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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앤디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톰 티크베어
배우: 톰 행크스, 휴 그랜트, 휴거 위빙, 할리 베리, 수전 서랜든, 짐 스터게스, 벤 위쇼, 배두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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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혼자 보는 걸 싫어한다.
카페 모임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선천적으로 수다쟁이인 나는 내 느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숨이 막혀버린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혼자 영화를 봤던 경험이 내 인생에 딱 두 번 있다.
하나는 '우디 앨런 특별전'이었고(하루에 연달아 영화를 세 편 본 특별한 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클라우드 아틀라스'였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모양이다.
미국에서 '2012 최악의 영화 1위'에 당당히 올랐다는 얘기도 있고,
인터넷에서 감상평을 검색해 보면 '영화라고 쓰고 똥이라고 읽는다', '워쇼스키와 저능아들' 등 아주 그럴싸한 제목들이 난무한다.
물론 호평도 많지만.
그렇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재 자체가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윤회... 물론 나 역시 한국인이고 동양인이니 이 자체로 신선할 것은 없다.
하지만 '감독 일당'이 이걸 어떻게 다루었을지 궁금했다.
단순히 인과응보의 체계로 다룰 것인가? 그러지는 않길 바랐다.
오히려 화엄경에서 설한다는 그 현란한 이미지 같은 것이기를 바랐다.
화엄경에서는 이 세상의 인과관계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묘사한다고 한다.
'수십억 개의 구슬이 서로를 비추는 형상'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현란한 이미지인가? 나는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문자 그대로 현기증을 느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통찰이자 직관이다. (대체 인도인들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것은 그 수십억 개의 구슬 중 하나에 점을 찍는 것과 같다.
그 점은 찍는 즉시 옆의, 그리고 그 옆의 옆의 옆의... 구슬에 반영되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 구슬에까지 모두 반영된다.
그리고 그 형상이 다시 원래의 구슬에 비춰진다. 그리고 또...
이 모든 것이 찰나에 이루어진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 반영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이루 다 추적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하는 윤회의 체계 역시 그런 것이다.
('윤회는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내가 말한 '윤회'를 '대륙과 세기를 넘나들며 역사하는 대칭성'으로
- 보르헤스가 쓴 글귀이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감독 일당은 과연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었는가?
글쎄, 여러 가지 제한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는 본다.
여기에는 여섯 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서로 조금씩 얽혀 있다.
이미 상영은 끝났으니 스포일러 걱정 없이 이야기해보겠다.
1. 19세기 초, 어느 목사의 사위인 변호사가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다 병에 걸린다. 사실은 단순한 빈혈 같은 것이었는데, 목사 사위가 지닌 현금(금화) 상자에 탐을 낸 동행인 의사가 약이라고 속이고 계속 독약을 먹인다. 이 사실을 밀항자인 흑인(원래 노예였다 도망쳤는데, 변호사의 중개로 그 배의 선원이 된다)이 알아내고 의사와 격투를 벌인 끝에 의사를 죽이고 변호사를 구해낸다. 결국 변호사는 집으로 돌아온 뒤 장인인 목사의 곁을 떠나 아내와 함께 노예제 폐지 운동에 투신한다.
2. 20세기 초, 로버트 프로비셔라는 작곡가 지망생이 늙어서 수족을 잘 쓰지 못하는 대작곡가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프로비셔는 작곡가의 작품을 보면서 틈틈이 자신의 작품을 쓴다('클라우드 아틀라스 육중주'...근데 실제로는 교향악 ㅡㅡ;). 어느날 대작곡가가 꿈(실제로는 다섯 번째 이야기의 한 장면)에서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악이 바로 클라우드 아틀라스 육중주였던 것이다. 프로비셔는 계약에 따라 이 곡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대작곡가를 총으로 쏜 뒤 도망친다. 그리고 작품을 완성한 뒤 자살한다.
3. 1970년대. 어느 잡지사 기자가 원자력 발전소 운영에 대한 음모에 휩쓸린다. 여러 가지 시련과 생명의 위협이 있었지만 결국 기자는 진실을 폭로하고 음모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음 이건 간단히 요약되는군 ㅋ).
4. 2012년. 타락한 출판업자의 이야기. 자기 출판사에서 작품을 낸 작가가 자신을 혹평한 비평가를 살해한 사건으로 떼돈을 번(원래 스캔들은 뭐건 간에 판매 부수를 높인다) 출판업자는 되려 감방에 간 그 작가에게 거액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원수처럼 지내던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형은 피신처를 제공하지만 알고 보니 그 은신처는 거의 감옥이나 다름없는 요양원. 자유를 갈망하던 그 출판업자는 뜻을 같이하는 노인 몇 사람과 함께 결국 도주에 성공한다. 첫사랑과 재결합한 것은 덤.
5. 미래 서울(뭐?!). 식당에서 서빙일을 하는 복제인간 '손미'는 어느 날 동료 복제인간이 인간('순혈인간')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 뒤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군에 포섭되는데, 처음에는 당황해하며 자신에겐 아무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자신도 인간임을 자각하고 또 다른 복제인간들이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목격한 뒤 저항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결국 저항은 분쇄되고 손미 역시 체포된 뒤 처형된다.
