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0:12~27
아합은 사마리아에서 22년 통치합니다(기원전 872~기원전 851년). 아합 통치 기록이 열왕기상 16장 29절에서 22장 40절까지 나오는데, 이세벨의 마지막 장면까지(열왕기하 9장) 포함하면 북왕국 왕들 가운데 가장 분량이 깁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농경의 신이며 다산의 신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하게된 이스라엘은 왕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하여 가나안 전역에 만연해 있는 바알신앙을 자연스럽게 흡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한 것도 아닌듯 합니다. 여호와 신앙이 그의 자녀들 이름에 나타납니다. 세 자녀 이름이 모두 여호와와 관련돼 있습니다. 두 아들 요람('여호와가 옳다', 왕하 8:16)과 아하시야('여호와의 소유', 왕상 22:51)와 딸 아달랴('여호와의 크심', 왕하 8:26, '오므리의 손녀')에서 보듯 여호와 숭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더 매달렸습니다. [박태순의 교양으로 읽는 성서]
그러나 이런 다원주의적 종교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훗날 이세벨은 사단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합을 등에 업고 악행을 일삼습니다. 그녀의 딸 아달랴는 남왕국 유다로 시집가서 손자들을 몰살시킴으로 다윗의 왕조가 끊어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뿌리깊은 바알숭배의 국가적 차원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예후같은 강력한 통치자의 등장이 절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예후가 바알을 많이 섬기리라는 대성회의 선포를 들은 바알 선지자들은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왕국의 대관식에 참석하는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수도를 향하여 옮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제사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바알의 신전을 변소로 만들고 모든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몰살시킨 예후의 정책은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복과 화를 내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을 먹여살리는 줄 알았던 바알이 새 왕의 칼날앞에 맥없이 스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호와께서 홀로 참 신이심에 대한 자각이 생겼을 것입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바알숭배의 뿌리를 뽑아내고 여호와만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예후의 결단력있는 개혁의지를 사용하신 듯 합니다.
우리는 보다 높은 곳에 눈을 두고 보다 윤택한 생활을 꿈꾸며 당장 눈앞의 유익을 위하여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원대하고 거룩한 계획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짓에 반응하여 결연한 마음으로 그 분의 존전앞에 서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