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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마중물
사랑 샘 병원 앞 도로에서 음주 운전자가 몰던 트럭이 3중 충돌 사고를 냈다.
버스가 전복되고 트럭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을 하는 대형 사고에
사랑 샘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환자가 넘쳐났다.
세계는 ‘회복 단계’라 급히 다인 실이 없어 독방으로 밀려났다.
아버지 신기루 씨는 요한이를 기다리며 중환자실 앞에서 매일 오후면 찾아오는
요한이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님 왜 여기계세요?”
설명을 들은 요한이는 ‘회복단계’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병실에는 세계가 안대를 하고 누어있었다. 조심스럽게 불렀다.
“세계야 나 요한이 왔다.”
잠이 막 깬 듯 손이 안대로 가자 요한이가 벗겨주었다.
오늘도 세계는 천정만 보며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으으... 누구?”
“나 요한이.”
요한이는 한참이나 눈만 깜빡이는 세계를 보자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야 반장.”
“으으음....반장.”
“나 반장인거 알아?”
“아....니가....반장이던가...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세계는 아직 반장과 요한이를 한사람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근차근 친구의 기억 찾기를 어려운 수학문제처럼 풀어나가야 할 것 같았다.
세계는 또 엉뚱한 말을 했다.
“덕분에 컴퓨터는 잘 쓰고 있어.”
“헐~”
“헐이 뭐야?”
“헐은 놀랄 때 쓰는 말이야. 너도 그런 말을 자주 썼거든?”
“그래? 구렇구나.....”
사고 때문에 아직 설치하지도 않은 컴퓨터를 잘 쓰고 있다는 말 속에는
간절히 기다린 탓에 받은 걸로 착각하고 앞질러간 세계의 상상처럼 들렸다.
요한이는 세계의 뇌 속에‘헐’이라는 단어 하나를 입력시킨 것이 기뻤다.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하나둘 기억을 찾는 ‘작두 샘’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때 웹툰이와 일진 4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친구들과 첫 만남이었다.
모두들 합창하듯 소리쳤다.
“요한아 세계야 안녕~ 어? 아버님 안녕하세요.”
“그래 왔니? 고맙고 반갑다.”
세계가 아이들을 보자 놀라며 말했다.
“요한아 재들은 누구? 니 친구랑 같이 왔어?”
“어? 그래~”
요한이는 당황할 일도 아닌 일상이었지만 친구들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고
천정만 보며 말하고, 친구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외마디만 조심스럽게 했다.
“허얼~”
그러자 세계도 따라했다.
“허얼~”
멈칫 하던 웹툰이와 일진4는 세계가 자신들을 알아본 것 같아서 사과를 하러 다가갔다.
하지만 세계는 조금 전에 요한이에게 배운 변형된 ‘허얼~’을 그저 따라 한 것뿐이었는데
친구들이 착각한 것이었다.
웹툰이가 다가섰지만 반장만 불렀다.
“반장. 니 친구들이 와서 긴 이야기는 못하겠다.”
“아냐~ 니 친구도 되잖아?”
“내 친구라고? 허얼~”
웹툰이와 일진4는 세계가 ‘허얼~’ 소리와 함께 동그랗게 뜬 눈 하나로 세계의 정신 상태를
미루어 짐작했다.
말문이 막혀 입을 가렸다. 놀란 그들을 의식도 하지 않은 세계는 또 다시 엉뚱한 말을 했다.
“반장 빨리 가~‘부흥 하이업 콘서트’보러 가려면.”
“내가 콘서트 보러 가는걸 알았어?”
“응. 체조경기장에서 하지?”
“어? 그래~”
“어머니께서 하나둘. 셋 넷. 표 여섯 장을 주셨구나?”
“헐~눈치 백단이다.”
둘의 대화에 웹툰이와 친구들은 계속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웹툰이가 황당해서 요한이의 옷깃을 살짝 잡아끌며 눈짓으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아버지만 남겨두고 모두들 밖으로 따라 나왔다.
덩그렇게 남은 부자는 마치 모르는 사이처럼 아무 말도 없었다.