6. 문명 붕괴 후 수백년 뒤. 이 영화의 서두와 끝을 장식하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제 지구인은 원시 사회로 되돌아간 종족과 고등 문명을 간신히 존속하는 종족으로 나뉜다. 그러나 그 고등 종족 역시 방사능 때문에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야 한다. 원시 종족의 일원인 톰 행크스(영화 내 이름 까먹음 ㅡㅡ;)는 처음에는 그 고등 종족에서 파견한 한 여인(그녀는 다른 별로 떠나는 길을 찾고 있다)을 불신하지만 결국 마음을 열고 돕게 된다. 결말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그녀와 결혼한다는 거 ㅎ
무슨 얘기인지 알겠는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놓고 스토리를 공개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순차적으로 나열되지 않고, 극히 미약해 보이는 연결고리를 통해 서로 뒤섞이고 교차된다.
따라서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가 무척 어렵다. 잘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어렵다면 차라리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다.
등장하는 이야기들 자체는 서로 다르고, 다양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출판업자 이야기가 가장 코믹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박해와 착취, 강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사인'의 한 기자는 그 박해자가 계속 동일한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언제나 강자는 먹고 약자는 먹힌다'란 결론을 내리는데,
아마 휴고 위빙(실제로 그는 여러 스토리에서 모두 다소 억압적인 역할을 맡는다)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만 옳지 않다.
왜냐면 스토리 1에서는 가장 비열한 악당(의사)로 나왔던 톰 행크스는 스토리 6에서는 식인종들에게 약탈당하는
부족의 일원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스토리 2에서는 여관 주인이라는 별 볼 일 없는 단역을 맡기도 한다.
한 마디로, 여기 등장하는 배우들 대부분은 여섯 개의 스토리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에 걸쳐 중복 출연하는데
그 역할의 성격에는 일관성이 없다. 악역일 때도 있고 선역일 때도 있고 주역일 때도 있고 조역일 때도 있다.
윤회의 질서에 어긋난다고 보는가?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윤회의 시스템이 그렇게 명쾌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저 기독교의 인과응보 질서조차도 '욥기'에서 말하듯이 그보다는 더 심오한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억압의 성격 자체도 일정치가 않다. 그리고 억압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가도 일정치가 않다.
나는 이것을 일관성의 결여가 아니라 억압의 다양성으로 본다.
즉 탐욕에서건 복수심에서건 혹은 단순한 불신에서건 뭐건 억압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영원히 그렇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영화의 구성 자체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내가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1. 일부 등장인물의 몸에 새겨진 '별똥별 문양'은 무엇을 뜻하는가? 왜 각 스토리의 모든 주역이 이것을 공유하지 않는가?
(수정 1: 모든 주역이 공유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우가 그렇듯이, 영화에서 이를 알아채기는 의외로 어렵다. 그리고 '별똥별 문양' 자체는 환생의 직접적인 증거로서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분장쇼만으로도 충분치 않은가?)
2. 스토리 2에서 등장하는 '접시깨기 장면'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미지상으로는 매우 현란해 보이지만 그것이 실제 영화의, 혹은 그 스토리의 메시지에 무엇을 더해주는가? 내가 보기엔 아닌 듯하다.
3. 서울...? 어디가 서울인데? 물론 한글은 꽤 많이 등장한다. 잘못 쓰인 경우도 많지만('송공학'은 대체 뭐여?), 그보다도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그 미래도시 어디에도 한글 이외에 한국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깔끔한 호텔 객실은 일본풍이고, 저 도시 밑바닥의 풍경은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일 수는 있어도(글쎄, 동남아 사람이라면 이 글에 반발할 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도 어떤 식으로든 주입된 선입견을 따라가는 거니까. 양해를 구한다) 한국일 수는 없다. 이걸 두고 배두나를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글쎄, 감독에게 요청받은 게 아니라면 괜히 눈밖에 날 지적질을 하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닐 것이다.
4. '손미'가 처형 후 신격화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리고 스토리 6에서,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고 기다리다가 결국 해골이 된 그 무수한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단점은 이 정도면 대강 열거한 것 같다. 보면 알겠지만 나는 상당히 사소한 것에 시비를 걸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러한 단점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일부 장면은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생각했던, 반군과 정부군의 치열한 마지막 교전 속에서 '손미'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십수년 전에 꾸었던,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생생해지는 그 꿈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간단히 서술해본다. 다소 뜬금없고 논의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얘기지만,
내 꿈과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상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였다.
보름달이 유난히 환했기에 사위는 그저 어스름한 정도였던 깊은 밤에 포로 하나를 인솔하는 장교가 보였다.
아마 프랑코군 쪽이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의 깡마르고 꾀죄죄한 포로 사병과 40대 후반의, 좀 땅딸막하고 배가 나온데다
두툼한 콧수염을 기른 대머리(귓가에만 머리가 좀 남은) 장교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 병사는 내일 아침이면 총살될 운명이었고,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형을 앞두고 포로가 단 하룻밤만 묵게 될 감옥(미니멀리즘 건축의 표본이라 할 만한 작은 콘크리트 건물)을 향해
장교가 몇 걸음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양손이 묶여 있던 포로는 묵묵히 그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갑자기 장교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소리쳤다.
