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산수연(傘壽宴)
김회직
팔순 잔치를 산수연(傘壽宴)이라고 한다. 앞 글자 ‘傘’ 자를 파자해 보면 그 안에 ‘八’과 ‘十’이 들어있어 팔십 세를 상징한다. 작년 재작년에 내가 먼저 팔십 문턱을 넘어섰고, 두 살 아래인 아내는 올해 그 ‘傘’ 문턱을 넘게 된다.
두 해 전에 찾았던 한정식 코스요리 전문점이었다. 오늘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잔칫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정중앙 칸막이벽을 따라 밝은 미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꽃과 과일바구니, 그리고 팔순에 걸맞은 장식품들이 정갈하게 차려 있다. 모필로 쓴 ‘傘壽’ 두 글자도 커튼 중앙 상단에 예쁜 핀으로 꽂혀있었다. 손자 손녀가 두 손 받쳐 들고 온 생화 꽃바구니와 깜찍하고 섬세한 케이크를 테이블 한가운데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니, 잔칫상이 한층 더 화사하고 운치 있게 살아났다.
12시 30분, 낮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가족 중 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맥주 반 컵씩 채운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가족이 모두 열여섯인데, 싱가포르 출장 근무 중인 외손자 내외와 생후 6개월 된 외증손자가 오지 못해 오늘은 열셋만 자리를 함께했다.
첫 번째 요리로 능이버섯과 부드러운 당면이 어우러진 능이잡채가 나왔다. 그 뒤를 이어 채소류, 어패류, 육류를 망라한 형형색색의 음식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상에 올랐다. 검정 바지에 하얀 요리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비운 접시를 걷어가거나 모자란 음식을 채웠다. 두 해 전에 비해 음식도 다양해지고 눈에 띄게 서비스가 좋아진 것을 보니 문득 그만큼 음식값도 올랐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큰 외손자에게서 온 국제전화였다. 외할머니의 팔순 생신을 축하드린다며, 오늘 중으로 도착할 수 있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단다. 이제 막 기어가기를 시작한 외증손자의 함빡 웃는 얼굴이 동영상으로 스마트폰 가득히 떠올랐다. 손 뻗으면 만져주기라도 할 것처럼 살짝 내미는 작은 손가락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식구들 모두 환성을 질렀다. 수만 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편리한 세상이 아닌가?
구수한 된장국과 따끈한 흰쌀밥이 나왔다. 마지막 코스인 듯했다. 이미 배가 불러 더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좋아하는 두부 된장국이 코앞에서 자글자글 끓고 있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밥 한 숟갈에 된장 국물만 가득 부어 숭늉처럼 후루룩 들이마셨다. 국물이 싱거워 물 먹듯 했는데도 전혀 짠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아내의 이야기보따리가 솔솔 풀렸다. 신혼 초, 아무 연고도 없는 타관 객지 춘천 조양동의 단칸방 월세살이부터 대전 도마동을 거쳐 고향에 들어와 터를 잡기까지 반백 년이 넘도록 함께 해온 삶의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하얗게 늙은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면 인생 다 살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며 말끝을 흐렸다. 홀 안이 금세 숙연해졌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를 바꾸는 게 좋을 듯싶어 서둘러 케이크 자르기에 들어갔다. ‘8’과 ‘0’ 모양의 양초 심지에 막내가 불을 댕겼다. 나풀거리던 불꽃이 단 한 번의 입바람으로 꺼지자, “힘이 좋으시네요. 아직 젊으세요.”라는 찬사가 왁자한 웃음소리에 섞여 들렸다. 곧바로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성균관대 의대 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우리 집 맏손자였다.
“할머니, 팔순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저희 곁으로 가까이 이사 오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찾아뵐 수 있으니까요. 할머니처럼 우아하고 밝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할아버지처럼 외유내강한 정신을 닮고 싶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앞으로도 건강하고 활기찬 나날 보내세요. 손자 손녀 올림.”
할머니가 손주들을 와락 껴안았다. “고맙다, 내 새끼들. 바르게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힘찬 박수 소리에 묻혀 더욱더 가늘게 들렸다. 잠시 후, 어머니께 올리는 팔순 선물이라며 이번에는 큰아들이 작은 상자 하나를 내보였다. 영롱하게 빛나는 목걸이였다. 강건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며 딸과 두 며느리가 정성스레 아내의 목에 걸어주었다. 또 한 번의 커다란 함성과 박수 소리가 홀 안을 가득 메웠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 추억 만들기 순서입니다.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으로 왼쪽에 다섯, 오른쪽에 여섯입니다. 어른들 사이사이에 아이들이 끼어들면 그림이 훨씬 더 예뻐지겠네요. 열세 식구 다 준비되셨죠?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구호는 막내아들이 외쳤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는 연신 방을 들락이며 친절을 베풀던 여종업원이 기분 좋게 눌러주었다. 오후 3시가 다 될 무렵, 산수연이 막을 내렸다. 그토록 즐겁고 흥겨운 한때를 보냈으나 내일부터는 또 각자의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주어진 바쁜 일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슬기롭고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낼 우리 가족이 아닌가?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뿐했다.
첫댓글 사모님 산수연을 축하합니다. 다복한 가정의 할머니로서 건강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셔도 좋을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문필가이자 화가이신 김회직 선생님께서 사모님 잔칫상 풍경을 아주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맛깔나게 묘사하셔서 독자는 실제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동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날, 많은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윤회장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인생 팔십을 넘기고 보니, 아옹다옹 해가며 함께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네요. 때로는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하구요. 더 늙으면 이렇게도 못할 것 같아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만들어본 것이랍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싸늘해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10. 21일 향인미술관 관람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존경합니다.
문회장님, 고맙습니다. 안사람이나 저나 아직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자식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고향이 눈에 선합니다. 더구나 단체사진을 보고 있자니 향인미술관이 자꾸만 아른거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조촐하고 이름없는 미술관이지만 저의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는 생각이어서 그런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다그쳐지네요. 그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모쪼록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