세계는 아버지를 마치 모르는 간병인처럼 대했을 뿐이었기에 아버지도 간병인처럼
보살피기만 할뿐이었다.
‘내가 아버지야~’ 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면 더 큰 충격을 받을까봐
스스로 먼저 알아봐주기를 원하는 소심함의 극치로 묵비권을 행사 하는 중이었다.
복도로 나온 웹툰이는 무척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 손바닥으로 벽을 치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시끼 너 이럴 수 있어? 세계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었어야지~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아 열 받혀. 너는 입은 두었다가 어디다 쓰는 거냐?
니 뇌는 공부에만 쓰냐? 이런 개 미친시끼.”
일진 4는 처음부터 놀람의 연속이라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마주보며 손가락을 세우고 빙빙 돌려 보였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가 정신이상자가 됐다면 자신들에게 다가올 파장이 너무 컸기 때문에
병문안을 올 때보다 더 떨려왔다.
웹툰이와 요한이의 입씨름이 길어졌다.
화가 난 웹툰이의 속사포 같은 말과 욕설을 다 듣고 난 요한이가 말했다.
“아니야 네 맘은 인정한다.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보고 이야기해라.”
“뭘. 뭘 들어 이 자식아~ 나 지금 개 열 받아서 널 두들겨 패야 할지.......
그리고 세계를 이렇게 만든 내가 존나 미워서.....”
웹툰이는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돌렸다. 울고 있었다.
웹툰이는 흐르는 눈물과 함께 흐려진 기억 한 조각이 스쳤다.
웹툰 만화가가 꿈이라며 어설픈 그림 솜씨로 세계의 집과 아버지를 조롱하듯 그린
그림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는 자책감이 쓰나미처럼 격하게 밀려왔다.
“나 때문이야 나....”
웹툰이는 또 다시 벽을 쳤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시 요한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알리지 않은 것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웹툰이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야 내가 판단력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야.”
웹툰이는 후회를 하며 진정 기색이 보였는가 싶었는데 요한이의 말에 돌아서서 또 소리쳤다.
“야 부요한. 너 이시끼 정말 존나 재수 없거든? 니 그런 말들이 존나 역겨워.
뭐든지 넘치는 놈이 부족하다 부족하다 하는 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못난 놈으로 만든다고~씨바.”
요한이와 일진들은 웹툰이의 화가 풀릴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후 안정을 찾은 웹툰이가 말했다.
“미안하다. 울고 보니 개 쪽 팔린다. 요한아 욕한 거는 미안하다.
내가 정말 부족 하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은 것 같다.
앞으로는 성질도 좀 죽이고 너처럼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팔려.”
요한이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 시키려고 웹툰이 손을 잡고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부족하긴~ 너는 정말 멋진 그림을 그리는 내 친구야.
요즘도 학원에서 그림 공부하지? 넌 대학에 가면 넌 정말 멋진 웹툰 작가가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멘?”
“헐~ 여기서 아멘이 왜 나와~ 이런 개독. 쏘리 쏘리 크리스찬 반장님.
내가 회개 했으니 한번쯤은 예의상 찐하게 대답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애들아 그치?”
“아멘 할렐루야~”
“하하하하...”
웹툰이와 일당들은 한바탕 웃음을 웃었다.
요한이는 복도 의자에 친구들을 앉히고 그동안 일을 설명 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획도 알려주었다.
“지금 세계의 정신세계는 카오스 상태야. 보다시피 눈길도 안주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방학 기간에 시간을 내서 세계의 기억을 찾아 주자.”
“그래 당근이지.”
“먼저 세계가 하는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준 다음에 나처럼 대답을 하는 거야.
소소한 일상이라도 천천히 설명해주면 제 정신으로 돌아 올 거라고
원장님께서 말씀 하셨어.
우리는 지금부터 세계의 깊은 마음속에 잠겨있는 기억을 퍼 올리는
한바가지 ‘마중물’이 되는 거야. 오케이?”
“마중물? 애들아 반장은 언제나 참 고상한 언어를 써~ 그래서 반장인거겠지? 하하하”
“뭐야 쑥스럽게.”
