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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윤일광 경남아동문학회 부회장이 "아동문예" 2014년 1,2월호에 동화 <약속의 꽃>을 발표했다.
동화
약속의 꽃
윤 일 광
아기풀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산 너머에서 온 바람이 하던 이야기 때문입니다. “에게게 이렇게 볼품없는 풀도 있구나. 꽃도 피우지 못하잖아. 우리가 본 풀 중에서 가장 시시한 것 같아, 그렇지?” 저희들끼리 속살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기풀은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리고 싶었지만, 못난 게 삐죽거리기 잘한다는 핀잔을 들을까 봐 그냥 꾹 참았지만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보아도 어디 하나 자랑할 만한 게 없이 못난 꼴이 줄줄 하긴 합니다. 낮달막한 키로 땅에 엎드린 모습하며 잎사귀는 거무튀튀한 게 참 볼품없습니다. 더구나 아직 한 번도 꽃을 피워 본 적도 없으니 남들이 놀려댄다고 대들기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둘러보면 주위에 좀 못생긴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멋진 꽃을 피우거나, 꽃이 신통찮은 친구는 허우대 좋은 건장한 몸매로 윤기 나는 잎사귀를 갖고 있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 못난 모습만 보면 속이 북북 끓어오를 뿐입니다. “아까 바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구나. 아가야 너무 걱정 하지 말아라. 우리도 언젠가는 탐스럽고 이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거야.” “흥” 투정을 부릴 때마다 엄마풀은 귀가 따갑도록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며 달래지만 그 소리도 이젠 싫증이 날 지경입니다. 하늘에 동동 떠다니는 꽃구름 닮은 예쁜 꽃을 피워보고 싶고, 바람도 취해버릴 향기도 갖고 싶고, 싱그러운 초록빛 윤이 나는 잎사귀도 자랑하고 싶지만 그 어느 하나도 아기풀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너희 자손 중에 가장 착한 마음씨를 가진 풀이 생겨 날 때,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 우리의 맨 처음 조상인 할아버지와 약속한 말씀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풀은 그 말씀을 그의 아들풀에게 전했고, 그 아들은 다음 아들풀에게 이렇게 대물림하면서 내려왔지만 아직 그 약속의 꽃은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기풀도 아빠풀에게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땐 착한 마음씨를 가지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때마다 금방이라도 가슴을 헤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터져 나올 것 같았는데,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새록새록 느끼게 됩니다. 좋은 꽃은커녕 이렇게 속만 북북 끓이다간, 영원히 땅바닥에 엎드린 채 더 못난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형편없이 못생긴 풀하고는 친구하지 말자. 예쁜 꽃에게 놀러가자.” 바람도 휭하니 떠나버리고 나니 아기풀은 더욱 외로웠습니다. “흥, 누가 친구하쟀나?” 눈을 살짝 흘기며 입을 삐쭉거렸지만 아기풀은 여간 속상하지 않았습니다. ‘혼자면 어때.’ 아기풀은 흉이나 보는 바람 따윈 잊어버리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 웬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모여 있지?’ 아기풀은 작은 키를 곤두세우고 쳐다보았습니다. 거리에는 좋은 구경꺼리라도 생겼는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좀 먼 곳이라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고함을 치는 사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 창을 든 무시무시한 병정들도 나와 있는 걸 보면 분명 무슨 큰일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아기풀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음.” 엄마풀은 짧은 신음소리만 낼 뿐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짓는 엄마의 표정입니다. “무슨 일이예요. 엄마?” 등을 쿡 찌르며 다시 물었습니다. “아가야,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분을 알겠니?” 엄마의 작은 음성을 떨리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서 있는 분?” 아기풀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아, 저분은…….” 아기풀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언젠가 이 산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시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때 아기풀은 ‘치,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 순 엉터리야’하고 입을 삐쭉거린 적이 있거든요. 그날 진짜 신기한 건요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언니를 아저씨가 일으켜 세워 걷게 하셨는데 앉은뱅이 언니가 만세를 부르며 언덕을 뛰어 내려갈 때 아기풀도 신이나 같이 뛰려다가 큰일 날 뻔했어요. 뿌리가 뽑혀나갈 뻔 했어요. 아마 오늘은 마을사람들이 아저씨를 위해 큰 잔치라도 베풀게 되나봅니다. 아기풀은 손뼉이라도 쳐주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저씨를 앞세우고 아기풀이 있는 동산 쪽으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요? 아저씨는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계시는 겁니다. 아기풀은 알고 있습니다. 맘씨 나쁜 아저씨를 벌줄 때 저렇게 십자가를 지우고 이곳에 와서 커다란 쇠못으로 탕탕 박는 것을 여러 번 봤거든요. 왜 저럴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저분은 착한 아저씨잖아요?” “그럼, 착한 아저씨지. 너무 착한 분이시기 때문에 미워하는 사람이 많단다.”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어려워서 아기풀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 어쩌면 좋아.” 