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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자걷기] 후기 스크랩 제11구간 세째 날 이야기-김레아영자
함수곤 추천 0 조회 139 13.04.11 20:4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한밤의 사진편지 제1896호 (13/4/12/금)

함수곤의 블로그 '한밤의 사진편지'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ham60/>

'한사모' 카페 'romantic walking'으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cafe.daum.net/hansamo9988 >

cafe.daum.net/hansamo9988

 

 

대한 민국 U자 걷기 제11구간 세째 날 이야기

 

(전등사 - 강화읍 27km)

 

 

글, 사진 편집 : 김 영 자(레아)(leayoung@hanmail.net)

사진 : 이 창 조(홍보위원장.lc191@hanmail.net)

김 민 종(부위원장.mjmjk123@hanmail.net)

 

 

2013년 4월 3일 수요일,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 강릉,울진,포항,부산,통영,장흥,영광,군산,당진,인천을 거쳐

파주 임진각까지 1517km 3800리,

한반도 둘레길 대 단원의 마지막 제 11구간 세째 날 입니다.

안개가 조금 낀 날씨였으나 기온은 쾌청했습니다.

전날, 강화 나들 길 8코스 15km와 7-1코스 15km를 걸었습니다.

 

세째 날인 이 날은 강화 나들 길 2코스 27km를

오전 오후로 나누어 걸을 예정입니다.

전 날 30km에 비해 이 날의 27km는

조금 위로가 되리라 짐작해봅니다.

그럼에도 세째 날은 늘 절반의 고비에 해당합니다.

회원들의 컨디션 또한 그럴것입니다.

 

 

이틀밤이 예약된 세인관광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구간의 특성상 첫날부터 긴 거리를 걸었습니다

회원들의 모습에선 약간의 누적된 피로가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화기애애했습니다.

대 단원의 막을 내리는 이번 구간에 대한 감회가 남 다를 것이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하는 결기 또한 그럴것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분명 몸은 원 상태로 돌아올것이며

깔끔하게 마련된 가정식 백반과 맑은 국물이 속을 풀어줄 것입니다.

또한 신선한 귤과 바나나가 놓여 있는 식탁이 저절로 기운을 붇돋습니다.

좋은 후식거리를 제공해주신 허필수 회장님 내외분께

감사했습니다.

 

 

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예정입니다.

강화읍 호국돈대길을 종일 걷고 또 다시 이 숙소로 돌아올것입니다.

66명의 인증샷을 한컷에 넣기엔 버겁습니다.

남,녀로 나누어 담은 후

오늘의 첫 방문지 전등사로 출발했습니다.

 

 

전등사를 돌아본 후 남문 주차장으로 내려올것입니다

약 1시간 거리입니다.

'강화 대교 건너 역사적인 장소를 돌아볼것이며

특히 천주교 성지를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연미정에 올라

북한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칠것입니다.'

이영균 위원장의 안내와 주의 사항을 들은 후 전등사로 행했습니다.

 

 

전등사 오르막 길에서 바라 보이던 삼랑성은

마치 절을 감싸 안은 병풍을 연상케 했습니다.

2,300여m에 달하는 길이의 성곽으로

국가 사적 제 130호로 지정 되어있습니다.

 

단군의 3 아들 부여,부우,부소에 의해 쌓아졌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정족산 정상에서 동,남을 향한 계곡에 수구와 남문이 있습니다.

또한 성 안팎을 거친 할석(割石)으로 겹축했으며 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곽 길을 올려다 보며 눈 요기 만으로 끝낼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을 이경환님과 담소하며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사찰로 들어서는 오르막 왼쪽과 오른쪽 양옆에

부도(스님의 무덤)와 윤장대가 보였습니다.

한 바퀴 돌리면

경전 한번 읽는것에 해당 한다는 윤장대입니다.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루게 해 달라는 염원이 들어있다했습니다.

 

 

전등사는 삼랑성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 진종사(眞宗寺)라 했습니다

그 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공주가 옥동자를 시주했다해서

전등사(傳燈寺)로 개명했습니다.