“그럼 시작하자 빨리.”
또 다시 우르르 병실로 몰려갔다. 작은 탁자에는 음료수가 나란히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더 있으니 마시며 천천히 이야기해~ 난 일 좀 보고 저녁에 올게.”
“예 아버님 안녕히 다녀오세요~”
일렬종대로 서서 인사를 하고 모두들 편안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계가 물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궁금증이 해결 될 때까지 집착하는 어린왕자는
기억의 끄트머리가 되살아나서 물었다.
“어? 아직 콘서트 안 갔네? 왜?”
“응 아직 시간이 안 되어서.”
용감하게 도전장을 냈던 친구들은 처음부터 말문이 막혔다.
물꼬는 세계를 제일 잘 아는 요한이가 텄다.
“세계야 거시기 머시냐 갑자기 콘서트 가수가 생각이 안 나는데 누구더라?”
친구들은 갑자기 달라진 요한이의 전라도 사투리에 놀람의 공통언어로 합창을 했다.
“허얼~”
“요한아 너희 회사에서 처음 시행하는 문화 콘서트에 나오는 가수도 몰라 이런 또라이.”
“또라이 하하하하.....”
“왜 웃어? 내말이 웃겨?”
“응. 또라이가 무슨 뜻인지 알아?”
“몰라...그냥 나온 말이야.”
그때 웹툰이의 재치가 번뜩였다.
인기 있는 가수들 이름을 나열하면 그중에 세계가 한명이라도 ‘맞다!’ 할 것 같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기억을 찾을 것 같다는 희망이 솟구쳤다.
요한이보다 자신과의 대화가 잘 통해서 세계의 기억을 찾아주는 것이
친구에게 사죄하고 용서받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 일진들과 모여 하릴없어 읊어댔던 ‘라임’이 생각났다.
“애들아 우리 가수이름 랩 한번 할까? 드럼 4비트 엠 알이다. 쿵~”
‘쿵’ 하는 신호에 따라 일진 4는 먼저 비트박스를 시작했다.
“쿵 칫 탁 칫 쿵 칫 탁 칫 쿵 칫 탁 칫.....”
웹툰이는 래퍼가 되어 랩을 시작했다.
“빅뱅 엑소 블랙핑크 방탄 소년 단 갓 세븐 트와이스.
세븐 틴틴 샤이니니 레드벨벳 워너원원 비투비비.
에어 핑크 동방신기 소녀시대.......”
요한이는 연예계엔 문외한이었다.
웹툰이가 전혀 모르는 가수들을 나열하는 장끼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그들만의 언어로 감탄사를 해 주었다.
“와우~개 쩐다 쩔어.”
그 한마디에 친구들은 갑자기 그들만의 리그에 뛰어든 타락한 반장(?)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요한이는 그들과 하나가 되자 어머니의 철저한 교육 하에서 벗어나 절제되고 교양 있고
흐트러짐 없이 정형화된 부잣집 아들 모습을 탈피하는 쾌감마저 꿈틀거렸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계가 천정을 향해 소리쳤다. 마치 천정에 무슨 그림이라도 본 듯 말했다.
“잠깐. 래퍼 ‘딘딘’과‘김행복’ 인순이가 나오잖아~”
요한이가 잽싸게 마중물을 넣었다.
“어? 그래 맞아 내가 요즘 너~무 바빠서.”
“아무리 그렇다고 너가 콘서트 총 진행을 하면서 까먹어?”
“어? 그래 총 진행일이 너무 많아서.”
“헐~”
웹툰이와 친구들은 기억의 실마리를 잡았나 보다 했다가 총 진행자라는 말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도저히 현실로 끌어내려는 시도가 먹히지 않고 동문서답인지 자기만의 생각인지 상상인지
알 수없는 말만 늘어놓자 답이 없어 참으로 암담했다.
일진 중에 제일 체격이 가장 왜소한 친구인 ‘스몰’이 말했다.
