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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가장 위대한 기름 부음
마26:6~16
<우승 세리머니>
요즘 프로 야구 플레이오프전이 진행 중입니다. 머지않아 코리안 시리즈가 벌어질 것입니다.
최종 결승에 오른 두 팀이 일곱 번을 붙어서 네 번을 먼저 이기면 우승팀이 됩니다. 그 해의 진
정한 챔피언이 가려집니다. 코리안 시리즈에서 우승한 팀의 우승 세리머니, 기억하십니까?
불꽃 축포가 터지는 가운데, 우승팀 선수들 끼리 서로서로 샴페인이나 맥주병을 마구 흔든 다
음 뚜껑을 따면 샴페인이나 맥주가 마구 치솟아 오릅니다. 그것을 우승의 주역에게 뿌려줍니
다. 보셨지요?
또 미국의 프로 골프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의 세리머니도 있습니다. 한국 선수가 우승을 하면
옆에 있던 동료 한국 선수들이 샴페인 병을 흔들어서 샴페인을 머리에, 얼굴에 쏟아부어줍니
다.
왜 사람들은 우승의 기쁨 표현을 저렇게 할까?
사실 샴페인은 꽤 비싼 술입니다. 그 비싼 것을 마시기에도 아까울 터인데, 왜 그것을 우승한
사람의 머리에 쏟아부어줄까? 궁금증이 일지요? 샴페인이 비싸니까 맥주로 하는 것 같은데, 맥
주 역시 그렇게 싼 값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승의 기쁨 표현을 그렇게 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했을까요?
어쩌면 그 기원일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 스토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틀 전, 예수님은 낮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밤에는 어디에서 묵으시느냐?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유숙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키로 쯤 떨어진 조그만 마을입니다. 그곳에 음성 나환자촌이 있습니
다. 전주 인근에도 있습니다. 익산 왕궁이 음성나환자 촌인데, 그곳은 전국에서 맨 처음으로 정
상인들과 음성 나환자들이 섞여 사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그곳에 거처를 정했습니다.
그 집에서 집주인 시몬과 제자들과 더불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식사를 시작
했는데, 한 여자가 식사하는 거실에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들고 왔
습니다.
이 옥합이라는 것은 석고나 돌가루로 만든 유리병입니다. 그 병 속에는 대단히 값진 향유가 들
어있습니다. 이 향유는 대개 결혼식 때 새 신랑의 머리에 부어주거나, 자기 생명의 은인, 또는
대단히 존경하는 분, 자기 목숨을 다 바쳐서 충성할만한 분을 만났을 때, 최고의 선물로 머리에
부어드리는 것입니다.
또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도 합니다. 향유를 부을 때는 옥합의 꼭지를 똑 따내고, 향유를 붓습
니다. 그러니까 이 옥합은 대단히 값진 일회용 향유 병입니다.
이 여자는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한 예수님의 머리 위에 옥합의 꼭지를 깨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8절)『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중합니다.
“그러지 말아라, 이 여자는 지금 나에게 대단히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너희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가난한 자들은 항상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또한 이 여인이 내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하여 한 일이다. 내가 누차 말하지
않더냐, 내가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이라고. 이제 그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에 맞춰서
이 여자가 향유를 내 머리에 부었다. 그러니 이 일은 나의 장례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의 오늘 밤 이 행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천국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기념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 때, 반발했던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 가룟 유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체포하여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대제사장들에게 갔
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의합니다.
“당신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에 내가 적극 협조하겠다. 예수의 신상에 대한 고급 정
보를 주겠다. 체포할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겠다.” 그리고 은 삼십을 대가로 받았습니다.
이상이 오늘 본문의 스토리입니다.
<옥합 여인>
여자들은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저마다 옥합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일본의 중년 여성들은 그 옥합을 누구를 위해 깨뜨립니까? ··· 한류스타 배용준의 머리 위
에 붓습니다. 배용준이 떴다하면 한국이든, 중국이든 가리지 않아요. 배용준 얼굴 한번 보기 위
하여 적잖은 금액을 들입니다.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왜지요? 배용준을 좋아하니까,
자기의 옥합을 배용준을 위해 깨뜨리고 그의 머리에 부어주고 싶어 합니다. 일본 남편들이 화
가 났습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공항에서 배용준이 나타났다 하면 ‘욘사마~’하고
자지러집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하고 싶은,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나를 알아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그 사람 얼굴이라도 보면 막혔던 내 속이 확 뚫릴 것 같
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본성이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욕구를 좀처럼 해
소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대상을 사람들 사이에서 찾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산은 멀리서 봐
야 멋지다’고 합니다. 산이 멋있다가 다가가 보십시오. 가시덤불에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고 상
처 입기 딱 알맞습니다. 어떤 사람이 멋있다고 가까이 다가가 보십시오. 대번에 냄새나고, 짜증
이 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욘사마’ 즉, 어떤 절대자를 사람 중에서 찾아 해맵니
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은 그 대상으로서 예수님을 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어떻습니까?
가장 탁월한 선택입니다. 세상에서 딱 하나 있는 정답을 찾았습니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를 그렇게 불러도 ‘욘사마’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단
지 그때 그 순간뿐입니다. 잠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택했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처음이며 나중 되시고,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분에게 자기의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부을 수 있
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진정 복 받은 사람은요, 내가 산 주식이 뛰었다. 내가 산 땅이 두 배로 올랐다. 그런 것이 아닙
니다. 진정 복 받은 사람은 내 가장 귀한 향유를 꼭 부어드릴 분에게 부어드린 사람이 최고로 복
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자기의 옥합에 있는 향유를 부어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
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있는 음성나환자촌 시몬의 집에 유숙한다는 소식을 들었습
니다.