 

 

절 입구 대조루 밑 정면에 자리 잡은 대웅보전은

보물 제 178호로 지정된 건물이었습니다.

선조 38년(1605) 건물 일부와 광해군 6년(1614)에 불이나

소실되었던 것을 개축했습니다.

 

대웅전 내부엔

석가여래 삼존,후불탱화,법화경 목판 104매가 보관되어있습니다.

대웅전 처마 밑에, 알듯 모를 듯 숨어 있는 나상이 보였습니다

 

이 건물을 지은 도목수가 바람난 아내를 새겨넣은 것이라네요.^^

이구동성으로 도목수의 한 풀이라 했습니다.

안내자 이경환님 아니면 모르고 넘어 갔을 나상입니다.

 

 

전등사 범종은 보물 393호입니다.

중국 하남성 숭명사에서 조성되었으며 음통이 없습니다.

아름답고 맑은 소리를 가지고 있는 이 종은

일제 때 공출이란 명목으로 빼았겼다가 광복 이 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전등사 대조루와 취향당,약사전을 거치며 약 1시간 가량의 사찰 탐방을 마치고

걸어 내려와 우리의 숙소인 호텔 주차장에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로 초지진까지 이동할것이며

초지진 주차장에서 아침체조를 하고 성 안으로 들어갈것입니다.

 

 

김소영님의 몸 동작과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는 회원들의 몸이 유연했습니다.

이미 1시간 여의 전등사 탐방으로 몸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남은 일정이 문제 없을 듯했습니다.

 

 

초지진 담 밖에서 체조를 마친 회원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초지진은 견고한 성곽으로서

사적 제 225호였습니다.

강화의 동,남단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1656년 진이 설치되고 1679년

초지돈, 장자평돈, 성암돈이 축조되어 이진에 소속되었습니다.

6 문의 포가 설치된 황산포대와

12문의 포가 설치된 진남포대가 있습니다.

 

고종 3년(1866) 10월,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프랑스 군 극동함대와

고종 8년(1871) 4월, 통상을 강요하며 미 로저스,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일본 군함, 운양호등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곳입니다.

성 축과 홀로 남은 노송엔

당시의 포탄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강화도의 근대사와 초지진에 얽힌 역사의 이모저모를

윤종영 고문님의 해설로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화도는, 신석기 청동시대 대표적 유물인

고인돌 150여기중 70여점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국방의 방어기지로

성,진,보,돈대,포대등

국방유적이 설치되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왕실의 피난지 역할을 했으며

왕실 족보 보관을 위한

선원보각,실록보관을 위한 장사각으로 구성된

정족산 사고(史庫)및 외규장각,행궁이 설치되었습니다.

 

고려시대 임시 수도로서

고려 왕릉이 축조되었으며,충렬왕 12년(1286)에

최초의 향교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숙종때 12개의 진보와 53개의 돈대가 설치 되었고

강화산성과 강화외성이 개축되었습니다.

개항 전 후의 강화는

수도의 관문에 위치, 서구의 침략세력이 충돌하는 전장터였습니다.

병인,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을 거치며

항쟁과 개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병인양요때 외규장각을 프랑스 군에 약탈 당했으며

개항이후 서양종교의 수용과 근대식 학교의 도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 양학당이 설립되기도 했습니다.

삼국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모든 역사적인 사료에 대해

윤종영 고문님의 설명으로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추후 윤고문님의 글을 통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리라 기대해 보며

프랑스에서 영구 임대 형식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초지진을 나와 강화 나들길 2코스로 들어섰습니다.

전등사에서-초지진-광성보까지 13km, 약 4시간 소요 예정의

오전 일정 중 절반쯤 걸었습니다.

이제 부터 덕진진과 용두돈대를 지나 광성보까지

약 2시간 여를 더 걸어야합니다.

 

 

초지진 활어촌과 선착장, 두부 마을을 돌아

해안동로,온수천 다리를 건너

덕진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광성보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덕진진 누각을 통과해야 갈수있습니다.

