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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차 자코보비치·찰스 펠리그리노 지음/감주헌 옮김/예담/1만3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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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무덤/심차 자코보비치·찰스 펠리그리노 지음/감주헌 옮김/예담/1만3000원
2000년 전 인류의 구세주로 온 예수는 로마 병사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나 사흘 만에 무덤에서 살아났다. 기독교의 위대한 ‘부활’사건이다. 이 신화 같은 기록을 기독교인 외에는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를 남긴 ‘역사적 예수’를 아는 길은 없을까.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별로 흥미로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 많은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은 이 땅에 살았던 예수를 찾는 일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수의 무덤’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심차 자코보비치와 고생물학 박사인 찰스 펠리그리노는 1980년 예루살렘 탈피오트에서 발견된 1세기경 유대인 무덤을 추적 끝에 예수와 그 가족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낸다. 외전(도마복음, 빌립행전, 마리아복음)과 통계학이 동원됐고, 녹청 동위원소 분석까지 끌어다 댔다. 무덤에서 발견된 증거는 놀랍게도 예수의 죽음은 물론 같은 매장지에서 발견된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말해준다.
예수 사후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알 수 있던 일이 왜 오랫동안 묻혀 있었을까. 예수와 그의 직계 가족에게 가해졌을지도 모를 로마의 가혹한 조치를 피하기 위해 많은 사실이 감추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로마 교부들이 기독교의 교리와 역사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을 유대·기독교인들과 막달라 마리아로 여긴 나머지 역사적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책은 주장한다. 교부들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예수의 신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움직이는 폭탄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책은 ‘예수의 유골이 발견되고 예수에게 부인과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왜 신앙을 뒤흔드는 위험요소인가’라고 반문한다. 책은 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진정 따르고 믿어야 할 것이 312년 무렵부터 교부들의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에 의해 조작된 교회의 권력인가, 아니면 예수의 가르침인가’ 하고 몰아붙인다. 예수의 성스러움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책은 도발적이다. 예수를 좀더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감동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로마 권력의 예수신화 제작과정
(((아키몬드)))
1. 짜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고,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 메시아, 종말론, 구원론, 묵시문학 등이
주변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됨.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인들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게 됨.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 선과악,천사와 사탄, 구원, 부활, 심판...등
기독교의 거의 모든 핵심 교리를 제공했다.
2. 점성학에 의거해서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함.
↑물고기자리(당시 종교사제들은 지나칠만큼 ↑태양의 운동과 천문도에 의한 태양예수도
천문에 집착했다.) (초창기 예수가 태양숭배신앙에서 만들어진 증거)
3. 시리아, 그리스, 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은 유대인들은 급속하게 헬라화가 진행됨.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부터 메시아 사상을 내포한 수많은 유대 묵시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함.
이때, 에세네파와 같은 유대교 영지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함.
↑에세네파당들의 필사 및 보관 동굴 ↑그들의 생활 거주지가 발굴되었다.
4. 미트라교가 조로아스터교를 흡수하고 중근동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
이 종교는 고대부터 내려왔던 동지축제, 춘분축제 등을 흡수하고,
그리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디오니소스 의식과 헬라철학도 흡수해버린 괴물종교가 됨.
↑페르시아의 대단히 매력적인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완벽히 흡수해 거대한 로마의 미트라교가 되었다.
5. 정치적 혼돈 속에서 디아스포라화 된 유대사회에,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 이스라엘에 구세주가 왔었다고 선포하고 다님.
예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ex: 아볼로, 바울) 구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예수를 증거함.
(이들이 증거한 예수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 속의 예수일 가능성이 큼)
←바울은 '예수론'이라는 유대판 미트라교를 헬라철학식으로 체계화했다.
6.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사망한 이후, 바울 서신과 사도들의 편지들이 기록되고 정리되기 시작함.
또, 그 동안 짧은 경구로서만 전해지던 예수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문서화 되기 시작함.
(Q문서)
←이집트 호루스, 페르시아 조로아스터,로마의 미트라,그리스의 디오니수스,
인도의 불교적인 표절 신화부분을 모두 걷어내면 Q고스펠이 남는다.
7. 시간이 흐르면서 토요일 안식일 같은 유대습성을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한 초대교회는,
서서히 헬레니즘 문화권의 태양신 신화를 차용하기 시작함.
이때쯤 전승으로 내려온 단편적인 예수이야기와 Q문서 등을 통합한 복음서들이 하나 둘씩 등장함.
헬라 철학자 첼수스(Celsus (Greek: Κ?λσο?)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기독교가 헬레니즘 문화의
신들을 표절했다고 비난하기도 함.
←첼수스(Celsus)는 예수교가 전적으로 여러 신화와 이방종교를 그대로 본떠 만든
유대인의 표절물이라는 사실을 맹렬히 비판했다.
8. 예수신화의 창조자이며 그 신화의 의미를 알고 있는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배척 받음.
광신적인 자칭 정통파들은 숫자가 많았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에 밀려나기 시작함.
←원래 원조는 품조를 지키는 법이라 굴러온 돌에게 ?겨난다.
9.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
태양신 숭배자였던 그의 영향력 아래 기독교는 일요일, 삼위일체설, 크리스마스, 부활절, 십자가 교설 등
미트라교리를 그대로 마구잡이로 흡수(표절)함.