“그렇게 쉬우면 머리 좋은 요한이가 해결했지~
세계밑천이 다 떨어지면 그때 다시 시도하고 무조건 들어보자.”
“그래 그게 났겠다.”
“야 니들 김행복이 랩 알어?”
“몰라. 전혀.”
“너희들 외계인 아냐?”
“허얼~”
세계가 웹툰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 요한이 친구는 알 것 같은데? 랩을 하는 거 보니까?”
“어? 그냥 쬐~끔....”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 콘서트 가서 들어봐.
열여덟 살 김 행복은 미국 ‘슬럼 가’에서 ‘갱스터 랩’ 가수로
‘갱이 될 수밖에 없는 소년’을 불러 유명해 졌거든?”
“그런 랩이 있어?”
“응. 그 랩은 ‘라임’이 참 좋아.
반항아의 청소년을 대변 하거든~”
웹툰이는 자신을 선택해서 기회를 준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마중물 한 바가지를 작두 샘에 부었다.
“세계야 그럼 한번 불러 줄래?”
“그럴까?”
갑자기 초롱초롱한 눈으로 랩을 시작했다.
나는 새장 속에 갇힌 마귀 마귀
듣기 싫으면 귀 막아요 아버지.
니들도 그랬지 이단아 반항아 야누스
그렇다면 최후에 선택. 비장한 선택
너를 두렵게 무척 떨게 놀라게 화들짝
게이가 되어 사랑할까 게이 노노노노
이건 위반 신의 법칙 위반.
그렇다면 너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건 한다 무엇이건
내가 비뚤어 졌다고 노 노 노 노.
고통 끝에 선택
갱이 될 수밖에 없는 선택
니가 만든 채찍 나를 하수구에 처박아
니가 만든 법칙 나를 감옥에 처박아
나는 자유로운 영혼 돈도 감옥에 처박아
부익부 빈익빈 끊을 수 없는 고리 따위는
감옥에 처박아.
웹툰이와 일진은 래퍼의 손짓 몸짓의 흉내를 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라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세계가 의심스러웠다.
‘이거 세계가 우리를 속이는 쌩쑈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웹툰이는 점점 무엇에나 월등한 요한이를 밀쳐내고 세계의 기억을 찾아 낼 수 있겠다는
욕심이 한껏 밀려왔다. 또 다시 연결고리로 세계를 유도하는 마중물을 부었다.
“어 그래? 히트곡이 그거뿐이야?”
“아냐~지코와 4인방이 피처링한 곡으로 인순이랑 함께 부른 노래도 있는데
정말 감동적이야.”
“그래? 언제 한번 들어볼게. 시디는 있니?”
“뭘~내가 다 아는데 불러 줄까?”
“그래? 좋아.”
웹툰이는 자신과의 대화가 무르익자 신이 났다.
세계는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하였다.
모두는 블랙홀로 빨려 들듯이 세계의 소용돌이에 하나가 되었다.
세계는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점점~아름다운 꿈이 사라져~절망의 늪에 허우적대는 사람만 눈에 보여요~
아이가 꿈꾸듯 푸르른 세~상은 저 멀리 사라지고, 무지개도 사라진지 참 오래 되었죠.
희~망, 만질 수 없어도 행복했는데~ 이제 변해 버린 세상에서는 오직 내가 만질 수 있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그것만이 행복을 채워준다고 믿고 살아요.
칼보다 강~한 것 사자보다 강~한 것 약한 내가 강한 세상을 이기는 건~
꿈이라고 희망이라고 배웠지만 이젠 아니야 내가 믿지 않아요. 절대.
(후렴x2)믿을 수 없는 내 마음을 누가 만들었나요.사람이 만든,
신이 허락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 최악의 병기 소리 없는 전쟁 그것 때문에
세상은 점점~그것 때문에 아름다움이~ 그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푸른 하늘이 바다에 내려와 앉~은 파란 물빛 꿈들이 사라졌어요......”
노래는 세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이보다 열 살 쯤 내려놓은 아이 목소리를 닮은 미성으로 천사의 노래 같았다.
