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성어 '결초보은'의 주인공…
강아지풀과 똑 닮은 억세고 질긴 풀
수크령
늦가을 낮은 벌판이나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든 피어 있는 억새는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더해주죠. 수크령<사진> 역시 가을철 가장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논이며 밭 주변, 억새밭으로 향하는 산길 어딘가, 공원이나 거리 사방에 커다란 은빛 꽃이삭(이삭 모양으로 피는 꽃)을 무더기로 피워요.
수크령이란 이름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인 '그령(암크령)'에서 나왔어요. 그령과 닮았는데, 좀 더 뻣뻣하고 이삭이 크다는 의미에서 '수크령'이라고 해요. 수크령은 언뜻 보면 한해살이풀인 강아지풀과 똑 닮았는데요. 크기가 손가락 한두 마디 길이에 불과한 강아지풀과 달리 수크령의 꽃이삭은 성인 손바닥만 할 정도로 커다랗답니다. 또 강아지풀 꽃이삭이 마치 강아지 꼬리처럼 아래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면, 수크령은 커다란 꽃이삭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어요.
키나 잎의 크기도 달라요. 바닥에서 수십㎝ 정도로 낮게 자라는 강아지풀과 달리, 수크령은 키가 1m 남짓으로 크고 줄기도 굵고 잎도 훨씬 크지요. 강아지들이 꼬리를 내리고 살랑이는 것 같은 강아지풀 무리와 달리, 수크령이 핀 곳에 가면 튼튼한 줄기가 쭉 뻗어서 커다란 꽃이 창처럼 사방팔방 자라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요. 이 모양이 마치 '분수' 같다고 해서 영어로는 수크령을 '분수초(Fountain grass)'라고 부릅니다.
수크령은 아주 억센 풀입니다. 강아지풀과 달리 꽃이삭의 털 까끄라기는 아주 까칠하고 줄기나 잎 모두 질긴 편입니다. 이 때문에 수크령을 툭 꺾으려 하다가 팔이나 손을 베어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나 줄기가 질긴지 예리한 낫으로 강하게 내리쳐야 수크령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수크령의 일본명은 지카라시바(力芝)인데 이 역시 '힘센 풀'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질긴 특징 때문에 수크령은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한자성어를 만들기도 했어요. 먼 옛날 중국 진나라 군주 위무자와 첩인 서모 이야기에서 비롯된 한자성어인데요. 위무자가 나이가 들어 병세가 악화하자 아들 위과에게 서모를 죽여 함께 묻어 달라고 지시했어요. 그러나 위과는 이 말을 따르지 않고 서모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후 위과가 전쟁터에서 위험에 처하자 서모의 친정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적군 앞에 놓인 수크령을 꽁꽁 매어 덫을 만들어주었어요. 적군이 탄 말은 여기에 걸려 넘어졌고 그 사이에 위과는 달아날 수 있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풀을 엮어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의 결초보은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어요.
요즘 학자들은 수크령의 질긴 특성을 활용해 산 비탈면 등을 덮어 산사태를 막는 풀로 이용하려고 연구하고 있어요. 또 수크령 줄기를 빳빳하게 말려서 튼튼한 공예품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