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해 달라는 엽서가 날아 왔다.
나는 반가움에 날짜 먼저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매번 일요일 날로 잡혀 있기 때문에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1997년도에는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시골 조그만 중초 초등학교 남녀 혼합 반으로 40명이 졸업을 했다. 그때 이병애라는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수도 잘 놓고 달리기도 잘하는 아주 재능 있는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일직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다니시니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정에서 오빠와 남동생 뒷바라지며 살림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다녔고 방학이면 십리 길이 넘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양계를 치며 바쁜 생활 속에 손수 밥을 지어 한 상 차려들고 나와 마루에 놓고 맛있게 먹으면서 그 동안에 모아두었던 친구들 소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느 친구는 가까워도 중학교 가더니 거의 만나지도 못하고 지나는데 너는 이렇게 종종 찾아와 만나 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몰라! 네가 만나주지 않으면 나는 열등감에 감히 너를 만날 수가 없어! 너는 교회에 다니니까 다른 친구들과 좀 다른 면이 있어! 정말 고맙다. 친구야! 자주 찾아 줘! 이렇게 하면서 자라난 그 친구는 일직 결혼을 해서 보은 읍에 살면서 수예점을 차리고 있었다. 몇 년 후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이야기인즉 자궁 외 임신으로 수술을 하고 아직 임신이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 후 수년이 지난 후 누구에게 소식을 들으니 조카 양자를 해서 분가시키고 두 내외가 재미있게 살면서 우리 7회 동창회 모일 때면 여자친구들을 저의 집에 재우고 솔선해서 많은 봉사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다정했던 친구를 생전에 만나 보지 못하고 이제는 저 세상 사람이 돼 버렸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다가는 다른 친구들도 이렇게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진천 중앙교회에서는 1998년도 첫 주부터 항존직 인 장로, 권사, 안수집사는 ‘할렐루야 찬양대’를 조직하고 7시 1부 예배에 찬양을 하며 주일 하루는 온전히 교회에 봉사하면서 평신도들에게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1부 예배를 마치고, 고향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와야 된다며 일찌감치 보은을 향해 출발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계속 친구(병애)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보은에 가 봐야 보이지 않을 친구! 허망하기 그지없다.
수정식당에 들어서니 아직 아무도 오지를 않았다. 30분쯤 기다리고 있을 때, 어떤 머리가 허옇게 쉬어 버린 할아버지들이 들어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기열이의 소개를 들었다.
"야! 월순이 반갑다!”
하며 할아버지들은 내 손을 잡고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 까까머리 초등학교 친구들이 이렇게 몰라보게 변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온 한 친구는 초등학교 때에 내가 가장 열등의식을 느끼고 고민하던 체육시간 이야기를 꺼냈다.
“월순 여사! 우리 초등학교 때 체육시간 기억나? 그때 말이야 달리기만 하면 월순이 너 우리 편에 안 오기만을 고대 바랬어, 달리기도 지겹게 못하더니......!”
이 말을 듣는 우리 모두는 그 말에 공감을 하며 한바탕 웃어댔다.
나는 어려서부터 뼈가 악해서 많이 다치며 자라났다. 달리기를 잘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체육시간만 되면 겁이 나고 노이로제가 걸린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상처를 이렇게 건드리는데도 태연하게 깔깔 웃어넘기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여유일까! 흘러간 세월 탓일까......? 친구들이 그리웠던 탓일까! 내가 은밀히 크게 성숙했나? 어쨌든 호탈 하게 웃어 넘겼다. 식사 후엔 병애를 애도하는 묵념을 하고 병애의 살아생전의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친구들의 삶의 무게가 어디에 더 집중 되어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그 친구의 인격을 남몰래 훔쳐 저울질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코흘리개 친구들이 어느 틈에 자라나 어른이 되고,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이 편에서 반백의 머리에 주름진 얼굴로 할애비 할미가 되어 실수도 하고 농담도 하며 남은 우정을 돈독히 다짐했다.
"월순 여사 다음에 꼭 와!"
"주일날 모이면 나는 못 와"
"아니 우리 동기 중엔 장로도 있고, 권사도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이 몇 명 있어서 다음부터는 토요일 날 할 거야"
"그러면 오지 머!"
지나간 그 많은 세월의 이야기들을 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으랴! 초등학교 동창회 친구들과 아쉬움을 여운으로 모두들 악수를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