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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의 시
열정
강 신 홍
밭두렁
잡풀 속에서자라던
해바라기 하나
지난 폭우에 무릎이 꺾였다
고랑 사이에
아슬아슬 걸친 얼굴
그래도
태양을 향한 바래기
멈추지 않고 있다
임을 향한
지극한마음
죽음 앞에서도
환히
웃고 있다
내 목소리 내고 싶다
강신홍
화창한 봄날
정원에서
뭇 새들 노래 소리 듣고 있는데
불협화음처럼 튕겨지는
꽤액 괘액
비명 같은 소리를 쫓아
전신주를 올려다보는데
비둘기보다도 작은 새 한 마리 앉아
소리치고 있다
봄기운 가득한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귀청을 찢는
돼지 울음 같은
내가 흘깃거리든 말든
아랑곳없이 내려다보며
꽤액꽤액 소리치고 있다
주눅 들지 않고
제 목소리 당당히 내는
당돌한 작은 새
나는 내게 묻는다
내 목소리 당당히 내며 살았는가를
열녀 났어
권 혜숙
곁에 있어도 항상 보고 싶은 사람
때로는 누나가 되고
때로는 엄마가 되고
때로는 애인이 되어
진리로 나아가는 도반이 되게 하소서
결혼 20주년을 맞아
해인사에 가서 이렇게 기도했다는
말을 들은 친구
“열녀 났어, 열녀 났어,”
곱씹어 뱉더니 휑하니 일어선다
발원하옵니다 .
권 혜 숙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성문스님네께 지성으로 귀의하옵니다
지난세월 무명과 삼독심으로 한량없는 죄를 지어
오늘에야 비로소 참회와 발원하옵니다
지난 날 신구의(몸 입 뜻)로
나도 모르게 지은 업장(까르마)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참회하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세가 다 할 때까지
관세음보살의 지혜
지장보살의 높은 원력
보현보살의 행원력으로
가정에서는 화목에 힘쓰며
사회 국가에서는
모든 이에게 필요로 하는 보살
우주법계에서는
부처님 진리에 역행하지 않는 보살. 거사로 살길
발원하옵니다
순간순간 찰라 찰나에 삼세가 다 있아오니
최상의 행복이 만족임을 알게 하소서
부처님 법대로
성철스님 법어대로
꿈같은 일체에 속지 않고
용맹 정진하라는 법어처럼
법주사 주지스님의 순수한 마음으로
정진하며
무주상보시를 행하는 여여거사
선의심 포교사로서
백련암에서
부처님법대로 살길 발원하옵나이다
결혼 20주년을 맞아
해인사 백련암에서
여여. 선의심 합장하옵니다.
쥐구멍
김 병 규
창고 안에 어린애 주먹만 한 쥐구멍이 났다
흙으로 메웠더니 조금 더 크게 났다
돌로 메웠더니 더 크게 났다
고슴도치 털보다 더 날카로운
밤 껍질로 꽉 틀어막았더니
아뿔싸, 어른 주먹만 하게 뚫려버렸다
쥐약을 놓을까
쥐덫을 놓을까
망설이던 며칠 뒤
우리 집 개가
그 놈의 쥐를 물고
자랑스럽게 내 앞에 선다
거미. 1
김 영 희
슬픔 가득한 너의 목소리
들릴 때마다 구석진 자리에
웅크리고만 있었어
기다리는 거야
지친 날개 접힐 때까지
사방에 필요한 방어벽을
칠 수가 없었어
그저 기다리는 거야
가진 거라곤 길고 길게
늘어뜨릴 하얀 줄 뿐이었어
하늘도 백지처럼 하얗게
바랬을 때 그곳에 투명한
집을 짓기로 했어
눈물로 자꾸 끊기는 내 목숨 같은
줄을 견디어 내야만 해
햇살이 번지겠지
조금씩 고장 난 줄들을 꿰매어
최고의 끈적임으로 세상을
불러들이겠어
대상포진
김 유 순
퇴직 후 전국의 산을 다 오르자고 벼르며
우리나라 한 가운데 중심 괴산에 둥지를 틀었다
