여자야 어디 그렇습니까. 조금 덥게 느껴진다 싶으면 먼저 벗어제낍니다. 이것은 아카시아나무가 꽃 필 때와 같이 생명적 젊음이 가진 본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걸음이 아카시아 꽃이 떨어진 포도 위를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아카시아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엄청난 자기 생명에 대한 긍정 같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생의 시간은 다르지만 여자의 허연 허벅지도 언젠가는 아카시아 꽃이 질 때처럼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알바 아니다 하고 그 위를 걷는다는 게 무례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거야말로 생명이 생명에게 충실한 건강함이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것도 몰라야할 그 나이에 ‘꽃 피고 지는 인생사’를 생각하며 그 위를 쓸쓸하게 걷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녀들이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고 걷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남들이 뭐라 그러던 말던, 아카시아 꽃이 지든 말든 자기 꽃 필 시간이라고 당당하게 걷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두 장면이 묘한 관계를 만들어 초여름의 의미를 만듭니다. 시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긍정의 말로 표현합니다.
장면3: “어디서 훅 풀 비린내가 스쳐온다”. 시인은 초여름에는 초여름의 법을 따르는 것이 상례라고 그녀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왜냐하면 풀 비린내 없이 풀의 삶이 주어질 수 없고, 그녀들의 모습이야말로 그런 풀 비린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초여름은 생으로 향하는 분출이 선(善)이고 상례라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에는 어떤 윤리 도덕적 문제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허연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내고 검고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도 그것은 초여름 본연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초여름은 초록생명의 약동이, 생으로 향한 생의 몸짓만이 만드는 “비린내”가 훅 끼치는 계절입니다.
이런 초여름에 대한 의미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합니까?
- 초여름의 의미를 아카시아 꽃이 지는 포도와 그 위를 “허연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채 걸어가는 젊은 처자의 단적인 해석적 장면으로 들려줍니다.
-글/오철수
첫댓글 공부하고 갑니다. 삼복은 이열치열! 시 공부로 더위사냥하렵니다.
소서와 대서 사이
-서은
저녁 7시,
장승포 바닷가 청해 장어집에서 모임이 있는 날
불판에서 장어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회식당번인 나현이 엄마 활짝 웃으며 실컷들 먹어요 한다
슴슴한 간장물 배인 명이 나물 얇은 잎에
고소한 장어 살점과 생강 채와 양파 채를 얹어 한 입 쏘옥 집어넣으니
푹푹 찌는 더위도 달다
바로 이맛이야 어쩌구 하면서 번진 얘기는
세상은 쪼개져야 한다는 것
웅크려 나만 챙기지 말고
앞도 돌아보고 옆도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
꽃도 곡식도 포기를 나눌 때
수천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
조촐하게 맥주 한 잔 들이키며 문밖을 나서는데
훅 하고 끼쳐드는 냄새
비릿한 바다 내음
이렇게 나오는 시심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참! 어리석은 질문인 듯. 그러나 부러운걸 어떻해요?
칠월 여름밤 풍경이 온 몸에 번지네요...
그래요, 이렇게 쓰는 거에요^^
언니.......................
@빈터(정신숙) (나도) 언니.....^^
@남수현 내도 언니 ~~~ 시가 시인을 닮았어요 참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