긴 노래였지만 특별히 웹툰이는 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후렴을 두 번이나 반복하는데도 싫지가 않았다.
처음은 더욱 어려진 아이의 목소리에 놀랐다가 아름다운 목소리에 반했다.
하지만 제 정신이 돌아오자 세계의 정신세계가 계속 저 상태라면
‘우리와 같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먼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찡했다.
세계는 요한이와 이름도 모르는 다섯 명의 관객을 두었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아니 방학 내내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면
절로 나오는 금 같고 은 같고 옥 같은 세계일주 이야기를 해댔다.
지니처럼 ‘유체 이탈’을 한 이야기에서 해커 ‘게헨나 라이언’과 요한이 아버지 복권 조작 사업을 했고.
어린왕자에 바오밥 나무 아래서 아프리카 마라토너에게 준 신발선물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안개아가씨 호’를 탔다가 전복위기에서 깨어난
이야기에서 멈추었다.
세계는 이야기하고 친구들은 들어주는 정성이 방학 마지막 날을 앞당겼다.
오후가 다가오자 세계의 기억은 ‘모스부호’ 보다 쉽게 풀렸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것은 수술 이전의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간병인처럼 서 계시는 아버지를 답답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누어있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일진 친구 스몰이 파스 냄새를 풍기며 다가갔다.
세계는 익숙한 파스 냄새가 코를 찌르자 갑자기 아버지가 떠올랐다.
세계는 또 천정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가끔 몸이 아프시다 며 파스를 붙였는데 아버지가 보고 싶다.”
깜짝 놀란 아버지가 다가갔다. 겉옷을 벗으며 어깨를 보여 주었다.
“아들. 나 아빠다 파스 봐라 여기.”
“예?”
대답과 함께 강한 파스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다가 눈을 감았다.
순간 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렴풋한 기억은 리어카에 앉은 3살쯤 되는 아기였다.
또 다시 혼잣말을 했다.
“아기가 리어카에 앉아 있어요. 폐지를 끌고 오네요.
컴퓨터가 자판기만 있는데 신나게 타자를 치네요.
7살쯤 아이가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네요.
티비를 보고 많이 놀라는 표정이에요.”
그리고 말이 끊겼다.
아버지는 아들이 기억을 하나씩 찾고 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너야 너 그게 너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완전한 기억으로 돌아 올 때까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상기된 얼굴을 본 친구들은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버지는 목이메인 말을 침을 삼키며했다.
“세계야. 그건 너야 너. 니가 맨 날 집에서 고물 소리 나지 않는 티비를 보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처음으로 사준 탕수육을 먹으며 티비가 소리가 난다고 놀랐던
니 모습이야 알아? 알아?”
하지만 대답대신 무신경으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는 동네개가 무서워서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떨고 있어요.
눈이 왔어요. 눈 케익이 있고 어른소리가 들려요.”
“그래 내가 그랬어. 내가아빠의 날을 만들고 오늘부터 아빠의 날이다~ 하고.”
하지만 대답대신 또 다음 이야기로 이어갔다.
“집에는 세계전도가 벽에 붙어 있고, 고물 시계가 많아요.
고장 난 뻐꾸기시계가 8신데 5번 울다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긴 괘종시계도 있고”
“세계야 그건 니가 고친 시계들이야.”
하지만 대답도 없이 다음 이야기로 이어갔다.
“학생이 아버지 다리를 주무르고 있어요. 오르골을 고치고 스티커를 붙이네요.
책을 읽고 있어요. 책 제목이.... 제목이....”
생각이 안 난 것일까? 아버지가 마음이 급해서 말했다.
“덤보? 하이디. 어린왕자. 무협지. 80일간의 세계일주?”
“맞아요. 생각났어요. 나는 저 책을 읽고 아버지하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배가 전복되려는 찰나에 아버지 손을 놓쳤어요.
그게 아버지와 마지막이에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부르며 눈가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고개를 돌려 지금껏 간병인으로 착각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보이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들. 우리 아들 신세계. 내 이름은 뭐지?”
“신기루.”