 

 

덕진진 누각을 통과하니 확트인 바다였습니다.

강화나들길 팻말과 함께 반듯하고 넓은 돌 길이 약 100여m.

갈대와 들풀, 흙 냄새 물씬 풍기는 황토 길 약100여m를 끼고 있는

강화 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며 평화로웠습니다.

 

 

6시간 간만의 차이를 이루는 서해 바다엔

끝이 보이지 않는 개펄이 펼쳐져있었습니다.

들풀 무성한 길몫과 무한대의 바다, 그리고 철새가 날아 오르는 하늘에선

나직한 생명의 몸짓 소리들이 들려 오는듯 했으며

새삼 살아 있다는 인식 이상의 진실이

그 어디에 또 있을까 생각케 했습니다.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한유전의 생명체임을 긍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생을 잇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생으로 이어지는 인생.

모두가 대지의 한 조각, 땅의 한 부분

한 덩이 흙이 파도에 씻기면 대륙이 줄어든다, 곶이 줄어든다, 그대의 땅이 줄어든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부질없다 생각되는 삶의 앙금들을 바람에 날려 버려야하는 이유였습니다.

그저 이 길을 걷고 또 걸어

왔던 곳으로 되 돌아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40분 첫 쉼터였습니다.

전등사와 초지진,덕진진을 거쳐 도착했습니다.

예정된 점심시간까지는 1시간을 훌쩍 넘겨야 합니다.

간식과 음용수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길가 풀섶을 방석삼아 앉아 있는 모습들이 평화로웠습니다.

 

개성공단 폐쇠란 뉴스로 착잡했던 마음을

풀섶에 내려놓습니다.

시간은 흘러갈 것이며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또한 한 낮 백일몽처럼

지나갈 것임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는 순리라는 돗 배에

몸을 맏길 수 밖에 없습니다.

 

 

10분간의 휴식이 끝난 후 강화 나들길 표지판을 보며

오른쪽 철조망이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약 300여m의 오르막 후, 또 다시 내리막으로,광성보로 가는 길은

더 없이 아름다운 실크로드였습니다.

 

따듯한 햇살 아래 부토 되어 가는 낙엽의 냄새와

물이 듬뿍 오른 수목에서 연록으로 피어나는 싱그러운 향기가

노장들의 감성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봄날은 간다' '꿈에본 내고향' '이별의 부산정거장'등

노스텔지아 처럼 잔디 둔덕에 내려 앉던 4월의 햇살과

능성이 길을 오르며 부르는 회원들의 노래 소리가

어우러지며 가슴을 울렸습니다.

어쩔수 없이 생은 혼자 가는 고독한 길, 세상을 떠돌기는

누구나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광성포대를 눈 앞에 두었음에도

아름답고 정겨운 둔덕 길에 좀더

머물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광성포대 정자에 올랐습니다.

숙소를 출발,전등사와 초지진,덕진진을 거쳐

오전의 하이라이트인 광성보에 이른것입니다.

화장실과 잠시의 쉼을 가진 후

11시20분경 용두돈대로 향했습니다.

 

 

용두돈대는 강화도의 돈대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용 머리 같이 굽어진 지형을 이용,축조했으며

원명은 '사두돈'이었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뱀 보다 용이 났다 하여

용두 돈대라 했습니다.

둥그런 용의 머리 한 가운데에 '강화전적지 정화기념비'와

'포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수록 되어 있는 이곳을

담임선생님의 인솔하에 현장 학습을 하며

줄지어 다니고 있는 또래 학생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강화나들길 2코스에 속하는 용두돈대가

우리가 서 있는 현 위치입니다.

초지진을 출발했으며 광성보를 거쳐 갑곶돈대까지

오늘의 일정입니다.

 

 

용두돈대를 한 바퀴 돌아 광성보 방향 오르막 길을 올라서니

손돌목 돈대가 보였습니다.

'손돌목'은 물길이 거센 곳이었습니다.

 

손돌의 배를 타고 피난 길에 오른 고종과 관리들이 거센 물길에 시달리며

손돌을 의심했습니다. 결국 역적으로 몰아 손돌목에서 목을 베었습니다.