등산 마니아였던 나,
순전히 산으로 잘 달려가기 위한 귀촌은
그러나
귀촌이 아닌 귀농이 되어버렸다
서툰 농부가 되어
천여 평 밭을 일구었다
눈만 뜨면 햇빛과 맞장 뜨며 풀과 씨름했다
산에 갈 시간은 없었다
쉬고 싶다는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이곳저곳에 절실한 신호를 남발해도
애써 무시하고
밭고랑에 접혀있어야 하는 나날들
산을 잊고
여가를 잊고
자주 묵직하게 깊어지던 통증은
드디어 포문을 연 것이다
가을걷이 콩 타작이 있던 날
숨이 턱에서 막히는
콩처럼 튀는 신음소리 속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상포진
내 속이
내 몸과
맞장 뜨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흐르는 물입니다
김 유 순
당신은 흐르는 물입니다
하얀 물살로
모난 자갈돌 옥같이 보듬는
부드러운 물살입니다
당신은 흐르는 물입니다
때론 큰 바위 앞을 막아도
말없이 비껴 돌아 흐르는
고요한 물살입니다
당신은 흐르는 물입니다
물도 썩고 이끼 낄까
쉼 없이 흐르는
깨어있는 물살입니다
당신은 흐르는 물입니다
흘러 흘러 주름진 물살은
사랑스럽다 못해
눈물겹기조차 한 물살입니다
바닷가에서
변 주 섭
그녀를 만난 것은
네 잎 크로버 찾기보다 어려운 행운이었지
풀밭에서만 놀다가
찾아간 바닷가
독수리가 새끼를 바위 둥지에서 밀어내는 용기로
떨면서 눈 질끈 감은 고백
파도처럼 엄습하는 전율
내 사랑은 뜨겁고 저리고 아프다
아픔마저 소중한
소중해서 눈물 나게 슬픈
몸살 같은 한기까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먼 하늘을 응시하면
태양처럼 뜨거운 열병으로 휘감기는 사랑
아무리 아파도
영원히 치유되지 않기를
부딪치는 파도소리보다 크고 깊은
울림이
그녀 안에 닿기를
내 고향 밤나무
윤 용 길
온 들이 누렇게 물들고
추석이 가까워지면
앙칼진 가시 세워 몸 지키던
만삭된 밤송이들
외둥이 쌍둥이 세쌍둥이
머릿기름 자르르 바르고
엄마 품에서 하나 둘 빠져 나온다
낙엽에 콕 처박히고
도랑으로 떠내려가고
엄마가 꼭 껴안아 놓치지 않은
다람쥐와 숨바꼭질하는
밤톨들
가을이 오면
밤 가시에 손 찔리며
알밤 줍던 생각
모락모락
해마다
가을이 오면
달려가는 내 고향
목도 장날
이 인 순
목도 장날은
이제 장날도 아니다
개킨 자리 선명하게 펄럭이는 옷들
난장에 펼친
옷 장사 하나뿐
공구 장사도 그릇 장사도
젓갈 장사도
다 사라지고 없다
이고 지고 장 보러 와
어깨 부딪치며 걷던
산 아래 중턱 넘어 사람들
하얀 할머니 한분
밀차를 밀며 기어가듯 지나 간 뒤
주인 없는 누런 개 한 마리
어슬렁 가는 길
못 견디겠는지
바람이 먼지 나도록 바닥을 쓸고 있다
빨래집게
이 인 순
내 삶은
오동나무에서 시멘트 담 사이
힘들어도
내게 매달리는 자
한 번도 외면한 적 없는데
언제부턴지
장대비 오는 날의 농사꾼처럼
하늘만 쳐다보는
개점휴업상태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랬지
일이 없다는 것은
다 살았다는 것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가슴 속 질러가는
위태위태한 바람을 견디다 보면
하늘도
허공의 집게손으로
나를 들어 올리고 있다
메뚜기
임 병 순
황금물 퍼부은 듯
노란 들판은
한 철
메뚜기 세상
짝을 업은
쌍쌍의 메뚜기들
많고 많다
사랑만 하기에도
기우는 해
메뚜기들 이마가
서늘하다
호강 시켜 줄께!
