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당신
文 熙 鳳
오늘도 모 텔레비전 방송국 프로그램의 ‘황금연못’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76세의 가장이 자기보다 7살 연하인 아내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고마운 당신이다. 태어나서 29년 만에 처음 생일 축하국으로 먹어보았다는 미역국을 가지고 나왔다.
아내는 원래 보험설계사였다. 미모도 출중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69살인데도 한 10년은 아래로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본다 했다. 그간 결혼 후 갖은 고생을 했는데도 말이다. 결혼과 동시에 보험설계사를 접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오남매를 키우기 위해 중동에까지 가서 열심히 일했다. 거기서 벌어온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잘못 되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중풍이란 병이 찾아왔다. 대소변도 혼자 힘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해(사면이 바닥에 닿는 지팡이) 걸어야 했다. 이것도 처음에는 할 수 없어 누워 지냈다. 이때 아내는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아니 한 것도 아니라 했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다. 그런데 둥근 밥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열심히 지우고 쓰면서 공부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한다. ‘내가 없으면 애들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니 두 주먹에 힘이 생기더라 했다.
이때부터 가장(家長)이 바뀌었다. 폐휴지 수집을 했다. 젊은 나이에 손수레를 끌고 폐휴지를 주우러 다녔다. 아이들이 엄마가 하는 일을 창피하다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도와주었던 점이 고맙다고 했다. 그것 가지고는 일곱 식구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생각다 못해 아내는 결심했다.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만들어 팔기로 말이다. 처음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번 돈으로 조그만 가게 한 구석을 얻어 김밥집을 냈다. 그렇게 가장 노릇을 한 것이 20여 년이 넘었다. 조화는 시들지 않는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유한하다. 생명만은 모방할 수 없다. 그래서 귀하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짧은 겨울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아내는 모들 일을 접고 퇴근을 했다. 엄마처럼 챙겨주는 아내가 고맙다 했다. 하루는 아내가 끓여주었던 미역국을 손수 끓여가지고 아내의 일터인 포장마차로 갔다. ‘당신이 너무 추울 것 같아 내가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왔다.’며 내놓았다. 그걸 먹어보는 아내의 눈시울은 금방 젖어 올랐다. 가게 안이 비좁아 아내가 미역국을 먹는 대로 다시 포장마차를 절뚝거리면서 나오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부부가 살아갈 근원적 바탕은 사랑과 이해다. 사랑한다는 것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자발적인 노력과 자각으로 해결해야 한다. 부부는 경쟁자가 아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관계이다. 부부는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하는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 받는다. 부부는 차지한다기보다는 붙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관계이다.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들이기에 그들의 앞날은 밝을 수밖에 없다.
나의 아내도 여러 가지 병을 전쟁수훈자의 어깨에 붙은 견장처럼 매달고 지금까지 고생 중이다. 그런 몸으로 오십초·중반부터 손주 돌보며 가정을 이끌었다. 천식으로 밤을 꼬박 새운 날이 한두 번이었던가. 고혈압에 당뇨, 협심증, 기관지 확장증 등과 매일 사투를 벌인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래 난 가끔 빈 말 같은 참말을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바로 당신을 만난 것이라고.’
그냥 뜨는 것 같은 무지개도, 금방 스러지는 풀잎 끝 이슬도, 작은 개미 한 마리까지도 그 부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보듬고 소중히 한다. 흔히들 말한다.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고. 이런 철칙을 깨버린 부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는 아내 칭찬 타령이었다. 자기가 힘들면서도 내색 한 번 안했다는 아내에게 박수를 보낸다. 감싸고 사랑하고 덮으면 가정이 편안할 거라 생각하며 참으면서 살아왔다 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감사패를 읽는 남편의 기울어진 몸뚱이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한쪽으로 기운 몸을 이끌고 오늘도 아내 대신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남편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감격이요 감동이요 전율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은 수첩의 맨 앞쪽에다 적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가슴에 새긴다는 말이 이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들을 보면서 부부 사이라도 마주 보고 누우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등만 돌리면 십만 리 거리나 되어버리는 것이니 존경과 신뢰를 품고 참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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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정회장님 부부의 모습도 전형적인 夫唱婦隨 표상이십니다.
이 계절 하정회장님과 사모님 더욱 강녕하시기 빕니다~~
많이 아프신데도 헌신하신 사모님과 변함없는 사랑으로 가정을 지키시는 문회장님 멋지세요.
새봄에는 더 풍성하고 넉넉한 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부부가 살아갈 근원적 바탕은 사랑과 이해다. 사랑한다는 것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잔잔하게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저야말로 남편 노릇을 못한 사람입니다. 30여년 외국을 떠돌았고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참 많습니다. 명절 내내 고생한 아내를 모시고 따뜻한 나라로 떠날까합니다. 가서 "사랑합니다."라고 말도 전하고요. 회장님의 수필 덕분에 아내는 남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됬습니다.
문회장님, 참말로 로맨티스트세요. 매번 느끼지만 아내사랑이 남다르십니다. 본받아 뒤따르겠습니다~^^
사모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십니다. 제 아내도 여러 가지 병을 어깨에 붙은 견장처럼 매달고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저도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회장님의 글을 읽고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