 

그러나 손돌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바가지를 바다에 띄워 따라 가라 권해서 왕을 살렸습니다.

 

손돌목 돈대 맞은편 바다 건너에

그의 무덤이 있으며

군기창으로도 사용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손돌목 돈대 주변 3곳에 광성포대가 있습니다.

1875년 운양호 사건때 파괴 되었다가, 2004년 발굴 조사를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손돌목 돈대 주변에

신미순의총과 쌍충비각이 서있었습니다.

신미양요의 격전지에서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51명의 순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신미 순의총'과

51구의 무명용사를 합장한

'쌍충비각'이었습니다.

 

 

용두돈대를 돌아 손돌목 돈대와

신미 순의총, 쌍충비각을 둘러본 후 광성보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광성 포대로 들어선 후

약 30분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광성보는 사적 제 227호 였습니다.

강화해협을 지키는 자연지형이 험한 요새로

강화 12 진보의 하나였습니다.

고려때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터였습니다.

 

 

드디어 오전 일정이 끝나갑니다.

11시 40분경 광성보에서 300여m 거리에 있는

통나무 쌈밥 집으로 향했습니다.

 

 

점심 메뉴는 '쌈밥 정식'이었습니다.

푸짐한 갖가지의 쌈 채소와 돼지고기 볶음, 우거지 무침과 절임고추가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전등사를 출발 약 13km를 걸어왔습니다.

지치고 허기질 시간입니다.

 

막걸리 한잔과 푸짐한 음식으로 힘을 내야합니다.

이 날 점심 건배는 김동식 고문님께서 제의 하셨습니다.

늘 한결같이 묵묵히 우리의 귀감이 되어 주시는 내외분

한사모 회원은 모두 두분을 사랑할 것입니다.

 

'5년을 계획하고 실천한 끝이 보인다. 그 길은 영광이었다.'는

고문님의 말씀과 건배 제의는 "끝까지 걷자" 였습니다.

끝까지 걷자,..걷자, 걷자,걷자

술잔을 높이들고 외치던 힘찬 제의에 회원들의 화답송 역시 우렁찼습니다.

 

 

오후 1시, 통나무 쌈밥 집을 걸어서 출발했습니다.

'강화나들 길 2코스, 호국돈대 길'을 걸어

갑곶 순교성지와 연미정을 거치는

약 14km, 4시간의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시간의 점심식사 시간은 참으로 귀한 휴식이었습니다.

오전의 피로를 풀고 재 충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길을 나서는 회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오후 1시50분,점심식사 후 광성보 입구를 출발

오두 돈대 앞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광성 마을 해안 길을 걸었으며 터진개와 오두돈대 해안 길을 걸어

오두리 구석 마을을 거쳐왔습니다.

10분 휴식후 또 다시 화도돈대와 용당돈대,용진진을 걸을것입니다.

 

 

10분 휴식 후 오두돈대를 2시에 출발했습니다.

갈대가 어우러지고 풀섶과 흙으로 다져진 푹신한 해안 길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땅의 기운이 발 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올라 오는듯했습니다.

역시 살아 숨쉬는 생명의 기운임이 분명했습니다.

 

걷고 또 걸어도 지칠것 같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 길위를 걷고 있는 그 순간이 참으로 소중했으며

죽을 운명을 안고 태어난 생명이기에 더욱 귀중한 존재라는 의식이 가슴을 쳤습니다.

저절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위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기운에

그저 고개 숙일 뿐이었습니다.

 

 

오후 2시50분, 용진진 근처 두번째 쉼터였습니다.

목발을 딛고 서 있는 진풍길님께서 먼저와 계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로하듯,..웃고 서계셨습니다.

그렇게라도 참석해서 완주의 미를 걷우시는 모습

참으로 고맙고 아름다웠습니다.

속히 쾌유하시길 빌뿐입니다.

 

갑곶돈대와 갑곶순교성지를 둘러 본 후 연미정 까지는 약 1시간 반이면 족할듯했습니다.

