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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림 개인전 2017. 12. 22 - 1. 28 학고재 (T.02-720-1524, 삼청동)
숲의 사색_채림 개인전
전통 나전칠기 기법은 도안된 자개에 아교칠을 해서 인두로 지져 붙이는 "자개붙임"을 하지만, 채림 작가의 작품은 자개 원패들을 옻판 위에 실버 난집으로
셋팅해 브로치처럼 표현함으로써 색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서성록(안동대 교수, 미술평론가)
Awaiting, 60x40cm 4ps, Mother-of-pearl, silver 925, 24K gold leaf, natural lacquer on wood, 2017
채림은 자연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작품에는 짙은 녹음의 숲과 조용한 연못이 있고, 어스름한 저녁 풍경이 등장한다.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내민 야생화들도 볼 수 있다. 들꽃과의 눈인사, 입맞춤에 이어 숲과의 속살거림이 화면을 채운다. 작가는 초목과 짐승들을 감동시킨 오르페우스(Orpheus)처럼 자연의 노래를 연주하며 그의 벗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작가가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은 숲과 나무와 같은 자연이다. 붓과 물감 대신에 옻칠과 자개, 순은을 사용하여 이색적인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평소 숲과 나무를 좋아하는 작가는 모네(Claude Monet)의 지베르니 정원을 방문하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모네가 설계하고 가꾼 이 정원은 불후의 명작 <수련>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보면 꽃과 열매를 비롯하여 호젓한 숲 속의 분위기를 차분히 실어내고 있다. 자연을 주제로 한 서양의 회화가 ‘대상지시적’이거나 ‘자아투사적’이라면, 그의 작품은 ‘자연의 관조’에서 오는 ‘맑은 기운’을 오롯이 살려냈다는 점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Blue fog 부분, 122x162cm, Gemstones, silver 925, natural lacquer on wood, 2017
숲 속을 거닐며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식물성 이미지이다. 화면 곳곳에 덩굴인지 나뭇잎인지, 또는 나뭇가지인지 뚜렷하지 않은 선들이 서로 교차하고 엉키고 겹치며 미끄러지는 등 여러 표정을 짓는다. 화면을 부유하는 생태 이미지들은 화면을 장식하며 덩굴처럼 주위로 퍼져가는 확장성을 띤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반경을 넓혀가며 급기야 거대한 흐름으로 바뀐다.
신비로운 숲의 모습을 담은 <숲 속을 거닐며>(Walking in the Forest, 2014-2017)는 이런 확장성을 잘 보여주는데 처음 7개 피스로 시작하였던 것이 9개 피스로, 13개 피스로 늘어나, 이번 학고재 갤러리에서 갖는 개인전에는 17개 피스로 대폭 늘어났다. 이것들을 모두 펼쳐놓으면 인적이 끊긴, 깊은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결, 짙은 숲의 향기, 쓸쓸하고 고적한 기운, 청량한 공기가 보는 사람을 다독거린다.
Song of the wind in the forest,45x50,150x50,45x50,60x50,55x45,100x45,90x45,65x45,120x60,83x60,110x60cm, Mother-of-pearl, silver 925, 22K gold-plated s
그런데 우리는 그의 작품이 물감 튜브에 의한 것이 아닌, 전통 공예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작가는 수 십 번의 거듭된 옻칠로 정지작업을 한 다음 순은으로 나무껍질의 텍스추어를 만들어 운치 있는 숲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굳이 유채라는 재료를 피하고 옻칠을 사용한 데에는 그가 보석디자인을 전공하였다는 배경도 작용했지만 유채에서 느낄 수 없는 특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고집이 반영된 탓이 크다. 실제로 옻칠화의 작업과정은 40여 회의 반복적인 과정을 거치는 등 고난도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가는 기존의 어느 매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고유의 색감과 광택, 질감까지 갖춘 효과를 얻어낸다. 이 작업은 끈적끈적한 점성과 온도의 예민함과 같은 재료의 속성상 이것을 다룰 때는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 이런 까다로운 특성이 오히려 작가의 열정을 살려내고 있지 않나 싶다.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 나온 표면은 특유의 광택과 우아한 빛깔로 자연이 부여하는 아름다움을 발휘하게 된다. 게다가 작가는 옻칠과 자개라는 전통적인 소재에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여백, 절제미를 가미해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의 관조와 사색을 느끼게 된다. 우울한 소식이 그칠 날이 없는 이 세상에 들려줄 노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만큼 뜻깊은 일이 어디 있으랴.