←북유럽의 신화 축제 부활절, 부활절은 북유럽 신화의 축제다.
색칠한 달걀;토끼등이 신화적 상징으로 등장한다.
일요일 예배, 삼위일체,부활절,십자가,부활....등 모든것은 이집트 종교,조로아스터,미트라교에서 완벽하게 표절해온 것이다.
결국, 예수는 미트라를 흡수한 또 하나의 괴물이 되 버림.
영지주의자들은 반체제적인 자유사상가들이었기 때문에, 정치와 손을 잡은 자칭 정통파 기독교에게 완전히 밀려나 버림.
이것이 우리가 얻어낸 예수 신화론의 결론이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바울이 기독교의 제1창립자라면 콘스탄티누스 기독교의
제2창립자라고 평가할만한 인물이다. AD 33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유세비우스에게
소실되어 없어진 성경들을 수집하도록 명령한다.
그 때 성경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상당부분의 성경이 첨가, 삭제 또는 개정되었다.
현존하는 5천개의 초기 신약성경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의 예수상(相)은 이때쯤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대해 언급하는
이교도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대대적 분서갱유).
그는 또한 교회에 고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궁에 취임시켰다.
붓다를 표절해 예수이야기를 만들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각색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붓다의 탄생, 유년지, 그리고 출가에 맞춰 이야기의 뼈대를 맞추었다.
또 네 장면의 목격, 여러 가지 유혹들, 광야에서의 고행 기간 등 모두가 붓다의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파드마삼바바/ 티벳 死者의 書 / 류시화 편역 / 정신세계사 /P.52]
←고타마 붓다 이야기는 당시 중동,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불교가 변형된 종교도 나타났다.
당시에 동서양으로 뻗어나간 마니교(Manichaeism)에 의해 부처의 이야기가 서양에도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다.
시중에 떠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기독교의 성자(聖者)로 둔갑시킨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카톨릭 성자 중에 전설 속의 허구인물이거나, 실존인물에 허구의 일대기를 갖다 붙였거나,
심지어 이교도의 성자를 기독교 성자로 둔갑시킨 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빌라도 총독까지 성자(聖者)로 둔갑시키고 날조문서를 만들어 내던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교인과 교부들이었다. 바로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창조해낸 사람들의 손아귀에 있던 성경이,
시간이 흘러 현재 여러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복음서 속의 예수는 환상 속의 예수이다!
그가 실존했던지 아니면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의 존재이던 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 속의 예수는
로마 제국 당시 중근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구세주 전설과 헬라철학에 의해
덧붙여지고 가공된 인물이라는 점은 피할 수 없다!
(신화를 걷어내면 유대 혁명가같은 예수가 감지된다)
예수는 단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허구 속의 가공의 인물일 따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부처가 기독교의 성자로 둔갑한 일이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이 붓다를 중세 시대의 성 여호사밧의 성격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다.
중세기독교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이 유명한 사례는 카톨릭 성자인 발라암과 여호사밧
(라틴명은 요아삽 또는 요사팟)의 이야기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한 왕자가 어떤 인도 왕국의 승계자로 태어났다.
왕자가 탄생하자 나라안의 예언자들이 왕위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데 문득 한 현자가 나타나서, 그 왕자는 위대해지긴 하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개종자로서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자를 보호하고, 또 왕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부친은 그를 왕궁 안에 가뒀다.
어느 날 잠시 왕궁 밖을 나갔다가 왕자는 절름발이와 장님을 목격하고는 인생의 어두운 면을 알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수도자가 변장을 한 채 왕자 여호사밧을 찾아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부친은 귀신 쫓는 마술이나 미녀들을 이용해 왕자를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성장한 여호사밧은 왕궁을 떠나 수도자 발라암과 함께 광야에서 수행을 했으며,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카톨릭 성인 이야기는 명백히 기독교가 불교의 붓다의 생애를 표절해 만든 코메디같은 이야기다.
예수도 이런 불교의 영향으로 그 생애가 만들어졌다.
예수는 곧 붓다라는 인도성인의 유대인 개정판인 셈이다.)
기독교, 불교 차용소재 일부 소개
(아래 사진은 본 메뉴의 117번 글<바로아래>
'[사진]기독교는 불교카피교인가?'란 글의 사진을 캡춰한 것입니다.
고타마님의 '[사진]기독교는 불교카피교인가?'란 본글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요)
↑간음한 여자 이야기
↑과부의 헌금 이야기
↑광야의 마귀 시험 이야기
↑물위를 걷기, 제자 구하기
↑물고기 2마리, 보리떡 5개 수천명 먹이는 이야기
↑산위에서 설교하는 산상수훈이야기
↑세례이야기(호루스의 세례이야기가 룩소르 벽화에도 있음)
↑이집트 룩소르 사원에 있는 벽화.
호루스 신의 처녀잉태, 수태고지,기적,십자가 죽음,부활...의 일생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
↑한 제자의 배반 이야기
이 외에,
신약 속에서
이집트 신화, 조로아스터교, 미트라교의 내용을 제외한 예수의 가르침 거의 다가
불교에서 온 사실에 대하여 충분한 자료를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면 됩니다.
클릭:117 -[사진]기독교는 불교카피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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