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 外
박다래
미영 씨는 좋은 여동생이었다. 신도시 아파트에서 캡슐커피를 내리며 아직 죽지 않은, 혼자 죽어갈 자신의 언니를 떠올렸다. 남편과 딸은 외출했고, 미영 씨는 그들에게 일이 있다는 것을 의심했다. 창밖으로는 노란 꽃가루가 날렸다. 그것이 저층인 미영 씨의 집 창문에 달라붙었다. 노란빛을 통해 창밖을 바라보는 미영 씨. 미영 씨는 살을 벅벅 긁으며 꽃가루가 만든 문양을 바라보았다.
집 창밖으로 무덤이 보였다. 보상 없는 비와 디 사이에 씨. 아직 살아가고 있으니까. 5월이면 보랏빛 꽃이 피는 꽃잔디가 봉분 위에서 자라났다.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와 함께 미영 씨는 호수공원을 걸었다. 나무 데크 위를 걸으며 미영 씨는 호수공원의 호수는 어째서 두 개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북호, 남호, 동호, 서호, 수원지는 빗물펌프장.
호수 아래 묻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사람들에 대해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은 땅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호수공원 데크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미영 씨와 언니는 발자국을 보고 신발의 사이즈를 맞추었다.
호수공원을 둘러싼 오피스텔의 창에는 붉고 하얀 깃발이 붙어 있다. 사주, 타로, 인생 상담. 오피스텔 점성촌. 앉아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고 엄마들이 따라가고
미영 씨는 어찌하여 그들은 삼십 년 후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가 생각을 하며 걸었다. 걷는 동안 미영 씨와 언니의 발은 한 번도 엇갈리지 않았다. 미영 씨와 미영 씨의 언니는 걸으면서 가까워진다.
서로 만날 때까지 걸었다.
미영 씨는
믿음 끝나지 않는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먼 곳에서 다가와 고이는 물
미영 씨의 남편과 딸은 모두 신분당선을 타고 있다고 한다.
전철 어디선가 가족을 만날지도 모르는데
미영 씨의 딸은 이제
중간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고 한다.
미영 씨는 소실점으로 만났다가
다시 멀어지는 언니를 부르며 곧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찜닭 밀키트가 따뜻하게 데워진 자신의 집 벨을 누를 거라고
아직 가족으로 함께하며
숲과 초원은 아파트가 건설된 후에 만들어졌다
이 도시에 언니가 살았다
창밖 인공 숲과 초원
그곳에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은 조용하고 눈은 무겁다
나는 미지근한 머그잔을 손에 쥐고
쌓이는 소리를 듣는다
잔디 사이를 채우는 눈을 보면
젖은 곳에서 걷고 싶다
집 밖의 세계에 발을 내디딜 때까지 나는 현관문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준비가 되었나요 중얼거리다
현관 앞에서 서성인다
더 이상 언니가 이 도시에서 택시를 몰지 않아도
나는 젖은 채 바깥으로 추방될 수 있다
바깥으로 밀려날 때마다 늘 언니를 떠올렸다
어디선가 언니를 만날지도 몰라
흰 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은
녹색과 주황색이래
신발을 신다가 빛을 확인한다
언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잿빛 웅덩이가 깊어진다
길이 지워지고
나는 집에 이별을 두고 나간다
바깥의 시간이 나에게 손짓한다
젖은 곳, 젖지 않은 곳 여전히 마르지 못한 계절이 있다
수경 재배
자라게 하기 위해
아보카도 씨앗을 쪼갰다
보트를 타고 농장으로 가면 어린잎을 만날 수 있다고
번지는 오후의 빛, 보트 안에서
나는 물 위에 떠내려 오는 것들을 바라본다
전기 울타리에 부딪혀 기절한 새들
떨어지는 것들이 만드는 물의 파장
동심원이 넓어진다
잠자리채로 새들을 하나씩 건져내며
잠든 것들을 위해 곡식을 흘려보낸다
흐르는 물
젖은 깃털을 닦아내
햇볕에 따갑게 말린다
가느다란 새의 다리가 움직인다,
생각했는데
얇은 눈꺼풀 아래 푸른 눈동자
새들은 눈을 감고 꿈꾸지 않는다
어린잎들이 가까이 있다
나란히 바람 따라 기울어지고
떠오르며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씻을수록 선명해질까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
여름에 나는 그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는 스물세 살 여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나는 그 남자를 만났습니다.
책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책을 읽지 않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의 무릎에는 책이 놓여 있고 남자는 책이 놓여 있는 무릎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오후의 연못에서 남자는 붉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오후의 연못, 오후의 연못의 남자. 커다란 종이 있었고 그 종은 오랫동안 울리지 않았지만 조금의 푸른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오후의 연못, 오후의 연못의 남자.
남자는 벌을 먹을 줄 알았습니다. 남자는 부은 혓바닥을 내밀며 나를 사랑해달라고 계속 사랑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벌을 먹지 말라고 말했지만 남자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자는 사랑을 갈구하며 벌을 먹는 존재이기에, 부은 혀로 내 손등을 핥아주었습니다.
부은 남자를 안고 뛰었습니다. 부은 혀의 남자. 혀를 입 안에 넣지 못하는 남자. 바람에 흔들리는 남자. 얼마나 뛰었을까요? 내 품에는 남자가 없었습니다. 낯익은 하얀 새가 신발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얀 새의 날갯죽지를 잡으며 나는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처음 하는 일을 아주 잘하니까요.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보호구역
밤새 링로드를 달려 보호구역에 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자동차 바퀴에는 낙엽들의 잔해가 붙어 있었다. 젖은 낙엽, 젖은 공기. 오랜만에 돌아온 땅. 아이들이 부족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부족에서 가장 어린아이가 주머니에서 빛나는 홀을 내밀었다. 홀에 무언가를 넣으면 지킬 수 있다고, 다시 떠나기 전에만 돌려주세요. 홀에서는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 홀을 올려놓고 링로드를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계절이었다. 홀에 검지손가락을 넣었다가 뺐다. 손가락엔 검은 글자들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보호구역으로 달려오던 차들이 미끄러져 협곡 아래로 떨어졌다.
▲ 박다래
-1991년 출생.
-서울예대를 거쳐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2022년 상반기 《현대시》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