Whispers of Bamboo, 122x162cm, Mother-of-pearl, silver 925, natural lacquer on wood, 2017
고요함의 자리
작품들은 감상자에게 사색의 자리에 초대하고 있다. 식물 이외에 특별한 이미지들을 기용하지 않으며 모티브가 강조되도록 하고 있다. 즉 표현이 억제되어 있는 것 같으나 이로써 ‘고요함’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학고재 갤러리의 개인전에 전시되는 <숲 속 바람의 노래>(Song of the Wind in the Forest, 2016-2017), <고향의 봄>(Spring in My Hometown, 2017), <복숭아, 살구꽃, 아기 진달래>(Peach Flower, Apricot Flower and Baby Azalea, 2015-2017), <소나무-(Pine Tree, 2015), <춤추는 버드나무>(Dancing Willows, 2017) 등이 대부분 그런 특성을 지닌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바람과 꽃의 산뜻함과 아름다움은 오직 조용함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그 주인이 된다고 했듯이, 채림의 작품이 정한(靜閑)의 특성을 갖는 것은 바람이 자고 숲의 물결이 잔잔한 가운데서 인생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간직한 한가롭고 명상적인 세계는 우리를 고즈넉한 세계로 안내해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When winter ends, when spring comes 170x240cm, Pearl, mother-of-pearl,
silver 925, natural lacquer
확실히 ‘고요함’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이용하는 대가로 끊임없는 소리와 소음을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 내부에 침묵의 자리가 없다면 언어는 진실과 미에서 분리된 불완전한 것이 되리라’(Max Picard)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침묵의 회복력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의 부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소음이 들끓고 속도가 종횡무진 폭주하는 시대에 채림 작가가 그런 문제를 주제화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근래 작가는 국내에서의 전시뿐만 아니라 뉴저지 프린스턴 갤러리, 파리 BDMC 갤러리, 뉴욕 에이블 파인아트 갤러리 개인전을 소화해냈는가 하면 뉴욕 아트 엑스포에서 ‘솔로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활동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에는 사치갤러리가 주관하는 ‘스타트 아트페어’에 선정되어 발표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처럼 작가가 여러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공예기법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훌륭한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식물성 이미지를 보고 있자면 일상의 찌듦과 분주함의 자리에 어느새 서정의 자락이 내려앉은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은 나무숲 사이를 걷다가 한적한 곳에 핀 꽃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처럼 자연과의 조우, 생명과의 조우를 수반하고 있다. 이런 만남은 보는 사람에게 예기치 못했던 ‘한 다발의 설렘과 기쁨’을 선사해주리라 생각된다.
숲을 가로지르는 빛 (Through the Light of the Forest)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Peach Flower, Apricot Flower and Baby Azalea, 40x60cmx12ps, 2015-2017
글 : 로버트 C. 모건
채림 작가는 우아하고 독창적인 옻칠과 자개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기 전부터 오랜 시간 보석 디자이너 경력을 쌓아 왔다. 그녀의 주얼리 예술은 그녀만의 작업 방식인 복잡한 형태의 양각 조형으로 발전되었다. 그녀는 나무 패널에 여러 번 옻칠을 하고 자개를 박는 기술로 그녀만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영위하는데, 한국 고유 미술에서 착안한 그녀의 작품은 고요하면서도 환희가 넘치는 공명과 명멸하는 빛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은 주거 공간에 걸릴 때에 그 공간의 가치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채림 작가의 보석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알게 되었을 때, 바우하우스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를 떠올렸다. 그녀의 경력처럼 미스 반 데어 로에 역시 기념비적인 작업을 하기 전 보석 세공사로서의 훈련을 받았었다. 두 작가의 작업은 귀금속과 희귀한 스톤을 이용하는 보석 디자인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같은 긴밀감의 형태는 작품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일깨움과 동시에 인체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한다.