아저씨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여기서 아저씨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실 때 하필이면 아기풀울 가리키시며 “여기 이름 없이 핀 들풀도 너희 하나님은 사랑하고 계신다.” 라고 하셨을 때, 아기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막 뽐내기도 했는데…….’ 행렬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죽여라, 죽여라.” 하고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얼마 전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아저씨를 따라다니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요? 아기풀은 어쩔 줄 몰라 작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애를 태웠습니다. 엄마풀은 슬픔에 잠기어 눈을 꼬옥 감은 채 숨을 죽이고 있을 뿐입니다. 몇 번이나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겨우 언덕까지 올라온 아저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신지 아기풀 바로 앞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신 차리셔요. 정신 차리셔요. 착한 아저씨.” 아기풀은 작은 잎으로 아저씨의 얼굴을 부비면서 안타깝게 소리쳤습니다. “여기에 십자가를 세웁시다.” 병정들이 서로 의논하더니 아기풀 바로 곁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합니다. “이걸 어쩌면 좋아. 착한 아저씨 정신 차리셔요.” 아저씨는 가늘게 눈을 뜨셨습니다. 그리고 아기풀의 애태움을 벌써 다 아시기나 하는 듯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도와 드릴 수가 없어요.” “나를 위해 슬퍼하는 건 오직 너뿐이구나.” 그 음성은 너무나 부드럽고 인자했습니다. 이럴 때 아기풀의 몸에 탐스러운 꽃이라도 있었으면 아저씨가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그리고 아름다운 향기가 있어 아저씨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향기를 드리고 싶지만 저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아기풀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향기보다 네 마음이 더 아름답단다.” 아저씨는 속삭이듯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겐 꽃도 없는걸요.” 아저씨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면서 미소만 지어 보였습니다. ‘아! 한 번만이라도 착한 아저씨를 위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아기풀은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저씨는 아기풀의 마음을 아셨는지 촉촉한 입술로 입을 맞추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아저씨의 입술이 닿은 곳이 자꾸 가려워지면서 찢어지는 듯 아파왔습니다. 한 여름날 따가운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질 때보다 훨씬 더 아팠습니다. 몸에 열이 나는지 자꾸 뜨거워지면서 아기풀의 등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병정들은 아저씨를 십자가 위에 눕히고 굵고 뾰족한 쇠못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박고 구덩이에 높이 세웠습니다. “착한 아저씨를 살려 주세요.” 아기풀은 자기 몸이 아픈 것도 잊고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불쌍한 아저씨.” 아기풀은 온몸을 흔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저씨 가까이로 다가가서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몸을 흔들 때마다 아기풀의 키가 쑥쑥 자라면서 어느 틈에 아저씨의 피 묻은 발에 닿았습니다. 그렇게 납작 엎드렸던 키가 이렇게 자라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착한 아저씨. 착한 아저씨.” 아저씨는 아픔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착한 풀아!” “저는 착한 풀이 아니에요. 착한 건 오직 아저씨뿐이에요.” 잠시 후 아저씨가 흘린 눈물방울이 아기풀의 몸에 뚝 떨어졌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터질 것만 같이 아팠던 못생기고 볼품없었던 아기풀의 등이 툭 터지면서 예쁜 꽃 한 송이가 피어났습니다. 아기풀은 놀라 기절이라도 할 뻔했습니다. 아기풀만이 아닙니다. 아빠풀도, 엄마풀도, 아기풀의 형제도 심지어 동산에 있던 모든 친구풀들도 아기풀이 피운 꽃과 똑같은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착한 아저씨. 이제 저도 아저씨께 좋은 향기를 드릴 수 있어요.” 아기풀은 있는 힘을 다해 꽃향기를 뿜었습니다. 이대로 말라죽는 다해도 아낌없이 다 드리고 싶었습니다. “에잇!” 험상궂게 생긴 병정이 창으로 아저씨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아저씨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신음소리를 내셨고 주르르 흐른 피가 방금 피어낸 아기풀의 꽃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아기풀의 꽃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물이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조용히 아기풀에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동화가 실린 아동문예 2014.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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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일광 부회장님, 귀한 글 잘 읽겠습니다. ^^
거제에서 빛나는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우~~~몰려가서 구경할 일만 남았습니다.
여러 가지 축하합니다.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다~~모두 열심히 뿌려놓은 씨앗을 거두는 상황이겠지만 부럽습니다.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찾아서
좋은 글 올려주시는
남전 선생님, 고맙습니다. ^^
"약속의 꽃"을 잘 읽었습니다. 아주 차원이 높았어요. 한 포기 풀꽃이 예수님과 대화하는 아주 차원 높은 얘기 였어요.
예수님의 마지막 한 마디을 읽고 무릎을 쳤어요.
아, 윤일광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자 차원 높은 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