저녁 5시 이전에 오늘의 일정이 끝날것이며

저녁 식사가 마련된 식당으로 갈것입니다.

 

 

해안 길을 직진했으며 길 끝자락에 도착했을때가

용진진 출발 후 20분쯤 지났을때였습니다.

아이스크림 박스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김창석씨 내외분의 배려였습니다.

 

오후의 지루함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던 아이스 크림은

참으로 달콤하고 시원했습니다.

약간의 식곤증과 약간의 피로감을 한 방에 날려 버렸던 청량제였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오후 3시 40분, 해안도로를 벗어나 더리미 선착장을 거쳐

드디어 갑곶돈대에 도착했습니다.

고려 고종 19년 부터 원종 11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에(1644)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이 돈대는

숙종 5년에 축조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포가 이곳에 전시 되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갑곶돈대 내에 있는 강화 비석군과 포대를 둘러본 후

갑곶순교 성지로 향했습니다.

성지를 둘러 본 후 연미정으로 갈것이며 북녘 땅을 바라본 후

저녁식사가 마련된 곳으로 이동할것입니다.

 

 

갑곶성지는 천주교 인천교구에 속하며 카톨릭 신자들에게

깊은 의미로 다가 오는 곳입니다.

우리의 근대사와 카톨릭의 역사를 떼어놓고 생각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강화도가 한국 천주교회의 창건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비록 천주교 신자가 아닐지라도 인정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특히 갑곶해안은 선교사들이 입경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통로였습니다.

또한 천주교 박해시 이곳에서 3 분의 순교자가 생겼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문헌상의 위치를 연구한 인천교구에서 매입, 지금의 성지로 조성,

2000년 집중 개발해서 사제를 파견했으며

순례자들의 신심을 돕고있습니다.

 

 

성지 입구의 마리아상을 지나, 순교비와 성상,묵주기도의 길,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지나치며 뒷 문으로 향해 걸었습니다.

하루 일정으로도 빡빡한 성지 순례를 단 몇 십 분으로 끝냈습니다.

그럼에도 눈 길 닿는 곳 어디나 낮 익은 곳이며

정겹기 그지 없는 곳이었습니다.

 

 

갑곶순교성지 뒷 마당에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연미정으로 가는 길 몫은 군사 작전지역이었으며 철조망이 쳐져있었습니다.

민통선 제 9 검문소를 지났습니다.

약 20여분 후 연미정에 도착했습니다.

 

 

연미정은 고종이 구재(九齋) 하기 위하여 학생을 모아

면학(勉學)케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 서해와 강화해협으로 흘러 그 모양이

제비 꼬리를 닮았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 했다 전해지고있습니다.

 

높은 석주위에 세운 팔각정은 영조 20년과 고종28년 중수 등

수 차례 보수했다 전해집니다.

특히 청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오후 5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물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 특유의 가라 앉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북녁 땅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연일 일촉즉발의 전시 상태를 과시하는 북녁의 그 땅, 그 사람들,...

저절로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오는 그곳은 별일 없다는듯했습니다.

우리들은 500년된 느티나무 아래 모여 앉아

단체 사진을 찍고 연미정을 내려와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후 4시50분,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친 시간이며 저녁식사 장소인

'알미골 가든'으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날은 유난히 단체 사진을 많이 찍은 날이기도했습니다.

 

 

저녁식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생 삼겹살구이"와 막걸리.

윤종영 고문님께서 마련하신 막걸리였습니다.

정형진님의 건배제의는

꿈꾸던 당신 멋져, 한사모 멋져였습니다.

건배를 외치는 소리로 장내가 떠나 갈듯했습니다.

 

 

6시 식사 끝, 여흥시작이었습니다.

'버스로,호텔로,동쪽에서 남쪽으로 세째 날 인 이 날은 힘든 날이었다.

수고 많으신 함대표님과 이경환님을 위해 박수를 보내자는,'

이영균님의 말씀 후

김채식님의 개그 "뽕삼물투"와 "재산 상속"으로

여흥은 시작되었습니다.