젊은 날 손가락 건 약속 때문에
여기도 저기도
업고
뛰는
메뚜기들
산막이옛길
임 병 순
산짐승들 어슬렁 다니던
귀양 온 양반네 나들이 가던
다래넝쿨 우북하던 길
계절마다 낯 선
때마다 다른
괴산댐 푸른 물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막이옛길
서울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몇 시간씩 달려서
찾아온 사람들
소나무 동산 그네에
한가롭게 앉아
솔 냄새 강 냄새 맡고 있다
청량음료보다 더 시원한
푸른 냄새
보따리 만들어
이고지고 가고 싶대나
찔레꽃
천 용 순
어머니 따라 산에 갔다
물 먹고 싶다 보챘더니
통통하게 물 오른
찔레순 한줌 꺾어
갈증을 달래주던 어머니
백발이 되어 손짓하는 듯
불러 봐도 대답이 없는....
사랑한다, 속삭여도
가슴 꽉 부여잡고
눈물만 뚝뚝 떨구네
찔레순 꺾어먹던 상큼한 향
어머니
산자락 기슭에 망울 망울
그리웁게 피어있네
풍경 있는 산막이 옛길
천 용 순
수려한 강물위에
마주하는 조용한 풍경들이
분주하게 달려온 삶
모든 것 내려놓으라 하네
유유히 흐르는 물결 따라
발걸음도 천천히
느린 삶을 배우네
낮은 자리로 오기까지
물들은 바위이끼 닦아주며
맞서지 않고 굽신굽신 빙글 돌아
괴산호에서 깊어지네
담쟁이
장 민 정
벼랑을 붙들고 산다
되짚다
기웃거리다
밤마다 온 몸에 별을 다는 여자
왜 허기가 지는 지
몸이 뒤틀리는지
수없이 되묻고 되묻다가
무심코
구멍 파는 여자
구멍 속에 자신을 비벼 넣고 마는 여자
물 한 모금 주고받을 정情 없이도
바늘구멍만 한 자리
비빌 언덕
쓰다듬고 감싸느라
피멍 든 여자
벼랑에 매달려
밤마다 별 헤는 여자
헤다가 헤다가 몸뚱이 가득
별 새기는 여자
몸 따로 맘 따로
벼랑 타는
담쟁이 여자
온몸이 길이다
장 민 정
초등학교 옆 담장 위에 나팔꽃 피었다
엄지와 검지로 슬쩍 비비기만 해도 으깨어지고 말
실같이 가느다란 몸
높은 담 위에 올라 앉아 해맑게 웃고 있다
뼈마디 하나 없이
어린 매화나무는 어떻게 휘어잡았을까
짱짱하게 뿌리내린 나무들과 팔짱은 어떻게 끼었을까
햇볕 한 조각 이슬 한 방울
남들이 먹다 남긴 먹이를 근근이 주워 먹던 어린 시절부터
햇빛 쏟아지는 운동장이 보고 싶어 죽겠다고
얼마나 많이 애원하고 설득했는지
굽이굽이 달팽이 무늬 회전로가 길게 놓였다
높이높이 별박이 연을 띄우기 위해
부레를 끓이고 사기가루를 발라
쇳소리 나는 튼튼한 연줄을 만드는 사람처럼
밤을 지세며 한 발짝씩 멀리멀리 돌고 돌아
기어이 기어오른 끈질긴 힘,
담 위에 올라앉아
성찬을 즐기는 첫 아침
태양을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별박이 연을 날리듯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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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선생님! 창작교실 문집2회 엮기까지 너무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착오없이 안과 밖으로 봉사하시는 선생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가슴 설레던 시 창작 제2권이 나왔습니다.
텅 빈 머릿속에 한 줄의 영감을 넣어 주시려고 애쓰시던 선생님
한 가닥 감동 있는 알갱이를 잡으려고 밤새워 고심하던 날들 모두
보람된 날들이였나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늦게나마 장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