“그래 맞아. 우리 아들이 개구쟁이처럼 웃었는데 3살적 그 웃음 한번 웃어 줄래?”
“이 히히히... 이 히히히히......”
세계는 웃음이 아닌 소리내기였지만 볼도 입 꼬리도 눈도 따라 웃었다.
친구들의 박수와 환호가 일제히 터졌다. 감격 또 감격 모두가 얼싸 안았다.
“만세~ 세계야 해냈다. 대한민국 짝짜자짝 신세계 최고다 만세~”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요한이의 기도 끝에 외친 ‘아멘 할렐루야’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웹툰이와 일진4의
기쁜 환호에 파묻혀 버렸다.
그렇게 방학 5일째 날은 모두에게 감동의 날이었다.
세계가 친구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엷은 미소로 웃어 주며 물었다.
“애들아....근데 내가 왜 여기에 누어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어? 그건 아직 이야? 그건 말이야~”
모두들 이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는 사고가 난 날 요한이가 불러서 왔을 뿐이었다.
학교에서 쓰러져 책상에 부딪혔다는 것 밖에 몰라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요한이는 자세한 전후사정은 잘 알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세계 아버지께서 화가 나셔서
홧김에 일이 커지면 친구들이 퇴학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입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기억 회복의 열쇠를 알고도 고양이목에 방울은 아무도 달수 없었다.
그때 일진 ‘스몰’이 주저주저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세계야. 파스는 아버지만 붙인 게 아니라 나도 붙였어.”
“왜?”
“너가 나를 날아 차기를 해서 맞은 자리거든? 꽤 오래 가네?”
“내가? 나는 친구에게 욕도 한번 안 해 봤는데 믿기지 않아~”
“그날 몰라?”
“그날이라니?”
“우리 일진4가 요한이를 둘러싸고 폭행을 했거든?”
“왜?”
“그냥 미워서.”
“그래?”
스몰도 대화가 되자 맘이 기뻐서 마중물을 맘껏 퍼부었다.
“그때 갑자기 너가 우리 4명에게 겁도 없이 큰소릴 쳤거든?”
“내가? 그래서?”
“니가 소리쳤지 선제타격. 일격 필살. 어쩌고 하더니 갑자기 나를 날아 차기로 쓰러뜨린 거야.
넌 마치 소림축구나 무협 영화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푸하하하하....하하하.....”
세계는 자신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에 놀라면서 처음으로 가장 신나게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너무 웃다보니 갑자기 머리가 띵~하며 한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그랬어.”
“생각났냐?”
엉뚱하게 요한이도 웹툰이도 가장 가까운 아버지도 아닌 ‘스몰’이 한 장의 파스로
‘알고리즘’을 풀었다.
“맞아. 난 친구들 놀림에도 욕설도하나 못했지 아버지 교육 때문에.
그 사건은 내가 최초로 폭력에 맞대응한 나의 대 변혁이었다.
나는 그때 정말 또라이였다. 이제야 생각났다.”
“와우! 생각났구나?”
“나는 그즈음에 무협지에 심취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주인공처럼 무림의 고수처럼
내공을 시험해 봐야지 했었다.
그날은 신축아파트 공사장 근처에서 4명이 하나를 둘러싸고 폭행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 집 그림을 그려 놀리던 웹툰이를 나무라던 반장이었다.
그런 내 친구가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무협지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정의의 사자처럼 일격필살 선제타격 집중공격을 외치며 무협지에서 뛰쳐나와
날아 차기를 했는데 그게 너?”
“그래 맞아 나야 나.”
긴 말을 마친 세계는 잠시침묵하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요한이가 말했다.
“세계야 나~ 그때 두들겨 맞아서 바지에 오줌도 쌌는데....
니가 무협지에 주인공처럼 뛰쳐나와 나를 구해주다가 다친 거야.”
“그래 맞아. 그날 바지 끝에 흘러내린 오줌을 보았다. 근데 너는 나를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쳤지?”
“아니 그보다도..... 바지에 오줌을 싼 것이 너~무 창피해서 도망갔다가 너 네 집으로 찾아 갔잖아?”