"지금부터 내 말을 복창하라! 알았나?"
"...예."
"하나, 이 땅 위의 모든 생명은 영원하다!"
"이 땅 위의 모든 생명은 영원하다!"(병사도 장교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또렷하게 외쳤다)
"둘, 이 땅 위의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이 땅 위의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셋, 이 땅 위에서 저질러지지 않은 잘못은 없다!"
"이 땅 위에서 저질러지지 않은 잘못은 없다!"
잠시 후 장교가 다시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때
포로는 그 자리에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소리 없이 오열했다.
장교의 질끈 감은 두 눈가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나 역시 울고 있었고, 울다가 깼다. 정말 깨고 싶지 않았는데도...
왜 이 꿈이 영화와 연결된다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감독 일당은 (윤회라는 형태로) 모든 생명이 무한히 연속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원한 순환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생명과 얽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손미가 그 격전의 와중에서 보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이 지구상의 모든 다툼은 결국 내전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투고,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모든 비극은 끊임없이 거듭해 이어져 왔다.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그러니 저질러지지 않은 잘못이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영화를 볼 당시에 이런 해석이 당장 떠올랐던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 꿈은 하나의 이미지로 내게 즉시 떠올랐고, 어떤 식으로든 나중에 이 연계를 정당화할 수 있으리란 직관이
나를 '꿰둟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결론을 얘기해보자. 감독 일당이 말하는, 아니 적어도 내가 알아들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윤회의 인과응보에 의해 못된 짓을 한 자는 내생에서 벌을 받으니 '차카게 살자'고?!
그렇지 않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그런 (아마도 이젠 서양인들에게조차)진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세 시간에 걸쳐 여섯 개의 이야기를 이어왔을 리가 없다.
감독 일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보다 더 미묘하다.
'영원한 생명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어떤 식으로 결실을 맺게 될지 모르며
다음 생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되돌아올지 결코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오직 서로의 선의를 믿고 협력하는 것이다.
비록 어떤 식으로든 박해와 핍박은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만이
거기에 맞서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나아가 어쩌면)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비록, 앞서 말했듯이 몇 가지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씨줄과 날줄을 엮어내듯 유려하게 풀어나간 이야기 속에 녹여낸 재주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볼까'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다. 돌아갈 차편 문제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쉽다.
이제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를 읽어보고 싶다.
첫댓글 헐~ 글 열자마자 스크롤의 압박에 다음에 읽기로 맘먹음...ㅎㅎ 사실은 방금 술먹고 와서...ㅋㅋ 암튼 대단하다. 자네가 이렇게 필받으면 이런 장문의 글이 나오는데... 요즘 왜 공연리뷰는 그리도 짧은게야?? ㅋㅋㅋ
답은 이미 자네가 말한 것 같구먼 ㅋㅋ
그래, 자네 필받기가 쉽지 않지... 암~ 그렇고 말고...ㅋ
ㅋ뭐예요~진규님^^
음반 리뷰는 쏙쏙 들어오는데,이번 영화리뷰는 뭔소린지 모르겠어요~ㅎ
그치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헹동은 선의를 믿고 협력하는 것에~무한 공감해요~^^
요즘 영화, 예전보다 가려보는 편인데,저도 꼭 보고싶어지는데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도 그렇구요~ㅎㅎ
감사합니다.~도리안님*^^*
참, 저도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좋아요^^
생각같아선, 아예 앞 뒤 옆, 한줄은 텅 빈 채,혼자 앉아볼 수 있음 더 좋죠~
예, 사실 줄거리 자체가 보지 않으면 뭔 소린지 알 수 없게 돼 있어요... 아니, 영화평을 읽어보니 보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리고 전 사랑하는 사람 손을 꼬옥 잡고 영화를 보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친한 친구도 괜찮죠... 바라건대 앞으로는 제가 영화 혼자 볼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저'도'라뇨?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그래요!! 인드라망!!! 전에도 들었는데 까먹었네요.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하나의 이미지 앞에 모든 언어가 멈추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니겠어요?
말씀하신 지적('도무지~ 많았지만') 부분은 저 역시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역시 저보다 훨씬 간명하고 압축적으로 쓰셨네요. 상록수님도 빨리 평론계에 데뷔하셔야 할 듯^^;
6번 스토리, 원시종족의 일원이 된 톰 행크스에서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진지하지만 유머감각도 있는 감독인가봐요ㅋㅋ
허, 전 그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었는데... 제가 영화에 너무 몰입했었나봐요. 원래 영화 보면서 딴 생각도 하고 그러는데 이번에는 ㅋ
전 아직 영화를 안보고...
책을 아주 재밌게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원작자는 거의 신에 버금가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어요.
이야기마다 거의 완전히 다른 저자인 것처럼 글을 쓰더라구요.
번역이 잘된건지 아주 흥미롭게 읽었어요. 원장의 맛을 살렸을까? 궁금했지만 일부러 영화를 안봤는데
영화도 한번 날잡아서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