예수님이 일류 호텔이나, 고위관료의 저택에 초대 받고 계신다면 이 여인은 다가갈 수가 없습
니다. 문전 박대 당하기 딱 알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음성 나환자 시몬의 집에 있습니다. 그
집은 찾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 건강한 사람이 그 집을 방문하면 그들은 대단한 영광
으로 생각하고 반깁니다. 그렇지요?
음성 나환자들은 정상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때 최고로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아
무리 비천한 여자라도 자기 집을 방문해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마 그래서 예수님도 그
집에 유숙하신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은 옥합을 들고 그 집에 거리낌 없이 들어섰고, 식사하는 자리에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옥합 꼭다리를 ‘똑~’ 부러뜨리고 향유를 예수님 머리 위에 서서히 부었
습니다.
갑자기 최고의 향기가 시몬의 집 안에 퍼졌습니다.
가장 비천한 시몬의 집에 최고의 향기가 가득 찼습니다. 지옥이 천국이 되는 순간
입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저의 옥합을 깨뜨리고 최고의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저는 예수님만
의지합니다. 저는 예수님만을 믿겠습니다. 저는 예수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예수님께만
순종하겠습니다. 받아주세요 예수님~’ 할렐루야~
저도, 여러분도 이 여자처럼 오직 예수님께만 옥합을 깨고 그분께만 기름을 부어드리기를 간
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가룟 유다>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 가룟 유다도 마음속으로 자기 옥합을 깨뜨릴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사
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대상을 애타게 찾게 되어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이 분이 내 옥합 속에 든 기름을 부어드릴 만한 분인가?”
그러나 아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어떤 때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헷갈립니다. 그래서 때를 보고 있습니다.
이들 열 두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결단을 내린 제자가 유다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결단은 예
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리겠다는 결단이 아니라, 예수로부터 돌아서겠다는 결단이었습
니다. 아무리 봐도 예수는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할 만한 분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
다.
유다의 이 결단이 결과적으로 대단한 착오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다는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해 결국 자살하게 됩니다.
향유를 예수님 머리 위에 부은 여인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념이 되고, 칭송이 되는데,
유다는 어떻습니까? 복음이 전파되는 곳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복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약한 것을 고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틀 후면 십자가에 달립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예고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할 터인데,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죽는다, 내가 곧 죽는다, 내가 이틀 후면 죽는다.”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제자들은 꿈쩍도 안 합니다. 오히려 열 둘 중의 한 사람 유다는 전혀 반
대 방향으로 튈 기미가 보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여자의 이 행동이 바로 예수님이 고대했던 반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12절)『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이 여인의 행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가룟 유다는 거기에 향유 붓는 것을 거부합니다. 거부할 뿐 아니라 비난합니다.
(9절)『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나나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십자가에 향유를 붓거나, 비난하고 돌아서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십자가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습니다.
자기만 안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왕에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가로 막습니다.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리는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사실 여인이 옥합을 깨고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과 제자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었다고 해서 자
기에게 어떤 재산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반발합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왜 그렇게 주일마다 교회 가냐? 왜 그렇게 헌금하냐?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교회에 바치냐?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자기의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붓습니까?
자기 술 값, 담배 값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쓰는 돈이
사실은 자기의 소중한 옥합 속의 향유입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 옥합 속의 향유를 세상 재미에 쏟아 부을 것인지,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릴 것인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어노인팅>
프로 야구 한국 시리즈 우승 세리머니, 골프 우승자에게 하는 세리머니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승한 선수의 머리에 샴페인을 쏟아 붓는 일, 맥주를 쏟아 붓는 일.
참 신이 납니다. 내가 우승한 것이 아닌데도 즐겁고 기쁩니다. 내가 그 샴페인과 맥주 세례를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왜 그렇지요?
우리들 마음속에는 누군가에게 향유를 쏟아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또한 내가 누군가로부
터 그런 기름부음을 받고 싶은 강한 욕심도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는 그런 면에서 대리 만족을 줍니다.
본문에서 여인이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기름 부음’입니다.
헬라어로 ‘어노인팅’ 그럽니다. “어노인팅”
기름부음이 무엇입니까? ··· 그 사실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승자에게 샴페인을 퍼붓는 것은 당신이 진정한 승자임을 인정한다는 뜻입니
다.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은 예수님께 기름을 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나의 구세주입니다.”라고 인정하는 행동이 예수님께 기름 붓는 일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가장 진귀한 것으로 예수님 머리에 기름을 부읍시다. 할렐루야~
기름 부음은 목동이 양을 치는 데서 유래한 관습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털을 깎은 다음 양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 양이 다음 털을 깎을 때까지 한 마리 건
강한 양이 됩니다. 그때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면 도중에 피부병이 도졌을 때, 치유함을 받지 못
하고 폐사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시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섭니다.
신실한 믿음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은사의 기름부음도 받아야 합니다.
능력의 기름부음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도 받아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주신다
는 노래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습니까?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또 어디에서 기름 부음을 받습니까?
베다니 음성 나환자촌 시몬의 집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어노인팅, 기름 부음 중에서 가장 초라한 어노인팅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어노인팅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함으로써 저와 여러분의 기름 부음도 받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도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그 분이 부어주시는데,
프로야구 우승 팀, LPGA 우승 선수가 받는 화려한 샴페인 맥주 세례, 그것에 비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고, 우리가 기름 부어야 할 오직 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름 부어주시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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