 

한반도 둘레길 걷기의 마지막인 이번 구간에 처음 참가하신 몇분의 신입회원들

참가 소감을 안들을 수 없습니다.

정완오님과 임정순님,그리고 김용만님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래하는 재주를 안주신 하느님을 원망한다.드디어 발가락이 터진 날이기도하다.

그 간 아침 잠을 이기지 못해 이제사 참여하게 되었음을 후회 한다. 그러나

좋은 만남의 기회를 놓치긴 했으나 지난 3일간의 걷기가 별것 아니었다.

남은 일정도 자신있다"는 정완호님의 멘트였습니다.'

 

임정순님 또한

"자신 있다,는 말과 좋은 만남에 감사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여흥은 계속되었습니다.

신입들을 한 사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용만님께서는, " 비밀경찰" "택도 아니다" "홍등가 이야기"

"60대 아져씨와 20대 아가씨"등의 Y담으로 회원들의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어쨌던 남은 일정이 문제 없다 하신 말씀이 믿음직했습니다.

구간 걷기에 참석지 못했던 그간의 아쉬움을 이번 구간에서 만회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안명희님, "발가락 10개가 모두 무사하다,는 말로 시작,

몸 동작과 함께 "낭낭 18세"로 자신의 끼를 선보였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악동^^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들의 맏 언니 이계순님,

"12 구간도 참여 하고 싶다" 였습니다.

그간의 노심초사가 그 한마디로 날아가는 통쾌한 순간이었으며

개그의 반전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우리들의 맏 언니 다웠습니다.

 

 

저녁 6시 40분, 약 30여분의 거리를 버스로 이동해 전 날 여장을 풀었던

세인 관광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전등사를 출발 초지진과 광성보,갑곶성지와 연미정을 거치는

호국돈대 길 27km를 걷고

아침에 출발했던 숙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결국 떠남은 곧 돌아옴이었습니다. 나 자신으로의 정직한 귀향이며

겸손한 이해였음을 거듭 깨닫게 해주던

지난 5년간의 대장정이었습니다.

 

하늘,땅,사람에게

감사했습니다.

회원님들 편안한 밤 되십시오.

 

 


Placido Domingo / Gloire Imortelle Act4 Sc3 Choeur Fa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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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4.15 12:15

    첫댓글 김영자(레아)님의 글월을 잘 읽고, 한 번 더 읽으며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장관 박동진 님도 놀라신 이 문장들은 참으로 소중한 보배이며, 우리 한사모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기(-氣, 끼)란 몹시 급한 성질, 금방 행동으로 내닫는 성미라는 것도 사전을 찾고서야 배운 단어이지요. 이 글에 무심코, 함부로 댓글을 달아서는 실례가 될 것만 같은 숙연하고 자랑스런 느낌이 들어요. 어리가 찍은 사진들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만들어 주셔서 영광이요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소감을 사랑방에 몇 자 더 남겨 볼 생각입니다. 어리 드림

  • 13.04.12 17:43

    어거스트리님, 과찬의 댓글 고맙습니다. 늘 부족한 글 솜씨로 행여 한사모에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넘치는 회원들의 배려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하루의 일정을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촬영해서 올려주신 홍보위원장님의 사진이 더욱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지적해 주신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이제 보입니다.^^ 원문은 수정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수정이 안될것 같군요. 김레아 드림.

  • 13.04.12 16:09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감회가 남다르며 전등사에 오르며 역사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듣고 익혔습니다.
    갈대가 우거진 흙길로 다져진 푹신한 해안길을 걷고 걸으며 지치지 않을 좋은 길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갑곶순교성지"를 둘러 보는 시간도 의미가 깊었으며 하늘 땅 사람에게 감사하며 3일째 날을 맺는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후기를 자세히 기록하여 주신 김레아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13.04.12 17:45

    삼가 형님, 댓글 고맙습니다.
    대 단원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더욱 감회가 깊네요. 모쪼록 쾌유하시어 왕성한 활동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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