채림의 작품에서 보석들은 서정적으로 디자인 된, 궁극적으로 보다 큰 규모의 존재로 변화한다. 그녀의 탁월한 옻칠과 자개 작품은 공예에 대한 세심한 주의력과 고상한 감각에 감동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탐닉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보석은 대체로 착용하는 사람의 얼굴 등 신체의 외관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 예술로써 이해되어왔다. 채림 작가 또한 보석의 이러한 특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본인의 영역을 또 다른 분야로 옮기기로 했음에도 옻칠한 나무 표면과 자개, 22K 골드 등 다양한 소재의 금속 장식은 놓지 않았다. 혹자는 채림 작가 다수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옻칠과 자개 작품의 금속 기술들이 몹시 파격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 Pine Tree , 122x150x30cm, Mother-of-pearl, silver 925, natural lacquer, 2015
예컨대 “Song of the Wind in the Forest”는 작가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채림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전통적인 옻칠기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영감과 에너지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전 작품에서는 약 30~40 회 정도 옻을 칠하고, 말리고, 또 표면을 고르게 갈아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 ‘Song of the Wind in the Forest’에서는 색다른 옻칠 기술로 나무껍질의 질감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리하여 나타나는 불규칙한 양식은 마치 자연의 선율을 느끼게 하여 관객에게 방대하고 웅장한 나무 위 혹은 숲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의 풍경을 전합니다.”
“Walking in the Forest”라고 이름 붙여진 연작은 더욱 흥미롭다. 이 옻칠과 자개 작품들은 수평적으로 파형을 이룬다. 조심스럽게 배치 된, 마치 금세 떨어진 듯한 눈꽃을 연상시키는 은색 장식과 함께 구성된 그녀의 꽃 디자인은 충격적일 정도로 몹시 창의적이다. 옻을 여러 겹 쌓아 올려 만들어낸 회청색의 표면은 그녀가 의도한 서사의 주제에 매우 효과적이다.
“Song of the wind in the forest”와 “Walking in the forest”,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추구하는 ‘자연의 선에 대한 오마쥬’를 각기 다른 강렬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이 최근작들의 율동적인 특성은 전체적으로 선적인 감각보다 리듬적인 감각으로 더 잘 드러난다. 이 두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면의 사용과 공간의 독자성에 있어 작가의 문화적 배경, 즉 한국인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이 매혹적인 형태들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심미적 접근법의 진정한 본질을 제정한다. 이 작품들은 물질이 영적 의미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색의 여지를 두는 해석을 기반으로 동양 특유의 물질에 대한 절제된 표현을 또 다른 수준에서 묘사한다.
숲속을 거닐며 Walking in the forest,70x40,60x40,130x40, 55x45,65x45, 60x45, 65x45,85x60, 100x60, 80x60,55x40, 130x40, 60x40cm,Mother-of-pearl, silver 925, n
글 : 채림(옻칠과 자개의 작가)
<Nature meets nature, Art meets art>는 자연으로부터의 소재로 자연을 표현함으로써 예술과 예술이 만난다는 의미다. Nature meets nature, ART meets art에서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장르가 다른 아트들(주얼리 아트와 조형적인 회화작품)간의 만남과, 시간이 다른 아트들(나전칠기라는 전통예술과 나전칠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컨템퍼러리 아트) 간의 의미 있는 만남을 뜻한다. "조형적인 회화작품"의 표현기법은 옻칠과 자개라는 고전성을 부여받고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는데, 이 두 재료를 함께 쓸 때 더 효과적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업>이 된다. 전통 나전칠기 기법은 도안된 자개에 아교칠을 해서 인두로 지져 붙이는 "자개붙임"을 하지만, 본인의 작품은 자개 원패들을 옻판 위에 실버 난집으로 셋팅해 브로치처럼 표현함으로써 색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평면적이지만 입체적이고,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이고, 회화 같은 듯 조각 같은 복합적인 작품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점점 현대미술과 조각의 중간 지점, 더 나아가 흥미롭고 새로운 장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주얼리 디자이너로 2000년부터 활동했는데 주얼리 작품은 항상 전시회가 끝나면 캄캄한 금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라 아쉬운 점이 많았고 그래서 점점 전통장신구에 관심이 갔으며, 그랑빨레에서 주얼트리를 전시한 후 전통장신구 디자인의 모티프를 다른 장르의 아트로 풀어보고 싶었다.
채림,숲 속 바람의 노래 Song of the Wind in the Forest, Mother-of-pearl, silver 925 on lacquered wood, 50x45cm 50x150cm 50x45cm 50x60cm 45x59cm 45x100cm 45x90cm 45
옻칠 작업중 흥미로운 것은 옻칠이 물보다는 기름과 친하다는 성격을 이용한 색채띠의 PLAY가 흥미롭다. 단청에서 영감 받아 작업하는 색의 유희가 아름답고 이채롭다. 옻칠 작업을 할때도 옻에는 기본적인 칼라만 있어서 항상 수많은 칼라를 직접 만들어서 쓰곤 한다는데 여러 옻 칼라의 붓 터치가 쌓여지며 펼쳐지는 환상적인 두께감을 즐겁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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