“우리 집이 어딘데?”
“집 몰라?”
“응.”
“수퍼 컴퓨터가 도착했다는 너희 집 주소를 불러 줄까?”
“뭔 소리야 내가 입원해서 잘 모르지만 컴퓨터는 오지도 않았을 건데 반장 너 바보 아냐?”
모두가 한목소리를 냈다.
“헐~ 반장 바보~ 반장은~ 바보라네~ 하하하하하.”
요한이는 바보라고 놀려도 좋았다. 자신을 구해준 또라이에게 작가가 되라고 선물한
최고 사양의 컴퓨터가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 것이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던 집을 찾아 주고 싶었다.
“너가 사는 곳은 달동네이고. 너는 자칭 공상가이며. 집 주소는 봉천동 산 몇 번지더라?”
번지수만은 자신이 스스로 알기를 원했다. 모두들 세계의 입을 주시했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산.... 88번지 꼭대기에 허름한 나무 대문과 정낭이 있고.
시집간 누나 꽃 이라고 부르는 족두리 꽃이 만발한 마당이 있고.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던 문패에 아버지 이름 신기루라고 붙어 있는 우리 집.”
“와우~ 완벽해. 우리에게 돌아온 신세계를 환영한다. 박수~”
웹툰이와 일진들이 무척 좋아서 소리쳤다.
“레알?”
“짝짝짝......”
방학 마지막 날이 저물었다.
상처도 아물어 가고 붓기도 많이 빠지고 누가 보아도 회복의 기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밤이 되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태풍이 스쳐간 아침은 언제 그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조용해 졌다.
“아버지, 우리 산책한번 할까요? 밖에 나가고 싶어요.”
“그래?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바깥 구경 한번 하자. 너 김밥 먹고 싶지 않냐?”
“예 김밥 요? 당연히 먹고 싶죠. 어디서 사 오시려고요?”
“응, 병원 정문 앞에 은행 나무아래 신호등에 김밥 장수가 있는데 가끔 사먹었는데
아주 맛있어~ 꿀맛이야~”
“예, 같이 사러 가요 후딱 렛츠고~”
몸도 마음도 유쾌 상쾌한 기분으로 혼자서 휠체어 바퀴를 힘껏 돌렸다.
“안 돼 아직은 위험해 내가 할 게 가만히 있어 아들.”
두 사람은 병원 문을 막 나섰다. 그리고 간밤에 무수히 떨어진 은행알과 나무 잎을 청소하는
남녀가 보였다.
“아빠, 내가 병원 문을 나와 처음으로 본 사람이 청소부 아주머니와 아저씨네?
내가 죽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사람이지?”
“왜 그런 말을 해 죽긴 누가 죽어~ 저 사람들을 본 것이 그렇게 좋아?”
“예, 좋아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조건 좋아요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것은 더 행복한 일인데
아빠가 있고 친구가 있고 해피해피 해서 휘파람이라도 부르고 싶어요. 하하하하”
부자는 행복으로 휠체어를 밀고 바퀴는 행복을 싣고 병원 유니폼을 입은
청소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20미터 10미터, 그때 여자가 조금 큰소리로 남자에게 말했다.
신기루씨는 여자의 목소리가 서울 말씨에 섞인 사투리를 보고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 같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곳을 바라보았다.
“자기야, 빨리 쓸고 후딱 우리아들 입원실에 가 봐야지.”
“응 알았어, 장난꾸러기 녀석 이번엔 팔목을 다치고, 퇴원하면 돌아다니지 못하게
다리를 묶어 놔야겠어.”
“아참 인역도~아들이 시골에서 올라온 달구새끼야 그러면 안 되지라~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래야지라~하하하하.... ”
“후딱? 어디서 들은 사투린데? 맞다 내 고향 전라도사투리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향을
잊고 살았구나. 너무 바쁘게 살았어.....”
호탕한 웃음소리도 어디선가 들은 웃음소리였다.
부부의 다정한 대화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신기루 씨는 부부의 ‘둘째 아들이 다쳐 입원했나 보구나.’ 하고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남은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